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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06 17:35
[기타] 저평가된 한민족 역사상 최강무장 태조 이성계(펌)
 글쓴이 : 실험가
조회 : 4,935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1668862&cpage=2&mbsW=search&select=sct&opt=1&keyword=%BC%BA%B0%E8



 
-이성계와 북방기병들이 입었던 것과 같은 복식. 당시 북방군은 유목민의 복식을 하고 있는데 이는 무려 임진왜란까지 이어져서 북관대첩 기록도를 보면, 함경도군은 몽골, 여진족 같은 유목민 모자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젊은 시절 전공은 한민족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굉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승리한 전투 대부분이 회전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한반도 역사상 중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대부분 수성전이나 청야전술을 기반으로한 게릴라전, 수비전 등입니다. 때문에 회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 귀주대첩이 특이한 것이고, 회전에서 계속해서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근데 이성계는 항상 적들보다 병력수가 열세인 상태, 수성전이나 수비로 일관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회전으로 맞붙어 모두 승리를 거둡니다. 그것도 기병을 써서.

동북아의 당시 내노라 하는 세력을 모두 개박살 내버린 것입니다. 원나라 몽골기병, 중국 홍건적 10만명, 여진기병, 북부 반란군, 왜국 군벌, (나중엔 고려 정규군까지-;)



어쩌면 우리민족 역사상 기병 전술을 가장 잘 활용한 이는 이성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계와 그의 친위대인 북방기병 2천은
당시 동북아에서 명성이 대단하였으며, 그들은 돌격하기전에 특유의 소라고동피리를 불었다 합니다.

뿌우~~ 하는 소리가 들리면, 적들은 '이성계다! 이성계의 북방기병이 온다' 하며 매우 두려워 하였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성계의 북방군은 초강병으로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단련된 특수부대와도 같았습니다. 일단 기병들과 돌격하면 현대전에서 스나이퍼가 1순위로 적 지휘관(중대장,소대장)을 쏘고 두번째로 통신병, 세번째로 기관총 사수등을 노리던 것과 같이 공격했습니다.

보병들이 적들을 막아내는 동안


이성계와 이지란이 서로를 엄호하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의 총사령관을 활로 쏴죽이거나,




이지란이 엄호하는 사이 이성계가 근접하여 칼로 적장을 베고




뿌우~~~ 하는 소라고둥 소리와 함께 2천의 북방 기병들이 일제히 돌격하면서 적의 전령을 쏴죽여, 소통을 단절시키고 말을 타거나 하급 장교들을 보는대로 족족 저격하거나 때려죽였습니다. 이성계의 북방군은 항상 적보다 적은 군사였지만, 모든 전투에서 상대방 총사령관과 지휘관, 장교들을 잡아내는 통에 적군은 지휘체계가 무너졌고, 북방군은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일단 이성계의 젊은 시절을 논하려면 그의 가계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이후부터는 빠른 속도를 위해 임체로..

이가(李家) 계보 이안사 - 이행리 - 이춘- 이자춘 - 이성계

이안사- 전주 호족 출신. 20대 초반 시절 이안사의 여자를 고을 별감이 건드림. 빡친 이안사는 별감과 다투다 결국 싸움박질까지함. 이 사실을 안 고을 현감은 도지사급 안렴사에게 고발.


안렴사는 이안사를 투옥시키려는데 당시 몽골대항기로 이안사는 가병과 가신단을 거느리고 있었음. 쫄린 그는 조정에 구원병 요청. 조정이 미적대는 사이에 이안사는 재산을 들고 가신단과 함께 강원도 삼척으로 튐.



이때 모든 것을 버리고 이안사를 따라간 가구가 무려 170가(家).
170가는 나중에 이씨가문이 사정상 여러 곳으로 내쫒기는 와중에도 끝가지 같이 이동한 충성심 가득한 집단. 미래에 이성계 북방군의 중요한 경제적, 군사적 전력이 됨.


삼척에서 이안사 집단은 오랫동안 농사도 지으면서 세력을 키우고 왜구를 대비하기 위해 배 15척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음.
근데 진짜 로또급으로 불운한게, 하필 도지사(안렴사)로 새로 부임되 온다는 사람이

예전에 여자때문에 치고 박았던 바로 그 별감. 이안사는 역시 모든 기반을 버리고 북방 의주로 이동함. 이때도 170가(家)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이안사를 따라 의주로 고고.

