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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2-25 12:53
[초현실] 요즘 핫한 고구려 최대강역 ( 원제 : 사서로 고증한 고구려 최대 강역 )
 글쓴이 : 아비바스
조회 : 4,154  

원글 1 : [ #글림킴 ] - AD 7세기, 고구려가 만주에 끼친 영향 - 고구려 천하관(天下觀)

원글 2 : [ #부흥 ] - 연개소문 최후의 전쟁, 최대의 승첩: 7. 선택과 집중

원글 3 : [ #에펨코 ] - 사서로 고증한 고구려의 최대 강역.jpg




에 대해, 일찍이 이런 지도가 있다. 

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3/20240222/486263/6543375950/6749303661/e9a608deb985ea6847b0d5611571ad22.png



과장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고,

실제로 한강 유역은 7세기에 확실히 고구려 땅은 아니었지만,

북부의 경우에는 저게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3/20240222/486263/6543375950/6749303661/4c45827e1f07b5a4fc4ccfdd3639503f.png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서계(西界) 변화 : 고구려의 요서(遼西) 진출과 당의 대응」, 『영토해양연구』 8, 2014, 154쪽.)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위서』·『북사』·『주서』·『수서』 등 5세기 이후를 다룬 중국의 사서에는

고구려의 영토가 동서 2,000리·남북 1,000리로 기록되어 있으나,

『구당서』·『구오대사』·『오대회요』 등 당나라 이후의 사서에서는

갑자기 동서 3,100리·남북 2,000리로 크게 증대되어 나타난다.






https://pbs.twimg.com/media/EXX5DcdUwAA-sBd.jpg



또한 고구려의 서쪽 경계 역시

『위서』·『북사』·『주서』 등에서는 요동으로 인식되었으나,

『구당서』·『신당서』·『구오대사』·『오대회요』 등에서는

요하를 건너 영주(榮州)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에 근거했을 때 고구려의 세력권은







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3/20240222/486263/6543375950/6749303661/0aeeb5fdd187333cfa95324d0b97ed69.png

(당나라의 1리는 약 560m이므로, 3,100리는 1,736km이고 2,000리는 1,120km이다.)




이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때 남쪽 경계를 하슬라(강릉)로 잡은 것은



3월에, 왕이 하슬라(何瑟羅) 땅이 말갈(靺鞨)에 맞닿아 있으니
사람들이 편안치 못하다고 여겨,
경(京)을 폐지하여 주(州)로 삼고 도독(都督)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三月, 王以何瑟羅地連靺鞨, 人不能安, 罷京爲州, 置都督以鎭之.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5년 -




이 기록에 근거하며

실위를 일부나마 고구려 세력권에 넣은 것은

이다조(李多祚)의 선조는 말갈 추장으로
황두도독(黃頭都督)이라고 불렸는데,
후에 중국에 들어오니 세계(世系)가 요원해졌다.
李多祚, 其先靺鞨酋長, 號黃頭都督, 後入中國, 世系湮遠.
『신당서』 권109 이다조열전 -



이 기록의 황두도독이 곧 황두실위 도독이기 때문이다.

(저 도독위를 수여한 주체를 고구려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리고 거란은



남생은 도주하여 국내성을 지키며
그 무리와 거란병·말갈병을 이끌고 내부하여,
아들 헌성을 보내 (당나라) 조정에 호소하였다.

男生走保國內城, 率其衆與契丹·靺鞨兵內附, 遣子獻誠訴諸朝.
『신당서』 권110 천남생열전 -



이 기록에서 고구려 멸망 직전까지 고구려군에 동원되었음이 확인된다.

반대로 당나라에 동원되는 기록은 660년부터 사라지며

저 연남생의 투항 이후에야 다시 나타난다.




https://getfile.fmkorea.com/getfile.php?code=6ec7af71781e21b679515dd736209a3b&file=https%3A%2F%2Fitcm.co.kr%2Ffiles%2Fattach%2Fimages%2F813%2F984%2F617%2F004%2F5b961b0d0c29e5ea3488379bdc4afea7.png



결론적으로 멸망 직전 고구려의 영역은

통념과 달리 이전보다 넓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7세기 후반 고구려 영향권'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상 끝.



