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본기>
혁거세 거서간
40년(기원전 18), 백제(百濟)의 시조 온조(溫祚)가 왕위에 올랐다.
탈해 이사금
7년(서기 63) 겨울 10월, 백제왕이 영토를 개척하여, 낭자곡성(娘子谷城)까지 이르러 사신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으나, 임금은 가지 않았다.
8년(서기 64) 가을 8월, 백제가 병사를 보내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하였다.
겨울 10월, 백제가 다시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자 임금은 기병 2천 명을 보내 공격하여 물리쳤다.
10년(서기 66), 백제가 와산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2백 명을 그곳에 남겨 지키게 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그곳을 다시 빼앗았다.
14년(서기 70), 백제가 침범하였다.
18년(서기 74) 가을 8월, 백제가 변경을 노략질하기에 병사를 보내 이를 막게 하였다.
19년(서기 75),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다.
겨울 10월, 백제가 서쪽 변경의 와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20년(서기 76) 가을 9월, 병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하여 와산성을 다시 찾았다. 백제로부터 와서 살고 있던 2백여 명을 모두 죽였다.
파사 이사금
6년(서기 85) 봄 정월,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2월, 길원(吉元)을 아찬으로 삼았다.
8년(서기 87) 가을 7월, 임금이 명을 내렸다.
“내가 덕이 없는데도 나라를 맡았다. 우리나라는 서쪽으로는 백제를 이웃하고 남쪽으로 가야와 닿아있다. 나의 덕망은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지 못하고, 위엄은 그들로 하여금 두렵도록 하기에 부족하니, 성과 보루를 수리하여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달에 가소성(加召城)과 마두성(馬頭城)을 쌓았다.
(하략)
<백제 본기>
다루왕
36년(서기 63) 겨울 10월, 임금은 낭자곡성(娘子谷城)까지 국경을 개척하였다.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모임을 청하였으나 신라왕이 듣지 아니하였다.
37년(서기 64) 임금이 병사를 보내어 신라의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병사를 옮기어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였다. 신라가 기병 2천 명을 일으켰는데, 이를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39년(서기 66), 와산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2백 명의 병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으나, 얼마 후 신라에 빼앗겼다.
43년(서기 70), 병사를 보내어 신라를 침범하였다.
47년(서기 74) 가을 8월, 병사를 보내어 신라를 침범하였다.
49년(서기 76) 가을 9월, 와산성이 다시 신라의 소유가 되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