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역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여,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한국이 단 시간에
이렇게 빠른 경제 발전을 했는지?!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을 크게 2가지로 나눠어서 설명했습니다.
첫번째는, 소득주도성장(국가주도성장)이며, 두번째는 북한정책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은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니 생략하겠습니다.)
북한은 기회에 땅입니다. 한국-북한-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레일을 만들어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잇으며, 한국의 기술력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중국과 배트남보다 저렴)과
풍부한 자원이 합쳐졌을 때, 시너지 효과는 아주 클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회사들은 북한의 제멋대로 행동으로 인하여 북한에 투자를 하는 것에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이 정책이 실현가능할까? 라는 질문으로 영상을 마무리 합니다.
<댓글>
fatcatbuzz
나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에 살았었어. 한국을 정말 사랑해.
나는 현재 중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야. (난 미국인이야)
Duncan Moore
미국 경제 침체기때 인것처럼 들리넴.
Kristoffer Valen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야.
Satrio Rama
이 영상을 보기 전에, 나는 저 남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드려!'라고 말할 줄 알았어.!
tiger
북한은 로또같은 곳이야. 모든 것을 얻거나 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꺼야.
ㄴGeogWoofy
심술궂은 한국은 지옥에나 가고. 달콤한 한국은 이리로와! 우리가 쿠키를 가지고 있단다.
ㄴㄴtiger
@GeogWoofy 한 입만 줘.
Astoria
만약 한국인들의 그들의 경제를 살리고,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하고 싶다면 한국은 좀 더 많은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받아드릴 필요가 있어.
Forest Frost
아하. 정부가 오래전부터 회사에 제공하는 엄청난 특권들. 이건 일본이나 브라질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두 국가 모두 지옥으로 가는 중이야.
Кирилл Трифонов
옛날에는 북한이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고 했어!
Gipsy Danger
요르단의 불리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중동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게 된 이유에 대해서 비디오를 만들어 줄 수 있어?
Bufoferrata
일본인들도 1960년대 이거랑 비슷한 정책을 펼쳤어. 그들은 그 정책을 "Income Doubling Plan"이라 불렀어. 일본 경제는 확실히 살아났어. 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은 상황이 꽤 달라. 그 당시에는 국제적인 경쟁이 지금보다 덜했고, 미국이 일본의 국방비 대부분을 충당해줬어. 또한, 일본은 다른 나라의 경제를 통합시키고, 출산율을 떨어지고 있는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 어떻게 흘러갈지는 시간이 말해줄꺼야. 이 정책이 한국에서 제대로 실현되기를 기도할게!
Anton Knaus
옙, 높은 세금은 항상 경제 부양책이 되곤하지.
Gheorghiță Al Sunculiței
아주 인상적인 정책이네 :))
Punith Bulchandani
인도 있는 현대차 판매하는 업체는 모두 한국 회사들이야.
Orion6699
일때문에 몇 년전에 2년간 한국에서 살았었어. 한강을 따라서 달리고 했는데, 경관이 정말 아름다웠어. 몇몇 장소들이 떠오르넴.
Wulv Runninghappi
걱정하지마. 동아시아는 이 어리석음을 곧 끝낼꺼야.
Andy
재벌과 한국정부간의 관계는 유럽의 큰 회사들과 기업금융부서 그리고 EU의 관계와 같아. 정치인들이 시장 점유율을 보호하도록 법률을 제정할 수 있어.
Dragon's Armory
북한과 러시아, 중국사이에서 한국의 계획대로 되기를 희망해. 나는 냉소적인 사람이지만 북한과 한국이 믿음을 바탕으로 더 나은 관계로 발전했으면해. 두 나라 모두의 번영은 세계에 더 좋거든!
WeiWen WWE
누구를 탓해? 일본도 이렇게 해왔어. 그리고 일본을 봐, 그들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조차 거부하고 잇어.
J Brown
북한은 엄청나게 많은 근로자를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에 제공할 수 있어!
ㄴPastor Hass
맞아, 하지만 US는 이걸 공격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중이야.
ㄴKyle Finnegan
Pastor Hass 맞아. 하지만 미국은 그들이 통일되는걸 반대할 이유가 없어.
höpö nasu
매우 인상적인 계획이야. 그리고 그 계획의 논리는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상대는 북한과 러시아얌.. 실패할 가능성이 큰 거 같아..
Adam lee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은 한국이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니..?
moshe gelt
높은 세율, 높은 최저인금, 더 많은 법규로 이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음 매우 놀랍네:
nathanpiazza
문장이 끝난후에 5초간 쉬었다가 다른 문장을 말하기 시작한다면 너의 영상을 좀 더 보기 쉬울꺼같아.
iMMORTAL l
나한테 있어서 한국은 엄청나게 좋은 나라이며, 과소평가받고 있는 나라야. 이 영상을 보고 아무 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어.
kevinxiao0
탁상정책인거같아. 책상 위에서는 이루어지지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북한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나라야. 그냥 나라 자체가 독재국가인데 어떻게 의미있는 사업은 할 수 있겠어! 북한은 확실히 미개발시장이야. 하지만 세계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통제되어지고 있어! 만약 북한사람들이 탐욕스러운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몰라!
kafooti
가스 요금은 여기도 엄청 비싸. 한통 꽉 채우는데 100달러 이상 들어!
Luxus Häuser
태극기는 정말 특별한 디자인이야. 매우 멋져
Frothy Walrus
높은 세율은 답이 될 수 없어.....
Kyle Finnegan
좌파정책은 항상 실패해. 놀랍지도 않아.
sticler21
너의 정보는 어디에서 온거야? 너가 우리에게 보여준 정보의 출처 좀 알려줘.
gamecube-king/ devon3
만약 문재인 대통령의 아이디어가 실패한다고 해도, 최소한 그는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시도했고, 평범한 가정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어....
wowersdh1
그들은 부동상가격과 빈부격차를 제어해야만해! 미국과 동맹도 유지해야만하고!
matt prior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설명되어질 수 있어. 하지만 이 세 개의 국가 모두 사회와 경제에서 그들의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어. 그리고 심지어 중국은 100% 발전된 나라도 아니야! 아직은!
Aakash Subedi
단순히 직업의 부족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좋고, 안전한 직업의 부족이야. 나는 한국에서 미숙련 이주 노동자야. 그리고 우리 같은 노동자는 매년 들어나고있어. 우리는 정말 작은 인금(시간당)을 받아.
Edward Crosby
곧 실행될거야! 언젠가는 저 정책이 성취될거라고 믿고잇어!
Anton Lupica Bauso
여기 독일에서도 대기업과 작은기업의 연봉차이는 한국가 같아(한국처럼 커). 폭스바겐과 공급사들을 한 번 봐봐 ;)
Jonathan Williams
정부의 호의와 특권.!
이거 너네 나라의 문제야!
Yeet Yeet
남한은 외국인 원조에 의존하고 있으며, 부패하고 불안한 나라야, 요즘의 한국같이 들리는데?
Tradeon
'미국을 막는 방법'의 영상도 만들어주겠니?
Forest Frost
해결책은 항상 "공산주의"야 그리고 그들은 독재자가 되버리지. 왜 항상 이래?
hss82926
한국에 대해서 알게해준 좋은 영상이었어!
tochjo772
하하 핳하 나는 한국이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아.
