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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7 17:28
[중국] 시대별 조선 기병 활약상
 글쓴이 : 국산아몬드
조회 : 7,428  

 
조선의 대여진 정책은 '왠만하면 평화롭게 지내되, 까불면 기병으로 짓밟는다.'입니다
 
세종 때
 
만주 파저강 유역에 살던 여진족 일부가 폭동을 일으켰을 때 세종은 명 제국 황제로부터 '명나라 영토 내 월경 작전'을 승인받았고, 최윤덕은 보병 1만과 기병 5천으로.남만주 일부 지역에서 여진족의 산채들을 소탕하고  마천 · 우라산성 · 팔리수 · 석문 등을 일시 점령하여 수백여 명의 여진족을 참살하였으나, 조선군의 사상자는 도합 10명도 넘지 않았습니다
 
세조 시대
여진족의 낭발아한 등 몇몇 추장이 조선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여진 부족원 일부가 명나라에 가서
이를 고발하여 즉각 명나라는 조선에 사신을 파견해서 좋게 해결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세조는 대대적인 여진 토벌을 결정하였고,보병과 기병 도합 약 5천여 명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조선 토벌군의 작전에서는  야인과 명나라와의 교류를 차단하라는 명나라의 심기를 거스리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런 조선군의 움직임을 보고 당시 명나라 황제였던 영종은 질책하였고 명나라 사신이 조선과 여진족 부족을 화해시킨다는 명분으로 조선에 와서 조선을 긴장시켰습니다만
조선 원정군은 압록강을 넘어 다시 남만주 일부 지역으로 진격해서 여진족 산채들을 불질렀고, 430여 명의 여진족을 참수, 이어 1,000여 마리의 소와 말을 노획하였어. 그리고 900여 채의 집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경기병대를 보내 여진족 본거지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조선군의 활동으로 일부 여진 부락들은 보복 공격을 개시했고, 올량합(우랑카이) 1천여 명이 의주의 목책을 공격했지만 강순과 어유소로 하여금 정예병 1만 5천여 명을 주어 당시 세력이 컸던 여진 부족의 추장인 이만주를 죽이고, 그의 아들 등 고관 24여 명을 참살했고 수백명의 여진족군을 참살했습니다
 
성종 때
조선의 여진 원정 역사상 최대 규모인 4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여진 정벌을 시도했으나 여진 부락들이 다 도망가서 조선은 허탕만 치고 회군(성종의 흑역사)

선조때
니탕개의 난 평정
 
추장 니탕개 등의 약 2-3만 여진이 조선의 국경을 침범하여 두만강의 6진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으나 신립이 500명의 기병으로 두만강 건너 여진족들을 공격하여, 금득탄, 안두리 등의 503여개의 여진족 소굴을 불태웠고,여진족 수백여 명의 목을 베었으나 조선군의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여진족은 다시 기병 수만 명을 규합해서 조선을 침입하였고, 박선이 이끈 8천여 명의 조선군은 여진족을 대파해버리고 끝까지 추격하여 수백 급의 여진족을 또 참살하였고, 여진 추장 우을기내도 처형했습니다
 
조선군은 다시 기병을 규합하여 만주로 넘어가 수백 채의 여진족 부락들을 불태우고 수백의 여진족 목을 베어버렸으나 조선 기병대 사상자는 1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조선을 배반한 여진족 추장들은 다시 조선에 귀부하였고 니탕개는 먼 오지까지 도망갔다가 병으로 사망합니다
 
북관 대첩
북관 대첩은 임진왜란 때  함경도 정예 기병대의 급습과 기습전으로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9천명 가까이 죽이는 대승을 세었습니다

노토 부락 토벌 작전
 임진왜란이 끝나고 여진 노토 부락 등이 약탈과 침략을 해서 윤승훈은 여진 노토 부락 정벌에 대한 계획을 올렸고, 조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심했으나 선조는 반대 의견을 뿌리치고 북벌을 승인하였고,

마침내 1600년 4월 조선군 기병 5천이 노토 부락 토벌을 시작해서 1,000여 채가 넘는 집과 땅속에 묻어둔 곡식까지 다 파내서 불태우고 마을 외곽의 성채도 전부 태워버려.