이미 콘트롤을 벗어난 이안사에게 고려는 이렇게 된이상 몽골제국 막으라고 의주병마사를 임명함.(말뿐인 직책)

근데 당시 몽골제국의 장수 산길(散吉)이 두 차례에 걸쳐 항복을 권유.

이안사는 원나라에  귀순. 이안사는 집안 사람을 산길과 혼인시켜 연줄을 만듬. 그리고 자신은 더욱 북쪽으로 이동해 개원로 남경 알동에 정착.

이안사는 집단 유지를 위해 사방 팔방 다니면서 왕래함. 이때부터 이가군은 순수 농민성격에서 몽골, 여진과 같은 북방 이민족과 같은 생활 방식으로 변화함.


이안사 사망 후 아들 이행리가 가독을 물려받음.

이행리는 몽골 제국 소속으로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에도 참가.
충렬왕에게 몽골에게 귀순할수 밖에 없었던 자기 가문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등 발 한쪽을 걸침.

이행리는 꽤 품성이 좋고 운영을 잘했는지 주변 유목민과 여진족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고깝게 본 여진 천호장 연합군에게 공격하기로 함.

이행리는 이 사실을 모르다가 우연히 들른 곳에서 유목민 노인 한명이 이 사실을 귀뜸해 주었고 이행리는 모든 기반을 버리고 도주함. 도주중 여진 천호장 부대 삼백명이 이행리의 목뒤까지 추격해왔으나 구사일생으로 탈출 성공.

이리 저리 피신하다, 의주로 와서 다시 세력을 키움,

이행리 사망후 아들 이춘이 가독 승계

이춘- 본거지를 함주로 옮김. 목축하기 편리해서 라고함. 이 무렵에는 이씨가문은 거의 유목민세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임.
이춘은 원나라 쌍성총관의 딸과 결혼함. 이를 볼때 해당지역에서 인정을 받은 세력이라는 것.



원나라에서는 북부 알동에서부터 이가(李家) 따라 이곳까지 이주한 사람들을 다시 살던곳으로 이동시키려 하나, 이춘이 직접 원나라 조정에 상소를 올려가면서 막아냄. 이를 볼때 이가군은 경제력 군사적으로 포기할수 없었던 듯.

이춘이 사망하고 가독 승계를 두고 다툼이 일어남. 이춘의 장남인 타사크 부케 (한자로는 탑사불화(塔思不花))가 후계자가 되었으

나 금방 죽음. 가독을 두고 교주(咬住), 완자불화(完者不花), 나해(那海) 누가 해먹을 것인가 내분.

이자춘은 개원로에 나가 원나라에 사정을 설명했고, 원나라는 교주의 손을 들어줌. 그러면서 교주의 나이가 어리므로 청나라 도르곤처럼 이자춘이 섭정을 맡음.

이자춘은 나해를 비롯하여 다른 후계자들을 다 때려잡고 이가(李家)의 수장이 됨.

이자춘은 여러 부인을 두었는데. 여진족 부인에게서는 이화를 낳았고 다른 여자한테는 이원계를 낳고, 다른 한명한테는 이성계를 낳았음.


후일 전설이 될 이성계가 드디어 등장.

이자춘은 묘를 이장하던 중에 칼 한자루를 득템. 이를 아들 이성계에게 건네줌. 이것이 바로 전어도(傳御刀)


이춘 시절부터 이가군은 상당히 유목민화 되엇는데. 이자춘대에 이르러 이성계와 이씨가문의 170가는 몽골, 여진과 같이 기마민족화 됨.


이성계는 매우 젊은 시절부터 무용이 남달라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날 초원으로 사슴 사냥을 나갔다가 운명적인 만남을 겪음.


이성계는 사슴을 겨누고 활을 당겼는데 거의 동시에 다른곳에서 화살이 날라다 두개의 화살이 사슴을 적중시킴.

이성계와 상대방은 서로 자기가 잡은 사슴이라며 다툼, 결국 서로에게 화살을 날리기까지 함. 격투 끝에 서로의 무용에 감명받은 둘은 마침내 결의형제를 맺기로함. 이자가 바로 완안씨 일가, 금패천호장 아라부카(阿羅不花)의 아들, 티무르였음.

티무르의 풀네임은 쿠룬투란 티무르. 후에 고려로 귀순하여 이지란으로 개명함. 티무르는 용모가 매우 단정하고 피부가 고와 마치 여인과 같다라고 기록될 정도로 굉장한 미남자였음.

