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1-12-23 10:54
[한국사] 고대요동 위치고찰(고대 요동은 하북성 중부 형수시였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054  

낙랑과 고대요동은 하북성 중부 형수시(衡水市)였다

 

1. 중국 정사의 다음 내용을 고찰해 보시기 바랍니다(고찰이란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

 

  1) 한서 무제기 예(薉)의 내용

      元朔元年(B.C.128) 東夷薉君南閭等 口二十八萬人降, 爲蒼海郡.

      (B.C.128) 동이 예의 임금인 남여 등 2십8만명이 항복하자 창해군을 설치했다

      (薉 : 服虔曰 「穢貊在辰韓之北, 高句麗·沃沮之南, 東窮于大海.」)

      예에 대해 복건은 예맥은 진한의 북쪽에 있고, 고구려 옥저의 남쪽에 있으며. 동쪽은 대해로 막혀있다

 

    2) 사기 평준서 창해군 내용

        (BC 128년) 彭吳. 賈滅朝鮮, 置滄海之郡, 則燕·齊之閒靡然發動

        팽오가  조선을 멸망시키기 위해 창해군을 설치하자, 연(燕)·제(齊)의 사이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3) 후한서 동이열전의 예(濊)

        濊 北與高句驪·沃沮, 南與辰韓接, 東窮大海, 西至樂浪.
        예는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해 있고, 동쪽은 대해에 닿으며, 서쪽은 낙랑에 이른다.

        元朔元年 濊君南閭等 畔右渠, 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 武帝以其地爲蒼海郡
        (B.C.128)에 예의 임금 남여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4) 사기 흉노열전 오유선우(BC114 ~ BC 105) 조에
        是時漢東拔穢貉朝鮮以為郡
        당시 한나라는 동쪽으로는 예맥과 조선(위만)을 함락하여 그 땅에 군을 설치했다

 

     5) 사기열전 匈奴列傳(흉노열전) 묵돌선우(BC 3세기 초 ~ BC 174년)
        東接穢貉朝鮮  흉노는 동쪽으로  예맥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6) 사기 조선열전

        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屬燕。
        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조선(위만조선 영토)은 요동군(遼東郡) 바깥 변경에 속했다.
        한(漢)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이 멀어 지키기가 어려워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를 정하고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위만도 망명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옷을 입고는
        동쪽으로 달아나 변경을 나와 패수를 건너 진(秦)나라의 옛 비어 있는 땅 상하장(上下鄣)에 거주하면서
        점차 진번과 조선의 만이와 옛 연나라와 제(齊)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그들의 왕이 되어

        왕험을 도읍으로 정했다.

 

2. 낙랑과 고대 요동은 하북성 중부인 형시시(衡水市)에 있었다

 

     1) 예맥조선(穢貉朝鮮)이 예맥(穢貉)이며 예((薉)고 예(()

        동이열전의 예(()가 한서의 예(薉)이고, 사마천 사기의 예맥(穢貉)이고 예맥조선(穢貉朝鮮)이다

        후한시대 예(()가 전한시대 예(薉)이며 예맥(穢貉)이고 진시황의 진나라 시대 예맥조선(穢貉朝鮮)이다

 

     2) 동이열전의 예(()의 위치는 하북성 중부 동해안인 창주시(滄州市)다

        무제기에서 (薉)의 임금 남여가 항복하여 창해군을 설치했고 평준서에서 창해군을 설치하니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서 소동이 일으났다고 했으니

        예(薉)인 창해군 위치는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천진시 아래 창주시(滄州市)다

 

     3) 동이열전의 낙랑의 위치는 (濊, 창주시)의 서쪽인 형수시(衡水市)다

        낙랑이 (濊, 창주시)의 서쪽이니 하북성 중부인 형수시(衡水市)다

 

        고구려와 옥저는 (濊, 창주시)의 북쪽이니,

        고구려는 하북성 서북부인 보정시와 북경에 있었고  옥저는 하북성 동북부인 진황도시에 있었다

 

        진한(辰韓)은 (濊, 창주시)의 남쪽이니 산동성의 동부해안(태산 동쪽)에 있었고

        마한은 진한(辰韓, 산동성 동부)의 서쪽이니 태산 서쪽인 산동성 서부였다

        변진은 마한(산동성 서부)과 진한(산동성 동부) 남쪽이니 태산 남쪽인 강소성이었다

        왜는 변진(강소성) 남쪽이니 절강성에 있었다

 

        따라서 동이열전의 삼한(마한, 진한, 변진)과 왜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동해안 지역에 있었다

 

     4) 고대요동은 하북성 중부의 형수시(衡水市)

         예(濊, 창주시) 서쪽이 낙랑(형수시)이고 위만조선의 땅이니 위만조선도 형수시다

         조선열전에서 요동에서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면 위만조선인 상하장이다

         따라서 위만조선인 낙랑인 형수시 서쪽이 요동이니 고대요동은 형수시 서부다

         (위만조선과 낙랑은 형수시 동부인 무강현이고 고대요동은 형수시 서부인 안평현이다)

 

3. 한서지리지의 거리로 고찰하면 고대요동은 하북성 중부 석가장시(石家莊市) 부근 형수시다

 