ㄴeosster 1
너 약간 정신 이상자 같아! lol
Suraj Kumar
한국은 인도의 정말 좋은 친구야. 한국은 인도 시장에 정말 많은 투자를 하고 잇어!
DearSX
한국의 경제 성장은 꽤 어려운 도전처럼 보여.
Dane L
꼭 실행되어야만 할 꽤 야심찬 계획같아.
1one1won
이건 실행되지 않을꺼야! 사회주의처럼 들려!
maleman julpax
북한은 배트남을 모델로 삼아 그들을 카피해야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fix mix
만약 한국이 경제가 안좋아진다면, 그건 나의 나라 관광산업에 영향을 미칠거야!
Gabriel Castro
내 생각에 저 정책은 한국을 완전히 파괴해버릴거야.
Groud Frank
한국은 EU에 가입해야만해!
Timothy Loyd
북한에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거야.
Iricanado trend
한국의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봤었어야만해!
YaadmanJ 99
한국에 통일되는 그 날을 언능 보고 싶다.
alan jenkins
사회주의는 절대로 가능성이 없어.
harley woolford
응 아니야. 실현불가능이야.
ebob1967
나의 대답은 '노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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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극적으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것에 대해 아무나 할수 없다고 저사람이든 세계 여러 경제학자든 칭찬하는거지.. 오랜 세월주고 발전한 나라?? 많겠죠.
가생이분들 그리 무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라고 우기는것도 아니고.
뭘 반박하실라는것인지.
저 사람이 말하고자하는게 "워낙 극적으로 해낸것"에 대해 지금 말하는거에요.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당연히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고, 그럼 개인의 능력을 끌어내기위해 노력하니까 경제도 자연히 발전하는것이지요.
그런데, 극빈곤 나라가 반세기만에 이정도깢지 올라온게 쉬운거예요??
"아몰랑 하여는 뭔가 해난 국가가 많음..빽~~" ???? 이라고 동문서답식으로 반박하시는지..원..
몇백년전 얘기를하는것이 아닙니다. 근대역사에서 한국처럼 해방후 왕정으로복귀하지않고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국가는 오로지 한국뿐입니다. 다른해방국가들은 모두 왕조로 복귀하거나 사회주의를택했습니다. 한국의 성과가 특별한것은 단순히 최빈국에서 선진국이된것뿐만이 아닙니다. 사상의진화 즉,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던사람들을 이끌고 왕족들이 생존해있었음에도 자유민주주의를 택했다는것자체가 전례없는 성과입니다. 이선택으로인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있었던것이니까요. 그 선택의 첫번쨰의 성공요인이고 두번째는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의 등장이죠. 우리나라가 워낙정치적이념화가 심해서 박정희에대한 평가는 극과극이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의성공을 설명할떄 빠질수없는 인물인것은 누구나 인정할겁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칼 일본 빼고 우리나라보다 2배이상의 소득을 얻고 있던 나라가 없어요 아프리카, 인도,중국, 동남아시아 , 러시아 이런나라들은 조선보다 못했고 북미권 나라 남미권나라가 우리보다 조금 더 잘살았던 거죠 15세기부터 19세기 의 평균키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잘먹었다는게 보이죠 아시아권에서 가장큰 키 를 가졌다 라는건 영양상태가 좋았다는 반증입니다
동남아등이 지금이야 비료 농법의 발달로 2,3모작 가능했지 당시는 제대로 농업하기도 쉽지 않는 토양에 동북아보다 농법부터 인구력이 안좋았던 시절.(이런 후진적 농법은 쨉도 에도시대까지 다르지 않았고)
그리고 기본 만주와 한반도가 세계 콩의 원산지에다 만주 북방일대도 부여등 조, 수수등 이른 시기부터 경작. 더 온난한 한반도 역시 이른 시기부터 농경문화를 이룩면서 고려 조선으로 오면서 여러 농업 기술도 더욱 발전하면서 경지면적과 수확량도 지속적 증대.(구한말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의 대식문화에 놀란건 새삼스런 이야기도 아닌 일화)
19세기에 쓰인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나라에서 매일 잡는 소가 500마리, 개인이 잡는 소가 500마리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쇠고기 값이 비쌌느냐. 공급량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18세기 헐값일 때는 소 한 마리에 10냥이었는데 당시 쌀 한 섬(두 가마니) 가격이 5~8냥이었으니 쌀 한두 섬이면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경작지 급증은 장정 10명 이상의 몫을 하는 농우(農牛)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렸다. 김 박사는 여러 통계자료를 토대로 조선시대 초 전국적으로 키우던 소의 수가 3만 마리 안팎이었다 20세기 초 110만 마리까지 36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했다(그래프 참조). 또 조선소가 동북아 최대 소로 덩치가 커진 것도 농사에 투입될 우력(牛力)을 키우고자 세조 때 일본 오키나와에서 들여온 덩치 크고 힘 좋은 물소와 교배해 종자개량을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03년 대한제국을 방문한 러시아 학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가 “한국소는 물소와 여러 차례 교배된 특징이 확실히 나타난다. 한국소의 큰 키와 강인함, 큰 활동성은 바로 거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소를 집중 사육한 것은 산업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려는 불교국가라 육식 자체를 기피했다. 그러다 유교국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그 맛에 눈 뜨게 된 것도 소 사육 급증의 이유가 됐다. 실제 고려시대까지 교통과 군사 목적으로 소보다 더 많이 키운 말이 조선시대 내내 3만~10만 마리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조선시대 농사지을 농우를 확보하고자 소를 잡아먹지 못하게 한 우금령(牛禁令)이 실시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사나 잔치를 위해 소를 잡는 것은 허용됐다. 조선시대 초까지만 해도 제수용 고기로 사슴고기를 썼으나 16세기 무렵 사슴이 멸종되다시피 하면서 왕실제사에서도 쇠고기를 사용하게 됐다. 또 16세기 중반부터는 쇠고기 식용이 성행해 우역(牛疫·소의 전염병)이 돌 때를 제외하면 우금령은 사실상 사문화될 때가 더 많았다는 설명이다.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자존심마저 겸연쩍게 만든다. 조선 사회에서 문맹자들은 심한 천대를 받기 때문에 글을 배우려는 애착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도 조선에서와 같이 문맹자들을 가혹하게 멸시한다면, 경멸을 받게 될 사람이 허다할 것이다.
-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 1917년 1,021달러
- 1939년 1,459달러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 조선의 교육복지
┃세종치세(재위 1418~50) 이후 18세기까지 지방향교, 사학(四學), 성균관 등 모든 유생들에게 무상교육, 무상숙식, 학비지급, 학전(學田)지급, 면세 및 요역면제.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는 「논어」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원칙에 따른 것.
아래 이미 올렸지만 동서양이고 왕정시대에 귀족도 아니고 일반 백성을 위해 문자를 고안한 나라가 있는지?? 그기에 이미 출산휴가니등을 지원해주던 나라에 경국대전이라는 법치를 바탕으로 저런 정치 문화 사회상의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당대 선진국이 아니면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미 학자들 사이에서도 근세 조선을 준근대국가니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님).
