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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6 22:19
[기타] 인조가 청태종에게 바친 국서
 글쓴이 : 마라도
조회 : 6,157  

아래 청태종이 인조 이종에게 보낸 국서 두 편을 올렸다...
지금 올리는 국서는 인조가 청태종에게 바치는 국서 두 편인데 바로 아래 올린 청태종이 보낸 두 편의 국서 사이에 보내진 것임...ㅎㅎ

그리고 마지막에 올리는 항복문서는 바로 최명길이 작성하고 이를 본 김상헌이 찢어버리고 그것을 최명길이 다시 주워 붙였다는 그 유명한 일화를 가진 국서이다....이로써 병자호란때 청태종과 인조사이에 오고 간 국서 4편과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항복문서...통틀어 다섯편으로 완성...ㅎㅎㅎ

이 다섯편의 국서에서 보듯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은 결코 임진왜란과 같은 성격의 전쟁이 아님.
일어날 필요조차 없는 전쟁이었으며 청태종이 국서에서도 밝혔듯이 가만히 있는 청나라를 등신같은 조선조정이 주제도 모르고 계속 찝쩍거리며 신경을 건드리다 결국 화난 청나라 군대를 스스로 불러들여 조선땅을 다시 병화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전쟁이었음. 

감당할 주제도 능력도 없으면 그런 주제파악이라도 해야 할텐데 그마저도 못해서 결국 나라전체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인조 저 등신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두드리고 세자는 볼모로 보내고 청나라에 붙잡혀 갔다 돌아온 여자들은 몸 더럽혀졌으니 단체목욕이나 시키고 화냥년이란 단어를 한국사에 처음 등장시키고 나중에 돌아온 세자와 그 마누라인 며느리 손자까지 다 죽이고....충신이었던 임경업 장군도 죽이고...ㅎㅎㅎ

세상에 뭐 이런 등신이 다 있음?.....ㅎㅎㅎ

앗! 참! 금,청은 우리 역사...화이팅...ㅎㅎㅎ

청태종이 첫 번째 국서를 보냄 (1637년 1월 2일) 

인조가 청태종에게 바친 국서 (1637년 1월 3일)

 조선 국왕은 삼가 글을 대청국 관온인성황제께 올립니다. 저희 작은 나라가 大國에 잘못을 저질러 스스로 병화(兵禍)를 초래해서, 몸이 외로운 성에 들어 위태로움이 조석(朝夕)에 임박하였습니다. 생각으로는 특사(特使)로 하여금 글을 받들어 올려 정성을 전하고 싶었습니다마는 병과(兵戈)에 가로막혀 스스로 통할 길이 없었는데, 어제 황제께서 궁벽한 두메 구석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의심과 믿음이 상반(相半)하고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렸습니다.

   이제 大國이 옛 맹약을 잊지 않으시고 분명히 가르치고 책망하시니 스스로의 죄를 알겠습니다. 진실로 저희 작은 나라의 심사를 펼 수 있는 때를 얻었는가 합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저희 작은 나라가 정묘년의 결호(結好)를 따른 이래 10여 년 동안 정호(情好)의 돈독함과 예절의 엄숙함은 다만 대국이 아시는 바일 뿐 아니라 실로 하늘도 잘 아시는 바이고, 다만 제가 몹시 어리석어 일을 살피지 못하는 수가 많았을 뿐입니다.

   변방 백성의 산삼채취와 공․경(孔耿) 때의 일이 비록 저희 작은 나라의 본심은 아니었으나 의혹을 쌓아온 잘못은 면치 못하겠습니다. 대국의 관대한 용서를 입으면 저희 작은 나라는 진실로 오래 오래 넓으신 도량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봄의 일은 저희 작은 나라가 참으로 그 죄를 사과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이 역시 저희 작은 나라의 신민(臣民)이 식견이 옅고 좁아서 잘못 명의(名義)를 지켜, 마침내 사신이 노여워 바로 돌아가게 하였고 따라온 사람들이 모두 장차 大兵이 올 것이라고 위협하는 바람에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君臣)은 지나친 염려를 면치 못하고 변경의 신하들을 거듭 훈계했는데, 문장을 짓는 신하가 글을 지을 때 배반하는 말이 많아 대국의 노여움을 범하는 줄 모르고 범했습니다.