초원의 의형제는 '안다' 라고 하여 서로의 손을 베어 피를 넣은 술을 마시고 평생을 배반하지 않음. 사극에서는 형니메~ 하면서 이성계가 형, 티무르가 동생으로 나오지만

초원의 의형제는 서로를 아꼇으나 우열을 나누지 않고 동등한 위치로, 실제로 둘이 형, 아우 쓸 일은 없었을 것.

이성계는 당시 북부 지방을 휘어잡는 이가(李家)의 가독 후계자였고, 티무르는 잘나가는 여진족 금패 천호장의 아들이었으므로 세력신분도 격이 맞았음.

당시 북방은 척박한 환경과 물자부족으로 워킹데드 같은 상황이었음. 부족한 물자와, 한정된 목초지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물품을 약탈하고 사람을 납치함. 이런 환경에서 이씨가문 170가는 수없는 전투를 치루면서 당대에서 가장 실전경험이 풍부한 집단이 됨.

특히 이성계 휘하 2천명은 이가군중 고려인, 여진인 최정예를 추려낸 것으로, 말타기, 활쏘기, 검술등에 통달한 정예부대. 이성계의 무용은 몽골제국에도 인정을 받아,

젊은 나이에 원나라에서 만호장에 임명받음. 즉 만명의 군대를 통솔하는 직책을 받았는데, 만화 킹덤을 보신 분들이라면 만호장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것,


이가(李家)의 당시 수장이었던 이자춘은 정세를 정확히 판단해 원나라가 기우는 것을 느끼고, 전격적으로 고려로 방문, 직접 공민왕을 만남.


당시 반원 정책을 피려던 공민왕은 이자춘을 대환영했으나, 당시 몽골제국 군세를 염려하여 이자춘에게 기세를 드러내지 말고 대기하라 지시.


후일 밀지를 받은 이자춘은 원나라 쌍성총관부 공격에 동참함. 이때부터 이성계와 북방기병 2천의 무쌍전설이 시작됨.
쌍성부를 함락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이성계는 당당히 고려로 귀순.

그리고 이어지는 세기말 고려를 향한 동북아의 미친러시에 대항함.

1361년 10월 독로강(禿魯江) 만호장,박의의 반란을 진압하고 박의를 죽임.

같은 해 10만 홍건적 침공.

 수도 개경이 함락되자 이성계 출동, 북방기병 2천을 이끌고 홍건적 10만에게 돌격.

이성계가 직접 말을 몰아 적진을 돌파해 홍건적 총사령관을 직접 죽임.


뒤를 이어 북방기병들이 돌격하며 홍건적 간부들, 장교를 활로 족족 쏴죽이거나 칼로 처죽이면서, 홍건적 붕괴

개경탈환에 성공하여 가장 먼저 입성함.


이때 홍건적으로 고려가 혼란한 상황을 틈타 원나라에서 쌍성총관부를 다시 빼앗고자 나하추를 보냄. 나하추는 수만의 병력으로 함경도를 침공.

고려군을 박살내며 진격. 이에 공민왕은 개성에 있던 이성계를 급파함.

이성계와 북방군 수천명은 쉴새없이 북부로 진격함. <고려사>, <실록> 에 따르면 나하추는 수만명을 너른 평원에 포진하기포다는 각 고개와 골짜기에 병력을 분산 배치했던 것으로 보임.

이성계와 나하추의 병력차는 10배가 넘었으므로 나하추는 이성계가 선제 공격하리라 예상 못했으나, 이성계는 바로 기병으로 기습 돌격

분산되 있는 나하추의 병력을 각개격파함,  이때 이성계는 신들린 기병 활용을 보여주는데, 기동력을 최고로 살려 적을 교란하고

유인하는 동안 별동대가 후방으로 우회해 적 수뇌부를 급습하는등, 신에 달한 컨트롤을 보여줌.

이는 이성계가 몽골의 영향력안에서 유목민과 같이 성장한 배경이 있음. 오히려 본토 몽골장수보다 더 전성기 몽골의 기병 전술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줌.


나하추는 어어? 하면서 군세가 와해될거 같자, 일단 회견을 벌여 시간을 벌고자 함. 일단 명목상으로 지휘관끼리 협상 테이블 가지자 해서 자군의 혼란을 멈추게 하면, 병력이 열배나 많은 자신의 군대가 종국에는 승리할 것이므로.