조선시대의 상속제도 보면 우리가 아는 남존여비 어쩌고 선입견과는 달리 경국대전의 법치에 따라 이미 출가 여성도 상속을 받는데다 남녀차별없는 기본 균분제였음. (우리가 선입견으로 남존여비 어쩌고 알던건 임진왜란 이후 남자쪽 성별이 급감하던 남자가 귀하던 시대상에 제사등 전통적 조상숭배와 예학을 중시하던 문화였기에 제사비용의 현실적 경제 부분을 고려 장자에 좀 더 경제적 지원이 증대되는 형태로 변화)
쨉강점시기 쨉의 대대적 토지조사와 수탈
그기에 그나마 있던 거의 모든 대한제국의 민족 산업을 고사시키고 잽이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시기의 1인당 지디피니 성장 어쩌고가 애초에 한국인들에게 얼마의 의미가 있었을까???
(쨉이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천문학적 조세수탈과 산림 지하자원, 막대한 식량 수탈, 수백만명의 악랄한 강제징용,총알받이, 성노예, 생체실험, 학살등 한국인들은 이루말할 수 없는 격렬한 미개하고 야만적 폭력의 시대에 직면)
한국 근대화, 일제시대 아닌 해방이 기폭제였다
1910~2005년 사이 실질임금, 농업인구와 제조업 취업자수, 도시화율 등의 통계를 함께 견줘 보면, 남한에서 루이스 전환점은 1960년대 중엽께 나타났다. 1차산업 비중의 감소를 경제발전 척도로 본 클라크의 산업구조, 중공업 비중으로 경제성장을 분석한 호프만의 공업구조, 엥겔계수 등의 지표들 역시 1960년대 앞뒤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60년대 앞뒤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허 교수는 “해방과 함께 ‘식민지적 경제구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식민지적 경제구조란 소수의 일본인이 생산수단인 경지, 인적·물적 자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조선인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점차 배제되어 소작농이나 임금노동자로 전환됐고, 민족·학력 차별로 인한 식민지적 고용구조 탓에 임금노동자 가운데에서도 최저변을 형성하는데 그쳤다.>>
해방은 이런 구조를 뒤바꾼 획기적인 일이었다. 해방과 더불어 교육은 양적으로 폭발적으로 팽창했고, 농지개혁은 일제강점기 자본주의적 외형 아래에서 오히려 확대 강화된 전근대적 소작제도를 일소해 농업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런 획기적 변화는 그 뒤 공업혁명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뤄진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으며, “조선이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이루게 된 것이 모든 변화의 전제조건”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근대 이전에 중세시대에 평민들이 잘먹고 잘살던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사회구조상 그런걸 냅두질 않아요.. 어떻게든 착취하는 구조임..
오히려 유교꼰대였던 조선왕조가 그나마 작은정부를 지향해서 세금이 중꿔,왜에 비하면 적었음.
그래봤자 인당 gdp따지면 아무 의미없는 수치고.
국가경제 자체가 더 발전할수는 있죠,. 이부분이 조선이 아쉬운 부분.
다만 국가의 부가 늘어나면 그게 개인 생활수준이 향상으로 가는게 아니라 인구수가 늘어나는 쪽으로 무조건 갔어요. 그게 동서양 막론하고 농경사회의 현실임.
라인강의 기적이란말 많이 해요.
근데 독일이 전쟁에 패망한건 맞지만 국토전체가 잿더미가 된건 아니였죠.
멀쩡한 공장이나 건물들이 꽤 많이 남아있었고, 많은 기술자들 역시 살아남아있었죠.
근데, 한국은?? 도시의 주요건물은 물론, 산속에 있는 유적지까지 폭격으로 다 박살났었죠.
그리고 기술자는??ㅋㅋㅋ 조선시대에 기술자들을 천대시 하는바람에 ㅋㅋㅋ 기술자 없죠??
그리고 한국전쟁당시 이름모를 많은 젊은 기술자들이 전쟁터의 이슬로 산화했었죠.
전쟁 후 학교를 건설했지만, 학생을 가르칠 선생이 없었고 교재가 없었죠.
기타등등 말로하자면 하염없이 많지만,
이런 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당당하게 들고있으니, 다른나라들이 신기하게 보는것이며,
우리또한 자뻑이니 국뽕이니, 하면서 깍아내리지만 말고, 자만하지 않는 선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안먹고 안입고 열씸히 일했지... 독제 정권에서 국민을 속여 극소수만 부자됨... 사실상 일반 국민들이 더 부자 축적되야하는 상황인데. 노동결과를보면
그폐해가 말두못하게 심각해져있는... 상식이 안통하는것들이 보수를 자칭하고 있는 실상... 과오의 역사를 바로잡지못하니 더 발전이 더딘상태..아무튼 급성장은 하였다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요소가 굉장히 많아진...
여기서 경제발전을 박정희가 이룩했다는 개쇼리가 있는데..그건 진짜 역사를 모르는 무지랭이들...
당시에 어느무능한자가 대통령을해도 발전할수밗에없는 시절이었음... 여러상황도 있겠지만
댓글중에
만약 한국인들의 그들의 경제를 살리고,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하고 싶다면 한국은 좀 더 많은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받아드릴 필요가 있어.
아프리카 이민자 ㅋㅋ 아프리카 문제는 국민들이 스스로 바꿔야지요
도망오면 아프리카가 바뀌나요
깨어있는 국민들은 나라를 바꾸지만 / 깨어있지 않은 국민들은 평생 노예다
문화를 풍요롭게 이부분 웃긴거지요
한국에 이민 와봤자 본인들 문화를 퍼트리지 한국문화를 안따르게 되있습니다
피터슨교수가 다문화주의는 전쟁만 있을뿐이라고 말했죠
현재 자국민들끼리 파를 나누워서 티격태격하면서 살고 있는데
이슬람국가도 마찬가지죠 똑같은 종교인데 파를 나누워서 싸우고 있죠
다문화가 되면 얼마나 많은 파들이 늘어날까요 생각하면 끔직하네요
다문화는 나라가 망할때까지 싸울겁니다 하나로 절때 안될겁니다 ㅋㅋㅋ
Astoria
만약 한국인들의 그들의 경제를 살리고,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하고 싶다면 한국은 좀 더 많은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받아드릴 필요가 있어.
...................................................................................
ㅈㄹ하네
kevinxiao0
탁상정책인거같아. 책상 위에서는 이루어지지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북한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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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있는 북한이라는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만 한단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혹은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우린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거의 한계에 다달은 성장을 했고 중진국에서 완전히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기위해서는
여러가지로 북한이 필요함.
위에 누가 로또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적절한 비유.
하지만 로또는 사야 당첨이 되던 손해를 보던지 하는거.
경제발전에 문재인이 뭘했다고 언급되냐? 지금 경제 말아 먹고 있는데... 솔직히 경제발전의 기틀은 호불호를 떠나 박정희의 공이 가장 컸지... 독재자인거 사실이고 갖은 인권침해가 발생했단거 부정할수 없지만 경제발전 공로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때끼니 걱정하는 나라가 민주화 이룬 전례가 전혀 없다.
