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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25 02:10
[한국사] (효종 글 관련) 고려가 조선보다 영토가 작았다고요?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2,721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 역사는 잃었고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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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원풍 5년) '선조 시기에는 여진이 등주에 와서 항상 말을 팔았는데, 뒤에 마행도가 고려에 속하게 되어 막혀서 끊겨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조정이 고려와 왕래를 하는 데, (고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여진이 만일 중국에 말을 팔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길을 허락하도록 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끝내 여진의 사신은 오지 않았다.


-속자치통감장편


동북면병마사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삼산·대란·지즐 등 9개 촌락 및 소을포촌의 번장 염한과 소지즐의 전리 번장 아반이와 대지즐의 여나기나오, 안무이주의 골아이 번장 소은두 등 1238호가 와서 호적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대지즐로부터 소지즐 요응포 해변까지는 700 리에 걸쳐 장성이 수축되어 있으며 지금 오랑캐들이 줄을 이어 귀부해오고 있는 마당에 관방을 설치하여 그들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해당 관리로 하여금 주(州)의 명칭을 정해 보고하게 한 후 밀봉한 공문을 내려 주십시오.”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6월 
 

​한림원에서, 
“동여진의 대란 등 11개 촌락에서 귀부해온 자들이 자기들의 거주 지역을 빈주·이주·복주·항주·서주·습주·민주·대주·경주·부주·완주 등 11개 주로 정해줄 것을 요청해 왔으니 그들에게 각각 밀봉된 공문을 내려 귀주와 순주에 소속시켜 주십시오.” 
라고 건의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9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서여진의 추장 만두불 등이 동번(동여진)의 예에 의하여 주•군을 나누어 설치해 달라고 청하며 
평로진 근처의 유원 장군 골어부 및 멱해촌의 요결 등 역시 부적하여 영원히 번병이 되겠다고 원하므로 호수가 35호이고 인구가 252명입니다. 청컨대 판도에 등재하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5월 


동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삼산, 대란, 지즐 등의 마을 번장이 1238호를 가지고 와서 부적해주기를 청하니, 청컨대 유사로 하여금 주호를 아뢰어 정하게 하고 또 주기를 내리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6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장성 밖에 개간한 전답 11494 경은 청컨대 가을 수확을 기다려 군량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제가하였다.


-《동국통감》, 문종 2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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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람들은 고려시대 실제영토가 이씨조선보다 더 작은 걸로 알고 있지만

이런 내용은 씹선비 유생들이 모조리 날조한 왜곡된 자료들이다!

고려 실제영토는 우리가 알고있던 것과는 다르게 압록강 넘어 요동과 만주와 연해주 일대까지 지배하였고

그 밖의 주변의 소수민족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자료로 증명할 수 있다!

최소한 왕씨고려는 이씨조선보다 훨씬 더 넓은 영토를 누볐고 국제적으로 더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을

아래의 사료들을 통해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바이다!

아래의 그림과 사료들을 보고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것도 아래의 사료들은 고려때가 아니라 조선때의 역사학계가 편찬한

고려사와 동국통감에서 발췌된 내용들이다.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원풍 5년) '선조 시기에는 여진이 등주에 와서 항상 말을 팔았는데, 뒤에 마행도가 고려에 속하게 되어 막혀서 끊겨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조정이 고려와 왕래를 하는 데, (고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여진이 만일 중국에 말을 팔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길을 허락하도록 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끝내 여진의 사신은 오지 않았다.


-속자치통감장편


동북면병마사가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삼산·대란·지즐 등 9개 촌락 및 소을포촌의 번장 염한과 소지즐의 전리 번장 아반이와 대지즐의 여나기나오, 안무이주의 골아이 번장 소은두 등 1238호가 와서 호적에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대지즐로부터 소지즐 요응포 해변까지는 700 리에 걸쳐 장성이 수축되어 있으며 지금 오랑캐들이 줄을 이어 귀부해오고 있는 마당에 관방을 설치하여 그들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해당 관리로 하여금 주(州)의 명칭을 정해 보고하게 한 후 밀봉한 공문을 내려 주십시오.”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6월  




​한림원에서, 
“동여진의 대란 등 11개 촌락에서 귀부해온 자들이 자기들의 거주 지역을 빈주·이주·복주·항주·서주·습주·민주·대주·경주·부주·완주 등 11개 주로 정해줄 것을 요청해 왔으니 그들에게 각각 밀봉된 공문을 내려 귀주와 순주에 소속시켜 주십시오.” 
라고 건의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고려사》, 문종 27년 9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서여진의 추장 만두불 등이 동번(동여진)의 예에 의하여 주•군을 나누어 설치해 달라고 청하며 
평로진 근처의 유원 장군 골어부 및 멱해촌의 요결 등 역시 부적하여 영원히 번병이 되겠다고 원하므로 호수가 35호이고 인구가 252명입니다. 청컨대 판도에 등재하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5월



동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삼산, 대란, 지즐 등의 마을 번장이 1238호를 가지고 와서 부적해주기를 청하니, 청컨대 유사로 하여금 주호를 아뢰어 정하게 하고 또 주기를 내리소서."


-《동국통감》, 문종 27년 6월


​서북면 병마사가 아뢰기를, 
"장성 밖에 개간한 전답 11494 경은 청컨대 가을 수확을 기다려 군량에 보태게 하소서." 
하니, 제가하였다.


-《동국통감》, 문종 27년 2월




물론 위의 영토들은 그렇게 오랜 지배를 못해왔지만 그래도 고려는 천리장성을 넘어 그 곳에 상당히 많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영토확장의 노력이 상당했으며 국제적 활동을 활발히 했던 것은 분명하다.

한반도에만 떵떵거렸던 이씨조선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비록 위의 사료들 이외의 또 다른 증거물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저 책의 사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저러한 의문의 고려의 영토에 대해서는 물론 동북9성과 국제적 영향력이 어디까지 뻗혔으며 여진족과 거란족등 이러한 북방 기마민족들이 왕씨고려를 어떤 시야로 보아왔는지에 대해 위의 영토사료들을 통해서 알아보고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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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밑에 효종 북벌정책 관련해서

고려 조선 국력 비교하는 거가 있어서

실제 같은 땅 같은 인구에서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려드려야 할거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두 글은 퍼온 글이라 내용이 좀 과격한 부분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ps2

삼국지위지동이전 구당서 신당서 글들 살펴보면

고구려 백제 인구 군사력 (강성할때는 100만 군사)이 나옵니다.

과연 어느 정도의 땅과 인구가 있어야 이런 엄청난 인구 군사가 나올가요

잘 살펴봐야 할겁니다. 좋은 자료들이 많습니다.

실상을 아는 날이 온다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역사를 사랑할 겁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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