참고문헌:
김재효, 강연석, 고호경, 「전통적인 길이 척도 환산에 대한 역사ㆍ문화적 재고」, 『한국의사학회지』 23(2), 2010, 15-22.
이민수, 「高句麗 遺民 李他仁의 族源과 柵城 褥薩 授與 배경에 대한 고찰」, 『대구사학』 128, 2017, 143-178.
이민수,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고구려발해연구』 73, 2022, 141-167.
이재성, 「麗唐戰爭과 契丹·奚」, 『중국고중세사연구』 26, 2011, 157-218.
정원주, 「7세기 고구려의 서계(西界) 변화 : 고구려의 요서(遼西) 진출과 당의 대응」, 『영토해양연구』 8, 2014, 154-183.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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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말벌11 24-02-28 09:47
   
산둥반도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있죠. 그리고 광개토대왕이 옛고토(고조선)의 영토을 되찾았다고
했어요. 옛고토가 부여영토라는 말도 있지만 고구려가 말하는 옛고토는 대부분 고조선 영토였죠.
또돌이표 24-02-29 07:47
   
근데 하슬라에 말갈이라고?
거긴 동예 옥저 아님?
     
아비바스 24-02-29 13:58
   
그만큼 고구려가 말갈을 군대 동원을 많이 했다고 함.
당황제 이세민이 쳐들어 왔을때 흑수말갈에서만 15만 동원했다고 함.
가을핵파토 24-03-03 10:10
   
저는 맞다고 봅니다. 고구려는 유목민족의 특성이 강하고. 유목민들은 농경사회와 달리 특정한 국경이 없고 이동생활이 특징있으며 강역이 동서가 아니라 사계절에 맞게 남북으로 뻗어있는게 특징이죠.
     
아비바스 24-03-03 11:15
   
고구려가 유목민족국가라는 건 망상이죠, 문헌학적이나 고고학적으로 농경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입니다..
보통 대륙신봉자들이 고구려를 거란이나 동호, 선비와 같은 종족이라며 선동을 많이 하는데  고구려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고구려가 거란과 말갈을 지배했지, 그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죠
수-당 시절에 중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칭해서 삼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여당전쟁에서 당황제 이세민이 개모성 함락후 취득한 쌀만 10만석인데
그럼 고구려가 농사 없이 약탈만으로 10만석을 취득하고 보관했다는 말입니까? ㅋㅋ
고구려가 약탈 국가라는 선동 자체가 역사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으로 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1석의 무게가 벼 기준 200kg, 쌀기준 144kg 무겐데
10만석이면 그 무게만 최소 1만 4400톤입니다.

만주에 중원 평원과 동일한 크기의 흑토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건 고구려가 환경조차 활용하지 못하는 머저리 국가로 평가절하 하는 것입니다.
가을핵파토 24-03-04 16:12
   
농경 유목 다 했습니다. 왜곡하지 마세요. 태생이 유목 민족이라는말입니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 모두 유목민족이었다가 농경으로 발전한겁니다. 유목민들의 특징인 부족회의의 전통이 삼국 모두 있다는게 그 증거. 그리고 고구려 벽화에 활쏘고 수렵하는 벽화가 많습니까? 벼농사하는 벽화가 많습니까?
     
아비바스 24-03-05 13:16
   
환단고기는 썩은 고기입니다. 먹으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터전을 꾸리고 마을을 형성하며 잉여재산이 생기며 계급체계가 형성되고 부족국가 -> 부족연맹체 형성되며 수도시설을 만들고, 보루와 성과 같은 방어체계를 형성하고 고대국가를 만들었다는 건 고고학적으로나 문헌학적으로나  기본 상식인데 물타기 적당히 하셔야죠 ㅋㅋㅋㅋ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성과 보루같은 방어시설이 있었고 곡식을 쌓아 놓는 창고의 흔적들이 있는데  유목민입니까? 설마 고구려나 부여와 같은 국가들이 거란이나 실위 말갈을 동원했다고 일부를 부풀려서 한민족 유목민설을 주장하는 건 심각한 오류죠 ㅋㅋ
          
가을핵파토 24-03-05 13:46
   
먼 환단고기 타령인지, 환단고기 이야기한적도 없는데, 단순하게 교과서에 나오는 벽화 삼국 회의제도롱 설명한데 이해가 안됨? 자꾸 프레임 씌우는게 머같네? 역사에서도 정치 타령인가? 당신도 역사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배운다는 부류인가?
               