   그러나 감히 어찌 일이 신하들에게 나온 것이고 제가 아는 바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사신을 잡아 가두려 했다는 말은 절대로 없는 일입니다. 어찌 대국의 총명으로도 이러한 점에 의심이 없지 않을 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명나라는 우리와 父子의 나라입니다. 대국의 군사가 여러 번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마는 저희 작은 나라는 일찍이 한번도 화살 한 대 마주 대항하지 않아 형제의 맹약을 중히 여기지 아니한 일이 없었는데, 모해하는 말이 어찌 여기에까지 이르렀습니까? 그러나 이 역시 저희 작은 나라의 정성과 믿음이 미흡한데서 대국에 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또한 馬장군(마부대를 말함)이 스스로 말하기를, 호의로 왔노라고 하므로 저희 작은 나라는 그 말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가서 이렇게 될 줄이야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아무튼 지난날의 일은 저희 작은 나라가 이미 죄 지은 줄을 알았습니다. 죄가 있으면 치고, 죄를 알면 용서하는 것은 대국이 천심(天心)을 본받아 행하고 만물을 감싸서 용납하는 바입니다. 만약 정묘년 하늘에 맹세한 맹약을 생각하시어, 저희 작은 나라의 백성들의 목숨을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 작은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도모함을 용납하신다면 저희 작은 나라가 마음을 씻어 복종함이 오늘부터 새로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대국이 용서하시지 않으시고 기어코 군사로 추궁하려 하신다면 저희 작은

나라는 도리가 막히고 형세가 다하여 스스로 죽음을 기약할 뿐입니다. 감히 심중을 아뢰어 신중히 지시하고 가르치심을 기다리겠습니다.


열흘 뒤 1월 13일 인조는 다시 국서를 보냄 (1637년 1월 13일)


근자에 저희 작은 나라의 재신(宰臣)이 글을 받들고 군문(軍門)에 가서 품청(稟請)하고 돌아와 말하기를, 황제께서 장차 다음 명령이 있을 것이라고 하여,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은 목을 늘이고 발꿈치를 돋구어 날마다 폐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마는 이제 이미 열흘이 넘도록 잘잘못의 말씀이 없으시므로 힘이 빠지고 정성이 핍박하여 다시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황제께서는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작은 나라가 전에 대국의 은혜를 입어 외람되게 형제의 의를 하늘과 땅에 밝혔으니, 비록 국토에는 구분이 있으나 정의(情意)에는 간격이 없어 스스로 자손만대에 끝없는 복이 되리라 했는데 어찌 맹약할 때 마신 쟁반의 피가 미처 마르기도 전에 의심과 틈이 생겨서 위급한 화에 떨어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줄을 짐작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유례를 찾아보면 모든 것이 다 저의 천성이 유약하여 잘못을 저지르고, 모든 신하가 어리석어 잘 살피지 못하여 오늘의 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책망할 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형의 아우에게 대한 생각으로 잘못이 있음을 보면 노하여 꾸짖는 것이 물론 마땅합니다. 그러나 책망이 너무 엄하면 도리어 형제의 의리에 틈이 생길 것이니, 어찌 하늘이 괴이하게 여기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작은 나라는 궁벽한 바다 한 구석에 있어, 오직 시서(詩書)를 일삼고 전쟁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약자가 강자에 복종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떳떳한 이치인데, 어찌 감히 대국과 더불어 서로 겨루려 하겠습니까?       

   다만 저희는 대대로 명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원래 군신의 명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일찍이 임진년의 난에 저희 작은 나라의 존망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을 때, 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백성을 물불 속에서 구해 주셨으므로 저희 작은 나라의 백성은 아직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 지니고 있어, 차라리 대국에 죄를 지을지언정 차마 명나라를 배반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그 은혜가 두터워서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 아닙니다. 진실로 능히 그 백성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그 종묘사직의 위급을 구할 수 있는 자라면, 군사를 내어 어려움을 구원하는 것과 군사를 철퇴하여 생존을 도모하게 해주는 것과는 그 일이 비록 다르지마는 그 은혜는 결국 같습니다.

   지난해 저희 작은 나라가 어리석고 착각해서 일 처리를 잘못하여 여러 번 대국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입었습니다마는, 오히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대국의 군사가 오게 하여 군신과 부자가 오래 외로운 성에 있어 군색하기가 또한 심합니다.

