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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29 17:17
[한국사] 대방군의 위치에 관한 기사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911  

낙랑군에 늘 붙어 다니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대방군이다. “한서(漢書)”에 등장하는 한사군은 낙랑, 현도, 임둔, 진번이다. 그런데 “신당서” ‘배구전’의 주석에는 현도, 낙랑, 대방의 삼군(三郡)을 설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일연선사도 역사적 기록이 왜 서로 어긋나는지 의심하였다. 삼국유사는 낙랑에 이어 대방을 다음과 같이 남북으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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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방(北帶方)’은 본래 죽담성(竹覃城)이다. 신라 노례왕 4년(AD 27년)에 대방 사람들이 낙랑 사람들과 함께 신라에 항복해 왔다.

일연 주 : 이것은 모두 전한(前漢)이 두었던 두 군(郡)의 이름으로 그 후 참람스럽게 나라로 일컫다가 이때에 항복해 왔다. 

조위(曹魏) 때 비로소 남대방군(南帶方郡: 지금의 남원부)을 두었으므로 ‘남대방’이라 하였다. 대방의 남쪽은 바닷물이 천 리(千里)나 되어 한해(澣海)라고 했다.

일연 주 : 후한(後漢) 건안(建安) 연간에 마한 남쪽의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삼았다. 왜(倭)와 한(漢)이 드디어 여기에 속했다는 것이 바로 이 말이다. 

삼국유사의 이 대목은 난해하여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우선 북대방과 남대방의 구별은 일연선사의 독특한 설명이다. 그는 여러 책에 등장하는 대방이 일정하지 아니함을 인식하여 이처럼 분류한 것 같다. 그러나 대방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미흡한 상황에서 정리한 것으로 사료되므로 현대적 관점에서 다시 규명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북대방은 전한의 무제가 낙랑과 함께 설치한 것으로 보며 나중에 낙랑국과 같이 대방국으로 자칭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는 죽담성(竹覃城)을 죽군성(竹軍城)의 오기(誤記)로 보고 죽군성의 위치를 전남나주 부근으로 비정하는데, 근거를 “삼국사기” 권37‘삼국유명미상지분조(三國有名未詳地分條)’의 “대방주는 본래 죽군성인데 여섯 현이 있다(帶方州 本竹軍城 六縣).”는 기록에 둔다. 대방주는 당이 백제를 멸한 후, 백제 지역에 설치하려한 웅진도독부 산하 일곱 주(州)의 하나이므로 당나라 시대의 일인데, 일연이 한나라의 대방군으로 오인한 것으로 이해한다. 

다음 남대방은 삼국지의 시대배경으로 유명한, 후한 헌제의 건안시대에, 요동의 공손씨가 204년 설치한 대방군을 말하는데, 일연선사는 이를 남대방이라 하며 한(韓)과 왜(倭)가 여기 속하였다고 한다. “삼국지 위서(魏書)” ‘오환선비동이전’에 “후한 환제,영제 때에 한과 예가 강성하여 통제할 수 없자 백성들이 한국(韓國)으로 많이 들어갔다. 건안 연간에 공손강이 둔유현(屯有縣) 이남에 대방군을 설치하고... 한예(韓濊)를 토벌하였다... 이후 왜한(倭漢)은 대방군에 속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을, 일연이 둔유현 대신에 마한으로 고쳐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한과 예, 왜와 한의 갑작스런 등장은 우리 고대사의 또 하나의 수수께끼다. 

그러면 둔유현이 어디인가 찾아내면 대방의 위치가 드러난다. 이병도 박사는 둔유를 황해도 황주(黃州)로 비정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황주는 고구려 때 ‘동홀’ 또는 ‘우동어홀’인데, 우동어홀에서 우와 홀을 뗀 ‘동어’가 둔유와 음이 비슷하다는 것이 이유다. 과학적 근거가 궁색한 것 같다. 오히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질제, 환제 연간(146~167)에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을 공격해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잡았다.”라든가 “군국지에 서안평현과 대방현은 모두 요동군에 속해 있다(西安平 帶方縣 屬遼東郡).”고 요동으로 고백하고 있으며 현 중국지도에는 산서성 장치시에 둔유(屯留)가 있다. 