박정희 찬양은 90년대 경제 정도에서 끝내야죠. 박정희가 전후복구하고 산업화 시작한 것은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국민이 뭐가 떨어져서 장기집권한 박정희 정권 말기에 겨우 1인당 GDP 1,000달러 넘긴 것을 이렇게 빨아대는지 모르겠네요. 아직 후진국을 탈피하지 못한 박정희 시대보다 이후 선진국과 싸워가며 이룩한 성과가 훨씬 큽니다. 인식의 차원이 20년전에 머물러 계시는 듯 합니다. 역사는 시대를 반영해서 재평가되는데 박정희 찬양하시는 분들은 불변이신 듯.
ㅋㅋㅋ 박정희 정권 초기 박정희가 중공업한다고 하자 미국이 반대했죠. 이유가 자본과 기술이 없는 나라에선 힘들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하겠다고 하자 미국이 경제 지원 끊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중단했죠. 그 대신 미국 경제 관료들이 우선 적은 자본과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경공업부터 하라고 하면서 가발 수출을 추천했죠. 이 가발 수출이 박정희 경제발전 언급할 때 맨 처음 나오는 상품이죠. 이후로도 박정희 경제정책에서 헛발질 오지게 하자 미국에서 경제관료 파견까지 하면서 간섭했죠. 그리고 그 시절 나라 망하던 베트남도 고도성장하던 때였죠. 박정희 덕분에 우리만 고도 성장한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호황이어서 다 고도 성장했어요. 오히려 무리한 외자유치로 물가상승이 심해서 실질성장률이 개차반이었죠.ㅋㅋㅋ
님 말대로라면 베트남 뿐만아니고 저기 필리핀 태국같은 한국과 같은 친미국가들은 다 잘살아야되는데요 하물며 얘네들은 전쟁도 안했어요.
만약에 박정희가 저렇게 독재하면서 경제를 조져놨는데 10위권안에 드는 이유는 뭔가요? 전두환대 들어서는 올림픽까지 개최했는데 설마 전두환이 경제발전 시켰다고 주장하는건 아니지요?
대한민국 발전의 주춧돌이 된 포스코, 각종 조선소, 발전소, 경부고속도로같은 인프라 전부 누가깔았어요? 그리고 누가 그걸 반대했죠?
누가 경제발전의 아버지고 누가 경제발전의 걸림돌이었는지 명확한부분인데요.
우리가나미기 카더라 통신좀 작작 퍼뜨리세요.
경부고속도로 포스코 아무도 반대 안했어요.
빅정희가 처음 하려던건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라 경부선 철도였고 이게 구일제시대적 발상이라 고속국도를 지어야 한다고 행정관료층에서 건의가 들어갔고 도로를 짓는다면 서울-인천 혹은 서울-강릉 즉, 서울에서 가까운 항만을 잇는 고속도로를 먼저 만들자는 각론에서 의견차이가 발생한겁니다.
중화학 공업도 당시 여야간 이견없이 건설계획에 동의했으나 외자가 모잘라 계획이 미루어졌고 이걸 결정한건 박정희입니다. 이후 한일협정으로 배상금이 들어와서 지은게 포항제철이고요.
어디 레퍼런스도 없는 일베 조작사진이나 끌고와서 허위사실 주장하지 마시고요 당시 일간지 아카이브 보세요.
위에 글에 적었을텐데요? 전후복구와 산업화 시작은 평가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을 박정희에서 찾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중화학 시작한 것은 맞지만 그게 전부죠. 이후 국민과 기업가, 이후 정부에서 꽃을 피웠지 박정희가 한게 아니죠. 중화학 시작한 나라중에 성공한 국가가 거의 없는데 그걸 박정희시대 시작했다고 성공까지 박정희의 몫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입니다.
역사의 해석은 변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신밖에 없어요. 시대가 변하는데도 해석이 안변한다? 그건 님이 신격화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해석이고 그런 해석은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답니다. 이해가 안가면 인문학 소양이 부족한 것이고 그렇게 사세요. 그리고 20년전을 사셨어요? 전 박정희때 초등학교 다니고 있었어요. 나이가 있어도 젊게 사는 사람도 있고 꼴랑 30대에 수꼴 사고방식을 가질 수도 있죠.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초일류 국가가 됐을거란 생각은 안드냐?
해외여행 자율화가 반세기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면 악착같이 사는 한국인들의 세계 제일의 근면성으로
세계 각국에서 두각을 내며 잘 살거란 생각은 안드냐? 박정희, 이승만 독재자 때문에 한국인의
근면성은 대기업살린다고 억압시켜놓은 덕에 고작 이정도밖에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것을
생각 못하냐? 니들 모지리들은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인간들 없었다면
지금 벌써 우리나라는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최강 미국과 견줄수 있는 나라가 됐을지도 모른다.
서구의 경제사학자들은 산업혁명 이전 각국 1인당 GDP가 비슷하고, 인구와 경제력이 비례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17세기 18세기 일본이 세계 6위 정도의 경제대국이었다고 평가하고
서구강대국, 일본, 중국이 어떻게 경제력 순위가 변해왔는지, 향후 어느 나라가 패권국으로 떠오를지 논의하는 책을 많이 썼습니다.
일본은 "고대부터 일본은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이자 강대국이었다"고 수백년전부터 서구인에게 홍보했습니다.
제조업에서 가장 무서운 경쟁력은 "싼 임금"입니다.
서구 제조업이 아시아 국가에게 밀린 이유는 결코 "기술력, 자본, 우수 인재 부족"에 있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한국직원수는 2007년 이후 늘지 않았고, 지금 한국직원수보다 베트남 직원수가 훨씬 많습니다.
삼성전자는 TV 국내생산 중단했고 스마트폰 생산대수 3억대 중 국내생산은 2천만대뿐입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보기에 한국인노동자의 경쟁력이 베트남노동자보다 낫지 않은 셈입니다.
중국의 TV 생산대수는 2억대, 휴대폰 생산대수는 14억대입니다.
전체 인구 중에서 만 15~64세 인구 비율은 지금 한국이 세계 1위인데
전체 인구 대비 취업자 수 비율은 한국이 중국 일본 베트남보다 낮습니다.
취업자 = 자영업자 + 임금근로자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한국이 미국/북유럽의 4배, 일본/독일의 2배 이상입니다.
즉 한국 자영업자(+무급가족노동자) 700만 중 500만은 임금근로자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인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외국인 이주 정책 + 기업해외이전 상황이 비서구국가 중 1위이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한국 GDP 순위는 1995년, 1996년 이후 더 오르지 않습니다.
만 15~64세 인구가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 20년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이 2배, 중국이 5배 이상 증가한 반면, 한국은 제자리걸음했습니다.
지금 한국의 고령화 정도는 90년대 말 일본과 비슷합니다.