근데 극소수의 심복을 거느리고 나하추와 이성계가 만나는데, 시간을 벌려는 나하추의 의도와 다르게. 이성계는 그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만나자 마자 한마디 함.

"항복해라."

이에 니하추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앞으로의 정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 했으나, 이성계는 곧바로 활을 쏘고, 칼을 뽑아들고
나하추에게 돌격함.

나하추는 아직 자기뒤에  가진 군세도 월등했는데 이성계가 단기 필마로 자신만 죽일려고 포위도 아랑곳 하지않고 돌진하자, 놀라서  후퇴함.

"너 미쳤나, 이야기좀 하자니까"

그러나 이성계의 대답은 하나

"항복해라."


활을 쏴서 나하추의 말을 죽임, 나하추는 황급히 옆에 있던 부하의 말을 타고 본대로 귀환, 뒤에 있던 나하추의 병사들은 총사령관이 막 자기쪽으로 후퇴하니까

'어어? 이거 뭐여, 우리가 병사 더 많은거 아님? 이거 뭐야'

그리고 이어지는 이성계 친위대의 소라고둥이 뿌우~~~~~하고 울려 퍼짐.  그리고 전원 돌격

이성계와 북방군은 마침내 열배에 이르는 열세를 이겨내고 몽골군대를 대격파함.


2년 뒤 1364년 원나라 황제는 덕흥군과 최유에게 1만을 주어 고려를 침공하게 함.

이성계와 최영 출격-> 개박살

같은해 이성계의 외사촌이자 여진족 장군인 삼선 삼개가 북방에서 반란을 일으킴. 함주를 함락.

여진 본토 기병 VS 이성계 북방기병
-> 이성계 대승, 여진족 개박살

1370년 우리 민족 마지막으로 요동 정벌에 나섬.

이때 레전설 활약을 펼침. 기병으로 상대방 적군을 개박살내고, 공성전에 돌입. 난공불락이라 기병도 어렵자 이성계가 단기로

말을 끌고 성 근처까지 돌격, 성벽에서 적군의 활을 피해내면서 애기살을 꺼내 무빙샷.

애기살로 적군 70명을 모두 헤드샷하는 경악스런 기록을 남김. 결국 질려버린 적군을 이기고 성을 함락.

몽골군과 맞다이 붙었을때는 상대편 장군 '채명'의 무용을 보고 영입욕구가 솟아올라

적군 속으로 말을 타고 달려 활을 쏴 채명의 말을 죽이고, 무기를 날려버림. 항복을 권유하는데 채명이 말을 듣지 않자,

원거리에서 허벅지 부분 어디를 정확히 쏘겟다고 화살 예고를 날림. 채명이 '이거리에서 무리임 농담마셈' 하자

진짜 그 부분에 정확히 화살을 맞춤.

"항복해라."

결국 대경실색한 채명은 이성계에게 투항, 이 후에는 맹장으로서 티무르(이지란)과 함께 전선에서 큰공을 쌓음.

한민족 역사상 마지막으로 만주 동녕부 점령.



1377년 우왕, 침입한 왜구가 전국을 휩쓸자 지리산으로 몰아넣고 대파함.


1378년 해적무리라고 말할수 없을 정도로 왜군 군벌이 전국을 휩씀. 역사학자들은 남북조간 전쟁이 오래되자, 식량과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북조군의 군벌이 약탈로 충당하기 위해 고려로 침공했다고 보기도 함.

이들이 사용했던 배와 그 규모로 보면 수만명에 달함. 단순한 왜구 해적이 아니라, 다이묘 군벌 수준임.

왜군은 수도 개경까지 위협했고 왜의 대군에 맞서 최영이 분전하다 위기에 처함.

이성계의 북방 기병 출동-> 적장 살해 격퇴


1380년 왜군의 대군이 내륙에 침범

-세기말 고려의 상황, 왜군의 침입 표시

이 시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한미한 정도라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공민왕의 재위기간 23년 동안, 왜구는 115번을 침공해 왔다.

그렇다면 공민왕과 바로 이어지는 우왕의 시기에는? 14년동안 278번을 공격.

 연평균으로 따지자면 공민왕 시기에는 왜구가 대략 한 해에 5번은 쳐들어왔고 우왕의 시기에는 한 해 동안 대략 18~20번을 공격해온 것. 그만해 미X놈들아

고려 정규군은 각개격파 당하고 사근내역 전투에 이르러 엄청난 대패를 당함. 아홉 원수가 이끄는 고려군이 전멸.

