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케이신문 칼럼 기고)
2012년 7월 런던올림픽 주최측 초청으로 런던에 갔을 때였다. 근 한 달 동안의 체류과정에 영국 남부 지역 귀족의 성지에서 열린 문화축제에 참가하게 됐다.
북한 출신인 나로서는 100여명에 달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작가, 기자, 영화감독, 영화배우, 가수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참으로 특별한 경험의 기회였다.
아무 격식 없이 도착한 순서대로 안내되어 식사 주문을 받을 때였다. 누군가 나를 찾아와 북한 작가냐며 매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계 파키스탄인 Tariq Ali라는 사람이었다. 세계적인 진보성향의 잡지인 "New Left Review"의 편집장이자 역사가, 소설가, 영화제작자, 정치운동가, 시사해설이라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저명한 작가였다.
그는 옥스퍼드 유니언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계획하면서부터 정치적 명성을 쌓은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보다 특이했던 점은 맑스-레닌주의자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흥분해서 입을 열 때 나는 의아했다. 뜻밖에도 북한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방북 당시 김일성과 식사하는 사석에서 막 테러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할 때에는
그 충격이 더 컸다. 세계 좌파의 대부가 아닌가? 더구나 맑스-레닌주의자가 아닌가?
나는 그날 남한의 진보와는 전혀 다르게 북한 주민의 인권을 동정하고 독재자에겐 증오할 줄 아는 세계의 참된 진보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다. 남한의 진보는 저들을 과거 군사독재를 반대한 민주화 계승세력으로 자처하면서도 현존하는 북한독재에는 침묵하는 이중인격자들이다.
심지어는 독재자의 편에 서서 북한체제를 탈출한 탈북자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실제로 얼마 전 한국 검찰은 현직 야당 국회의원을 단순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북한이 전쟁을 발발할 경우에 대비하여 서울에서 무장폭동까지 준비했던 내란의 구체적 증거자료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남한 사회는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 주범인 이석기 의원이 소속된 당명은 '통합진보당'이다. 그런데 그 정치적 피해는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까지 번져졌다.
왜냐하면 정권쟁탈을 위해 통합진보당을 반보수대연합의 동지로 껴안았던 진보여당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진보의 가치보다 진보의 권력을 위해 종북세력과도 거리낌 없이 연대해왔던 민주당이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그 행적을 지우려는 듯 급기야 민주당은 당의 로고와 상징색깔을 바꾸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친북으로 오염된 그릇된 진보이념의 연합이다.
현재 남한의 보수와 진보는 북한 접근법에서 크게 갈라진다고도 볼 수 있다.
남한의 보수는 북한 정권을 타협할 수 없는 악의 독재로 규정한 반면, 진보는 분단현실을 인정한 내재적 접근법, 즉 북한의 눈으로 북한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보수는 북한 해방을 넘어 한반도의 성장을, 진보는 체제 자신감으로 북한 정권도 포용할 수 있는 평화의 분배를 고집한다.
이렇게 출발부터 근본이 다른 탓에 진보의 단골메뉴가 되어야 할 북한인권 비판이 남한에선 보수의 점유물로 바뀐 상황이다. 굳이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면 정권의 눈이 아니라
주민의 시각에서 북한을 들여다 봐야 하는데 그 약자를 외면한 한국의 진보인 것이다.
이런 세력이 국회의 반쪽을 차지해서 언어와 혈통이 다른 미국이나 유럽에도 있는 북한 인권법이 아직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에는 없는 실정이다. 같은 한 민족의 인권마저 보호해줄 수 없는 대한민국 국회인 것이다.
지금도 서울 도심은 구태의연한 남한민주의 승리를 외치는 진보세력에게 점거되어 늘 시끄러울 정도이다. 그들의 함성과 구호를 들으면 마치도 남한이 북한보다 더 살벌한 독재국가인 듯하다.
탈북자인 내가 보기에도 행동의 주장만 고집하는 과격 진보의 논리적 열등감이다. 보다 모순적인 것은 저항정신의 뿌리를 항일역사에서 찾는 진보의 반일신념이다.
반세기 넘게 3대 세습을 이어가는 현재의 김씨 독재는 외면하고 36년의 일제 식민지 과거청산을 부르짖는 위선의 진보이다.
反北양심의 공백을 "反日애국"으로 대신하려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정권이 선전하는 김일성의 항일업적을 야유하던 북한 주민들의 귓속말이 생각난다. "맞다, 수령님은 정말 위대하다. 악독한 일제를 물리치고 왜정 때보다 더 악독한 세상을 만들었으니깐,"
나는 남북한 두 체제를 다 경험한 탈북자이다.
그 귀중한 경험으로 단언컨대 북한체제의 지속은 결코 김씨 독재가 강하거나, 북한 주민이 우매해서가 아니다.
자유통일을 주도해야 할 남한부터 분열돼서이다. '남북분단' 그 전에 '남남분열'이 된 현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