한국의 자국민 고용상황이 90년대 말 일본과 비슷했다면 한국 GDP는 독일을 훨씬 넘었을 텐데
"기업해외이전 + 외국인노동자 수입"이 문제라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이 태반이니 역사상 가장 좋은 도약의 기회를 놓치고, 큰 위기의 길로 가는 중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부 댓글들이 있네요 ㅋㅋ 조선이 고려보다 중앙집권적이고 다소 안정적인 행정체제를 가지고 있던 건 사실이죠. 고려는 초기에 지방 토호 세력들, 중기에 신진사대부들 그리고 중후기에 무신정권 등 왕권에 도전하던 세력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광종대의 피의 숙청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조선은 그런 고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행정력을 강화 시키고 중앙집권적 권력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 발전이 폄하 되어선 안 됩니다만.... 보통 행정력으로 근거로 중세와 근세를 나누고 유럽도 그와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가 뭐 쉴드칠만 하다고요?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요........ 농업생산량 운운하시는데, 실제 농업 생산량 하이는 세종대왕 때였고, 그 이후에는 세종대왕 시절을 넘은 적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즉 조선의 발전은 세종대왕 때 이후로 거의 멈췄다는 겁니다. 아니 조직화된 농업 가지고 조선 후기에 남미나 멕시코에서 행해진 플렌테이션 농업의 생산량을 이길 수 있다고요? 꿈들 꾸세요?
영국의 산업혁명만큼이나 생산성이 폭발할 수 있다고요?
조선이 개쳐망한 이유는 세조 이후로 생긴 붕당, 후기의 세도정치와 보수화된 성리학 유교이념, 농본주의, 상업 멸시에 따른 겁니다. 정치는 썩었고 지배계급의 이념은 수구파인데다 상업을 기피하던(화폐개혁이 있었다 뭐다 하는데..) 나라가 안 망하길 바랍니까?
아니 틀렸으면 틀린 건 인정하고 거기서 시작하는 게 영양가 있는 겁니다. 무슨 조선이 자생적 자본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말들을 하시는지.....
조선 후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유럽산 자명시계가 있었는데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뜯어보라 시키고 다시 조립을 했는데 돌아가지 않았답니다. 어떤 짓을 해도.... 조선 중기 후기부터 유럽의 기계적 합리적 감각을 아예 이해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총기를 새로 들여와서 복사하려해도 플린트락식의 스프링을 구현하지 못해서 그걸 폐기처분하던 일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문명 자체가 레벨이 다른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지나치게 자학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럽은 땅 덩어리가 붙어 있고 고로 무역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으며, 중세 시절 숫한 전쟁으로 인해 무기의 발전도 가속화 되었습니다. 그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조선은 바다로 막혀있고 무역도 제한적이었으며 농본주의 사회였고 유럽에 비하면 비교적 전쟁이 적었죠. 많다고들 하시는데.... 유럽은 100년, 30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갑니다;;
즉 조선 자체로 보면 안정적인 체제였을 수 있죠. 그게 자신들에게 맞고. 그러나 세계 열강이 뻗어나가는 시절에서 조선 후기의 암담한 상황, 그로인해서 서구와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거기서 교훈을 얻을 생각을 안 하고 정신승리를 하고들 계세요?
중국에서 들여온 유럽산 자명시계가 있었는데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뜯어보라 시키고 다시 조립을 했는데 돌아가지 않았답니다.>??
조선시대의 과학기술 - 혼천시계
1669년(현종 10)에 천문학 교수인 송이영이 만든 천문시계로, 세종 때부터 전통적인 물을 동력으로 하는 시계장치에 서양의 기계식 추를 통한 자명종의 원리를 응용하여 만든 새롭고 독특한 동·서양의 시계장치가 조화된 귀중한 유물이다. 원래 홍문관에서 시간의 측정과 천문학의 교습용으로 쓰이던 것으로 관측을 주목적으로 하는 중국식의 천문시계와 달리 실내에 두고 정확한 시각을 측정하고 천체의 운동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만든 희귀한 과학 문화재이다. 조선시대에 만든 천문시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화재로 세계 시계제작 사상 훌륭한 기술적 산물이다. 국보 제230호이다.서양식 자명종 원리를 이용한 추동식(錘動式) 시계장치가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상 특필한만한 귀중한 자료이고 세계시계제작사상 훌륭한 기술적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일찍이 니덤(Needham. J.)은 이 천문시계를 높이 평가하여 "세계의 유명한 과학박물관에는 그 모조품을 반드시 전시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송이영(1669)이 만든 시계 장치는 1657년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호이헨스(Christiaan Huygens)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태엽장치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했지만, 태엽장치 대신 추의 상하 운동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해 시계 바늘을 움직이도록 하여 타종하도록 고안되었다.
고종실록 1권, 1년(1864) 2월 3일자
“중국 배가 와서 시끄럽게 하고, 홍삼을 몰래 사가는 것을 단속하되, 아울러 이러한 내용을 개성 유수(開城留守)와 평안도·함경도) 두 도의 관찰사에게 경계하라고 명하였다.”라고 한다.
1828년 북경에 다녀온 박사호의 기행문인 '심전고(心田稿)'
"연경에 가지고 가는 것이 금지된 물건은 금, 인삼, 담비가죽인데 홍삼은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했다. 연경 사람들이 그 값의 10배를 주고 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몰래 거래하므로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뒤 공사 푸트가 조선에 부임하자 고종이 1883년 미국에 파견한 일종의 답례사절로 서양에 최초로 파견한 외교 사절단.
뉴욕에서 아서 대통령을 접견하여 고종 황제의 국서와 신임장을 전달하였다. 보빙사 사절단으로 민영식을 수행한 홍영식은 미국에서 우편 제도를 도입하여 우정국을 설립하였다. 유길준은 일행과 떨어져 미국에 유학한 뒤 유럽을 거쳐 귀국하여 이때의 경험을 <서유견문>에 남겼다. 이들은 또한 농기계 도입과 농업기술 연구에도 기여하였다.
중국도 보세요. 청나라 시절... 땅 덩어리 커도 유럽 일개 무역 회사한테 전쟁에서 개박살 나고 아편이란 마약을 강제 수입하게 되는 굴욕을 겪습니다. 당시 청나라 배가 영국 함선에 생체기도 못 냈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입니까? 그냥 그 당시 유럽과 동아시아 문명이 레벨이 달랐다는 말과 같습니다.
결국 청나라는 북경까지 내주고 홍콩과 구룡반도를 영국에게 내주는 굴욕적인 협상을 하게 됩니다. 아니 강희제같은 희대의 명군이 있었던 청나라도 그 모양인데, 그나마 서역루트로 서구의 문명은 조금씩 접했던 나라도 형편없이 박살났는데 조선이 그걸 감당 한다고요?ㅋㅋㅋ
자생적 자본주의 ㅋㅋㅋ 무역 없이 무슨 자본주의를 한답디까? 생산력이 폭발 하려면 필연적으로 무역과 그를 통한 직업군의 다양화 그로인한 시민계급의 탄생 그로인한 신분제도 타파라는 근대적 현상이 생겨야 합니다. 한 마디로 너무나 당연하게도 조선이란 유교 성리학적 신분제도하에선 자본주의가 태동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과 대한민국은 민족적 시간적 관점 말고는 완전히 다른 나라고, 대한민국이 조선을 이은바 없으며, 조선짓을 안 했기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겁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후 쨉에 의해 근대화 과정이 잠시 올스톱된 상황에서도 3.1운동과 끊임없는 독립투쟁,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이후 대한민국이 반세기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하는 등 일련의 근대화 과정은 어디 다른 종족이 다른 땅에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청은 기본 만주족이라는 정복 왕조라 우리와는 사회지배 민족 성격이 전혀 다른 양상이였음. 이때문에 서구 열강시기에도 만주족은 한족과의 민족 대립과 투쟁으로 쇄진하고 있었던 상황에다 기본 만주족은 한족 자체를 자신들의 피지배 세금 착취의 종으로 생각.(우리처럼 자체 내부에서 점진적 신분 해방의 근대화로의 이행이 나올 수 있던 왕조 체재가 아님)
19세기 말, 만주족 팔기군 병사가 한족 성주(시장)을 구타한 사건이 있었지만, 팔기군 병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청나라 내내 만주족들은 정복자이자 지배자라는 신분적 특권을 누리고 살았다.
