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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07 10:03
한반도의 철학적 정서 : 단상
 글쓴이 : 방랑노Zㅐ
조회 : 750  

한국인의 정체성 [Identity]이 무었인가

엉뚱하게도 서양철학(philosophy)을 공부하다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동양철학으로 선회하게된 이유이기도 한)

한반도의 -한반도인의- 사상이라는 장문의 분석글은 다음에 다른글로 작성하여 올리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간명하게 핵심만 들추어 보기로 합니다 

우리말 한글을 사용하여 글을 썼엇던 
시인들의 글에서 그 냄새를 맡아봅니다
오랜세월 외세에 시달려온 (사상마저도) 한국인의 정서를 승화시킨 사유로 느껴집니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전문

Back to Heaven*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

I'll go back to heaven again.

At the end of my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
I'll go back and say: It was beautiful...
.............................................



발췌된 시에서의 하늘은 
서양의 유일신이나, 로고스(Logos)도 아니며 
불교나 도교사상의 제천 (諸天)도 아니어서
얼핏 유사 한듯 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변화의 속성 또는 회귀
왔던 곳으로 돌아갈 곳이란 의미가 더 큽니다 
(한국인의 하늘을 영어로 번역하면 저런 모양새로 왜곡됩니다)
동시에 
하늘을 경외하며 사는 태도보다 훨씬 중요한 
발 딛고선 이땅에서 살아가기에 더 무게 중심이 실립니다
어떻게? 
스스로 자신에게 부끄럼 없이, 멋지게 아름답게 ... 홍익인간으로(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답게)


이상: 개인적인 사유를 짧게 설해 봐씁니다

누락된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적어주시면 열린태도로 받아들이겟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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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수 20-04-07 10:14
 
좋은 글인데...

좋은 글이어서 공감 밖에는 할 게 없네요.

아, 할 말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홍익인간 정신으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거짓을 공격하다보면... 점차 제 자신이 괴물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선의보다는 공격성이 앞에 나선달까요? 이런 자화상을 볼 때마다 아직 범부의 틀을 넘어서지 못했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방랑노Zㅐ 20-04-07 10:23
 
댓글 감사드립니다

수많은 선지자들 성현들 께서도
의(義)의 이름으로 육도 외도나 바리새인들을 호통치고 황제를 비난하기도 했었던건
잘 아실겁니다
당연한 행보라 생각됩니다
저도 범부의 틀에서 아직 벗어나지못해
욱 ! 하다가도 혼자 꼬추 잡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
          
지청수 20-04-07 10:45
 
현자가 되는 법을 아시는 분이시군요!
               
방랑노Zㅐ 20-04-07 11:06
 
아는거에 비해서 행위가 못 따라가는 범부 속물입니다 
탐진치 중에서 나머지 두 성정은 어찌어찌 조절이 되는데
분노와 반항정신은 무덤까지 따라올듯합니다
에효~ ㅠㅜ
                    
지청수 20-04-07 11:33
 
제가 쓴 '현자가 되는 법'은 그런 진지한 내용이 아니었는데... 흠흠...
거 참... 말로 하기 거시기한 그 거시기... 흠흠...
                         
방랑노Zㅐ 20-04-07 12:05
 
네 거시기 ㅎㅎ

"ㅈ 잡고 반성해 "
이말의 어원이 어디서 나온지는 알길이 없지만
참 놀라운 격언입니다
발딱서는 공격적인 양기를
꽉 움켜쥐고 가라 앉히라는 뜻이 아닐까 뇌피셜 합니다 ~~
     
방랑노Zㅐ 20-04-07 10:28
 
의로운 한국인들의 기질이 작용하여
엉터리면 대통령도 갈아 치우는 대단한 민족입니다
     
팔상인 20-04-07 13:48
 
방랑노재님께 구한 질문에 실례입니다만
지청수님을 보는 제 소견도 남겨보고 싶어졌습니다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중
보편법칙의 정식과 인간성 정식이란게 있습니다

보편법칙의 정식은
"마치 네 행위의 준칙이 네 의지에 의해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되어야 할 것 처럼 그렇게 행위하라"이고,

인간성 정식은
"네 인격 안의 인간성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격 안의 인간성까지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그렇게 행위하라"였죠

