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소설 녹정기를 보면 강희제의 신하 중 서양인으로 탕약망과 남회인이란 사람이 나온다.
둘 다 서양인으로 강희제는 그들을 중용하여 대포를 제작하게 하며 또한 위소보와의 대화를 통해 탕약망이 대청시헌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탕약망과 남회인은 모두 실존인물로서 그 중 탕약망이라 불린 사람. 이가 바로 아담 샬이란 독일인이며 선교사이자 천문학자였고 바로 소현세자를 만나 그에게 천주교와 천문학을 가르친 사람이다.
둘의 만남은 잠깐이었지만 이 만남을 통해 소현세자는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음은 아담 샬이 남긴 중국포교사란 책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미 조선보다 훨씬 발달한 청의 문물에 큰 인상을 받은 소현세자에게 이런 청의 문물보다 더욱 발전한 학문을 가진 세계가 청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세자가 아담 샬에게 보낸 편지속에는 아담 샬에 대한 세자의 존경과 흠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 짧은 만남속에서 세자는 서양의 학문에 눈을 뜨게 되고 아담 샬로부터 선물로 받은 천주교 천문학 수학과 관련된 책자들 그리고 여러 서양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하여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갈 때 이를 가지고 가 조선을 새로운 나라로 만들 꿈에 부풀게 된다.
볼모 시절 소현세자는 청으로부터 매우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 볼모라하여 세자를 무시한 청국인은 없었으며 모두 세자의 인품을 흠모하고 정중히 대했으며 세자 역시 볼모라는 입장에 주눅들지 않고 일국의 세자로서 기품을 보이며 청과 조선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데 앞장 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볼모라기보단 오히려 청에 파견된 조선의 주청대사같은 그런 입장이었다.
나중일이지만 적국인 청은 세자를 이렇게 정중히 대접했건만 막상 세자의 나라는 볼모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를 죽여버렸으니 이것도 참 어이가 없다. 인조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일어난 병자호란의 책임을 지고 볼모를 자처한 자신의 아들이 귀국하자 오히려 자식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지나 않을까 불안에 떨며 결국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도 모자라 그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모조리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인조란 임금이 얼마나 못나고 찌질한 임금이었는지는 더 말 할 필요조차 없다.
어쨋든 소현세자는 볼모생활 중 조선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였는지 깨닫게 되고 명의 마지막 멸망을 지켜보며 그 동안 자신들이 명에 대해 취했던 사대와 주변 정세에 대한 어두움, 청만 큰게 아니라 그 밖에는 더 큰 세계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등으로 조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정말 자신이 조선으로 귀환하면 조선을 새로운 나라로 만들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귀환한 그를 기다린 것은 아버지의 냉대. 조귀인의 모함뿐이었다.
그는 볼모지인 심양에서 꿈꿨던 새로운 조선에 대한 꿈을 단 한치도 펼쳐보지 못한 채 결국 독살당하고 만다.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과연 조선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을까.
일본의 메이지유신보다 200여년전에 이미 조선에는 서양문물에 대한 깨움침과 이를 개혁으로 이끌 위치에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냥 독살당하고 만다.
소현세자가 살아있었다면 과연 조선은 메이지유신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도입하여 개화가 가능했을까.
개인적으론 아마 불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같은 볼모생활을 했던 봉림대군은 후에 효종이 되었지만 그는 소현세자와 같은 꿈보다는 단순히 청에 대한 원망만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되지도 않을 북벌론으로 한세상 보내버렸으니.
게다가 소현세자가 아무리 왕이 된다한들 왕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과연 성리학으로 뇌가 완전히 굳어버린 신하들을 자신과 같은 길을 걷도록 설득할 수 있었을까.
이후 조선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본다면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소현세자는 그렇게 죽고 만다.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일단 시도는 해봤어야 하지만 그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독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조선은 여전히 깊은 미망속으로 빠져든다. 오직 자신들만의 세계에 갖힌 채 당쟁은 더욱 격화되어간다. 그리고 200여년 후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일본에 의해 기나긴 미망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