그리하여 한때나마 풍족했던 노토 부락 예하 6-7개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토벌의 후유증으로 여진족 군인들의 사망자가 1만여 명에 달한다고 해. 반면에 조선군 사상자는 7명
당시 여진족들은 아무 저항을 하지 못하고 산으로 피해서 울부짓기만 했었답니다
 
한가지 에러는
병자호란때 함경도 병력 포함 2만에 가까운 군대를 이끌던 도원수 김자점은 1월초부터 남한산성이 더 이상 못견디고 항복할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었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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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15-02-17 17:43
   
김자점은 도원수로 아무런 역할을 안했지만, 휘하 병력들은 따로따로 청군에게 닥돌했다가 전부 깨졌죠. 수만병력이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산아몬드 15-02-17 21:48
   
함경도 기병은 아무짓도 안했습니다
아래 병자호란때 전투목록인데 함경도 기병이 참여한 전투는 없읍니다

백마산성 전투(무승부) : 1636년 12월 8 예친왕 도르곤 휘하의 청군이 백마산성 내의 조선군을 자극하여 일어난 전투이다. 무승부

동선령 전투(승)  : 1636년 정방산성에 주둔한, 도원수 김자점과, 이완이 동선령에서 벌인 전투 3~4백명 사살했으나 김자점 도원수 심각한 부상.

검단산 전투(패)  : 1000명의 강원도근왕군 선봉대가 청군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1000명 전사
토산 전투(승)    : 1636년 12월 25일 청군이, 황해 감사 이배원과 황해 병사 이석달이 이끄는 조선군을 기습하여 벌인 전투 쌍방 수천명씩 전사

험천 전투(패)    : 1636년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충청도근왕군과 청군이 벌인 전투로 수천의 조선군 전사

쌍령전투(패)    : 1637년 1월 2일에 쌍령에서 벌어진 조선군과 청군의 전투이다. 조선군 4만명이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8천명만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 나머지는 후속부대로 참여하기전 끝나버림.

광교산 전투(승)  : 1637년 1월 4일부터 1월 6일까지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전투로, 전라도 근왕병이 청나라 군사 수천명을 죽여 승리한 전투이다.청태종의 매부 전사

강화성 전투(패)  : 1637년 1월 21일  강화도 수비군이, 청군에 맞서, 강화성을 수비하던 전투를 말한다

탑동 전투(패)  : 1637년 1월 26일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병마사 유림과 순안현령 허노가 남한산성으로 향하다가 김화에서 청군을 만나 싸워 1000명 전사

백동 전투(승)  : 1637년 1월 28일 홍명구의 패잔병을 쫓다가 유림의 조선군의 진지의 진입해 벌인 전투로 청의 군사중 90%인 5000명의 청군이 전사함
shrekandy 15-02-17 17:58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굿잡스 15-02-17 20:30
   
병자호란도 보면 조선에도 두개의 승첩이 있긴 했죠. 북쪽 산성에서의 공략도 우선 나쁘지 않았고

특히 청 양굴리 장수가 이끄는 5천명이 김준용의 군대에 광교산에서 털리거나

그외 김화 백수동 고지같은 양대 승첩등의 상당한 활약도 존재했든.

그런데 조선은 후금이 내려올때 강화도에서 가서 장기전을 펼 요량이였는데 국경 봉수대에서

적들이 다가온다는 봉화를 줬음에도 김자점이 중간에 끊어버려 한양으로 빠른 소식이 가지 못했고

마푸타의 선봉 기병 6천이 정묘호란때를 상기해서 산성 공격을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진격해서

조선임금이 강화로 피신하기 직전에 퇴로를 막아 버리다 보니 준비 안된 남한산성으로 피신가면서

문제가 급격히 꼬여버린 양상이 된 것이죠. 이래 저래 역사가 이상하게 돌아갈려고 하니 묘한 빈틈들이 연

속으로 나왔던. 돌이켜 보면 후금이 명까지 뒤엎을 역사였는지 국세가 뻗어 나갈 요량인지 이래 저래 맞아

들어가는 양상이 되다보니 틀어지는게 많았고 조선도 북방을 지킬 기동 타격대로 정예

화된 이괄의 난 이후 북방 여진족 기병에 대한 대응도 묘하게 틀어져 갔던 양상.
아비요 15-02-18 22:04
   
웃기는게 청 대비하려고 북방에 보낸 군사들로 이괄이 난을 일으키면서 끌고 내려와 수도를 공격했죠. 이렇게 빈틈을 보여서 청나라에게 공격받아 박살난 것이죠. 애초에 청군 상대하려고 정예병을 상당한 숫자로 내려보냈는데 오히려 반란 일으켜서 아군이랑 부딪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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