    낙양에서 한단까지 거리가 1100리, 낙양에서 어양까지 거리가 2000리니

    한단에서 어양까지 거리는 900리가 된다 따라서 어양은 석가장시를 넘어갈 수 없다

 

    낙양에서 어양까지 거리가 2000리, 낙양에서 요동까지 거리가 3600리니

    어양에서 요동까지 거리는 1600리 이하이다

    

    낙양에서 어양까지 거리가 2000리, 낙양에서 상곡까지 거리가 3200리니

    어양에서 요동까지 거리는 1200리 이하이다

 

    따라서 연나라 서쪽 끝인 상곡에서 연나라 동쪽 끝인 요동까지 거리는 2800리(1600+1200) 이하다

    잠깐) 사마천 사기의 소진열진에서 소진이 연나라가 대략 방 2천리라고 했으니

            상곡에서 요동까지가 대략 2천리이고 한서지리지의 거리는 2800리이니

            사기 기준의 한서지리지의 굴곡지수는 2800/2000 = 1.4다

 

    결론적으로

    상곡,어양,요서, 우북평, 요동은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의 북쪽 경계이니.

    어양이 석가장시 부근이기에 요동도 석가장시 부근일 수 밖에 없다

    상곡인 양천시에서 요동인 형수시까지 거리가 대략 2천리 정도가 된다

 

    따라서 한서지리지의 거리로 고찰해도 고대요동은 하북성 중부인 형수시로 볼 수 있다

           

5) 추가적인 내용은 고조선 열국 지도(BC 1세기의 고구려 부여 마한 등 위치) 참고하세요

  고조선 열국 지도(BC 1세기의 고구려 부여 마한 등 위치) (daum.net)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수구리 21-12-23 11:19
   
폰트와 글 작동이 이상해서 글을 수정 또는 삭제하려 했으나 수정이나 삭제할 수 없기에
똑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글을 다시 올렷으니 다음글을 이용해 주세요!!!
 
 
Total 19,98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971
920 [기타] [부도지역법 응용] 요(7일, 담장).14만4천 (1440분= 하루 비가오랴나 04-22 871
919 [한국사] 국내 가장 오래된 기원전 1세기 비단 확인" 예왕지인 06-28 871
918 [한국사] 부여족은 원래 어디에서 온 것인가(3) (6) 독산 07-26 871
917 [한국사] Marauder님이 제기한 두가지 문제에 대해 몇가지 답변 (2) 하이시윤 12-16 871
916 [한국사] 단군신화(3) 공무도하 10-24 870
915 [한국사] 민족주의자가 본 민족주의에 대한 담론 (3) profe 01-13 870
914 [한국사] 조선 구마사 사태로 보는 흔들리는 중국의 정체성 그… 일서박사 04-04 870
913 [기타] 역사 전문가, 혹은 역사에 대해 잘아는 분들께 여쭤… Marauder 04-01 869
912 [한국사] 헌덕왕의 패강 장성에 대해 도배시러 03-16 869
911 [한국사] 1920~1930년대 한국어 녹음본 BTSv 06-28 869
910 [북한] 북한에서 성매매를 없앴다고.? 03편. 돌통 07-05 869
909 [한국사] 낙랑은 일단 평양에 있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2) 아비요 06-05 868
908 [한국사] mymiky 이분 교묘하게 식민사학의 논리를 전파하고 다… (4) 카노 06-05 868
907 [한국사] 전문가 집단의 오만방자를 질타한 현직교수의 기고… (1) 징기스 06-12 868
906 [한국사] 한원 번이부 신라~임나의 위치 (3) 도배시러 04-10 868
905 [한국사] 한국사의 태두 이병도(긍정론) / 자료찾기 무척 어려… 히스토리2 05-12 868
904 [한국사] 고구려의 평양은 요양이다(신동아 기사) -2 히스토리2 05-17 868
903 [한국사] 역사 연구가 종교에 결탁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감방친구 05-24 868
902 [북한] 소련의 영향으로 북한정권 어떻게 탄생되었나..02편. 돌통 01-15 868
901 [한국사] 한국인의 정신속에 지금도 살아숨쉬는 일본의 잔재 (1) 스리랑 08-22 868
900 [한국사] 질문ㅡ삼국지 위지 동이열전 고구려조에 나오는 조… (20) 울티마툴레 08-14 868
899 [한국사] 낙랑군을 한반도로 비정하지 않게 되면 생기는 모순 (11) 고이왕 06-10 867
898 [북한] 한반도의 비핵화는 누가 먼저 깨뜨렸나? 비핵화의 역… (5) 돌통 07-12 867
897 [기타] [인도]사원의 비밀금고 문양 = 발해 왕관, 고구려 조… (3) 조지아나 07-22 867
896 [중국] 기록 관점으로 보는 소관(蕭關)의 위치.. 현조 07-29 866
895 [한국사] 숙신 (1) history2 02-16 866
894 [한국사] 뮤지컬 '영웅' - 단지동맹, 영웅, 누가 죄인인… BTSv 02-11 866
 <  701  702  703  704  705  706  707  708  709  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