   진실로 이때 있어서 대국이 마음을 돌이키시어 저희가 잘못을 버리고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허락하셔서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오래 오래 대국을 받들게 하신다면,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들은 감격하여 장차 마음에 깊이 새겨 받들어 자손 영원한 세월에 이르도록 잊지 않을 것이요, 천하가 이를 들으면 또한 대국의 위엄과 신망에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대국이 한꺼번에 큰 은혜를 동토(凍土)에 맺고, 넓은 명예를 만국에 베푸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오직 한때의 생각을 시원하게 하시고자 끝내 병력으로써 형제의 은혜를 상하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길을 막아 여러 나라의 소망을 끊으신다면 그것은 또한 대국으로서도 장구한 계책이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황제의 고명(高明)하심으로 어찌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을이 되면 만물이 죽고 봄이 오면 소생하는 것이 천지의 도리요,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망하는 자를 구원하는 것이 패왕(覇王)의 사업입니다. 이제 황제께서는 영무(英武)한 방략으로 모든 나라를 무마 안정시키신 다음, 새로이 대호(大號)를 세우시고 관온인성(寬溫仁聖) 넉 자를 내세우셨습니다. 이는 장차 천지의 도리를 본받으시어 패왕의 사업을 회복하려 하심이니, 저희 작은 나라와 같이 전의 허물을 고치고 넓으신 비호를 받고자 하는 자는 버림받지 않을 줄 믿고, 이에 구구한 말씀을 드려 명령을 내리시기를 청합니다.


청태종이 두번째 국서를 보냄 (1637년 1월 17일)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 (1637년 1월 18일)


조선 국왕 이종(李倧)은 엎드려 대청국 관온인성황제께 글을 올립니다.  

   엎드려 밝으신 뜻을 받자오니 간곡하신 타이름을 내리셨습니다. 그 책망하심이 엄하신 것은 곧 가르치심이 지극하심입니다. 추상(秋霜)같이 매운 가운데 봄날이 소생하는 뜻이 들어 있어, 엎드려 읽고는 황송하고 감격(惶感)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대국의 위엄과 덕이 널리 미쳐서 모든 번방(藩邦)이 입을 모아 하늘과 사람이 귀의(歸依)하여, 크신 명령이 바야흐로 새로운데, 저희 작은 나라는 10년 형제의 나라로서 도리어 흥운(興運)의 시초에 죄를 지었습니다. 마음에 반성하여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는 뉘우침이 있습니다.       

   지금의 소원은 다만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지난 날의 습관을 깨끗이 씻고, 온 나라를 들어 다른 모든 번방(藩邦)과 같이 명을 쫓고자 할 뿐입니다. 진실로 뜻을 굽이시어 위급을 안전하게 하심을 입어 스스로 새로워짐을 허락하신다면 문서와 절차에 응당 행할 의식이 있을 것이니, 그렇게 행하겠습니다.

   오늘에 있어서 출성(出城)하라시는 명령은 실로 어질고 죄를 감싸주시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지마는, 그러나 아직 겹겹이 둘러싼 포위가 풀리지 않았고 황제의 노여움이 대단하시어, 여기 있어도 죽고 성을 나가도 역시 죽을 것이므로, 용기(龍旗)를 멀거니 바라보고 자결하고 싶을 뿐이니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옛날 사람의 말에 ‘성 위에서 천자를 뵙는 자는 예를 그만둘 수 없고 병위(兵威) 역시 두렵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작은 나라의 소원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으니, 이는 아뢸 말씀을 다 아뢴 것입니다. 이는 깨달아 경계함이요 마음을 기울여 귀순함입니다.

   황제께서는 바야흐로 천지의 모든 생물까지도 마음에 두시는데, 저희 작은 나라가 온전하게 살아 후하신 보양(保養)가운데 듦이 어찌 부당하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황제의 덕이 하늘과 같아 반드시 불쌍히 여겨 용서하실 것이라 감히 진정을 토로합니다. 삼가 은혜로운 말씀을 기다리겠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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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5-02-16 22:21
   
같은 걸 몇번이나 우려먹는건지..
     
디노 15-02-16 22:40
   
돌대가리 같은 게 등신 지랄 하는 거죠...
철부지 15-02-16 22:55
   
이것만 보아도 금청사는 한국의 역사가 아닌것 같습니다...비굴하기 짝이없는 인조군요.
     
