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혁명를 쿠데타로 모는 이들이 하는 말이 국민의 손으로 뽑은 정부를 뒤엎었으니
쿠데타다. 라는 논리더군요,
그럼 한번 따져 봅시다.
그 당시 대통령 후보로 자유당 후보로 이승만이 민주당 후보로 조병옥이 나왔다. 그런데
조병옥 후보는 신병 치료차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사망하게 된다.
따라서 민주당에선 갑자기 대통령 후보가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단독 후보로
당당히 당선되었다. 문제는 부통령이었다. 그 당시 이승만 박사가 85세였고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대통령이 사고가 나면 부통령이 그 자리를 대신 한다. 즉 능력 부족의 이기붕이 부통령으로
반드시 당선시켜야 한다는 자유당 내의 기득권층이 문제였던 것이다.
이름 하여 3,15 부정선거 온갖 부정 선거로 이기붕이 당선되는데 문제는 이런 부정선거를 하지
않아도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단독 출마니 패스하고 그 당시 득표률을 보면 장면이 46%로 나왔다. 물론 부정으로
17,5 %로 바꿨지만, 통일당 김준연 후보가 2,4% 대한여자 국민당이 0.9% 나머지가 이기붕이 표로
보면 된다.
이런 결과로 따져보면 야권표 다 합쳐도 49,9%다 따라서 나머지가 50,1%다. 그중에 무효표를
3%로 잡더래도 47%로 당선 가능하다는 말이다. 물론 역사에 가설이란 없지만 이런 결론이 나온다.
물론 불의을 보고 침묵하는 거는 죽은 사회다. 따라서 4,19 의거는 일어날 만했다. 물론 이승만
박사도 부정선거를 인정하고 공정하게 다시 재선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폭도들은 아예 국민이
뽑은 이승만 박사를 같이 매장시킨다. 따라서 불손한 세력이 불손한 목적으로 일으킨 폭도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이기붕까지만 들어냈어면 그런데 이기붕의 큰아들 이강석이란 친구는 이승만의 양아들이다.
이 친구가 그 당시 군인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 자기 아버지랑 어머니 동생을 죽이고 자기도 xx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끝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무조건 이 박사도 하야해야 된다고 땡깡 부려서 몰아낸 게 과연 정통성 있는 정부인지 묻고
싶다. 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니까, (이 박사가 이화장으로 갈 때에도 많은 국민들은 이 박사을 존경
했다고 함)
그다음 문제로 다시 대통령 선거로 윤보선이 당선되었고 윤보선은 같은 구파의 김도언을 지명했지만
장면의 신파 쪽의 반대로 무산되고 장면이 부통령으로 앉게 된다. 이러니 윤보선과 장면은 한마디로
물과 기름이다. 도저히 같이할 수가 없는 즉 견원지간이랄까 사사건건 부딪치고 대립각을 세웠으니
나라 꼴이 잘 돌아가겠는가?
역사학자들은 5,16이 일어났을 때 올게. 왔다. 라는 평을 했다고 한다. 즉 그만큼 그 당시 정치가 견판
이였단 말이다. 그럼에도 요즘 좌파 성향의 정치평론가들은 마치 그 당시 정치는 아주 깨끗한 정통성
있는 정치였다고 우기는데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오죽하면 윤보선도 군부가 움직이는 걸 알고 있음에도 침묵했다고 전해지겠는가? 각설하고 박통이
싹 다 정리하고 정정당당하게 윤보선과 표 대결해서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물론 윤보선은 근소한
차이로 져서 내가 정신적 대통령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요점 정리하면
1, 국민이 뽑은 이승만 박사를 몰아낸 건 잘못 되었다는 점 이기붕 일가가 xx로 생을
마감했음에도
2, 5,16이 일어난 건 민주당 내각 정부가 당파 싸움으로 이미 민심을 일어다는 점
3, 박통의 정치 철학과 그가 이룬 업적은 5,16 같은 혁명이든 쿠데타든 100번 아니
천 번 만 번을 일으켜도 지지할 수 있다는 점 물론 7시 지역 선동질의 갑 지역 인간들은
인정 안 하겠지만,
4, 따라서 4,19는 폭동이고 5,16은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