이 두가지를 연결한 개념의 응보는
다음처럼 해석하는 것이 현대의 법률원리이기도 합니다

응보는 죄가 가진 불평등한 자유요구를 기록에 올려
그 죄인은 불평등한 자유를 요구할 자격이 없으며,
타인에 대한 동일한 자유와 양립할 수 있도록
죄인 자신의 자유가 갖는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지를 응보라고 하죠

복수는 일반적인 사회적 평등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주로 개인적 동기에 기초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응보는 복수와 다릅니다

지청수님의 공격성은 분노라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일테고,
분노에는 정당한 분노와 부당한 분노가 있습니다
보통 응보의 실현이 정당한 분노와 연결되고
복수의 실현이 부당한 분노와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가 지청수님을 접한 바로는 대부분 정당한 분노를 가졌던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이 정당한 분노는 이성이 근간에서 작용하는 것이라하여
이를 '이성감정'이라고도 불립니다
즉 단순히 감정에 기초한게 아니라 이성감정에 기초해 왔다는 얘기죠

그러니 이런 바탕의 공격성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가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응보에 대한 기대는 정의롭습니다

게다가 지청수님은 저 못난이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쌍욕이나 상스러운 대응을 절제하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이는 저 못난이들도 좀 정상인이 되었으면 하는
애정어린 응시도 적게나마 존재하기 때문일거라 봤습니다

이상적인 응보는 "정의롭고 애정 어린 응시"이며,
지청수님은 이에 근접해 있는 것이라 봅니다

무조건적인 선의는 사람을 망칩니다
대기업 총수의 애새끼들이 망가지는 이유기도 하죠

적절한 응보와 애정어린 응시가 사람을 개선시킬
더 나은 기회를 갖는 점은 아마도 확실할 것입니다
          
지청수 20-04-07 21:15
 
저에 대해 후한 평을 길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칸트에 의하면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에 합당하는 처벌을 하는 것이 정의롭고, 언급하신 것처럼 무조건적인 선의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지요.
저 또한 여기에 100% 동감합니다.

위에 언급하신 재벌집 2세, 3세들의 인성도 그렇지만, 현재 한국의 사법체계도 범법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지요. 다들 이런 현실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분노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문제는 이런 응보주의와는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논쟁에 처음 뛰어들 때에는 상대방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논리적 대화를 거부하고 말을 빙빙 돌리거나 맹목적인 신앙이나 정치적 목적에 갖혀서 자기 시간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시간도 갉아먹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납니다.
처음에는 한심해보이다가도 이런 단계가 지나면 짜증이 나고, 교조적으로 변합니다.
허술하다 못해 상대방을 기만하는 논리전개방식과 상대방의 지식의 양의 미천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어깃장을 놓는 것을 보면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경멸도 조금씩 생겨나요. 이런 자세가 쌓이고 쌓이면 종국엔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하게 됩니다.
이 게시판에서도 인격적인 무시를 하며 말을 아예 섞지 않는 사람들이 몇 명 있지요. 댓글을 남기더라도 냉소 가득한 비아냥만 남기지요.

글로써 논쟁을 하다가 잠시 시간을 갖고 제 자신을 뒤돌아 보면 이런 행태가 제 눈에 밟힙니다. 분명히 상대방이 비난받을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해서 응분의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은 맞는데, 화를 내거나 창피함을 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자세가 과연 윤리의 틀에서 수용 가능한 것인지, 제 자세가 교만한 건지 의문이 듭니다.

공격성이란 게 차라리 예수처럼 불의에 격하게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1차원적인 것이라면 위와 같은 고민을 안할텐데,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상대방을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감정을 해소하게되니 이것이 과연 옳은 대처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간단히 말하면, 칸트에 의하면 행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정의롭다고 하는데, 제 이런 태도가 과연 합당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사실 이런 태도는 저 뿐만이 아니라 이 종철게에서도 자주 발견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슈게, 정게 등에서도 자주 발견되죠. 거기도 어그로들이 워낙 판치는 곳인지라...