부르르르 15-02-17 00:07
   
언제나 닉값 제대로 제대로 하시는....멋쟁이
철부지 15-02-16 23:08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여인내가 수천 수만을 해아리는데 나몰라라 한것이 인조였으며 그 나라가 바로 자랑스런 '조선 '이였습니다 병자호란 관련책을 보면 조선 여인이 수모를 당하는게 잘 기술되 있습니다 청나라 장수에 끌려간 조선 여인이 청나라 장수 부인이 뜨거운 물을 부었고 대부분 첩으로 보내젔으며 도망친다고 해도 조선의 관아가 청나라에 돈을 내지 않는다고 다시 돌려보내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제대로된 나라라면  포로송환 노력이라도 하고 국가에서 없는 국고라도 풀어서 대려와야죠 그런 노력도 않했습니다 사내부 여인과 양민 천민.백정과 그 가련한 아낙네들 슬픔의 역사이며 수치스럽고 뼈에 사무친 역사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그런 조선을 보고 똥물역사라 말했습니다
     
부르르르 15-02-17 00:04
   
워터게이트로 쫒겨난 대통령이 닉슨이며 그 나라가 바로 천조국 미국입니다.... 뭐 이런 어그로?
나와나 15-02-16 23:46
   
이 분은 무슨 피해의식이라도 있으신가? ㅋㅋㅋ
비슷한 글을 몇 번째 올리는 건지..
혹시 어디에서 반박도 못하고 털리기라도 했나..?
나와나 15-02-17 00:06
   
청나라가 한국사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기 어렵긴 하지만..
만주족이 한국사와 전혀 무관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님은 단순히 병자호란 등의 단편적인 사건으로 어떻게든 금청사와 한국사의 연관성을 무시하려고 애쓰시는군요 ㅎㅎ

그렇게도 원하신다면, 좀 더 공부하신 다음에 제대로 반박하시지, 그냥 저런 편지 하나 달랑 올려놓고선..

홍타이지가 조선을 비난했던 말건 간에, 그게 금청사가 한국사가 아니라는 근거는 못됩니다

현재 북한이 서울 불바다니 뭐니 하면서 적대심보인다고, 북한이 우리랑 이민족입니까..? 참 단순한 사고방식이네요
굿잡스 15-02-17 00:09
   
ㅋㅋ 단순 이런 식으로 쳐하면 고구려.신라. 백제가 서로 으르릉 대면서 물고 뜯고 한건 아남?

지금 남북한도.(그냥 뇌가 녹아서 역사는 환빠 드립질 하나에 대한민국 비하하는 걸로 사골 우려 쳐먹는

정신나간 부류하군.)


명말청초의 만주족에 의한 서토인 대규모 학살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273


19세기 말, 만주족 팔기군 병사가 한족 성주(시장)을 구타한 사건이 있었지만, 팔기군 병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청나라 내내 만주족들은 정복자이자 지배자라는 신분적 특권을 누리고 살았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공세에 몰려 위험한 상황에서도 청나라의 지배층들은 "나라를 외국에게 넘겨줄 지언정, 집안의 종(한족)에게는 절대로 줄 수 없다."라고 단언했을만치, 청나라는 엄연한 정복 왕조였다.

  1850년대, 한족들로 구성된 태평천국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남경을 지키던 만주 팔기군 병사들이 태평천국군에게 모조리 살육당하자, 분노한 청나라 조정은 태평천국에 가담한 반란군 병사들이 항복해와도 절대로 항복을 받아주지 말고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바람에 태평천국의 난은 16년이나 오랫동안 계속되고 말았을 정도로 만주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적 갈등은 심각했다.

- 청사 저자 임계순 -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강희제와 건륭제 등 청나라의 황제들은 자기 종족인 만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나 강희제 같은 경우는 만주족 장군과 대신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주족끼리의 동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 누누히 "한인들의 잘못된 습관에 물들지 마라."라고 강조했다.

  또한 청나라 황제들은 기회만 있으면 "만한일체"라고 하여 만주족과 한족이 평등한 관계라고 주장했지만, 마크 C. 앨리엇은 그러한 말은 공허한 선전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정말로 만주족과 한족이 평등한 관계였다면 어째서 청나라의 정부 기구는 만주족과 한족을 따로 분리해서 임명했는가? 또한, 만주족 팔기군 병사들은 대게 만성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생활 공간 안에서 한족과 분리되어 자기들끼리만 살아갔다. 그리고 팔기군 병사들은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매년 녹봉을 받고, 팔기군이자 만주족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한족 상인들에게 물건을 외상으로 사기를 좋아했다. 이를 두고 어느 만주족 여인은 '물건을 외상으로 사지 않는다면, 만주족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했을 정도로...

