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독도가 조선땅인지 일본땅인지 태고적부터 결정된건 아닐것입니다.
영토란 존재하는 토지를 두고 국가들간의 전쟁 혹은 교섭을 통한 합의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합의 이후 영토가 지속되다가 중간에 어떤 나라가 문제제기를 하면 다시 협상을 통해 과거 영토의 근거를 재확인하는 과정이 있는 게 본래 영토문제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안들면 다시 목숨을 걸고 전쟁을 벌이게 되겠지요)
실제 독도가 조선령으로 간주된건 매우 오래된 얘기로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과거의 기록까지는 알수가 없고(기록 부존재) 가장 최근에 양국간의 합의가 있었다고 보여지는 시기는 조선시대 숙종무렵이라고 보입니다.
이 합의의 배경은 우리 모두가 몇번쯤은 들어봤을 안용복 1차 도항사건, 2차 도항사건이 배경입니다.
안용복 사건을 간단히 설명하면 조선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안용복씨가 어업을 하던 도중 계속해서 (조선인들은 조선땅으로 알고 있었던) 울릉도- 독도 주변으로 일본인들이 '불법조업'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됩니다.
울릉도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 어부에게 왜 남의나라 땅에 와서 조업을 하느냐고 항의하자 일본인 어부들은 적반하장격으로 안용복씨가 남의 나라땅을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입니다) 안용복씨를 납치해 일본으로 끌고갑니다.
이 사건이 1차 안용복 도항사건 혹은 안용복 납치사건입니다.
일본에 끌려간 안용복씨는 일본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땅이라 주장했으며 조선정부도 일본정부측과 계속 협상을 벌여갑니다. 그리고 그 외교적 활동의 결과 일본과 조선 모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에 속한다는 걸 인정하고 안용복을 무사히 풀어주게 됩니다.
일본이 이렇게 순순히 물러서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임진왜란의 기억(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침략을 당해 큰 피해가 난 전쟁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실은 일본입장에서도 엄청난 인적 물질적 피해를 본 전쟁이었습니다)이 그대로 일본에 남아 있는데다가 도쿠가와 정권 이전 토요토미 정권이 조선과의 전쟁결과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져 정권몰락의 단초가 되었다는 역사적 경험이 있어서일거라고 보입니다.
이로부터 7년뒤 다시 본업에 종사하던 안용복씨는 또다시 울릉도에 와서 조업을 하던 일본인 어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정부의 보증이 있었던 만큼) 두번째나 같은 일을 반복하던 일본인 어부들의 행위를 일본중앙정부 즉 도쿠가와 에도막부에 고발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의 합의가 있었다는 배경) 일본으로 스스로 건너갑니다.
이것이 2차 안용복 사건입니다.
잠시 이 2차 안용복 도일사건이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봅시다.
이 기록에는 두가지의 대립구도가 있습니다.
1. 안용복 vs 일본어부
안용복 : 여기 울릉도는 우리 조선땅인데 왜 너희 일본어부가 와서 어업을 하고 있느냐? 모두 잡아가두겠다
일본어부 : 우리는 송도(독도를 부르던 일본의 옛날명칭)에 살고 있는데 어쩌다 실수로 여기에 왔다. 곧 돌아가겠다.
안용복 : 송도는 조선의 자산도로서 거기도 우리땅인데 너희가 거기에 산다고? 용서할수 없다.
안용복과 일본어부측의 대화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울릉도가 조선땅이라는 점은 일본어부와 안용복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둘째 송도(독도)의 경우 일본어부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안용복은 그곳도 역시 조선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국 국민들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지요. 민간인들간의 분쟁에 대해 당시 일본관료들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바로 아래쪽에 나옵니다.
2. 안용복 vs 일본도주
안용복 : 내가 몇년전에 왔을 때 관백(일본중앙정부)로부터 두섬(죽도와 송도)이 조선땅이라는 서계를 받았다. 그런데 당시 대마도주가 이를 빼았고 여전히 울릉도와 독도에서 조업을 허용하고 있다.
내 이를 일본중앙정부에 다시 고하여 시시비비를 가르겠다.
일본도주 : 어이쿠 그렇게 하면 일본중앙정부는 죄를 물어 제 자식에 할복을 명할것입니다. (사형당할 것입니다) 제발 그러지 말아주시옵소서. 두 섬( 죽도와 송도)는 이미 조선에 속한 섬이니 이후 이 섬에 넘어가는 일본인이 있다면 알려만 주십시요. 바로 엄중히 처벌하겠습니다.
너무나 두섬(죽도와 송도)가 조선땅임이 명백해집니다.
여기서 한가지 쟁점이 될 부분 조선땅임에 분명한 송도가 도대체 지금의 어디인가라는 문제입니다.
후대의 일본어부 하치에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안용복 후대에 울릉도에 건너가 조업을 하다
가 걸려서 일본정부에 사형을 당합니다.
이 하치에몬이 직접 그린 지도입니다. 죽도와 송도가 조선과 일본 본토로부터 떨어진 거리까지 그림을 그려
놔서 이것이 현대의 울릉도와 독도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1877년 일본이 아직 독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전 동해의 두섬 죽도와 송도를 그린 기죽도약도 입니다.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진 섬 그림 위에 송도라고 명백히 이름을 적어놨습니다. 아래쪽에 확대한 그림입니
다.
송도가 오늘날의 독도임이 너무나 명백합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야욕을 보이기 전 (보이기에는 아직 러시아와 열강의 눈치가 두렵던 시절) 송도가 조선의 영해선 안에 있다는 게 명백합니다.
추신 :
사실 영토문제에 있어서 이런 백년전 지도 같은건 현실의 군함 한대보다 가치가 없는 걸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과거의 고지도라는 자체도 과거의 군함들과 군대들간의 전쟁에서 흘린 군인의 피위에 그려진겁니다.
힘앞에서는 과거에 그게 한국땅이었네 어쩌네도 무의미한걸수도 있습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실효적 지배가 맞다는 말이지요.
정통성이고 뭐고 간에 한국은 근대화가 뒤쳐져서 힘에서 뒤지자 나라 전체가 일본의 손아귀로 떨어진적도 있었습니다.
독도문제에 관한한 역사적 정통성 역시 한국에 있음은 명백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실효적 지배도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력경쟁에서 뒤지게 되면 또다시 안뺐긴다고 누구도 장담할수 없는게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입니다.
5.16혁명이후 한국의 국력은 일취월장하여 세계 누구도 한국을 쉽게 무시할수 없는 수준까지 온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부국강병을 소흘히 한다면 남자는 강제노역으로 끌려가고 여자는 위안부로 끌려가는 치욕의 역사가 다시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수는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