발상인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겸허한 자세로 발상인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헬로가생 20-04-07 22:00
 
저도 그런 생각할 했던적이 있는데
이젠 그냥 편안하게 하루하루 살려고 합니다.
(어쩜 그냥 게으른 것일 수도 ㅋ)
상대방을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감정을 해소할 수 밖에 없다해도
그것이 불의보다는 선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게 감정의 해소라도 그런 분노를 갖는 사람이 많고
그게 행동으로 옮겨질수록 불의가 사라지겠죠.
그 감정이 거대해져 악으로 변한다면 또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해 주겠죠.
전 사회의 정화기능을 믿습니다.

또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려다 ㅆ선비가 되거나 여기 게시판에도 보이는
자아도취의 신선이 되느니 그냥 화낼줄 알고 실수도 하는
총알받이 보병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봅니다. ㅋ

(...라고 쓰고 큰 생각 같은 거 못하는 소인의 변명이라 읽는다)
               
fkwhjtls 20-04-09 17:06
 
성인군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져서 이 세상이 조용해지던가요? 세상 일이 다 좋은 말로 해결되면 좋겠지만 어떤 이는 그걸 도리어 비웃으며 악용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군자처럼 굴면 그들이 언젠간 바뀔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전 그냥 인지부조화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흔히 얘기되는 도덕적으로 지향되는 것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대략적인 안내판같은 것이지 이런저런 현실까지 모두 고려해서 도출된 정답은 아니란 거죠. 좀 더 명시적인 법률의 경우에도 같은 범죄라도 나라마다 형량이 다 다른데 그럼 어느 나라의 형량이 과연 합당한 처벌일까요? 서로 다른 두가지 행위는 등가로 맞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죠. 특정 관점으로 대략적으로 퉁치는 것일 뿐. 차라리 직관적으로 그냥 똑같이 복수해주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도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고대의 법에서 그런 경향이 보이는 걸테구요. 합당한단 것도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너무 얽매이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적어도 전 지청수님의 행태가 공감이 되지 지탄받을 만큼 잘못된 것이라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그러니 필요 이상의 자기 성찰로 자괴감에 빠져 자기 혐오나 파괴로 이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팔상인 20-04-07 22:24
 
지청수님이나 헬로가생님이나
제가 겪었던 갈구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듯 합니다

일단 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전 '철학'이란 통념적 의미의 단어 자체를 수용하기 싫습니다만,
사회적 통념상 '철학'이라는 단어를 편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양해를 기대합니다

저도 못난이들을 상대하면서 내가 오염되어 간다는 점이 상당히 불편했고
이를 어떻게 해소되는 것이 좋을지 길을 찾던 중에
발견한 게 '감정철학'이라는 분야입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제 반응을 기억하는 분들은..
저도 두 분과 비슷했으나 언젠가부터 제 반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 반응변화의 모태는 아마도
현대철학의 반성인 이 '감정철학'이란 분야에서 시작되었고,
신경과학과 맞물려 좀 더 '온전성'을
확보하려는 의욕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싶습니다

이를 제 나름대로 살펴본 이해가 닿는 것 만큼만
두 분의 질의에 성의있게 준비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지 싶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 납득가능한 이야기를 꺼내려면
사회적 통념을 부분적으로 깨는 시도를 해야하지 싶습니다
이걸 안 깨면 납득이 안되실테니까요.

다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제가 술먹으러 가야합니다
하루 정도..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방랑노Zㅐ 20-04-08 11:20
 
댓글들 정독해서 잘 읽어 보고 있습니다

제 인생경험 중에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후배가 있었는대 ,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며 매사에 불만투성이인 성정을 지녔습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만날때 마다 제가 지적질을 하고 ㅅ선비질을 하다보니
늘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잔소리쟁이가 되어 있는 제자신을 발견합니다

저 친구의 습성을 고치기 위한 진심어린 선배의 태도 였을까?
그걸 빌미로 나 자신이 선생질 할려는 심리적 기저의 발동인가?

자성하고
나 자신의 언행을 점점 줄이다 보니, 이후로 점점 교류가 적어지며  무관심한 관계로 나아갑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일입니다
혼내고 지적하는 것은 그나마
그 후배에 대한 애정이, 심장 어딘가 내재 되어있는 탓이라 그리 여겼는대
무관심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자
씁쓸한 회한만 남게 되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응징은 무관심이라는 말도 실은 꽤 아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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