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6-09-30 13:00
[한국사] 이순신, 노량해전 직전 쓴 '최후의 작전 서한' 첫 공개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5,394  




“순천 왜교성 고립 왜군 먼저 치자”… 明軍에 ‘긴박한 제의’ 담겨



박현규 교수, ‘여수반도 해전 국제학술대회’서 밝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앞서 일본 수군에 대한 선제공격을 명(明)군에 제의하는 의미가 담긴 ‘간찰(簡札·한문 편지·오른쪽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장군은 전남 순천 왜교성에 고립된 왜군의 위장행동을 간파해 사실상 철수가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왜군을 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30일 박현규(왼쪽)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와 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전남대 여수캠퍼스에서 개최한 ‘정유재란 시기 여수반도 해전과 조명연합군’ 주제 국제학술대회에서 ‘가경-장안왕씨 종보에 수록된 선조·이덕형·이순신 간찰 고찰’ 논문을 발표했다. 공개된 간찰은 모두 8통으로 선조와 좌의정 이덕형,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왕사기(王士琦)에게 전달한 내용이 담겼다. 당시 조명연합군에 의해 순천 왜교성에 고립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명군을 회유해 최소한의 철수 통로를 확보하려 했다.

장군은 ‘이순신 밀찰’로 족보에 명명된 간찰에서 “적장 평의지(平義智)가 명나라 군사가 철수한 이래 왜교에서 돌아와 현지 사람들을 불러 유시하기를 대명 병사와 조선 병사가 모두 패주했으니 이제 근심은 백성들을 안주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라고 적어 이덕형에게 보냈다.

이어 장군은 “적의 동정을 살펴보니 주강포의 소금 찌는 솥 10여 개를 거두어 빈 배에 실어 먼저 대마도로 보냈고, 왜구들이 우리들에게 말과 포를 교역하거나 소를 잡아먹는 것이 전날과 다릅니다”라고 보고했다. 장군은 왜군의 동정을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평가했다. 간찰은 노량해전(1598년 11월 19일)을 한 달 정도 남겨놓은 1598년 10월 28일에 작성됐다.

이덕형은 이순신 장군의 간찰에 대해서 왕사기에게 “만약 그들을 몰아 소굴에서 벗어나면 바다 가운데에서 막아 살해하면 가장 기묘한 책략이 되옵니다”라며 “이순신의 밀계는 수륙 대장군이 함께 먼저 왜교를 치고 나중에 남해를 도모하자는 뜻이옵니다”라고 알렸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이순신 장군 간찰은 1598년 음력 7월이 마지막이다. 이번 간찰은 ‘조선왕조실록’ ‘이 충무공 전서’ ‘난중일기’ ‘이덕형 문집’ 등 국내 임진왜란·정유재란 관련 사료에서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김경록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조명연합군의 작전에 소극적이었던 명군을 설득해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섬멸하고자 했던 이순신 장군의 의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이순신 장군은 남해에 주둔하며 순천 왜교성의 일본군 철수를 지원하려 했던 일본 수군을 선제공격해 퇴로를 차단하자는 결전의 작전 제안을 했다”며 “작전이 성공했다면 정유재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촐라롱콘 16-09-30 13:28
   
본문글 마지막부분이 이해가 잘 안되네요....!!!

정유재란은 이미 1597년초부터 ~ 왜란이 종결된 시점인 1598년 11월의 노량해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데

정유왜란이 이미 막바지에 달하는 시점인 1598년 10월말에 작성된 간찰과

만약 간찰내용상의 실제 작전계획대로 작전이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11월 초에야 작전이 실행되었을 것인데.....

[[작전이 성공했다면 정유재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는 뒷북스런 언급은 도대체

무엇인지......????
남아당자강 16-09-30 14:51
   
뒷북스러운 글도 한심하지만, 역사학계에선 족보나 당사자 사후에 후손들이 쓴 행장기는 사료로서 가치를 두지 않는데요. 또한 논문의 저자가 중어중문학과 교수...... 역사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마찬가지 일건데요. 관심둘 가치가 없습니다.
별명없음 16-09-30 22:51
   
사진에 나온건 누가 봐도 인쇄 책자의 사본인데... 서신 간찰 이라고 하는것도 이상하네요...