대방은 본래 진번군의 일부였으나 기원전 82년에 낙랑군에 편입되었다 한다. 먼저 반고의 “한서(漢書) 권28下 지리지” 유주자사부(幽州刺史部) 낙랑군 부분을 살펴보자. 

“낙랑군은 호구가 62,812호며 인구는 466,748명인데 조선,엄한,패수,함자,점제,수성,증지,대방,사망,해명,열구,장잠,둔유,소명,누방 등 25현이 있다.” 낙랑군의 25현 가운데 대방현이 있고 앞서 고찰한 둔유와 현도도 나온다. 대방은 원래 낙랑의 일개 현이었다. 열구(列口)란 지명은 아무래도 열수(列水)가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시사를 주는데, 실제 “열수는 요동에 있다.”는 후한서의 기록이 있다. 

다음 “후한서”다. 후한서에도 “군국지(郡國志)” 유주(幽州)의 낙랑군 가운데 대방이 보인다. 즉, 낙랑군은 무제가 설치했는데 낙양 동북 5천리이며 18성(樂浪郡武帝置。?陽東北五千里。十八城), 호구 61,492호, 인구 257,050명이며, 조선현과 대방현 등을 보유한다고 기록하였다. 

“한서 지리지”에는 낙랑이 25현으로 구성되어있고 “후한서 군국지”에는 18성이다. 낙도가 들어가고 탄열,동당,불이,잠대,화려,야두미,전막,부조의 8현이 사라져 인근 어디에도 이 8현의 이름은 없다. 

“후한서”에는 큰 군과 낙양과의 거리를 적어두었으므로 대방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낙랑이 낙양동북 5천리이므로 낙랑의 소속인 대방도 낙양동북 5천리 전후일 것이다. 낙양에서 대군(代郡)이 2,500리, 상곡 32,00리, 요서 3,300리(지금의 요서보다 더 중국 쪽에 위치), 요동 3,600리로서 대군이 중간지점이다. 한나라시대 중국지도를 펼치고 살펴보면 낙양동북 5천리는 지금의 요서부근이다. 도저히 황해도 황주까지 올 수 없음은 자명하다. 중국사회과학원 주관(담기양 편) 1982년판 “중국역사지도집” 40~41쪽을 보면 불과 100리 거리인 상곡과 요서의 간격을 지도상 1천리 이상 벌여놓았다. 중국이 얼마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가소로운 예다. 

대방이 독립된 군(郡)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것은 서진(西晋)시대다.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하고 군국제(郡國制)를 시행, 전국을 재편하면서 대방군을 평주 소속(창려,요동,낙랑,현도,대방의 다섯 군을 유주에서 분리)으로 두었다. 따라서 평주의 위치를 비정하면 낙랑군과 대방군의 위치가 파악된다. 평주(平州)는 우임금 시절 기주(冀州)로서 치소는 양평(襄平)이다. 기주는 현재 하북성 중남부와 산동성,하남성 일부에 해당한다. 양평은 삼국시대 공손연이 사마의와 싸우다 패한 곳인데 고구려가 점령하여 요동성으로 삼은 땅으로서 대동강과는 거리가 멀다. 후한서 ‘원소유표열전’에, 양평은 요동군에 속하는데 그 옛 성이 오늘날 평주 노룡현 서남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요나라 때, 양평은 오늘의 요녕성 요양(遼陽)으로 그 이름이 옮겨 갔다. 

대방은 낙랑의 아래이므로 낙랑이 밝혀지면 대방의 위치는 따라 규명된다. “진서(晋書) 지리지”에 평주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일어난다(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는 기록이 있다. “태강지리지”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이 수성현을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은 황해도 수안(遂安)으로 간주하고 민족사학자들은 하북성 창려현 갈석산으로 비정한다(심백강은 연나라 장성의 기점이 있는 하북성 보정시 수성진으로 단정). “수서 지리지”는 요서에 대방산(帶方山)이 있다하고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는 북경동쪽에, 산 중턱에 암석이 띠 모양으로 되어 있는 대방산이 있다고 기록한다. 이상 고찰한 바와 같이 대방은 한국의 황해도에 있었다는 주장보다는 중국 하북성 지역에 있었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윤용섭 신 삼국유사 인용 및 편집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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