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임형규 사장님의 저서 '히든 히어로스'에서 중요하다 싶은 내용들을 일부 발췌해 봄. 1부는 삼전 반도체의 성공
스토리에 대한 과거 회상, 2부는 한국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 방향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금 발췌는 2부 이야기임. Q는 양항자
국회의원, A는 임형규 사장임.
Q. 미국 반도체 산업 역량에 대한 평가?
A. 향후 큰
성장이 예고되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포함해 인공지능,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미국 기업들의 리술 리더십이 확고해 보인다.
엔비디아, AMD 등이 인공지능 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이미 자체 칩을 개발해 격차를 키워가고 있는 애플, 테슬라에
이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자체 칩으로 차별화를 추구하는 추세다. 미국의 이 같은 시스템
반도체 기술력은 그들의 소프트웨어 역량과 함께 미국 정보산업의 리더십을 지켜 주는 핵심 역량이다. 그밖에도 AMAT, LAM,
KLA 등 반도체 장비 분야 리딩 기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시놉시스, 케이던스 등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 IP
분야의 지배적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및 제조 관련 필수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통해 반도체 산업 전반의
실효적 통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도체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이 공급 안정화를 위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비율을
높이겠다는 국가전략을 수립했다는 점이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잠재 위험요인이다. 파운드리와 달리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 부품이라
현재와 같은 효율 중심 경쟁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Q: 첨단 파운드리 산업에서 TSMC와의 격차를 줄일 방법은?
A: 2003년 삼성전자가 최초의 로직
전용 라인 건설을 추진할 당시의 상황에 비하면 지금은 기적 같은 도약을 이뤄낸 상황이다. TSMC에 비해 15년 늦게 로직
반도체 제조를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파운드리 사업부를 발족한 시점은 30년이나 늦었지만 그래도 격차를 크게 줄인 셈이다.
2021년에는 인텔이 파운드리 산업 참여를 선언하고 도전적인 차세대 기술개발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파운드리 산업은 TSMC,
삼성전자, 인텔의 장기 레이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산업의 핵심요소인 차세대 공정 기술에서
앞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앞선 1부 회고에서 이야기한 메모리 반도체의 사례와 유사하게, 앞선 공정
기술이라는 필요조건 위에 완전한 강자가 되기 위한 패키징 기술, 설계 IP, 수율 및 품질관리, 제조 리드타임, 고객 서비스
프로세스 등 종합적인 경쟁력을 장기적 안목으로 강화해나가야 한다. 특히 다양한 디자인하우스들과 생태계를 구축하여 풍부한 IP를
확보하는 것이 고객 확보의 중요한 요소다. 기술개발 책임자들이 고객을 자주 만나고, 스스로 기술개발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고객의 요구를 개발 실무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객과 기술자의 간격은 좁을수록 좋다. 파운드리 산업에서
필요한 기술 줄기도 메모리 못지 않게 방대한 만큼, 각 기술 줄기의 경쟁력을 빠짐 없이 끌어 올려야 종합 경쟁력이 생긴다.
파운드리
비즈니스는 메모리 칩 같은 범용 제품의 거래와는 차원이 다른, 사업을 함께 하는 파트너라는 운명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고,
고객을 섬기는 마음 가짐이 기업 문화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메모리는 제품의 생산성으로 경쟁하기에 공급 과정에 있어 자유도가
높지만 파운드리는 다르다. 파트너사와 섬세하고 치밀한 기술적 소통이 필요하고, 제조 과정도 계획대로 정확히 진행되어야만 하고,
고객에게도 투명하게 내용이 전달되어야만 한다. 즉, 두 사업의 성공 방정식이 크게 다르다.
TSMC의 시장점유율이
60%에 육박하는 현재 상황은 고객의 선택 가능성을 크게 좁히고, 또 그들을 지정학적 위험요인에 지나치게 노출시킨다. 그에 비해
한국은 메모리, 파운드리를 모두 가지고 있어 반도체 기술과 제조 인프라의 규모와 시너지 측면에서 유리하다. 장기적 안목으로
역량을 키워 나가면 파운드리에서도 도약의 기회가 올 것이다.
Q. 한국 경제에 대한 향후 전망은?
A.
반도체 산업의 성공에서 얻은 경험과 인프라가 이미 디스플레이, 배터리, 첨단 부품, 소재, 바이오 CMO 등의 초미세 기술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실제로 삼성에서는 오래 전부터 반도체 출신 경영진이 다른 초미세 기술산업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향후 이 초미세 기술산업 최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굳혀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견제로 중국이 공급망에서 제외될 분야가
많고, 한국과 경쟁할 나라는 일본과 대만 정도이지만, 한국이 가장 나은 위치에 있다고 본다. 메모리 반도체에 버금가는 압도적
우위의 산업들을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
Q. 미국의 칩스 법에 대한 생각은?
A. 우선 고객과의 소통이
핵심인 파운드리는 현지 공장의 의미가 범용품인 메모리보다 크고, 이미 삼전도 미국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가능한
고객과 가까운 곳에 제조 거점이 있는 것이 유리하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확보할 만큼 충분한 기술 인재를 단기간에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 내 파운드리는 확대되겠지만 대만과 한국에 대한 의존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중국 내 메모리 FAB은 장기적으로 축소가 불가피 하겠지만, 메모리 공급망의 혼란은 미국에게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속도는 조절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미국과 긴밀한 소통을 통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범용 부품인 메모리는
품질과 원가 측면에서 상대적 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메모리 FAB은 효율성 중심으로 확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보 산업은 서로 보완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면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을 형성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기술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