이에 최종병기 이성계 출격. 당시 참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각종 전쟁을 경험한 이성계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아 며칠동안 밥을 먹지 못할 정도 였음. 하긴 고려군의 창자며 내장이 다 꺼내진 시체가 아무리 길을 걸어도 끝없이 펼쳐있다 기록되있으니..


이성계는 폭풍처럼 진격한다음

"오늘 쉬고 바로 내일 총공격한다."

"헉 님, 지금 엄청 달려오느라 모두 지쳤는데 좀 쉬어야 하지 않음?"

"걔소리 집어쳐, 당장 공격"

그리고 이어지는 황산 대첩.  엄청난 난전에 그야말로 치열한 대접전이 펼처짐. 위기에 빠질때마다 기병을 동원하여 충격력으로 모면,


이성계는 직접 전어도를 휘두르며 선두에 서서 적들을 베어냄.

"도망칠 사람은 도망쳐라, 나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돌격, 돌격"

총사령관이 이러고 혼자 미친듯이 앞으로 가는데, 병사들도 미친듯이 돌격함.

얼마나 난전이었는지 이성계 말이 활을 맞고 죽어 두마리나 갈아타고, 이성계가 칼로 적을 처죽이는 동안 뒤에서 적군이 공격하자
티무르가 활을 쏴 간발의 차이로 이성계를 살림.

심지어 요동정벌때 적들이 화살을 몸을 젖혀 피하면서 헤드샷 날렷던 이성계가 화살을 몸에 맞을 정도 였음.

왜군에는 아기발도(물론 고려쪽에서 지은 이름. 상당히 어린나이로 아기 + 몽골식 장수 이름인 바토르의 합성어)

란 16세 정도의 장수가 백마를 타고 창으로 고려군을 처죽였음.


일본에는 기병이 없다는 이야기가 정설이나 이는 중국, 한국처럼 대규모의 기마대가 존재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귀족들을 중심으로한 소수의 정예 기병은 존재했음. (몽골 장수를 죽인 쓰네나가 같은)


채명 때와 같이 인재욕구가 솟은 이성계였으나, 그럴려면 애들 다죽는다 하는 티무르의 조언에 따라

둘이 왜군 깊숙이 침투하여 이성계가 아기발도의 투구끈을 맞춰 벗기고, 티무르가 헤드샷함.


이윽고 엄청난 백병전 끝에 엄청난 대승을 거둠. 최소 수배에서 최고 열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왜군을 대파한 것.


얼마나 대승이었는지 이성계도 본인도 안하던 자화자찬을 남김.


무려 30년간 고려의 정규군을 학살하며 전국을 난도질하던 왜군에게 그야말로 대타격을 펼친 이성계 평생에서 가장 빛나는 전공임.




이렇듯 이성게 왕이 되기전 전공은 가히 한민족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 하네요. 그것도 육전... 게다가 회전으로.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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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나 15-01-06 19:00
   
고려말은 이성계를 비롯한 뛰어난 장군들이 없었다면..
조선시대 양란 이상으로 헬게이트가 열렸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상황이었죠
내일을위해 15-01-06 19:04
   
이성계가 뛰어난 무인이고 장군인건 알겠는데 최강이라함은 좀.... 우리역사상 뛰어난 장군은 많은데 비교하기가 좀 그렇치요? 실적으로만 보면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양만춘, 연개소문, 광개토대태왕, 김유신, 이순신등 기라성 같은 장군들이 많은데 최강이라함은 좀 그렇네요.
     
실험가 15-01-06 19:21
   
딱히 이성계보다 장수로써의 능력치에서 우위에 있다고 보여지는 인물도 없어서 최강이라 붙였네요.(이순신은 해군이라 단순비교가 어렵고)

특히 유목민과 같은 탁월한 기병전술을 이용해 항상 다수의 적을 상대로 평지에서 대회전으로 발라버렸다는 점이 끌리더군여. (성장환경적인 요인이 클듯한데)
          
누구나 15-01-06 21:09
   
이성계는 당시 보급의 문제때문에 전선을 넓히는 것에 대한 걱정 보다는
유지하는 전쟁에 대해 우려를 할만큼 충동적이지도 않고 신중했죠.
개인의 무력도 굉장히 뛰어나지만 전략가로서의 면모도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15-01-06 21:08
   
하지만 척준경이 출동한다면?!
     