서구 열강의 공세에 몰려 위험한 상황에서도 청나라의 지배층들은 "나라를 외국에게 넘겨줄 지언정, 집안의 종(한족)에게는 절대로 줄 수 없다."라고 단언했을만치, 청나라는 엄연한 정복 왕조였다.
1850년대, 한족들로 구성된 태평천국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남경을 지키던 만주 팔기군 병사들이 태평천국군에게 모조리 살육당하자, 분노한 청나라 조정은 태평천국에 가담한 반란군 병사들이 항복해와도 절대로 항복을 받아주지 말고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바람에 태평천국의 난은 16년이나 오랫동안 계속되고 말았을 정도로 만주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적 갈등은 심각했다.
- 청사 저자 임계순 -
당시 일개 만주족 병사가 미국으로 치면 주지사(웬만한 나라의 대통령)급에 해당하는 성주
를 구타할 정도로 만주족은 소수였음에도 피지배 서토인을 강점 지배하는 정복자의 지위
를 누리고 있었고 이들은 서토인과 구분되는 그들만의 독자적 만성이라는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며 서토인에게 세금을 착취해서 생활.
(후기로 가면 만주 팔기군중에서 초기 청에 복속, 서토 정복에 동원되어 수백만 자국 짱개들
다른건 몰라도 조선시대는 욕 먹는게 맞죠. 어쨋든 일본에 국력을 추월당한 왕조였으니까요. 이미 임진왜란 당시 인구는 일본이 조선을 한참 추월했었고 당시 가장 중요한 지표인 농업 생산량부터 우리나라보다 30% 더 많았죠. 그리고 메이지유신 전후로 일본 인구가 3천 6백만일때 조선은 천6백만 .. 물론 일본이 더 넓은 땅과 농사하기 좋은 땅을 가지고 있어서 인구가 많이 성장한 것도 있지만.. 그와 별개로 조선의 무능력도 한몫 했다고 봅니다. 역대 왕조중에 조선만큼 정치&경제&군사가 바닥을 친 시기가 없었을겁니다. 이런 나라를 이어 받았으니 고생을 할수밖에.. 문화발전 뺴고는 아무것도 이룬게 없는거 같음.
조선이 정치가 제일 발달했다구요? 역사 공부 다시하셔야 겠는데요. 사학자들에게서 가장 정치가 낙후된 시기로 꼽히는게 조선이고 그 정치때문에 망한게 조선인데요. 군사력이야 할말 더 없죠 가장 외세에 침입 많이 당하고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시기니까요.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만해도 정말 지금 봐도 나라의 치욕인데. 이것들은 뭘로 설명하실거죠? 그리고 조선시대 가장 문제점으로 꼽히는게 백성들의 경제와 생활수준인데 당시 조선이란 나라가 못살았다고 하는게 아니라 당시 부가 대부분 지배층인 왕족이나 사대부에 몰려있었단거죠. 거기다 조선 말기엔 뭐 더 할말 없죠.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했으니까요.
가장 외세에 침입을 안당한 나라에요 정치가 발달 하긴 했죠 안좋은쪽으로 여기서 발달했다는건 정치의 제도지 그 정치로 행하려는 일들이 아닙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치욕이죠 그런데 병자호란 일으킨 후금이 명을 먹구 몽골도 복속하고 해서 중원이라는 곳을 차지했구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가는 막부를 도쿠카와에게 뺏기고 멸문을 합니다 고려 는 몽골 거란 금 홍건족 몽고잔당등 왜구 등 외세 침입이 엄청난 시대였구 고구려 시대만 해도 매년 싸움이 벌어졌구 그리고 부가 1900년대 이전에 지배층에 안 몰려있던 나라가 있나요
우선 일부 기록으로 마치 쨉 문명이나 정치 사회전반상이 선진 발전된 나라마냥 도식화하는데 이건 쨉 극우와 국내 친쨉매국사관에 함몰된 인간들이 사용하는 전형적 수법이군요.
심지어 에도시대 당시 쨉의 문명률이 현대 의무교육시대보다 더 높는 세계 최고 수준 어쩌고 심각한 미화 날조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상황.
알겠지만 당시 에도는 자신들의 정권 정당성과 이전까지 제대로된 내치 경험이 없다보니 조선통신사를 통해 선진 관료체계부터 정당성 홍보로 에도 막부의 1년치 예산을 뛰어 넘을 정도로 퍼부었고 조선통신사들이 가는 곳에는 일찍이 그리 부산하고 단장이 없었다 할 정도로 토목 도로 정비에 힘씀.
에도시대 이후에 가서야 지금의 도쿄 일대 즉 낙후된 뻘진창의 관동일대가 본격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주변 영주들의 감시를 위해 에도로 불러들이고 머물게 되자
우리나라 고려시대 같은 규모있는 장원 형태의 건설붐등 영주와 대상인을 위한 일부 특정 계층의 상업적 공간 도시화를 촉진시키기 전에는 쿄토등 일부 이외에는 오사카 도쿄등은 낙후되어 있었고 수도인 쿄토 조차 조선의 5대 대도시(한양, 개성, 평양, 의주, 진주등)에
비해 도시문명이나 규모도 협소했군요.
나아가 오늘날 쨉 영토도 메이지 시대가서야 류쿡왕국인 오키나와부터 훗가이도를 합병 개발하면서 부터 임.
실망이네요 절 가생이에서 봤으면 일본을 고평가 하는게 아니란걸 아실텐데요 일본을 님보다 싫어하는게 접니다. 한마디 하자면 일본 개인의 삶을 고평가 한게 아니라 국력을 말한겁니다. 지금 중국이 그리고 미래의 인도가 개개인이 잘살아서 강대국으로 인정해줍니까? 아닙니다. 국력이 쎄니까요. 이미 기록적으로 조선 임진년 직전에 일본이 조선을 국력으로 추월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GDP가 이미 체급차가 날만큼 벌어진 상태였죠. 조선 말기에 오면서 더 했구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겁니다. 물론 조선 역시 전세계적으로 치면 1900년도 기준으로 10~20위권 왔다갔다합니다. 다른 대륙들이 유럽의 식민 지배 및 착취나 잦은 전쟁 그리고 농업이 발달하기 힘든 여건등으로 성장하지 못할때 그래도 동북아시아는 그런 악재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건 더 좋은 선택을 했으면 더 좋은 나라가 됐을수 있단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일본보다 서양 문물에 대한 개방을 훨씬 빨리만 했어도 지금 우리나라하고 일본의 위치가 달랐겠죠.
