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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21 16:06
김일성은 조선족
 글쓴이 : 제시카좋아
조회 : 1,098  

2014 기획
[김명호 교수의 북-중 교류 60년] ② 김일성과 중국 혁명가들의 만남

 
 
 
 
일본의 만주 침략…‘조선족 김일성’의 운명을 바꾸다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중국인들의 정서는 복잡하다. 한 예를 들면, 1981년 중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지리학자 천정샹(陳正祥·1922~2003)은 항일전쟁 승리 뒤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중국문화지리> 첫장에 청매죽마(靑梅竹馬)였던 여자친구 허이런(何伊人)에게 이 책을 바친다며 일본의 침략을 질타하는 글을 남겼다.
 
 
“만일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광기 어린 침략이 없었더라면, 허이런은 절대 황량하고 외진 산속에서 약 한 첩 못 쓰고 병사하지 않았다. 만일 일본군의 잔악한 약탈과 살상이 없었더라면, 나도 황급히 서호(西湖)를 등지고 소나무 언덕(전시수도 충칭을 의미)까지 피난 갈 이유가 없었다. 또 만일이지만, 일본의 패전과 투항이 없었더라면, 세계를 떠돌며 장기간에 걸친 연구와 조사에 매진할 기회가 있었을 리 없다. 만약 이런 일들이 없었더라면 행복이 충만한 가정에서 우수하고 교양있는 자손들을 거느리며 전통문화의 진정한 계승자로 자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국제 학계에서의 허명 외에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남은 것이라곤 회상, 실망, 서글픔과 슬픈 상처뿐이다.”
 
며칠 전 한 일간지에 북한 평양에서 중국 텔레비전 드라마 <첸푸>(潛伏·잠복)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는 보도가 실렸다. 5년 전 나온 <첸푸>는 전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몇 사람 모였다 하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델이 누구인지를 놓고 설전들을 벌였다. 국민당-공산당의 국공 합작과 전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이 30회짜리 드라마가 유행중인 것이 사실이라면, 평양시민들의 중국 이해가 수준 이상이라고 봐도 된다.
1990년에도 <커왕>(渴望·갈망)이라는 50회짜리 연속극이 중국에 이어 북한에서 유행했다. 하루는 친척 만나러 평양에 다녀왔다는 중국 친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평양 갔다가 티브이에서 중국 드라마 <커왕>을 방영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방영시간만 되면 거리에 인적이 드물었다. 친척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수령님이 좋아한다고 해서 다들 본다고 했다.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가는 나라다.”
 
이날 중국 친구는 “김일성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20여년을 산 조선족 출신이라 어쩔 수 없다. 큰아들은 한국 트로트 가요들을 좋아한다고 들었다”는 말도 했다.
중국 평론가들은 <커왕>을 계기로 중국 드라마가 변신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인이라면 몰라도 한국인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인내를 발휘해서 보다 보면 왜 김일성이 이 연속극을 좋아했는지 짐작이 간다. 가수 마오아민(毛阿敏)이 부른 주제가 때문이 아니었을까.
1929년 가을 동북의 지배자 장쉐량(오른쪽). 당시 29살에 불과했지만 전 중국의 2인자였다.
김일성은 1917년 만주로 이주
중국공산당은 국공합작이 깨지자
1927년 동북을 거점 삼았다
그리고 1931년 일본이 침략했다
 
조선인의 중공 입당이 줄 이었고
김일성도 그중 한명이었다
그는 이후 항일유격대를 지휘
중국혁명가들과 관계가 시작됐다
만주사변이 없었다면
김일성의 운명은 어찌됐을까
조선인의 중공 입당이 줄 이었고
김일성도 그중 한명이었다
그는 이후 항일유격대를 지휘
중국혁명가들과 관계가 시작됐다
만주사변이 없었다면
김일성의 운명은 어찌됐을까
 
“유유한 세월,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항상 곤혹스러웠다. 진실과 환상, 취하고 버릴 것을 가리기 힘들었다. 오랜 세월 슬픔과 즐거움이 교차했다. 이미 지나간 일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정말 왜 그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속으로는 항상 진실되고 성실한 삶을 갈망했지만 내가 뭘 잘했고 못했는지 말해줄 사람이 없다. 남쪽에서 오고 북쪽에서 간 사람들에게 그간의 은원(恩怨)을 망각하고 진정 어린 한마디를 나눌 수 없는지 묻고 싶다. 집집마다 등불 밑에 앉아 나눌 얘기는 많지 않아도 함께 부를 노래는 얼마든지 있다….”
완전한 의미 전달은 불가능하지만 꾸역꾸역 옮기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그 속을 알 수는 없지만, 주유가 제갈량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고, 장제스가 마오쩌둥이라는 적수를 만난 것을 한탄했던 것처럼, 김일성은 만주시절 적대관계였던 냉철한 현실주의자 박정희에게 완전히 판정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음직도 하다.
 
만약 일본이 만주(동북지방)를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김일성의 운명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중국 인민대학 교수를 지낸 역사학자 상웨(尙鉞·1982년 작고)는 회고록에서 김일성을 조선족이라고 표현했다. 1917년 다섯살 때 온 가족이 만주로 이주한 김일성은 1926년 지린(길림)성 위원(毓文)중학에 입학했다. 3학년 때 교사로 부임한 상웨를 처음 만났다. 베이징대학 영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호 루쉰의 추종자였던 상웨의 숙소에는 구하기 힘든 책들이 많았다. 김일성은 중국 신문화운동의 세례를 듬뿍 받은 젊은 교사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상웨도 자기보다 열살 어린 조선 소년을 편애했다.
 