실험가 15-01-06 23:55
   
척준경은 뛰어난 용사 혹은 용장 맹장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명장이라고 하기엔 좀? 전공을 보면 항상 단기 혹은 10여기 정도로 적진에 돌진해 적장 참살같은 것들인데 대군을 지휘해서 이렇다할 전공을 보여준건 없죠. 선봉 혹은 돌격대장 정도는 가능해도 총사령관은 불가능한 타입...
6시내고환 15-01-06 23:14
   
사실 한반도 역사상 중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대부분 수성전이나 청야전술을 기반으로한 게릴라전, 수비전 등입니다. 때문에 회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 귀주대첩이 특이한 것이고, 회전에서 계속해서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 이 부분에서 웃으면 되나요?
     
실험가 15-01-06 23:19
   
왜 웃으시나요? 궁금...
     
굿잡스 15-01-08 14:41
   
천년사직 고구려나 백제의 전투 양상을 보면 단순히 수성전 어쩌고라는 말을 못하지요.

기본 고구려는 초기 약탈경제식이였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다물 정신으로

주변 여러 중소 국가들을 빠르게 복속하고 초기부터 한나라등과도 멘탕에 헤딩하면서

육박전으로 커온 나라입니다

고구려 건국자인 주몽의 사료적 부족이지 어떤 식으로 건국되고 이어졌는지 대충은 알만하죠

그기에 굵직한 고구려의 전투양샹을 보면 육박전에 공격적 전투 성격이고 상당히 적극적

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49년 모본태왕시절 후한의 깊숙한 내지인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공격

55년 태조대왕이 요서에 10성 쌓고

121년 선비(鮮卑)와 함께 요대현(遼隊縣)을 공격해 요동태수 채풍을 신창에
 
서 살해.

172년 한나라 대군을 몰살시킨 좌원대첩

311년 요동 서안평( 西安平) 점령

402년 후연의 숙군성 요서 공격

404년 후연의 연군 요서 공격

407년 고구려의 대대적 후연 공세로 멸망하고 고구려계
 
고운의 북연이 들어섬.

436년 장수태왕이 북연의 수도 조양에 대군을 보내어 북연의 물자와
 
사람을 내지로 접수할 당시 북위가 고구려의 군세에 눌려 지켜 보고만 있었
 
다는 기록이 있죠. (북위는 조양에서의 수모를 갚기 위해 고구려에 이오를 사
 
신으로 파견. 위(조씨)나라때의 3배에 이르는 인구를 가진 강국으로 뒷날을 도
 
모하자고 말함)

439년 남조 송나라가 고구려 보고 북위를 같이 공략하자고 하자 말 800필과
 
함께 북방의 유연과 3각 동맹을 맺도록 중재.

이쯤되면 북위는 그냥 고립 무원이죠.

중세시절 고려-요-송의 삼각 견제때보다 더 심각해질수 있었던 게
 
북위 상황임.

이미 우리 고구려는 만주와 남북한 일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동방문명권
 
의 패자인 태왕으로 유연과 연합해서 북방에서 다이렉트로
 
북위를 양쪽에서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남조도 배후에서 친다면 사방공격으로 떡이 될 수도 있던 상황.

이런 동북아 국제 정세를 조율했던게 고구려였고 이렇게 되자

북위에서 타개책으로 나온게 고구려와의 정략적 결혼카드로

선대부터 지속되다 북위 효문제(재위 471~499)에

이르러 고구려 공주를 원했지만 재차 거절 당하면서 결국

고구려 귀족가문인 후대 북위에 고구려계 황제로 등극하는 세종의 어머니

문소태후와의 결혼동맹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462년에 재차 고구려와 북위의 사신 왕래가 빈번하게 이루어 지는데

장수태왕시절에 이렇게 해서 43회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걸 서토식 뉘앙스로 북위의 교류를 마치

고구려보다 우위 어쩌고 식의 조공 어쩌고 식으로 쳐한 거죠.

위서 봉궤전을 보면 고구려 문자명태왕은 효문제 기간에

북위변방을 거란을 이용해서 두드리는 사건도 나오지만

북위가 이런 국제 정세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고구려와

적극적 화친을 맺는 노력을 함으로써 장수태왕에서 안장태왕 초기까지 이를
 
통해 고구려와 북위의 동맹이 어느 정도 평탄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508년 북위의 세종이 산둥일대에 고구려의 시조를 제사지내는 고려묘 설치.
 
(고구려계 세종 등극 이후 고조가 붕당을 결성하여 북위 조정을 장악해 버림.
 
