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낙랑의 근거를 고찰할 적에 삼국사기만 보지 말고 삼국유사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하기에 삼국유사를 근거하면 전라도까지 중국땅이 된다고 답하였다.
성인이 되어 제대로 통독한 삼국유사는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솔직히 큰 배신감이 들었다. 크나 큰 가치에도 불구하고 실망했다. 그 이유는 편찬자의 인식과 태도에 기본적으로 중화질서와 사대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전체에서 끊임없이 느껴졌기 때문이고 위치를 비정하는 데에 있어서 너무 터무니 없다는 데에 있었다.
다음을 보자.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북대방은 본래 죽담성(竹覃城, 전라 나주)이다. 신라 노례왕(弩禮王) 4년(기원전 27)에 대방 사람들과 낙랑 사람들이 신라에 항복해 왔다. [이것은 모두 전한 때 설치한 두 군의 이름이다. 그 후에 함부로 나라라고 불러오다가 지금에 이르러 항복해 온 것이다.]
北帶方 本竹覃城 新羅弩禮王四年 帶方人與樂浪人投于羅[此皆前漢所置二郡名 其後僭稱國 今來降]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조위(曹魏) 때 처음으로 남대방군(南帶方郡)[지금의 남원부(南原府)이다.]을 설치하였기 때문에 남대방이라 하였다. 대방의 남쪽은 바닷물이 천리나 되는데 한해(瀚海)라고 한다.[후한(後漢) 건안(建安) 연간(서기 196~220)에 마한 남쪽의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삼았다. 왜(倭)와 한(韓)이 드디어 예속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曹魏時 始置南帶方郡[今南原府] 故云 帶方之南 海水千里 曰瀚海[後漢建安中 以馬韓南荒地爲帶方郡 倭韓遂屬 是也]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三國遺事 卷第一 紀異 第一) 왕검조선조 부분
당(唐)나라 「배구전(裵矩傳)」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고려(高麗)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지금의 해주(海州)이다.]이었는데 주(周)나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다. 한(漢)나라는 이를 나누어서 3군을 설치하고 현도(玄菟)ㆍ낙랑(樂浪)ㆍ대방(帶方)[북대방(北帶方)이다.]이라 불렀다.”
대방을 전라도에 비정하고, 고죽국을 황해도에 비정하고 있어서 왕검조선과 위만조선 이래의 중심지를 모두 한반도 안에서 찾고 있다.
이게 당대 지식인의 인식이라면 고려시대 서경의 위치를 요동에서 찾는 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