아비바스 24-03-05 16:22
   
가을헥파토 : 농경 유목 다 했습니다. 왜곡하지 마세요. 태생이 유목 민족이라는말입니다.
-> 동북아시아권에서 청동기의 시작이 신석기 농경사회에서 시작됬음.

가을헥파토 :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 모두 유목민족이었다가 농경으로 발전한겁니다.
-> 어느 사이비 책 보고 이런 주장하는지 납득이 안됨
교과서나 역사서적 보면 농경기반의 정주 문화로 설명함.

가을헥파토 : 그리고 고구려 벽화에 활쏘고 수렵하는 벽화가 많습니까? 벼농사하는 벽화가 많습니까?
-> 고고학에 무지, 청동기, 철기 기반은 잉여생산물로 인한 문명형성이고 영토 수호의 개념이 있어서 수도시설, 곡식창고를 만들고 성을 쌓아 영토를 사수하겠다는 공동의식이 생겨남. 이건 정주문명의 특생임 ( 동시대 유목민은 이런 특성 없었음 )

가을헥파토 : 단순하게 교과서에 나오는 벽화 삼국 회의제도 통 설명한데 이해가 안됨?
-> 이게 유목민족이란 뭔 상관? ㅋㅋㅋㅋㅋㅋ

계속 출처도 못대는 개인의 뇌피셜을 역사랑 섞지 마시길 ㅋㅋㅋㅋ
               
cjongk 24-03-05 17:07
   
고구려는 초원 유목민이 아니라. 초기에는 산에 살던 사람들이지요.
유목민은 인구밀도 낮은 초원에서 근거지 없이 양치면서 떠돌던 사람들이고, 고구려는 근거지에 박혀있는 정주민되겠음.
벽화와 삼국 회의를 왜 이야기 하는지도 모르겠구. 농경이 안 중요한게 아니라.
그게 훨~~~씬 중요합니다. 생산력은 매우 중요한거구.
동아시아 인종 민족이 이 정도로 번성한건 말타고 정복하던 유목민이 아니라. 쌀의 생산성 탓입니다. 인구부양 능력이 엄청나죠.
고조선 건국 신화에 웅녀와 향신료 나오는것도 문명의 전파를 묘사하는거구. 사냥보단는 작물이 더 우선이죠.

마냥 기분탓으로 무기와 전투력 사냥 이런것에 집착하시는것 같은데....
생산력이 더 중요한 겁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것도
더 강한 금속으로 넘어가는게 아니고, 생산성이 증대되면서 사치품이 아닌 철기는 농사도 가능해서 국가의 사이즈가 달라지는 겁니다.(청동기는 사치품이어서 병력규모도 작아지지만 농사도 석기로 합니다. 무기도 석기 비중이 높고,철기로 농사를 하면서 생산성이 올라가면 인구와 병력도 뻥 튀겨지겠죠.)

저 강역에서 유목민 비율이 높을 말갈족들은 고구려의 신민,국민이라기 보다
간접 지배에 속한 동맹입니다. 대가를 줘야 동원 가능하고요.
응당 고구려의 영토에 속한다 보기 매우 어렵죠.
                    
아비바스 24-03-05 17:14
   
cjongk 님의 말이 맞습니다. 한민족의 시작 고조선 조차도 농경에서 시작됬고
부여 역시 드넓은 동북평원에서 농경을 기반으로 목축을 병행하며 강대국이 되었고
고구려 역시 요동평원과 동북평원을 장악하면서 수나라 - 당나라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강대국이 되었죠

한민족은 농경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cjongk 님의 말에 동의를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가 속했던 요동지방은 동북아시아에서 고품질의 철이 어마어마하게 매장된 지역이고 고구려의 막강한 군사 기반도 이 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반면에 거란과 말갈, 실위는 고구려보다 열악한 환경이었죠

중국 문헌에도 고구려가 거란과 말갈 실위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전쟁때마다 동원했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고로 신민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cjongk 24-03-05 17:15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오녀산성 부터 산에 박혀있고
사냥을 중시한다고 유목민인게 아닙니다.
목축업을 하면서 근거지 없이 옮겨다녀야 하죠.
고구려 사회를 설명할때 그런 유목적 특성은 안 보여요.
유목민이라고 하기에는 근거지에 대한 방어를 중시하기도 했구.
방어력이 매우 뛰어났죠.

님은 먼가....유목민에 대한 이상한 고정관념이 있으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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