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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 하게 답하면요..
미국이 가장 겁네는게 테러국가나 반미 국가로 핵이 확산되는겁니다.
그걸 막으려고 미국도 노력중이구요.
근데 그걸 한국 맘대로 북한의 숨틀 터주면...
무지하게 미국에서 반대하겠죠.
그래서 한국 마음대로 못한다는겁니다.
할려면 할수는 있어요.
대신 신뢰관계에 금이가고 뒷감당을 우리가 해야 겠지요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시하며 '햇볕정책'에 대한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고인에 대한 최고의 경의 표시이자, 향후 미국의 한반도정책 방향을 시사하는 조문이라 하겠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클린턴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조문 성명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감하고 강력한 이상을 가진 지도자였다"며 "한국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넘어서게 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을 닦고 국제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으며 대단히 응당한 대가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며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그는 이어 "1992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새로운 정치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다"고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미국의 강력한 지지없이는 햇볕정책도 못합니다. 님가카라김님 말씀이 옳아요. 맞습니다.
미국......종북인가요?
북의 해결책은 결국 6자회담처럼 주변국 모두가 부담해야 하는걸 말씀하신거죠?
니가카라김님? 님 말씀처럼 우리만의 힘으로는 안되잖아요?
그니까 핵무기를 계속 개발중에 있던걸 김대중이 돈줘서 완성형으로 됬다는거 아닙니까? 맞죠? 그건 팩트예요. 그래서 북한의 개방정책을 유도한거구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 확산 금지 조약에 1985년 가입했다. 그러나 완전한 사찰을 막아 핵개발의혹이 생겼다. 199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 확산 금지 조약을 탈퇴할 것이라 위협한다. 이 때가 1차 북핵 위기이다. 이 때의 위기는 1994년 북미 간에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어 해소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북한의 과거 행동을 보면 합의는 포괄적으로 하더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이행하고 불리한 것은 무시해버리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것이 김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또, 정치적 경쟁자인 김대중 씨가 포괄적 접근방안과 사실상 유사한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있는 점과, 백악관이 포괄적 접근 방안을 승인했다는 내용이 미국 언론에 사전 유출된 점도 김영삼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어쨌든 한미간의 정상회담과 관련된 실무협의에서는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합의는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은 ’93년 11월 2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합의를 뒤집었다. 김 대통령은 포괄적 접근 방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1시간 넘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미국측 참석자들을 나무랐다.
예상하지 못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격렬한 반응에 클린턴과 미국측 참석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배석했던 한국측 실무자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결국 애초 실무선이 합의했던 ‘포괄적 접근 (comprehensive approach)’이란 말은 ‘철저하고 광범위한 접근(thorough and broad approach)’이라는 말로 바뀌었지만 실질적인 내용이 바뀐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3차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남북간 특사 교환이 먼저 이뤄져야 하고,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도 상황을 보아가며 한국 측이 최종 결정하기로 하면서, 향후 북미 고위급 회담은 더 어려워지게 됐다.
이렇게 지지부진하던 북핵 협상의 와중에 북한과 미국은 1993년 12월 29일 뉴욕의 실무접촉을 통해 ‘수퍼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4개항의 합의에 도달했다. 첫째, 9월 8일 IAEA가 북한에 보낸 서한에 명시된 7개 시설에 대한 IAEA 사찰을 시작한다. 둘째, 북한은 특사 교환을 위한 남북대화를 재개한다. 셋째, 한국은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발표한다. 넷째, 3차 북미 고위급 회담 일정을 발표한다. 이 날의 합의에 따라, 1994년 1월 7일부터 빈에서는 북한과 IAEA 사이의 사찰 협상이 개최됐다. 하지만, 양측의 설전으로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한 채 결렬 직전의 상태에까지 다다랐다.
그런데, 이 무렵 미 국방부가 남한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려 한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1994년 1월 26일 미국의 ‘뉴욕 타임스’ 지는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미국이 36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발사대를 한국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한반도에는 위기감이 급속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국 내에서는 미국이 정말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북한은 북한대로 격렬히 반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한반도 위기 상황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고 미 상원에서도 대북제재 촉구 결의안이 채택되는 등 한반도 분위기는 급속히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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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했든 새누리가 했든...
지금의 논쟁 주재는.. 지금의 북한 핵보유 선언 이후에..
우리가 단독으로.. 북한과 협상할 .. 상황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놓고 말을 하는데
왜 끼어드세요?
쉴드라도.. 좀 상황 파악하고 하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욕을 왜하세요?..
북한은 4월초 북미 회담을 위해 일방적으로 동결시키고 있는 ‘평화적 핵활동’을 정상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한 데 이어, 4월 20일에는 영변에 있는 5메가와트 원자로의 연료봉을 교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연료봉 교체를 참관하기 위해 IAEA 사찰단이 북한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과거 핵 활동 자료를 추후 계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료봉 교체를 강행함으로써 IAEA와의 협상을 결렬시켰다.
6월 2일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은 북한의 5메가와트 원자로 연료봉을 추후 계측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실됐다고 유엔 안보리에 보고했다.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북한의 과거 핵 활동 자료가 사라지게 된 상황에서, 미국도 더 이상의 대북 대화는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6월 3일 미 국무부는 특별성명을 통해 북미 3단계 고위급 회담을 취소하고, 유엔에 대북 제재안을 상정할 것임을 공식 발표했다. 6월 10일에는 IAEA 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도 가만있지 않았다. IAEA 결의안이 채택된 지 3일 뒤 북한은 IAEA 탈퇴를 선언했다. 이제 누가 봐도 사태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러한 파국은 외교적인 경로로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이미 몇 개월 전부터 한반도에 신형 군사 장비를 들여오는 등 파국에 대비한 군사적인 준비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