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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Newsis 게이코 후지모리(위)는 2006년 총선에서 페루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국회에 입성했다. |
그녀는 독재자라 불리는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최연소 퍼스트레이디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총선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어 정계에 돌풍을 일으켰으며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선 후보 이야기가 아니다. 페루의 게이코 후지모리(38) 이야기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페루 대통령이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장녀다. 게이코는 열일곱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최연소 퍼스트레이디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6월 페루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대권주자였다. 또한 2006년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페루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아버지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야망을 키워왔다. 그녀는 공약으로 사형제 도입과 시장경제 촉진을 약속했으며, 연 경제성장률 최소 7% 달성, 건강보험 확대, 교도소 신설, 일자리 창출을 제시했고, 광산업자로부터 초과이득세를 거두겠다는 뜻도 밝혔다. 게이코에게 대통령 선거 도전의 또 다른 의미는 아버지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페루의 일본계 2세로 당시 페루의 세계적인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요인은 상대인 요사의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에 불안을 느낀 빈민층의 높은 지지도였다. 원주민 비율이 높은 페루에서 국민의 12%인 백인이 정ㆍ재계를 장악했던 그 당시 후지모리는 자전거와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당신과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선거문구를 앞세워 국민에게 다가섰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과감한 경제 개혁을 이루어 열렬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재정적자 해소에 중점을 두고 경제 재건에 주력했다. 그는 8000%까지 치솟았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20%대로 잡아서 마이너스이던 경제성장률을 1994년에는 최대 12.9%까지 끌어올렸다. 또 당시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반정부 무장세력이었던 '빛나는 길'이나 투팍아마루 혁명운동(MRTA) 등을 소탕해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국민의 지지도가 높아가며 그는 점점 권력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미 두 번이나 대통령을 했는데도 3선에 욕심을 냈다. 후지모리는 1994년 친위 쿠데타로 헌법 기능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게릴라 소탕을 핑계로 비밀 암살조직 '콜리나'를 만들어 납치와 살인 교사 등 무차별적인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공금 유용 등 부정 축재도 이어졌다. 1996년엔 헌법을 개정해 3선 연임을 도모했으며 2000년 실제로 성공했다. 그러나 위헌 시비로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그의 '오른팔'이었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전 국가정보국(SIN) 국장이 야당 의원을 매수하려고 뇌물을 주는 비디오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 막다른 골목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모국인 일본으로 도주하는 것이었다. 일본과 칠레로 떠돌던 후지모리는 2007년 페루로 송환됐고 2010년에 2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는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게이코에게 독재자 아버지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었다. 게이코가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가 아버지 후지모리를 사면하려는 것 아니냐는 국민의 우려도 높아만 갔다. 그는 아버지 집권 때 도입된 '사회적 프로그램'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는 등 아버지 후지모리의 유산을 적극 받아들이겠다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아버지 후지모리는 독재자였지만 집권 시절 인플레를 잡는 등 실적도 적지 않아 페루 보수 세력에는 여전히 상당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었다. 전세 불리해지자 '과거사 사과' 그러나 지난해 4월12일 페루 대선은 게이코로 하여금 아버지의 과거사에 대해 중대 결심을 하게 했다. 당시 좌파 후보인 '페루승리당'의 오얀타 우말라(49)는 빈곤층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면서 게이코를 앞서기 시작했다. 초반에 우익인 게이코가 우세였다가 역전된 것이다. 그때 게이코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가 '아버지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였다. 지난해 4월24일 밤, 게이코는 페루 현지 지역방송인 '프레쿠엔시아 라티나'에 출연했다. 그녀는 이 방송에서 "페루에서 아버지 정부 시절 있었던 일들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또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인권침해와 부패 범죄로 복역 중인 아버지를 사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날 방송에서 게이코는 아버지 집권 시기에 대해 '독재'라고 처음 불렀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녀는 아버지 문제는 법원이 결정할 것이며 아버지를 사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맹세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날 그는 아버지를 독재자로 규정하며 처음으로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했다. 이런 마지막 패를 꺼내들었지만 게이코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렇다고 상대 진영 우말라가 우세한 것도 아니었다. 페루 국민이 봤을 때는 독재자의 딸인 게이코든 군부 출신 우말라든 미덥지 않았다. 두 후보를 두고 소설가 바르가스 요사는 '말기 암과 에이즈 사이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어느 쪽이든 국민에게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비판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6월6일 우말라는 게이코 후지모리를 누르고 차기 대통령이 되었다. 게이코는 대선 이후 '효녀' 행보로 돌아섰다. 최근 후지모리가 다섯 번째 설암 수술을 받자 "아버지가 위독한 환자인데도 정부는 인도적 사면을 할 의향이 전혀 없다"라며 우말라 정부를 비난했다. 또 지난 7월13일는 페이스북에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자산도, 계좌도 없다. 병약한 그는 부당하게 투옥돼 있다"라고 글을 올렸다. 대선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행보이다. 게이코는 한때 대통령이었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효녀임에는 분명하지만 페루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대통령감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우리나라 대선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1. 운영원칙 2,3항 위반 및 지역감정 조장등에 대해선 강력하게 적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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