이를 위해 고려국대중정(高麗國大中正)이라는 벼슬을
 
두었는데 뭔소리인가 하면 고구려인만 추천해서 벼슬에 앉히는 직책입니다.
 
이정도면 당시 어떠했는지 알만 하죠 ㅋ이후 이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고조는 세종의 사후 계략에 빠지면 고양왕에게 제거되지만 고조의 아들 고
 
식이 제주자사로 있는 등 여전히 고구려인들의 영향력을 철저히 제거하지
 
못한 이면에는 강대한 고구려가 뒷배경으로 북위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임.)
 
이후 요서일대에서 발견된 한기묘지명을 통해서 보면
 
525년에서 528년사이에 안장태왕시기에 가면 다시금 충돌이 본격화되는데

고구려는 거란을 시켜 요서 대릉하일대 조양을 공격하여 평주사마자의참군
 
한상을 잡아 오는 등 요하 건너 서쪽 2천리를 점령하는 북사등의 기록이 확
 
인되는.
 
이후

560년대 평원태왕 돌궐 격파 578년 북주와 싸우고

598년 영양태왕시기 수의 대대적인 공략준비가 본격화되자 영주 선제 공격

644년 당이 요서 영주로 집결하자 공격.
     
굿잡스 15-01-08 14:50
   
그리고 연합세력이 참가한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에 동천왕이 철기병 5천에 도합 2만을

이끌고 너무 자신감 있게 육박전하다 3차전에서 말려들었던 양상이였고(이 2만은 고구려 전군

이 아니라 고구려 태왕 아래 있던 직속 중앙군의 성격)

고수, 고당전쟁이고 대규모 전투에서도 고구려는 통일왕조 서토에 전쟁이 불가피해지자

먼저 선제공격을 강행했고 나아가 요동일대 밀집 중대형 방어 성곽이 수성전을 하는 동안

중앙대군을 파견해서 수성과 성외에서 육박전의 연합 작전을 펼치는게 기본이였습니다.


대표적 주필산 전투도 일반 모르는 분들이야 고연수 고혜진 일부 기록만 보고 고구려 15만

대군이 몰살했니 어쩌고 식으로 알고 있지만 고연수는 최고회의에서도 말단 5관등이였고

고혜진은 명암도 못내민 밑. 당시 1관등 최고 총사령관으로 엄연히 고정의가 있으면서

당 이세민의 계략에 일부 선발 부대인 고연수가 말린 것이죠.(2만정도 전사)



다시 전황이 재역전되면서 이세민 친위 6군과 이적의 흑군이 고정의의 후속 십여만 대군에

포위되어 겨우 살아 나왔고 그 과정에서 당의 고위급 왕군악이 전사, 후방의 양홍례와 유

흥기가 이끄는 병력과도 계속해서 주필산에  전쟁을 이어갑니다.  이떄문에 당군은

안시성과 밖의 고구려 대군과의 양동 작전에 말려서 제대로 고구려 내지로 발을 밟아

보지 못하고 수개월동안 발이 묶여 이후 추워지는 요동 바람과 전세를 보고 있던 후방의

돌궐의 남하에 결국 급히 퇴각을 하면서 이세민의 몰골이 말이 아닌 고초가 기록되어 나온

것이고.(애초에 고구려 15만 대군이 전멸했다면 당나라 이세민이 진작에 고구려 내지 평

양으로 밀고 들어갔겠죠)


그리고 백제의 요서경략이나 동성대왕시기 대규모 기병을 이끌고 남조 정벌을 위해

남하하든 북위 대군을 2차례나 격파하면서 당시 서토 동해안의 할양 기록등이

나오던 시대 상황등도 고구려, 백제가 단순히 수성전으로 자리만 지킨 나라가 전혀

아니였다는 사실.

이런 건 발해 무왕 역시도 산해관 일대 마도산 전투나 산둥 당의 해군시설을 박살내는

전투양상에서도 다르지 않았군요.(요양일대 발해민(숙여진)과 동만주 일대 발해민(생여진)

을 신라계가 통합하고 나온 금나라 역시도 요,송을 멸망시키는 등 상당히 공격적이였고)
열심히공부 15-01-07 10:34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아당자강 15-01-07 11:39
   
태조 이성계가 어느날 하늘에서 툭 떨어지게 아니지요. 그래서 해동육룡이 나르샤라는 용비어천가로 조상을 찬양합니다.
나가라쟈 15-01-07 14:45
   
이정도 무력+지력+매력으로 겨우 꼬딱지만한 조선반도에서 왕자리 하나 따먹은게 아쉬울 정도.