그리고 위에서도 올렸지만 제대로 안본듯 한데
쨉의 에도시대뿐 아니라 1930년대등 20세기에도 난무하든 마비키 まびき [間引き] 즉 친족 영아 살해같은 끔찍한 미개 풍습이 왜 사회에 만연했는지 그런 에도시대 왜의 후진적 정치 사회제도 사회상과 더불어 쨉의 농업기술이 여전히 정체 후진성에 대한 까는 내용들도 나오고 있는 실정.
'出羽奥州와 奥州(현재의 동북지방)에서
매년 1만 6, 7천명, 上総(현재의 지바현)에서는
3~4만명의 갓난아기가 솎아냄(마비키) 되고 있다'
ㅡ에도시대 농학자 사토 노부히로
「나라시대 민정 경제의 수적 연구」에 있는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이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즈오카 대학 농학부의 佐藤洋一郎 조교수외는, 登呂遺跡의 복원 논에서 고대 농법에 따르는 벼재배 실험을 실시해, 2천 년전의 쌀의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을 추정했습니다.
실험은, 카시하라 고고학 연구소의 寺沢薫씨의 그룹도 행해, 밭 하나당 평균수확량 백십3킬로그램의 수치를 냈습니다.사토 그룹의 수치는 2백6십 킬로그램으로, 쌍방의 수치로부터 추정 밭 하나당 평균수확량을 백구십 킬로그램으로 했습니다.실험으로 얻을 수 있던 추정 단위 면적당 평균수확량의 백구십 킬로그램은, 시대의 변천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요.
사토씨에 의하면, 야요이 시대 중기부터 2천년 후의 1887년(메이지 20년)의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은 약 백팔십 킬로그램입니다.
「2천 년간의 쌀생산량은 거의 옆걸음으로, 평균 2백 킬로그램 정도입니다.・・・」
고대 한국의 도래인이 일본에 농사를 전래한 이후 2000년 동안 농업생산력 향상은 없었다. 라는 주장이다.
현대의 서비스업의 폭발적 성장 산업구조시대 이전에는 동서고금 어느 나라도 일부 상공업을 빼고는 농업생산력이 그 국가의 근간으로 왜국은 에도시대까지도 농업생산력은 정체되었던 반면 특정 일부 상류 대상인 계층은 자신들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 재정을 물써듯 했고 이는
정체 한정적 자원 아래 인구의 8할 이상을 차지하던 대다수 농민 왜백성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귀결. 결국 서민들의 빈약하고 불결한 주거 생활 환경과 마비키라는 패륜적 미개 풍습이 더욱 만연하게 된 것이군요.
(그리고 이 에도시대가 찬란한? 어쩌고 부르스 추는 쨉극우와 쨉뽕들 소리와는 정반대로 역대 성장점이 최저점인 시대가 된 이유.)
대화재와 전염병으로 신음하던 후진적 주거환경과 빈약한 생활 수준의 에도의 대다수 백성(닭장주거)
[실제로 가면 기대한 것만큼 실망하게 된다 도쿄는 큰마을 정도의 느낌이다 그리고 도시에 널려있는 빈약한 목조주택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왕의 거처도 궁전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성벽같은 모습에 매우 초라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심각한 모습은 바로 통치자의 행태이다 바로 민족의 낮은 수준을 그대로 방치하고 근절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의 발전은 가장 핵심 공중도덕에 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공중도적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니고 아무데서나 소변과 대변행위를 한다 한 마디로 공중도덕 완벽히 결여되어 있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유럽인과 너무 차이가 난다 일본은 방문하는 사람들은 유럽과는 일거수 일투족이 전혀 다른 모습들을 늘상 목격하게 될것이다 어떤 도시든 마을이든 목욕탕이 있고 그곳에서는 어김없이 남녀가 한곳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일본의 시골은 모두가 전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너무나 비참한 모습들이다]
1882년 3월에 산키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식의 입헌군주제에 대해 조사하였다. 1881년에 정부에서 축출되었던 오쿠마 시게노부가 영국식 내각제를 주장했으나 정부는 천황을 중심으로 의회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강력한 통치력을 갖길 원했기 때문에 애초부터 영국식 의회와 헌법은 고려조차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돌아온 이토는 측근과 헌법 제정에 착수하였다. 1887년에 헌법 초안을 작성되었고 1888년에 초안이 완료되었다.
1889년 2월 11일 마침내 대일본제국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흠정헌법의 형식을 따라 헌법은 공포되고 1890년에 시행되었다.
메이지 헌법은 ‘제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는 내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천황이 행정·입법·사법의 권한을 모두 갖고 있는 강력한 천황제 국가를 지향하였다.
이렇게 되면 의회는 정치적인 권력을 발휘하는데 제약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메이지 시대의 백성 역시 시민이 아닌 천황의 다스림을 받는 신민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권력에 무자비하게 희생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메이지 헌법은 1947년에 평화헌법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일본은 정치적으로 기형화된다. 이유는 내각은 의회의 영향을 받을지 몰라도 헌법 제11조에 의하면 천황이 통수권을 가지기 때문에 군대는 자신들이 내각이나 의회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고 조문을 해석하고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이르러서는 군대는 폭주를 거듭하고 군대·의회·내각은 군부에 의해 장악되어 버리고 통합된 절대권력이 되어버리고 만다. 근대국가를 지향했던 메이지 헌법은 시작부터 폭주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Aakash Subedi
단순히 직업의 부족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좋고, 안전한 직업의 부족이야. 나는 한국에서 미숙련 이주 노동자야. 그리고 우리 같은 노동자는 매년 들어나고있어. 우리는 정말 작은 인금(시간당)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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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때지가 불렀구만ㅋ
지들 나라에서는 한국 최저임금의 1/5도 못 벌면서
이래서 외국인들은 최저 임금 이하를 줘야 한다고 생각
임금에 비해 능률 효율 다 떨어짐
자기 입으로 미숙련 이주 노동자라고 했는데 ? 미숙련 즉 생초보 외국인 일꾼을 시급 8350원 주는 나라는 전세계 유일 대한민국 밖에 없을거임. 자국에서는 우리 최저 시급의 뼈빠지게 일해도 우리 1/5도 못버는게 현실인데 못알아 듣는척 설렁설렁 일해도 최저시급 딱딱 맞춰 주니 배때지 부른 소리가 맞는거지
우리나라 사람들 외국 나가서 한달에 돈 1200만원 받는다치면 임금 적다고 투덜댈 사람 있을거 같음?
