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 이충재 기자]"많이 얘기되는 '친노'의 한계일 수도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선거 패배의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친노(친노무현)'의 짐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그가 이고 다녔고, 선거가 끝나자 스스로 내려놔야할 상황이라고 인정한 것.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목도리와 점퍼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여의도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안팎에선 "(노란색) 점퍼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친노'의 색을 지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날 캠프 해단식에 참석한 선대위 핵심 관계자들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함께했던 '노란색'을 벗었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검은색 정장을 했고,
김부겸 공동선대본부장은 남색 양복에 파란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이인영 선대본부장과
이목희, 이용섭, 김현미 의원 등 다른 관계자들 역시 노란색을 피하긴 마찬가지였다.
문 후보는 남색 양복에 자주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그는 "우리가 우리 진영의 논리에 갇혀서 중간층들의 지지를 더 받아내고 확장해 나가는데 부족함이 있었을 수 도 있다"며 "이런 부분들을 제대로 성찰해내고, 해결해 나간다면 이번 선거의 패배야 말로 오히려 새로운 희망의 출발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청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봉사자는 해단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우리가 김대중-노무현이란 술에만 너무 취해있지는 않았나. 국민들이 '너희 이번에 술을 끊고 맑은 정신으로 국민만 생각하라'고 한 것 같다. 국민들이 우리에게 술잔을 다시 따라줄 때까지 술을 끊었으면 한다."
|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지난 13일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 문화거리에서 열린 세 번째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의 공동 유세에서 함께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
'친노' 2선후퇴 가속화…당분간은 비대위체제 가능성 높아일단 민주당 내에선 친노의 후퇴와 그동안 숨죽인 비주류의 정치 전면포진이 빠르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선거를 주도한 친노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어 "또 한번 친노중심으로 가긴 어렵다"는 게 당내 인사들의 주된 목소리다.
아울러 민주당지도부가 공백상태인 만큼, 조만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과정에서
이해찬 전 대표 등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남아있지 않아 선거 패배의 그림자를 지우고 '새로운 판짜기'에는 유리한 환경이라는 분석이 있다.
현재 당 지도부 유일한 생존자였던
박지원 원내대표가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고, 이용섭 정책위의장까지 물러나면서 내년 초까지는 지도부 진공상태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21일엔 의원총회를 열고 대선 패배 후 정국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는 등 본격적인 수습책 마련작업에 돌입했다. 곳곳에서 쇄신 요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화살은 '친노'를 향했다. 향후 '친노vs비노'간 내홍은 더욱 격화될 조짐이다.
당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시작되면서 내년 초 새지도부를 선출할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향후 5년에 대한 첫걸음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당권을 잡은 진영이 '
박근혜 정부'에서 대여투쟁 등을 이끌며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느냐에 따라 진보진영의 운명도 갈릴 수밖에 없다.
철수야 놀자~ 본격적인 구애는 대선 후부터민주당의 시선은 안철수 전 후보를 향했다. 그에 대한 구애는 대선 전보다 후에 더 격상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만큼 안 전 후보의 향후 행보에 따라 진보진영의 정치지형이 뒤흔들릴 수 있다.
우선 민주당에선 안 전 후보가 '신당'(新黨)을 꾸린다고 보고, 안철수신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주요과제로 부상했다. 안 전 후보가 진보진영의 파트너로 자중지란 상태로 쓰러진 민주당의 손을 잡아 줄지 여부가 관건이다.
안 전 후보는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 그룹의 계파주의를 비판하면서 구(舊)정치로 규정했고, 민주당의 쇄신을 거듭 요구해왔다. 일각에서는 비노그룹 일부가 '안철수 신당'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선패배 후폭풍 속에 일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한 만큼, 안 전 후보의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진보진영 내에선 커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안 전 후보측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하면, 민주당과 직접적으로 손을 잡긴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진보진영 정치판의 중심이 안 전 후보쪽으로 맞춰지는 가운데, 민주당에선 '메신저'로
손학규 상임고문이 주목받고 있다. 앞서 손 고문은 지난달 26일 안 전 후보와 단둘이 만나 후보사퇴 등에 대한 위로와 함께 문 후보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문 후보는 캠프 인사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 등 낙선인사 행보를 이어갔다. 21일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주축인 시민캠프 해단식에서 "민주당 힘만 갖고는 새 정치도 정권교체도 어렵다는 걸 이번 선거에서 느꼈다"며 "민주당을 보다 더 큰 국민정당으로 만드는 일에 저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이희호 여사와 만나 "김 전 대통령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고 했고, 이에 이 여사는 "우리도 몇 번을 떨어졌다"고 위로했다.
- Copyrights ⓒ (주)이비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