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큐슈 북동부에는 豊國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豊國을 “도요 쿠니”라고 읽는다.
그런데 日本霊異記攷証에서 狩谷棭斎(카리야 에키사이)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남겨놓았다.
바로 豊國은 韓國이었다고 주석을 달았던 것이다.
韓은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를 뜻하며, “가라”라고 읽는다.
삼한(三韓),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河東郡(하동군)을 韓多沙郡(한다사군)이라고 하였다.
河는 “가람”이라고 읽으니, 韓이 “가라”가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扶餘豊(부여풍)이라는 백제의 왕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豊(풍)으로 나오고, 일본서기,자치통감에는 豊璋(풍장)으로 나오며,
일본세기에는 糺解(규해)라고 나온다.
扶餘豊(부여풍)의 이름은 豊(풍), 豊璋(풍장), 糺解(규해)로 불렸다.
糺(규)는 字源(자원)이 실이 꼬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훈독으로 “꼬다”, “끌다”를 뜻하므로, 소리값이 “꼴”이 된다.
豊(풍)은 글자의 字源(자원)이 그릇에 곡식을 풍성하게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훈독으로 “그릇”이 남아있다. 따라서 소리값이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豊國은 한반도계통의 국가 이름이 쓰였음을 알게 된다.
韓國이라는 뜻의 "가라국"이였던 것이다.
그러면 豊이 "가라"라는 소리값을 가졌는지 더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지명들이 남아있다.
豊壤顯(풍양현)은 骨衣奴縣(골의노현)이라고 하였다.
豊은 “그릇”인데, 骨과 대응된다.
骨의 소리값을 확인해보면
梁骨縣(양골현)은 洞陰縣(동음현)이라고 하였다.
洞은 “골”을 뜻하고,
陰의 자원(字源)은 "구름"이다. 구름이 져서 응달진 곳을 뜻하게 되었다.
陰의 현재 남아있는 뜻은 “그늘” 또는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骨은 소리값이 “가라”였음을 알게 된다.
豊州(풍주)는 屈遷(굴천)이라고 하였다.
咸豊縣(함풍현)은 屈乃縣(굴내현)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豊(풍)과 屈(굴)이 대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屈은 "굽을 굴"이라고 한다.
屈이 소리값이 "가라"인지 확인해보면
屈火郡(굴화군)은 曲成郡(곡성군)이라고 하였다.
曲은 "굽을 곡"이라고 한다.
屈阿火村(굴아화촌)을 취해서 河曲縣(하곡현)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河는 "가람 하"이고, 曲은 "굽을 곡"이다.
그러므로 屈은 소리값은 "가라"가 맞다.
永豊郡(영풍군)은 大谷郡(대곡군)이라고 하였다.
谷은 "골","골짜기"를 뜻한다.
谷이 소리값이 "가라"인지 다른 글자와 비교해서 확인해보면
五谷郡(오곡군)은 洞州(동주)라고 하였다.
洞은 "굴","골","고을"을 뜻한다.
谷의 소리값이 "가라"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글자와 비교해보겠다.
羽谷縣(우곡현)은 羽谿縣(우계현)이라고 하였다.
水谷城縣(수곡성현)은 檀溪縣(단계현) 또는 俠溪縣(협계현)이라고 하였다.
谷이 谿또는 溪와 대응되어 사용됨을 알 수 있다.
谿는 "시내" 또는 "골짜기"를 뜻한다.
溪도 "시내" 또는 "골짜기"를 뜻한다.
"시내"로 사용된 것인지 "골짜기"로 쓰인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壁谿郡(벽계군)은 長溪縣(장계현)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谿와 溪는 소리값이 같았던 것으로 보인다.
虎溪縣(호계현)은 虎側縣(호측현)이라고 하였다.
側은 "곁"과 "가까이"라는 뜻이다.
溪가 "골짜기"를 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丹溪縣(단계현)은 丹邑縣(단읍현)이라고 하였다.
邑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溪가 "골짜기"를 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谷은 谿와 溪로 대응되어 사용되어 왔는데,
"시내"가 아니고, "골짜기"라는 소리값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谿와 溪는 소리값이 "골"이었다.
그러므로 谷은 소리값이 "가라"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여풍(扶餘豊)은 韓(한)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豊王은 韓王(한왕)이었다. 그러니까. “가라”의 임금이라는 뜻이었다.
豊國은 “가라”라는 소리값을 가진다.
일본 큐슈에는 한반도 계통의 국가명이 쓰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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