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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5 09:20
[한국사] 백제의 시조는 누구인가?
 글쓴이 : 보스턴2
조회 :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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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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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시작은 대방(낙랑인접지역의 요서)




1. 우태

생몰년 미상. 백제건국신화에 나오는 북부여의 왕족. 백제의 건국시조인 비류(沸流)와 온조(溫祚) 형제의 아버지이다.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으로 졸본(卒本)사람 연타발(延陁勃)의 딸 소서노(召西奴)와 결혼하여 비류·온조 형제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류왕을 시조로 한 백제건국신화에 전하는 것이며, 이와는 달리 온조왕을 시조로 한 백제건국신화에서는 비류와 온조를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의 아들로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에 대하여 비류를 우태의 아들로, 온조를 주몽의 아들로 해석하려는 견해도 있다.

2. 구태

『주서(周書)』 백제전(百濟傳)에 의하면 “구태(仇台)가 대방(帶方)지역에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백제사람들은 일년에 네 차례 구태묘(仇台廟)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기록은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백제조와 『한원(翰苑)』에도 보인다. 

중국 정사에 속하는 역사서인 주서, 북사, 수서 그리고 책부원귀에 백제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공손도의 사위라고 하므로 공손도의 아들 공손강과 세대가 같을 것이고, 따라서 그 활동 시기를 2세기 후반 ~ 3세기 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구태의 기록은 공손도보다 300년 뒤에나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에 단정짓기 어렵다. 

구태의 정체는 아직도 미스터리이며, 구태를 실존 인물로서 실질적인 백제의 건국자로 보는 견해부터 관념상의 건국 시조로 보는 견해까지 다양한 썰들이 있다. 일단 북사에 전해지는 구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는 딸을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가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고 불렀다. 《북사》 열전 백제 

이렇듯 중국 기록에서는 (동명의 후손이라고 하니까 부여 출신으로 추정되는) 구태가 대방군의 옛 땅에 백제를 세웠고, 요동태수 공손도의 사위가 되었다고 전한다. 공손도가 서기 2세기에서 3세기 초의 인물이니, 그의 사위가 된 구태 역시 그 시대의 인물일 것이며 백제의 건국 연대도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기원전 18년보다 늦은 시기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책부원구에서는 백제가 수도에 구태의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 “백제는 사계절의 가운데 달마다 왕이 하늘과 5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도읍에 시조 구태(仇台)의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네 번 제사를 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잡지 제사

3. 백제의 시조는 우태의 아들 온조인가?,  공손도의 사위 구태인가? 

구태라는 인물 자체가 다른 기록에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오리무중인 것도 있지만, 그의 가족 관계 때문에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사실 공손도가 사위로 맞아들인 사람은 부여의 왕 위구태(尉仇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딸이 아니라 종친의 딸을 시집 보낸 것이다.

이렇게 구태에 대해 혼란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의 사관들이 두 인물을 혼동하여 기록을 섞어버렸다는 설과,  백제의 또다른 명칭인 남부여와 부여를 혼동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4. 위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구태가 누구인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제시되기 시작하였다.  

1) 식민사학자 오타 료는 구태를 고구려의 미천왕이 대방군과 낙랑군을 축출하고 옛 군현의 땅에 파견한 군 사령관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구태는 옛 군현 땅에 잔류한 중국인들을 감시 및 통제하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고구려가 전연의 모용황에게 침략을 받아 휘청거리는 사이에 옛 대방 땅에서 독립하여 백제를 건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백제의 초기 역사를 부정하는 불신론(삼국사기 초기 불신론) 에 뿌리를 둔 주장이며, 오타 료의 주장을 그대로 믿자니 다른 문헌 기록들이나 고고학적 증거들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특히 백제의 건국시기가 이 설에 의하면 3세기로 늦춰진다)  

2) 가장 대중적인 의견이자 여전히 반도사학,혹은 음상사 라는 한계를 갖고있는 이병도의 구태 = 고이왕이다라는 의견이다. 구태(仇台)라는 이름이 구이라고도 읽힐 수 있으며, 이것이 곧 고이와 이어진다는 것이 주요 논거이다. 하지만 지나친 음상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 반대 의견 역시 만만치 않다. 

3) 위와 같이 구태를 실존 인물로 보는 견해 외에도 관념상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있다. 구태의 출자가 부여로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구태가 다른 곳도 아닌 옛 대방 땅 즉 (과거 대방영역: 경기도 북부에서 황해도 일대  ----> 그러나 요사히는 점차 요서로 추정하는 견해가 커지고 있다) 에 해당하는 지역에 나라를 세웠다는 점에 착안한 썰이다. 
이 의견에 따르면 백제가 고구려에게 시달리던, 진사왕과 아신왕 시대를 지나면서 백제 내부에서 부여 계승 의식이 확실하게 정립되었고, 개로왕 때 장수왕의 공격으로 근초고왕이 장악한 여러지역을 고구려에 의해 상실하면서, 한때 점령한 요동에 대한 회복의지를 다지는 과정에서 가상의 시조 즉 구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5) 구태를 근초고왕, 우태, 비류 등 으로 추정하는 소수의 견해가 있다.

ps. 관련기록들)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는 모두 "동명의 후손 중에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어질고 신의가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대방(帶方) 옛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한(漢)의 요동태수 공손도(公孫度)가 자기의 딸을 구태(仇台)에게 시집보냈고, 그들은 마침내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어느 주장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책부원귀(冊府元龜)』에 “백제는 사계절의 가운데 달마다 왕이 하늘과 5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도읍에 시조 구태(仇台)의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네 번 제사를 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잡지 제사 

백제(百濟)는 그 선대가 대체로 마한(馬韓)의 속국이며 부여(夫餘)의 별종인 듯 하다. 구태(仇台)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방(帶方)에 나라를 세우니,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신라(新羅)에 닿고 북쪽으로 고구려(高句麗)와 인접하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모두 큰 바다로 경계지어져 있다. 동서의 길이는 450리이고 남북은 900여리이다. 도읍은 고마성(固麻城)이다. 
《주서》 이성열전 백제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는 딸을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濟)가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고 불렀다. 
《북사》 열전 백제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자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대방(帶方)의 옛 땅에 처음 나라를 세웠다.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가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으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家)가 바다를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 불렀다. 그로부터 십여대 동안 대대로 중국의 신하 노릇을 하였는데, 이전 나라의 역사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수서》 동이열전 백제 

구태의 제사를 받드는데 부여의 후예임을 계승하였다. (중략) 괄지지(括地志)에서 말하길, 백제는 성에 그 조상 구태묘를 세우고 4계절에 제사를 지낸다. 《한원》 번이부 백제


- 나무위키 등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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