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반도체에 비견되는 금,은보다 비쌌던 조선의 바이오 의약품-인삼(및 홍삼)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
왜국 에도막부에서 조선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순도 80%의 은을 특별히 주조하여
인삼거래에만 사용했던 특수 화폐
왜는 순도 80%에 달하는 '게이초 은(1609~1695년)'이라는 고급 은화를 사용. 그런데 은이 점차 고갈되면서 겐로쿠 시대(1688~1703년) 초기인 1695년 순도 64%로 떨어진 '겐로쿠 은'으로 화폐개혁을 합니다.
조선과의 교역에서 왜의 은 유출은 심각. 당시 왜는 조선인삼 수입에 상당량의 은화를 지출. 죠쿄(1684~1688년) 연간에는 인삼 수입량이 5천근에 달했고, 막부는 그 비용으로 1만 냥이 넘는 자금을 쓰시마로 보냈다고 하니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조선과 왜의 교역에서 은이 40%정도 차지.
http://samsamstory.tistory.com/3165
정조는 인삼을 물에 삶아 익히는 '숙삼' 제조법이 수출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고, 대신에 수증기에 인삼을 쪄서 익혀내는 '홍삼' 제조법을 도입해요. 우리에게 친숙한 홍삼 제조법이 바로 이 시기, 정조 대에 처음 제조
정조는 제조법뿐만 아니라 재배 방식도 변경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산삼을 직접 캐거나, 산삼 종자를 옮겨 심어 기르는 방법으로 인삼을 재배했는데요. 인삼을 평지에서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방식, 가삼재배를 도입하여 인삼의 대량 생산을 꾀했어요. 그리고 이를 통해 홍삼의 대량 생산 역시 꾀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 정조는 홍삼을 수출하기 위해 제도까지 고쳤답니다. 그동안은 인삼의 사무역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는데요. 홍삼의 사무역을 허용한 것이죠. 대신 삼세(蔘稅)를 거두는 ‘포삼제(包蔘制)’를 실시.
당시 홍삼 1근의 조선 내 가격은 은 100냥으로 쌀로 환산하면 쌀 60~80석에 달했다고 합니다. 청나라에서는 몇 배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고요. 홍삼 1근이 청나라에서 매매 되는 최소 가격이 1,100냥에서 최대 2,300냥에 달할 때도 있었다고 하네요. 무역량 역시 급증했는데요. 홍삼 무역이 실시된 첫해인 1797년에는 120근에 불과했지만, 1823년에는 1,000근, 1827년에는 3,000근, 1832년 8,000근, 1841년 2만 근, 1847년 4만 근까지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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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1권, 1년(1864) 2월 3일자
“중국 배가 와서 시끄럽게 하고, 홍삼을 몰래 사가는 것을 단속하되, 아울러 이러한 내용을 개성 유수(開城留守)와 평안도·함경도) 두 도의 관찰사에게 경계하라고 명하였다.”라고 한다.
1828년 북경에 다녀온 박사호의 기행문인 '심전고(心田稿)'
"연경에 가지고 가는 것이 금지된 물건은 금, 인삼, 담비가죽인데 홍삼은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했다. 연경 사람들이 그 값의 10배를 주고 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몰래 거래하므로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