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안한 중국인 이야기-
중국 내전(중일전쟁)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전쟁이었다. 우리 군대 중 아무도 이것을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대신 일화사변 정도의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훗날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투입한 상황도 생각해보았다. 미국 국회가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경찰행동'이라고 불렸다. 한국전쟁으로부터 여러 해 전의 우리나라 정부도 똑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실질적인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건 단순한 사변이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일본은 왕정위가 이끄는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그는 장제스 총통의 국민당에서 탈퇴한 돌출인물이었다. 그러나 제일 놀랄 만한 분쟁은 장제스 군대와 중국 공산당군 간의 야만적인 전쟁이었다. 중국 공산당군은 장제스 군이 우리 군에 밀려 도망칠 때면 언제든지 장제스 군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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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일본이 거대한 중국의 인구를 지배했다거나, 거대한 영토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대신 우리 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있는 성만을 점령하여 적의 통신선을 차단하고, 일본군 지배하에 있는 수백만 명의 중국인들에게 세금과 통행료를 엄격히 징수했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한 일본군의 거점인 큰 성 밖에서는 끔찍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제스의 게릴라들이나 중국 공산당들은 그들에게 걸리는 병력들을 전멸시키기 가장 유리한 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우리 장교들 역시 마을 안의 중국인 관리들이 우리에게 표면상으로는 협조관계를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시골과 산악지역에서 돌아다니는 게릴라 요원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군 지휘관들은 이런 현상을 묵인함으로써 점령한 적 도시에서의 문제를 방조하기도 했다. 정말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었다.
나는 여러 번 지상지원 임무를 나섰고 아래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곤 했다. 나는 중국인 농부들이 그들로부터 1마일(1.6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중국군과 일본군이 백병전이나 총격전을 벌이는데도 눈길 하나 안주고 밭을 갈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나는 포위되어 우리 포병대의 맹렬한 포격을 받고 있는 성의 위로 낮게 날아간 적도 여러 번 있다. 그곳을 방어하는 중국군들의 피가 거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는 가게들이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이 개점하여 영업하고 있었다.
-사카이 사부로, 대공의 사무라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