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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9 16:09
13. 견성(見性)
 글쓴이 : 공무도하
조회 : 500  



성(性)이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견성(見性)하였다 함은 자신의 근본을 보았다는 것으로 이해되어 진다.

즉 실체적으로 무언가를 보았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렇지 않다면 깨달을 각(覺)자를 써서 각성(覺性)이라 하여야 옳을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근본은 삼태극인데 그 근본을 보았다는 것은 삼태극을 보았다는 것이고 삼일신고에 의하면 삼신(三神)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에 삼일신고의 한 구절을 소개하자면

자성구자(自性求子)하라, 강재이뇌(降在爾腦)이 시니라 라는 구절이 있다.


해석하자면

스스로의 성(性)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라. 너희의 머릿골에 내려와 계시니라 라고 해석되어 진다.



하이데거는 진리에 대하여

존재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견성(見性)으로 본다.




자 이제 성(性)에 대한 설명으로 중용을 살펴보자

중용에서는 성(性)에 대하여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하여 하늘의 명령이라 하고 있다.

이는 관념적 의미가 강하다.




윗 글들을 통하여 글쓴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성(性)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실체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 같고 중용에서는 관념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이유로

성(性)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자꾸 혼동이 온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 글을 통하여 실체적 의미와 관념적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성(性)에 대하여 밝혀 보고자 한다.





아인쉬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의 공식은 E=MC2(자승) 이다.


M은 질량이고 C는 빛의 가속도를 의미한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존재자와 존재을 대입시켜보면

M은 질량이고 지적할 수 있는 것이므로 존재자인 것이고 그렇다면 존재자를 존재케하는 존재는 C가 된다.


C는 빛의 가속도이다.

그런데 이를 단순화하여 속도라 한다면 속도라는 것이 무엇이건데 존재자를 존재케 하는 존재의 자리에 있는 것인가?


속도라는 것은 움직임의 정도라고 다시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움직임이라는 것이 무엇이건데 존재자를 존재케 하는 존재의 자리에 있는 것인가?




여기에

"나"가 있다.


그리고

"걷고 있는 나"가 있다.


그리고

"걷고 있지 않은 나"가 있다.



"나"와 "걷고 있는 나"는 같은 것이 아니다.

"걷고 있는 나"는 "나"에 "걷고있는" 이라는 움직임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나"와 "걷고 있지 않는 나"는 같은 것이 아니다.

"걷고 있지 않는 나"는 "나"에 "걷고 있지 않는" 이라는 움직임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걷고 있는" 이라던가 "걷고 있지 않는" 이라는 움직임이라는 것은 의도이다.


움직임이란 "의도" 이다.


의도가 발동한 연후에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도 그 자체가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스스로 추궁해보라. 의도가 발동한 연후에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의도가 발동되고 있는 것인가.)


그러므로

존재자를 존재케하는 존재의 자리에 있는 것은 "의도"이다.



따라서

견성(見性)하였다 할 때의 의 성(性)은 존재자로서의 성(性)을 의미하는 것이요

하늘의 명령이다 라고 할 때의 성(性)은 의도로서의 성(性)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부경을 보면

무진본(無盡本)과 부동본(不動本)이라는 구절이 있다.


무진본(無盡本)은 질량적 측면에서 그 다함이 없다는 것으로 이것은 순환을 통하여 가능해진다.

즉 바닷물이 증발하기만 해서는 무진본 할 수 없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구름되고 비가 되어 강이되고 다시 바닷물로 돌아가듯 순환이 이루어져야 질량적 측면에서 무진본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부동본(不動本)은 의도적 측면으로 그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돌로 쓰이던 짐승으로 쓰이던 여자로 쓰이던 남자로 쓰이던 그 쓰임은 무수히 변하지만 창조의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

즉 이러한 모든 쓰임은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에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性)이란

생명의 근원인 삼태극 그 자체를 말함과 더불어 삼태극이 발하고 있는 의도까지 포함한다.



천부경에서 쓰여진 부(符)자는 부신 부(符)자 인데 이는

"A의 요구에 B가 정확하게 응하게 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천부경(天符經)의 뜻은

하늘의 의도에 사람들이 정확하게 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하늘이라는 실체적 의미로서의 성(性)과 의도라는 관념적 의미로서의 성(性)을 모두 담고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진리라 하였다.


그런데 존재가 스스로 자신을 드래내기 위해서는 존재자가 먼저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은 수 많은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있다.

그리고 수 많은 정신적 계(界)를 형성하고 있다.


니체는 강의를 할 때 망치를 들고 강의를 하였다고 한다.

이는 이러한 가면과 계(界)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깨뜨리고 스스로 진실해 짐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때 비로서 내 안에 있는 궁극적인 존재와 통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통공완(性通功完)이다.


예수가 그러하였고 석가모니가 그러하였다.





나 이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이니

나는 너의 안에 있는 것이니

나를 너의 밖에 세워두고 그 곳에서 나를 찾지말라.

나는 너의 안에 있는 것이니

나를 찾고자 한다면 너의 안으로 들어오라.


나 이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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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17-03-09 18:43
 
윗글에 대한 댓글을 이곳에다 씁니다.

서양에서는 니체를 변방의 철학자로 취급한다.
니체는 궁극적인 계(界)를 넘어서려 했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니체가 넘어서려 했던 그 마지막 장벽, 그 장벽을 넘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나는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
미치거나 빛나거나
니체는 결국 빛나지 못하고 미쳐서 광기에 휩싸여 발작으로 죽었으나 궁극적인 앎을 향한 그의 처절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이유로 나는 진인이라는 표현대신 초인이라는 표현을 가끔 사용한다.
고고싱 17-03-12 21:42
 
블교 = 견성 - 성을 본다
도교 = 솔성 - 성을 따른다
유교 = 명성 - 성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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