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많습니다..뭐.. 소서노가 비류를 선택했나..온조를 선택했나 같은... 신채호같은 경우는 소서노가 아들의 쿠데타로 인해 목숨을 잃었을 거라고 추정하죠.. 특히 조선상고사에는 비류와 온조가 갈라진 것은 소서노 죽음 이후라고도 하고...
이건 다른 설.. "온조를 떠났던 비류일행이 다시 온조에게 돌아오지만.. 온조는 비류가 온다면 형인 그에게 왕위를 내어 줘야할 것을 두려워하여.. 돌아오는 비류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류와 소서노는 온조가 왕위를 유지할 욕심으로 비류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자 소서노는 직접 갑옷을 입고 군사를 지휘하여 온조를 공격하다 전사했다" 아래는 삼국사기에 김부식이 적은 설입니다.
일설에는 시조는 비류왕인데 그 아버지 우태는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고, 어머니 소서노는 졸본사람 연타발의 딸이다. 소서노가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아들이 비류이고 둘째가 온조였다.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과부로 살았다. 그 후 주몽이 부여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자 전한 건소 2년(기원전 37) 봄 2월에 남쪽으로 달아나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소서노를 왕비로 삼았다. 나라를 세우는 데 소서노의 내조가 많았기 때문에 주몽이 그녀를 매우 사랑했고 비류와 온조를 자기의 친아들처럼 대하였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와의 사이에 낳은 유류가 오자 태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래서 비류가 동생 온조에게 말하였다.
“처음에 대왕께서 이곳으로 도망해 왔을 때, 어머니는 집안의 전 재산을 내놓아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에 공이 많았다. 대왕이 돌아가시고 나라는 유류에게 돌아갔으니 우리가 여기 남아 답답하게 지내기보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좋은 땅을 찾아 따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는 동생과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와 대수 두 강을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북사및 수서 모두에는 ‘동명의 후손 구태가 있는데 어질고 신의가 있다. 처음으로 대방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의 요동태수 공손도가 그의 딸을 아내로 주어 드디어 동쪽 나라의 강국이 되었다.’고 하였다.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