진짜 개처럼 일할거임
가난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들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지 경험해본사람은 잘 알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것없는 나라의 개인과 국가가 땅도적고 주변국가들의 엄청난 압박속에서도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검어쥐기는 로또확률이지요...그래서 대한민국이 대단한것이고 비록 혼란스러운 역사의 흐름속에서 그 어려움을 성장시킨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그리고 숨은 국민영웅들의 노력이 오늘을 있게한것입니다 군사와 정치적으로는 지금의 기준으로볼때 많은 욕을해대는 전역사의 인물들도 분명 오늘의 대한민국을만든 숨은 공로자들도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보면 한 마을에 5가구가 살고있는데 부모와 자식 총3명의 가난한 한 가구가있고 또 한가족은 사촌인데 틈만나면 우리집을 차지하기위해 협박과 강도짓을 일삼고 나머지 3가구는 가족들 인원수도많고 나름 부유한가구들인데 그들마저도 가난한 가구를 차지하기위해 자기들끼리 협상을맺고 온갖 행패를 부린다면 과연 그 가난하고 힘없는 집에살고있는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하겟습니까?? 과거에 이미 집을 한차례 뺏겻다가 이웃동네의 한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찾은 가족을 지키고 살아남기위해서 과연 무엇을 했어야할까요?? 민주주의...지금이야 당연히 옰은 선택이라 생각할수있지만 그 가구의 가장이라면 항상 인권을 생각하고 자유를 부를짖는 선택만 할수있었을까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그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기위해서 더거칠어지고 난폭해지는 선택을 할수도있었고 분명 그행동들은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결과이전에 그 암담한 상황의 시각에서는 분명히 이해할수있는 여지가 충분할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정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과거의 정치인들과 기타 국가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욕을먹고있는 사람이있다면 신중하게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 다행히 그 가난하고 힘없는 국가는 든든한 옆동네 이웃이 있어서 민주주의를 고수하고 인내하며 열심히 살아온결과 현제는 그 난폭한 4가구들 속에서 아직도 위협은 받고있지만 당당하게 살아갈수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짧은 글로는 다 표현할수없지만 그렇듯 정말 대한민국의 성공은 로또보다 더 힘든 확률을 이겨내고 오늘을 맞이하였기에 오늘을 있게한 과거의 영웅들과 현시대에 살고있는 국민모두에게 축하를 전합니다 한국에서 거지생활을 하더라도 북에가서 부자로 살고싶진 않습니다 이상!!!!
철도 운송은 상식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된다는걸 알 수 있죠. 선박 한척으로 옮기는 물류량과 동일한 물류를 철도로 옮기려면 철도 몇대가 필요할거 같나요? 선박보다 운송 능력 떨어지고 비행기보다 운송 시간이 느린게 철도 운송입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수천톤짜리 선박이 돌아다니는 현대에는 철도 운송은 전혀 경제성이 없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세요. 왜 중국 러시아는 그 경제성 좋다는 철도망을 놔두고 굳이 선박으로 물류 이송을 할까요? 실제로 철도 운운하는 인간들도 철도 물류 운송 주장은 진작에 접었죠.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건 교통 수단으로의 철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철도 관광이죠. 이 조차도 투자 금액에 비해 효율성이 있을지 의문이지만요.
2017년 2018년 의 최저임금이 아니라 1998년이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상승률은 2016년까지만 봐도 세계최고인 수준입니다 지금 일본 미국 등 최저임금 인상폭이 우리나라 20년간 평균 최저임금 상승률에 반절도 안됩니다 그렇게 이미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2017년 2018년 2019년 합쳐서 30%을 올려버립니다 예를들면 미국일본 프랑스 등등 나라가 최저임금이 20년기준으로 2배 정도 올랐는데 우리나라는 5배가 올랐어요 이게 문제가 된다고 하는겁니다 최저임금 상승폭이 세계최고의 나라에서( 대충 5%) 갑자치 년간 10%를 올려 버린거에요 이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 하는겁니다 최저임금은 중간소득에 60%를 넘어가면 안되는데 우리나라는 중간소득에 80%를 넘어 간다는겁니다
미국 없었으면 지금 태극기들고 반대집회하는 인간들 노예생활하고 있을텐데 그건 아깝네 뒷쪽에 든든한 미국이 없었으면 군사 정치 경제적으로 오늘은 꿈도 못꿧을것 아니 아예 북한에 삼켜져서 지금 노동단련대나 끌려가고 인민반장하려고 이웃들 쥐잡듯이 쪼이고있겟지 아침마다 김정은 사진에 큰절하고 만세를 외치며 뇌가 정지된채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겟지정말 극적으로 6.25에서 살아난 대한민국의 운명이 잘햇든 못햇든 여러명의 원동력에의해 발전을 거듭하였고 교육의 기회가 더욱 많아져 오늘에 이르게된것..
외국인들도 북한과 평화/협력으로 나아가면 좋을 거라고 보지만.
다수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네요.
그 독재정권을 믿을 수가 없다고.투자도 정상적인 나라에 하는 거지.하루 아침에 또 어떻게 손바닥 뒤집을지 모르는데.
물론 철도가 북한을 지나 러시아/중국으로 연결되면 바다로 가던 운송비가 3~4배 줄어드는 효과도 나고 (한중일러)EU같은 경제공동체 효과와 관광 산업의 약진으로 동아시아가 호황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그리 되면 일본이 자기 돈 들여 해저터널 뚫을려고 할 거임.)일단 국제제재 상황 하에서 북한의 핵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그 마저도 탁상공론일 뿐.
헌데 같은 거리를 배로 운송하는 것과 철도로 운송하는 것,그 운송비 차이 3배 이상 철도가 쌉니다.배가 머 쭉쭉 질러다니는 것도 아니고 둘러둘러 가는 바닷길이 있는데.또 배는 한번 가면 짐이 없이도 다시 돌아와야함.아니면 숙식하며 짐을 기다렸다가 싣고 오거나.여튼 왕복운임이 크게 드니.
또 배는 항구에서 하역을 하고 이리 통관절차 따지면 시간도 더 많이 걸림.반면 철도는 웬만한 공업단지 주변으로 다 연결되어있어 택배처럼 바로 받아볼 수(?) 있달까.
옆에 일본과 중국이 있는데 더하여 멍청한 북한도 쏘련, 중공을 뒷배로 걸핏하면 전쟁타령 질알발광을 하니
한국이 살려면 죽어라 일해서 돈을 벌고 죽어라 공부해서 힘과 실력을 키우는 길밖에 없었죠
즉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뭣 빠지게 달려왔던 거죠 원조만 준다고 다 한국처럼 된다면
한국만 세계유일 원조를 받아야만 했던 후진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설명이 안됩니다
원조도 원조지만 또 다시 나라를 뺏기거나 전쟁에 지면 안된다라는 절박함에 따른 필사의 노력이 있었던거죠
한국은 확실히 못사는 나라였지만
여타 다른 가난한 나라와는 다르게
먹고사는 것보다 교육열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성장률이 높았죠.
미래를 위한 투자를 착실히 했다는 증거
나는 못먹고 못배워도 자식은 공부시키겠다는 부모세대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이 있다고 봅니다.
그 예를 들자면 먼옛날 한 왕이 있었죠...애민정신이 있었던 킹세종!!
가생이닷컴.. 아직도 사회주의 환상에서 못 벗어난 사람들이 있네요
핀란드에서 실패한 청년 정책들.. 아직도 여러나라에서 실험중인것을 우리나라에서도 시행중이죠 시도했던 그 의도는 좋지만 결과는 냉정해야하고 과도한 사회주의 정책은 나라를 망치는 길임을 아직도 못 깨닫고 문재인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대략 100년전 열강중의 한 나라였던 일본에게 36년간 인적,물적으로 엄청난 수탈을 당하고 거기다가 독립 후에는 6.25전쟁으로 모든 나라시설이 파괴되서 영구적으로 최빈국이 될만한 국가였는데 근 50년만에 선진국대열에 합류했다는게 어마어마 한거임..이렇게 빠르게 민주화와 경제를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