つまり、日本はハングルを奪うどころか朝鮮固有の文化と見なし必須科目として併合当初から学校授業に取り入れていたのである。現在、韓国人がハングルを読み書きできるのは、この朝鮮総督府によるハングル普及によるものなのである。南北分離後、北朝鮮では韓国以上に漢字の廃止が徹底して進められた。
즉 일본은 한글을 빼앗기는커녕 조선 고유의 문화로 보는 필수 과목으로 병합 초기부터 학교 수업에 도입하던 것이다.
현재 한국인이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은 이 조선 총독부의 한글 보급에 따른 것이다.
남북 분리 후 북한에서는 한국 이상으로 한자 폐지가 철저히 가해졌다.
●韓国中部の論山(ノンサン)という市の外郭団体が出してる「デジタル ノンサン大全」というページをたまたま見ましたら、1930年の論山の識字率数値が載ってました。日本語と朝鮮文字を読み書きできる者 男 7,158名 女 1,050名 計 8,208名日本語を読み書きできる者 男 1,184 女 1,130 計 2,314朝鮮文字を読み書きできる者 男 15,617 女 6,164 計 21,781何も読み書きできない者 男 44,669 女 55,689 計 100,358 これから計算すると割り合いは、日本語と朝鮮文字を読み書きできる者 男の中の10.43% 女の中の 1.63% 全人口の 6.18%日本語を読み書きできる者 1.72% 1.76% 1.74%朝鮮文字を読み書きできる者 22.75% 9.62% 16.41%何も読み書きできない者 65.08% 86.96% 75.64% となりました。論山在住の日本人もこの統計に含まれているそうです。「論山は他地域と比べると文盲率(ママ)は低かった」「日本人はほぼ皆日本語読み書きが出来る」と同じページに書いてあります。 参考文献: 『論山市史』 論山市史編纂委員会編 2005年刊 忠清南道 論山教育庁 ともあります。 1930年といえば、日本統治の真っ只中で、日本も学制を整え、私立学校も作られ、朝鮮人社会でも「文盲退治運動」だ、文字を教える「夜学運動」だ、という社会運動(文字を知ると同時に抗日運動の細胞組織でもあった)が活発に行なわれていた頃ですが、それでもこの数字です。これより40~50年以上前の李朝末期はもっとだったでしょう。http://nonsan.grandculture.net/Contents/Contents … 日本海側の港町である元山(げんざん、ウォンサン)の統計を研究者の本で見たことがありますが、元山の開港時(李朝末期)識字率が男は13~15%ぐらい。女は7%ぐらいでした。
● 한국 중부의 논산다는 시의 외곽 단체들이 내는 "디지털 논산 대전"라는 페이지를 가끔 보면 1930년의 논산의 문맹률 수치가 실려 있었습니다.
일본어와 조선 글씨를 읽고 저장할 수 있는 사람 남자 7,158명 여자 1,050명 총 8,208명
일본어를 읽고 쓰는 사람 남자 1,184여자 1,130총 2,314
조선 글씨를 읽고 저장할 수 있는 사람 남자 15,617여자 6,164총 21,781
아무것도 읽고 쓰지 않는 사람 남자 44,669여자 55,689총 100,358
앞으로 계산하는 비중은,
일본어와 조선 글씨를 읽고 저장할 수 있는 사나이 중의 10.43%녀 중의 1.63%전체 인구의 6.18%
일본어를 읽고 쓰는 자 1.72%1.76%1.74%
조선 문자를 읽고 쓰는 자 22.75%9.62%16.41%
아무것도 읽고 쓰지 않는 사람 65.08%86.96%75.64%
이 되었습니다. 논산 거주 일본인도 이 통계에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논산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문맹률(엄마)는 낮았다""일본인은 거의 다 일본어 읽을 수"과 같은 페이지에 써 있습니다.
참고 문헌:『 논산시 사북 』 논산시사 편찬 위원회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