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끼는 남파 간첩이 아닙니다. 즉, 그 출생이 북한이 아니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받은, 토종의 한국인입니다.
중년에 이른 그의 나이를 보면 그는 북한보다 가난했던 이 나라가 어떻게 세계의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는 지를 지켜본 인물입니다.
나이가 젋지도 않습니다. 교육 수준도 높습니다.
잠시 잠깐의 사상적 도취로 이리 저리 떼를 지어 우국충정의 애국심으로 데모를 하던 그런 시기도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중년의 그 나이까지 오히려 골수적인 종북 사상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이 나라를 부정하는 반역자가 되었을까.
사상? 민족? 사회 계급에 대한 어떤 정치론?
이런 걸 생각했다면 당신은 아직 뭘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상보다 그 사상을 접하게 된 계기나, 혹은 그 사상으로 인한 어떤 계기들을 통해서 체험한 개인적 감정에 사로잡히기 마련입니다.
뭔가 합리적인 이런 사상과 이상들로 무장한 것 같지만, 사실 사상, 혹은 이론은 저마다 옳고 그른 장단점이 있고,
결국 입으로는 뭔가 대단한 걸 떠들어 대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개인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주장하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이석끼를 보니 대학 때 데모하다가 수배되었는데, 그 누나가 동생을 숨겨주다가 무려 군무원이었던 직장을 잃고, 그 후엔 지병으로 병사했다고 합니다. 모친도 그런 여파로 돌아가셨다네요.
개인적인, 감정적인 원한만큼 강한 것도 없습니다.
거기엔 이론도 사상도 뭣도 없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똑똑하고 또 집요한 성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잘난 맛에 동료들이 주변에서 떠받들고 해주는 찬양질에 도취되었을 것입니다.
누나를 희생시키고, 그 모친까지 희생시키며, 더더욱 그 자신을 고난조차 무릎쓴 영웅으로 도취시켰고,
또 그만큼의 인륜적 괴로움을 그 어떤 일종의 피맺힌 원한으로 구축시켰을 것입니다.
이 나라를 부서뜨리기 위해서라면 그는 정말 뭣인들 못했을 리 없습니다.
어려운 말이 다 필요없습니다.
우리도 주변에서 이런 인물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을 이해하는 데, 어떤 객관적인 잣대를 두고 파악하려 하지 마세요.
그러다 보면 정말 그들의 주장대로 뭔가 있어서 그렇게 내란까지 하는 가 싶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평범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지독한 원한을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대상에게 품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한을 품은 얼굴의 독기에 공포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처연하고 씁쓸합니다.
제 딴에는 자기가 잘난 맛에 나대려다가, 그 댓가로 가족까지 잃은 비극을 봅니다.
그런 비극의 댓가를 스스로 질 수 없기에 오직 국가를 대상으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원한을 풀려했던, 불나방을 봅니다.
저런 인상을 가진 사람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강직하고, 또 융통성도 없습니다. 고집스럽게 외길을 갑니다.
그런 이에게 저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서야 죽어도 풀 수 없는 원한까지 있습니다.
제 몸에 불을 붙여 초가삼간을 다 태우고도 남을, 독기어린 불나방입니다.
알고보면 이석끼가 무수히 많습니다.
7,8년대에 군사 정권에 대항하던 젊은이들은 정의로웠습니다. 그 정의를 위해 헌신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떠받들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선악이 내일의 선악이 아니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오랜 교훈처럼,
수구 세력의 독재로 망해야 정상이었던 이 나라는 그 운동권 출신들의 큰 도움이 없음에도 오히려 선진국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뭔가 있어보이게 주체 사상까지 만들었던 북한은 알고 보니 삼대가 대를 물리는, 세계사에 드문, 알수록 반민족적 개판 왕국이고,
7,80년대의 운동권 출신이 겪는 아이러니일 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가 스스로 미친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해석되지 못 하는 이 세상이 그를 미치게 했을 것입니다.
그의 원한에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그래도 일단 이 나라가 북한보다야 천배만배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계속 이 나라에서 살아야 겠기에 정중히 당부드리고 싶네요.
사상이고 민족이고 정치고 뭐고 간에, 까놓고 솔직히 말해서,
당신에게도 이 나라에 대해서 그 어떤 피맺힌 원한이 있다면, 그리고 그 원한에 눈이 멀어서 이 나라가 어떻게 되건 알 바가 아니라면,
하루 빨리 xx이라도 하시길... 그 한맷힌 원한은 고히 접어서 저승에서 풀어주시길...
이기적이라고 뭐라 하실지 모르지만, 일단 내가 좀 맘 편하게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