그정도 스펙이면 중원의 황제자리를 노려봐도 괜찮았을것 같았는데 말이죠.

지나가는 썰로 당시 주원장하고 만났다는 비사도 있었다던데 사실이었다면 흥미로웠을듯.
     
나와나 15-01-07 19:00
   
적어도 동북 지역에선 이성계가 천자 노릇을 했죠

우선 일국의 왕이였고, 대부분의 북방 민족들이 몽땅 이성계에 복속되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쉽게 말해 당시 이성계의 스펙은 조선의 군주+여진 군벌인데

이 정도면 명나라도 쉽게 보지 못하는 수준이죠

만약 이성계에 더 큰 야심이 있어서 명을 노렸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나와나 15-01-07 19:08
   
동북면 1도(道)는 원래 왕업(王業)을 처음으로 일으킨 땅으로서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생각한 지 오래 되어, 야인(野人)의 추장(酋長)이 먼 데서 오고, 이란 두만(移闌豆漫)도 모두 와서 태조를 섬기었으되, 언제나 활과 칼을 차고 잠저(潛邸)에 들어와서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었고, 동정(東征)·서벌(西伐)할 때에도 따라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진(女眞은 알타리 두만(斡朶里豆漫) 협온 맹가첩목아(夾溫猛哥帖木兒)·화아아 두만(火兒阿豆漫) 고론 아합출(古論阿哈出)·탁온 두만(托溫豆漫) 고복아알(高卜兒閼)·합란 도다루가치(哈闌都達魯花赤) 해탄가랑합(奚灘訶郞哈)·삼산 맹안(參散猛安) 고론두란첩목아(古論豆闌帖木兒)·이란 두만 맹안(移闌豆漫猛安) 보역막올아주(甫亦莫兀兒住)·해양 맹안(海洋猛安) 괄아아화실첩목아(括兒牙火失帖木兒)·아도가 맹안(阿都哥猛安) 오둔완자(奧屯完者)·실안춘 맹안(實眼春猛安) 해탄탑사(奚灘塔斯)·갑주 맹안(甲州猛安) 운강괄(雲剛括)·홍긍 맹안(洪肯猛安) 괄아아올난(括兒牙兀難)·해통 맹안(海通猛安) 주호귀동(朱胡貴洞)·독로올 맹안(禿魯兀猛安) 협온불화(夾溫不花)·간합 맹안(幹合猛安) 해탄설렬(奚灘薛列)·올아홀리 맹안(兀兒忽里猛安) 협온적올리(夾溫赤兀里)·아사 맹안(阿沙猛安) 주호인답홀(朱胡引答忽)·인출활실 맹안(紉出闊失猛安) 주호완자(朱胡完者), 오롱소 맹안(吾籠所猛安) 난독고로(暖禿古魯)·해탄발아(奚灘孛牙), 토문 맹안(土門猛安) 고론발리(古論孛里)·아목라(阿木刺) 당괄해탄고옥노(唐括奚灘古玉奴)이며, 올랑합(兀郞哈)은 토문(土門)의 괄아아팔아속(括兒牙八兒速)이며, 혐진 올적합(嫌眞兀狄哈)은 고주(古州)의 괄아아걸목나(括兒牙乞木那)·답비나(答比那)·가아답가(可兒答哥)이며, 남돌 올적합(南突兀狄哈)은 속평강(速平江)·남돌아라합백안(南突阿刺哈伯顔)이며, 활아간 올적합(闊兒看兀狄哈)은 안춘(眼春)·괄아아독성개(括兒牙禿成改) 등이 이것이다. 

-태조실록, 4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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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이성계에게 복속된 북방 민족들입니다
맘마밈아 15-01-08 02:27
   
이성계가 중원침공했으면 이성계는 누루하치 이방원은 도르곤쯤 되었겠죠. 이성계가 서방원정갔으면 이성계가 징기스칸 이방원이 쿠빌라이칸 되었겠죠. 한방에 크게 키워서 30년가느냐 길고 가늘게 500년 가느냐 그 차이겠죠. 적어도 당시에 동북방의 패자는 이성계였으나까요.
굿잡스 15-01-08 15:08
   
이성계가 대단한 무장이긴 하죠.

아쉽다면 요동을 조선의 관할 아래 제대로 수복 못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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