편지 원본도 아니고 그냥 내용을 옮긴 인쇄 책자라는건 후세에 누가 정리한거라는 얘긴데...
타샤 16-10-01 02:08
   
족보에 있는 글이네요. 어느 족보 인지(이순신 이씨의 족보일 수도...)

근데 우리집 족보에는(참고로 고향은 영변) 해모수 신화도 적혀 있던데...
대체 왜 해모수 신화가 적혀 있는지 알 수가 없음... 우리가 해씨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모수의 사위 고주몽, 고씨도 아닌데...
     
자기자신 16-10-01 02:38
   
가경-장안왕씨 종보이라는데요 간찰이래요 한문편지
운드르 16-10-03 05:23
   
'천병'과 '대명' 부분만 한 글자씩 올렸는데 중국을 높이느라 저렇게 한 건가요?
 
 
Total 19,98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6563
2325 [기타] 고구려인 얼굴은 한국인 얼굴 (10) 두부국 12-01 5387
2324 [중국] (조선족이말하는 충격적사실) 중국 죽으려면 가봐라.… (3) doysglmetp 08-22 5389
2323 [기타] 몽골지역에 남아있는 고구려 성터 (12) 두부국 05-06 5389
2322 bullet<===동남아인종이 열등종자인건 전세계가 다 … (9) 남북통일이… 02-12 5390
2321 [일본] 이것이 일본의 클래스 (15) 무명씨9 10-02 5392
2320 [한국사] 3세기 내몽골 벽화에 고구려 유적 속 그림이... (4) 소유자™ 10-18 5394
2319 [중국] 중국인 사학자도 중화족이란 환타지 허구 (2) chicheon 03-02 5395
2318 [통일] 조선시대의 미이라 (13) 한시우 07-07 5395
2317 [중국] 한국이 중국 속국이었다고 믿는 분에게 (25) 뽀로뽀로 11-22 5395
2316 [기타] 신라 황룡사 지붕 치미 크기 (5) purenature 09-25 5395
2315 [한국사] 이순신, 노량해전 직전 쓴 '최후의 작전 서한'… (6) 러키가이 09-30 5395
2314 [기타] 가생이, 검열이 너무 쎄서 말도 못하겠다. (15) 가오리 02-07 5396
2313 [일본] 혐오스런 일본의 먹거리 문화.jpg (13) 한시우 12-23 5398
2312 [통일] 한중일의 문화 차이... (34) 슈프림 05-08 5398
2311 [일본] 일본 2ch는 일본에서 유저수가 몇명인가요? (7) 모두함께 03-24 5399
2310 [중국] 잠자다가 고추(생식기) 도둑맞았답니다. (18) 내셔널헬쓰 01-08 5399
2309 [통일] 부여가 韓族의 나라라는 건가요? (4) 감방친구 03-13 5399
2308 [통일] '대마도본시아국지지(對馬島本是我國之地)' … (9) 굿잡스 04-05 5399
2307 [중국] 한국 조선, 수주량·질 중국 압도 (12) 소악녀 06-06 5400
2306 [일본] 불매운동은 한국의 잘못이다?! (23) 나를믿으라 07-10 5401
2305 [일본] 화장실테러 결국엔 한국인이냐?ㅋㅋㅋ (7) 성시리 12-04 5402
2304 [일본] 미 국무부, 일본 15년째 인신매매 2등급 국가에 지정 (15) 굿잡스 07-30 5404
2303 [중국] 중국에 한복을 전해준 우리 선조들.. (45) 막걸리한잔 07-20 5405
2302 [일본] 한류속의 한국과 일본, 앞으로 미래 관계는? (1) 레알미래인 03-21 5407
2301 [일본] 러시아 “수입 日자동차에서 방사성 물질 검출” (4) 봉달이 04-06 5407
2300 [중국] 중국 갑옷으로 소개된 고구려 갑옷 (6) 근초고왕 05-30 5407
2299 [한국사] 조선시대 영상 희귀 자료 (19) 애국자연대 09-21 5407
 <  651  652  653  654  655  656  657  658  659  6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