  이밖에도 청나라 황제들은 피지배민인 한족이 만주족 행세를 하면서 정부 보조금을 타내는 현상을 무척이나 꺼려했고, 18세기 말에는 한족으로 구성된 팔기군인 한족 팔기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한족이 만주족처럼 꾸미고 다니지 못하게 철저히 감시했다

-마크 C. 앨리엇의 <만주족의 청제국>


청제국의 만주족은 시작부터 말까지 만주본위 서토인 차별의 철저한 이원적
 
정치체재 아래 서토를 지배 강점한 정복왕조사.


청황실의 사회상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283

만주족 청이 쭝국 많이 사랑했군 ㅋㅋ
밥밥c 15-02-17 00:09
   
문제는 저 위의 기록과 실제 조선의 기록을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위의 기록이 정확하다면 유교의 의미상 조선은 실질적으로 제후국의 위치가 되어야 합니다.

 17세기에 명나라를 황제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 조선의 기록에서도 동일하게 조선은 제후국으로

 기록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장 같은 17세기만 하더라도 조선은 조선스스로가 황제국처럼 행동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효종 2년 신묘(1651, 순치 8)  6월 12일(정사)  정원이 대제 전에 몸이 상할까 침전에 들기를 청했으나 따르지 않다

"정원이, 대제(大祭)가 바로 앞에 닥친 때에 혹시 옥체가 손상되는 문제가 있을까 염려되어 도로 침전(寢殿)으로 납실 것을 청하니, 답하였다.
“구묘(九廟)의 신령이 편안한 다음에 과인의 몸이 편안할 수 있다. 이제 사당의 신주가 노천에 계시는데 내가 어찌 감히 마음을 놓고 편안히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위의 기록을 보면 조선의 효종때 임금의 사당은 구묘(九廟)=칠묘(七廟)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의 기록을 기준으로 본다면 천자만이 칠묘의 제사를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후는 절대 요묘를 넘지못합니다.
나와나 15-02-17 00:21
   
그리고 무슨 병자호란 하나로 조선이 등신이니 뭐니...

당시 후금은 경제적 기반도 변변찮았고 명을 치기에 힘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차피 조선 침공이 필연적이었어요

뭐, 인조를 비롯한 서인 세력이 후금에게 명분을 제공해서 더 앞당기긴 했지만 인조의 뻘짓 아니었으면 호란이 없었을 것이다..?

꿈같은 얘기죠.. 물론 그 가능성이 훨씬 적어지긴 했겠지만요
     
나와나 15-02-17 00:33
   
그리고, '예방할 수 있었던 전쟁'은 세계에서 병자호란만 있는 게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만 봐도 그렇죠..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뮌헨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뜯어가는 등 전쟁 야욕을 보이는데도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방관했고

1939년 모스크바에 온 영국 대표단은 소련에게 서방에 대한 불신감을 제공해 독소 불가침 조약 체결을 야기했죠

이 경우에는 약 5천만이 죽은 인류의 대참사였는데, 조선이 등신이라 불릴 정도면 영국은 무슨 소리를 들어야하죠?

쌍욕을 1년 365일동안 들어도 부족할 것 같은데...
니르 15-02-17 00:26
   
배달환국 금청사편입등 입증도 안되는
 웅대하고 찬란한 역사만우리역사이고
굴욕의 역사는 우리역사가 아닙니까?
오히려 직시하여 힘없는자가 국제정세도 모르고
명분에만 연연해서 병신 외교한 결과가
무었인지 역사의 교훈으로 가르켜야 할것입니다.
     
부르르르 15-02-17 00:45
   
찬란한 역서도 굴욕의 역사도 우리의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의 역사지요...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우리의 역사... 서토나 왜의 시각으로 보는 우리의 역사는 걔들의 드립질이고요... 구분이 안되세요?
밥밥c 15-02-17 01:40
   
식민사학은 단지 고대사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 한국사 자체가 식민사학 그 자체죠.

 당장 이성계조선의 기록만 보더라도 ,  조선의 왕위에 다른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때도 오묘, 칠묘 , 구묘 알아서 선택했지요. 명나라와는 전혀 상관없이 .....

 당연히 유교의 원칙에 따라 , 다른 형태도 마찬가지로 조선의 왕을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조선에서는 조선의 왕이 황제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록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현 식민사학계 학자들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단 한줄도 설명하지 않죠. 어떻게 해서든 명나라 제후가 되어야 하니.....

  없는 이야기 지어내자는 것이 아니죠.

  있는 기록을 종합적으로 본다면 딱이 그러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너무 막무가내로 해석 한다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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