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안양시 <문자 박물관> 관람 -
지금 중국은 92%의 한족(漢族)이 정권을 잡으면서, 또다시 청나라나 원나라 같은 몽골리안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며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9일 방문한, 중국 하남성 안양(安陽)시는 고대 하(夏), 은(殷), 상(商), 주(周)나라의 수도(首都)였다.
이 안양시 서북쪽 4km 지점에는 고대문명의 유적, 은허(殷墟)가 있고 여기서 발굴된 갑골문자(甲骨文字)를 전시해 놓은 문자박물관이 시내에 있다. ... “이 갑골문자는 원래 우리 한(韓)민족(漢족이 말하는 東夷)의 것으로 고려 때까지도 사용했었습니다.”...
원래 우리 고조선 족은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살고 있었으나 10,000년 전 지구의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이곳 중국의 황하 하류인 화북평야와 산동반도, 한반도 일대였다. 빙하기 때는 지구의 절반이 얼어붙어, 황해(黃海)의 수위가 120m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황해바다 대부분은 평야였고 바다 가운데 지금의 황하(黃河) 정도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 중국과 한반도는 붙어 있었다.
중국은 청나라 때만 하여도 그들의 조상이 삼황오제(三皇五帝)라 하였다. 한족(漢族)의 남송(南宋)시대, <십팔사략>에서도 삼황(三皇)은 태호 복희, 염제 신농, 황제 헌원이라 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중국이 동북공정을 본격화하면서 한족(韓族)인 태호 복희를 빼고 한족(漢族)인 나머지 이황(二皇)만을 중국민족의 조상이라 선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황제 헌원이 한족(韓族)인 치우천황을 탁록(琢鹿)전투에서 물리치고 중국을 한족(漢族)의 영토로 확보하였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BC 2,600년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그 이전 빙하기 때부터 중국 황하유역은 우리 한(韓)민족(東夷)의 땅이었음을 한족(漢族) 스스로가 인정한 셈이다.
한족(漢族)은 왜소한 체구(體軀)와 어순(語順)에서 한(韓)민족과 구별된다. 그들은 중국의 남쪽, 양자강(長江) 유역에 살면서, 직화(直火)요리 등 위생적인 문화 덕분에 0%에 가까운 영아(嬰兒)사망률로 인구가 팽창(膨脹)한다. 그들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죽음의 전술>을 구사하며 북쪽의 황하유역까지 진출한다. 그리고 은나라의 갑골문자를 이어받아 발전시킨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문자가 한족(漢族) 고유의 문자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한족(漢族)의 나라가 세워졌다 하여, 그 넓은 중국 대륙에서 하루아침에 한(韓)민족이 사라질 수는 없었다. 노나라, 제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많은 나라들이 명멸하였다.
골격(骨格)상으로도 한족(漢族)과 확연히 다른, 공자, 관운장 등 한(韓)민족은 중국땅에서 꿋꿋이 살아 있었고, 해안선을 따라, 백제의 식읍(食邑), 신라방 등이 건재(健在)해 있었다. 지금도 중국 산동성의 칭따오(靑島)에는 한국인도 많고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인도 많아, 중국말을 모르는 한국인들도 중국에서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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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청나라는 한국사입니다. 한국최초 국사교과서에 금청사는 한국사로 편입되어 있습니다(김구임시정부발간). 원래 한국사였던 금청사를 원래대로 한국사로 복원해야합니다.
제1장 려요시대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
제4편 근세(近世)
제1장 조선시대
제2장 조선과 청나라 시대
"신라 김함보후손이 중국을 정복해":
여진-고려는 공통의 언어/문화를 가진 민족공동체:
김구임시정부때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쳐:
금나라가 중국사면 함경도는 역사적 중국영토:
오랜식민지배 끝에 중국인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바뀌어: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의 주장과 반박 1: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의 주장과 반박 2:
하도 멍청해서 1초만에 반박당하는 김함보 식민빠들주장:
세계최초 화약무기는 고대 한민족의 발명품:
고려-금 남북조시대 지도:
아시아의 남미 천년식민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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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 남북조시대 최초 국사교과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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