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직 간부와 탈북자의 말을 종합하면 1998년(김대중 정권시작)은 남과 북에서 ‘북한 공작’을 둘러싼 대형 사태가 벌어진 분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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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강제퇴직자 모임인 ‘국정원을 사랑하는 모임(국사모)’의 송영인 대표는 당시 상황을 “4월 1일은 국정원 581명 직원들이 당한 날”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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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70%가 쫓겨났다’ ‘북한국(북한 담당 부서)이 통째로 없어졌다’는 말들이 난무했다. 이즈음 파견 근무를 마치고 검찰로 복귀한 권영세 국회 정보위원장(한나라당)은 “당시 살생부가 돌았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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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몰살사건 발생(탈북자 김유송씨의 증언)
이처럼 안기부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98년 10월, 북한에서도 일이 벌어졌다. 2001년 탈북했던 김유송(53)씨의 말이다. 당시 상좌로 총참모부 산하 함경도 무역회사 책임자였던 그는 이때 많은 장성들이 보위부로 끌려가는 것을 봤다. 친했던 교도훈련 지도총국장 임태영 상장(우리의 중장), 총참모부 2전투 훈련국장 우명훈 중장, 64저격여단 이상일 소장 등이 다 잡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안피득 총참모부 부참모장(후에 그도 체포됐다)과 안산관에서 만났다. 군사건설 국장 출신 안 부참모장은 97년 금강산 공사를 완공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장성이었다. 안 부참모장은 “자고 나면 옆집 장성이 없어져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인민무력부 장성들 사택에서 살고 있었지만 왜 그런지는 몰랐다.
북 장교들이 끌려간 주 원인-김대중 정권이 북측에..우리편 북한장교 명단을 넘겨줘
김씨는 보위사령부 함북 책임지도원 김선우 상장, 김상욱 고려호텔 책임지도원 등 여러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다. 모두 “남한 정권이 북한 사람을 고용했던 자료를 북조선에 넘겨줘서 잡은 것”이라고 했다. 김씨도 99년 9월 13일 ‘정부 전복 음모’로 체포돼 9일간 감옥 쇠창살에 매달려 고문을 받았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지만 15년 형을 받았다가 ‘힘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6개월 만에 나왔고 이어 탈북했다. 사업차 충남 홍성에 있는 그를 23일 찾아갔다.
-당시 사태의 원인은 날조 아닌가.
“아니다. 그들이 박정희 대통령 때 ‘김일성에게 충성해서 인민군의 최고 자리까지 올라가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분명히 들었다.”
(보충설명 : 박통당시 김신조사건때..잡힌 북한군, 그들을 우리편으로 전향(그 때 대장? 한놈 목을 잘라서, 전향할래? 죽을래? 했던것)시켜서 북에 보낸 북한군)
-사람 수를 어떻게 알았나.
“감옥에서 들었다. 남에서 전향시켜 북으로 보낸 사람, 북에서 직접 포섭한 사람이 50명 정도고 나머지는 그들에게 협력한 사람일 것이다. 모두 장군 100여 명, 당 간부 150명 이상이 체포되고 일부는 사형됐다.”
이 두 사태의 관계를 단정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권영세 국회 정보위원장이 이 두 사건의 관련성은 알 수 없으나 이와 관계없이 과거 남쪽에서 북한 내 첩보망을 일부러 공개시켰었다고 국정원 일각에서 주장한다고 말한 점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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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 정상회담을 두 달 앞둔 2000년 4월, 군 정보기관의 실무 고위자 유모씨에게 국정원 기조실 데스크의 전화가 왔다. “대북 공작을 완화하고 템포를 늦추라”는 것이었다.
헙~
..
썩을 잡것들..
정말 김슨상님 정권 그시기때
국정원직원 581명.
기무사 600명.
공안경찰 2500명.
공안검사 40명 잘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