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 있는 1785년 조선 정조시기 (청나라 건륭제 시기) 태국 (섬라국)이 청나라에 보낸 표문입니다.
아주 아부에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스스로를 속국이라고도 부르고 청나라 황제한테 별에별 칭찬은 다하네요 ㅋㅋㅋ 심지어 조공을 받아줘서 너무 고맙데 ㅋㅋㅋㅋ
참고로 이 시절 태국은 동남아 최강자라 할수 있는 시절인데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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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llok.history.go.kr/id/kva_10902014_004
한자로 쓰여진 섬라국(暹羅國)의 표문(表文)에 이르기를,
"섬라국 장(暹羅國長) 정화(鄭華)는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대 황제 폐하에게 만세 만세 만만세를 올립니다. 엎드려 황제의 은혜가 커서 은택이 먼 나라에까지 미치고, 성덕(聖德)이 넓고 커서 바다 구석에까지 멀리 미쳤습니다.
생각하건대, 죽은 아비 정임(鄭任)이 섬라를 다스리며 사신을 보내서 바친 조공을 이미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은혜를 입은 것만도 영광스럽고 다행하기 그지없는데,
어찌 다시 높은 대우와 상격(常格) 외의 더한 은덕을 받으리라고 기대하였겠습니까?
멀리 있는 속국(屬國)을 회유하고 조금이라도 살피지 않는 데가 없으니, 정화로 하여금 감격을 이기지 못하게 하지만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이 정화는 아비의 기업(基業)을 이어받았으니,
마땅히 아비의 뜻을 계승하여 공물을 바치는 전례를 감히 조금이라고 소흘히 할 수 없으며,
이에 그 직무를 닦아서 영원히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화는 외따른 바다 구석에 처해져 있어서 멀리 있는 땅이 거칠고 메말라, 지금 방물(方物)을 갖추어 내조(來朝)하지만 조공을 바치는 예들이 진실로 법식에 맞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러러 큰 사랑으로써 정화의 정성을 헤아려서 반드시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삼가 금박을 칠한 표문을 갖추고, 공상(公象)은 1쌍, 모상(母象)은 1척, 용연향(龍涎香)은 황제에게 1근, 황후에게 8량, 금강찬(金剛鑽)은 황제에게 7량, 황후에게 3량, 침향(沈香)은 황제에게 2근, 황후에게 1근, 빙편(氷片)은 황제에게 3근, 황후에게 1근 8량, 서각(犀角)은 황제에게 6개, 황후에게 3개, 공작미(孔雀尾)는 황제에게 10병, 황후에게 5병, 취피(翠皮)는 황제에게 6백 장, 황후에게 3백 장, 서양전(西洋氈)은 황제에게 2장, 황후에게 1장, 서양홍포(西洋紅布)는 황제에게 10필, 황후에게 5필, 상아(象牙)는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장뇌(樟腦)는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강진향(降眞香)은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백교향(白膠香)은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대풍자(大楓子)는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오목(烏木)은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백두구(白荳蔻)는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필발(蓽撥)은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단향(檀香)은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감밀피(甘蜜皮)는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계피(桂皮)는 황제에게 1백 근, 황후에게 50근, 등황(藤黃)은 황제에게 3백 근, 황후에게 1백 50근, 소목(蘇木)은 황제에게 3천 근, 황후에게 1천 5백 근인데, 특별히 조공사(朝貢使) 파사활리나돌랑(帕史滑里那突朗)·와문실니하악무돌랑(喎汶悉呢霞喔撫突朗)·요찰나비문지돌(扶察那丕汶知突)·문비필오차(汶丕匹洿遮)를 임명하여 일을 준비하고 조심스레 가서 삼가 대궐에 바치도록 하였으니, 너그럽게 거두어 주신다면, 정화는 지극히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외람되게 바칩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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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도 이제 자주국이 아니였던건가요?
그냥 그 시절, 동아시아의 외교 질서와 시스템이 그랬던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