“김성주라는 조선족 학생이 있었다. 독서욕이 남달랐다. 조설근(曹雪芹·1715~1763)의 소설 <홍루몽>(紅樓夢)과 압록강변에서 벌어진 조선 남녀의 애정을 그린 작가 장광츠(蔣光慈·1901~1931)의 <압록강상>(鴨綠江上)을 내게서 빌려갔다. 러시아 문호 고골(1809~1852)의 작품집이나 천두슈(陳獨秀·1879~1942)의 <선집>, <신청년> 등 닥치는 대로 보려고 했다. 이미 남에게 빌려줘서 없는 책은 일부러 구입해서 빌려줬다. 나는 책을 빌려준 대가로 독후감을 요구했다. 나이에 비해 표현력도 뛰어났다.”
항일의용군에 의해 폭파된 열차를 수습하는 일본관동군. 1930년대 초.
상웨의 위원중학 근무기간은 짧았다. 지린성 교육청의 문제 학생 제적에 반발하다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해 가을 김일성은 반일 선전활동을 하다 체포됐다. 당시 동북의 지배자는 청년 장군 장쉐량(張學良·1898~2001)이었다. 1936년 겨울 그는 일본과의 전쟁을 주장하며 최고통치자 장제스를 감금까지 했지만, 김일성이 갇힌 곳은 워낙 촌구석이고 자신의 군대인 동북군도 친일계파가 많았다. 게다가 열일곱짜리 조선 소년의 투옥 같은 건 얘깃거리도 못 될 때였다. 훗날 상웨는 제자 80여명과 함께 <중국통사강의>를 편찬해 학계에서 각광을 받았다. 소문을 들은 김일성은 인편에 자신의 위원중학 시절에 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상웨도 거절하지 않았다. 50년대 중국의 반우파 운동 시절 우파로 몰려 상웨도 곤욕을 치렀지만 김일성은 도움을 못 줬다. 대신 1989년 상웨의 딸들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2년 전 중국 인민대학에서 출간한 <상웨 선생>이란 책에도 소년 시절의 스승을 회상하는 김일성의 글이 한편 실려 있다.
 
1931년 9월18일 일본 관동군이 동북을 침략했다. 장제스의 지시를 받은 장쉐량은 저항을 포기했다. 수하의 동북군을 만리장성 안으로 철수시켰다. 일본군은 4개월 만에 일본 국토의 3.5배인 만주를 점령했다.
 
9·18 사변 이후 동북의 조선인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9·18 사변 이전만 하더라도 동북의 조선인들은 일본을 대단하게 보지 않았다. 작은 섬나라가 깝죽대기는 해도 대국을 침략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일본이 거대한 동북마저 먹어치우자 식민지 조국의 해방은 물건너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향락주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허탈감이 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만주야말로 지상낙원이다. 가기만 하면 도처에 돈과 먹을 것이 널려 있다”며 동북 이민을 재촉했다. 동북 이민 바람이 한반도를 덮쳤다. 수많은 동포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다.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했을 때 동북의 조선인들은 216만명을 웃돌았다. 그중 100만 이상이 9·18 사변 이후 5년간 동북으로 이주했다고 보면 된다.
 
1921년 여름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이 창당대회를 열었다. 25년 봄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은 조선공산당도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공산당은 일본의 눈길을 피해 활동 무대를 동북지역으로 옮겼다. 1927년 4월 장제스의 정변으로 국공합작이 깨지자 지하로 잠복한 중공(중국공산당)은 동북으로 눈길을 돌렸다. 같은해 10월 동북에 만주성 임시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조선족 밀집 지역인 연변의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중공 조직에 가입했다. 조선인들은 민첩했다. 만주성 임시위원회 성립 4개월 만에 연변 지역 최초의 당 지부를 용정(룽징)에 선보였다.
 
일국일당주의를 표방하던 중공과 코민테른은 1930년 1월 하얼빈에 대표를 파견했다. 중공의 만주성 위원회를 소집해 만주의 조선공산당 대표들과 연석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만주의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중공에 가입하기로 합의했다. 중공은 동북에 기반이 약했다. 당원이 수백명에 불과했다. 9·18 사변이 발발하자 조선공산당원들의 중공 입당이 줄을 이었다. 순식간에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김일성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중국 혁명가들과의 복잡하고 끈끈한 관계가 시작됐다.
 
감옥에서 풀려나 연변 안도(安圖·안투)의 어머니 곁에 가 있던 김일성은 1932년 4월25일 중국 친구 장웨이화(張蔚華)의 아버지가 사준 총 40자루를 들고 항일유격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군 창건 기념일도 4월25일이다. 중공 초대 서기 천두슈가 실각하고 형식적이나마 당권을 장악한 취추바이(瞿秋白·1899~1935)가 파르티잔을 유격대라고 번역한 지 4년 뒤였다. 5월5일 일본군과 첫번째 전투를 치렀다.
 
김일성이 만든 안투항일유격대는 중국 항일부대의 지부였지만 특색이 있었다. 동북에서 일본군과 싸울때는 중국 항일부대로 활동했지만, 압록강 건너 조선 땅에 들어와 유격전을 펼칠 때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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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남자 14-01-21 17:38
   
김일성 개 잡종이죠. ㅋㅋㅋㅋㅋㅋ
디노 14-01-21 18:20
   
조선족 좋아하네...100년 전만 해도 조선족이 어디 있었어. 간도에 살던 지금의 조선족도 모두 대한제국 백성이었지. 호적까지 조선왕조에서 관리를 했는데, 뭐 조선족이 따로 있는 줄 알아?
그랬던 놈들이 지금 중국에 붙어 있는 건데, 지들 조상의 나라도 몰라보는 배은망덕한 놈들...조선족이 어디에 있었다고 조선족 타령이야...
북간도에 살던 윤동주뿐만 아니라 그때 간도에 살던 모든 조선인들은 대한제국의 백성들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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