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인터넷 서핑하다가 찾은거예요.
지도상의 영역은 고구려 본토(직접지배)에 가깝고 여기서 거란, 말갈, 지두우 등으로의 세력 확장(군사적인 영항력투사)이 있기 때문에 최대 판도(간접지배+영향력) 기준이라면 저 지도에서 요서 조양시와 난하 서쪽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를 석권하는 것을 넘어 서북쪽의 내몽골지방, 동북쪽 삼강평원, 연해주 일대도 포함시킬 수 있다 라고 적혀 있네요.
고구려의 직접적인 영토는 북쪽~북동쪽방면으로는 옛 부여의 근거지인
송화강일대(농안-장춘)에서부터 길림일대를 지나 현 조선족자치주일대를 거쳐
두만강라인 또는 연해주최남단일대인 오늘날의 나호드카,포시에트 일대까지가
고구려 후기의 일반적인 영토범위였습니다.
그보다 북방 또는 동북방 지역들은 적어도 고구려가 고대국가다운 조직을 정비한 이후에
수렵-유목보다 농경이 훨씬 큰 가치를 지녔던 고구려 지배층들의 입장에서는 척박하고
생산력이 확연히 뒤떨어지는 효용가치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기.... 굳이 직접지배할 필요성
자체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고구려 직접적인 영역보다 더 북방 지역인 실위~말갈지역은 고구려의 부용지역 또는
고구려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교역대상 지역 정도의 영향권을 발휘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넷상에서 자주 보는 고구려 최대판도를 나타낸 지도 가운데 한 가지 중대한 오류는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했던 한정적인 시기에만 국한해서 최대영역을 표시해야 하는데...
적어도 고구려 후반부시기를 통틀어 일단 고구려가 일시적으로라도 점유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했던 지역까지 시기에 상관없이 모두 싸잡아 고구려영역으로 색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위 지도는 영역의 오류 자체를 떠나서 일단 장수왕 시기라고 특정했으니
그 부분에 관련해서는 오류라 할 수 없지만.....
高麗者,出自扶餘之別種也。其國都於平壤城,即漢樂浪郡之故地,在京師東五千一百里。東渡海至於新羅,
西北渡遼水至於營州,南渡海至於百濟,北至靺鞨。東西三千一百里,南北二千里。- 구당서 고구려 강역
동서 3,100리 남북 2,000리 (북위 이후의 수나라는 동서 천리 남북 1천리 로 기록)
백제, 신라를 가려면 도해 渡海 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일단 고구려 동서남북경계가 동서가 길고요.
위의 지도는 남북이 길게 나오네요.
감방친구님의 말씀은
저 지도에서 요서를 포함한 영토가 고구려 장수왕 시절에 실질적 고구려 영토라는 말씀이신거죠?
죄송하지만 장수왕 시절 북위가 고구려한테 쪽을 못 썻다는 사료는 어디서 볼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부분이라서요, 어느 사서기록에 나온건지 힌트라도 알수 있을까 해서 여쭤봅니다.
제가 한국사는 교과서로 배운게 전부라서요.
491 북위 고조(효문제)
ㅡ 장수왕이 죽자 소위모(흰색 모자)와 포심의(삼베옷) 차림으로 동쪽 교외에 나아가 애도의식 거행
508년 북위 세종(선무제)
ㅡ 고구려 시조를 모신 고려묘(산동 청주 소재)라는 사당을 지어 제사
ㅡ 선무제의 어머니가 문소태후로 고구려인
519 년 영태후(당시 북위 실권자)
ㅡ 문자명왕이 죽자 동쪽 교외에 나아가 애도의식 거행
그리고 저 지도가 잘못 된 게
ㅡ 선비 (실위)라 돼 있는데
그냥 실위, 또는 몽올실위라고 해야 합니다
선비에서 갈린 건 맞지만 이미 갈라져서 실위라는 정체성을 띠거든요
그리고 마치 북만주에 넓게 포진한 강한 종족처럼 돼 있는데
그냥 흑룡강 상류 근처에서 우리에게 예속돼 유목하던 애들입니다
또 물길(말갈)이라고 돼 있는데
그냥 물길, 또는 흑수말갈이라고 해야 합니다
말갈이 모두 물길에서 온 것이 아닐뿐더러
물길의 후신은 여러 말갈 중에서도 흑수말갈만이거든요
물길의 전신은 읍루구요
물길 읍루, 숙신시절부터 부여에 예속돼 있다가 부여가 세금을 많이 걷는 것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물길의 반란과 선비의 침입으로 부여가 와해되면서
부여와 물길 모두 고구려에 정복됩니다
흑수부가 고구려와 별도로 당나라와 외교를 했으니 당서에서 흑수부를 고구려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구절을 주목해서 흑수부는 고구려와 관련없다라고 주장했고,
여진족은 흑수부에서 나왔으니 여진족과 조선인은 관련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당서에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했을때 고구려군의 선봉으로 흑수부가 앞장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놓고보면 당서에서 말하고자 하는것은
당나라는 흑수부가 고구려와 관련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고구려를 치니 흑수부 역시 다른 말갈부족 처럼 고구려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이는 흑수말갈이 어느정도 자치권이 있는 강한 세력이었지만 고구려와 별도의 세력은 아니었다고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고구려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당시 분열된 고구려편에 서지않고 당나라편에 서는게 타당하죠.
이는 말갈 7부 전체가 고구려에 포함되었다는게 됩니다.
대진국(발해)때 통합된게 아닌 이미 고구려때부터 포함되어 있었다는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