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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30 19:35
[중국] 누르 하치 짱개 정벌 준비 완료 후금을 세우다..
 글쓴이 : 심청이
조회 : 5,116  

명나라의 정치가 부패 일로를 달리고 있을 때, 중국 동북 지역에서는 여진족의 한 부족인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세력이 점차 커졌으며 그 수령은 누르하치(노이합적(努爾哈赤))였다.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 기오창가(覺昌安)와 아버지 탁시(塔克世)는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건주좌위(建州左衛)라는 관직을 받았다. 누르하치는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겼으며 무예 또한 출중했다.

누르하치

누르하치

누르하치가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건주여진의 토륜성 성주 니칸 와이란이 명나라군을 불러다가 구러성 성주 아타이(阿臺)를 공격했는데, 아타이의 아내는 기오창가의 손녀였다. 기오창가는 탁시를 데리고 구러성을 구원하러 갔다가 도중에 명나라군과 마주치게 되었다. 결국 기오창가와 탁시는 혼전 중에 둘 다 전사하고 말았다. 누르하치는 대성통곡을 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으나 힘이 모자라 명나라군과 대적할 수는 없었다.

비분을 안고 돌아온 누르하치는 아버지의 갑옷을 입은 다음 수하의 병사들을 이끌고 토륜성으로 진격했다. 니칸 와이란은 누르하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황급히 달아났고, 토륜성을 점령한 누르하치는 이 기회에 건주여진의 다른 부락들도 정복했다. 이후 누르하치의 명성은 인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몇 년 후에 그는 건주여진을 통일했다. 이에 다른 여진 부락들은 공포에 떨었다. 당시 여진족은 거주 지역에 따라 건주여진, 해서여진(海西女眞), 야인여진(野人女眞)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해서여진 중에서는 예허(葉赫) 부락이 제일 강했다. 1593년에 예허는 다른 여진 부락 및 몽골의 여덟 부락과 연합한 3만 군사로 누르하치를 공격해 왔다.

9개 부락 연합군이 진격해 온다는 말을 들은 누르하치는 적군이 오는 길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길 양쪽 산마루에 돌과 통나무를 쌓아놓았다. 연합군이 산 아래에 이르자 누르하치는 군사 1백 명을 보내어 적을 매복지로 유인했다. 예허부락의 한 우두머리가 가장 먼저 말을 몰고 달려왔다가 누르하치군이 박아놓은 말뚝에 걸려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누르하치의 군사들이 달려나가 죽여버렸다. 그것을 본 다른 우두머리는 그만 놀라 혼절해버렸고, 지휘관을 잃은 연합군은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누르하치는 승세를 타고 적군을 바싹 추격하여 예허부락을 소탕했다.

그러고나서 몇 년 후에 누르하치는 여진 각 부족을 통일했다. 그 다음에 누르하치는 여진족 사람들을 8기(八旗)로 편성했는데, 기는 행정 단위이자 군사 조직이었다. 누르하치는 명나라 조정의 감시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 해마다 조공을 바쳤으며, 그의 태도가 공손하다고 여긴 명나라에서는 그를 ‘용호장군(龍虎將軍)’으로 책봉했다.

8기군 군복

8기군 군복

8기군 군복은 서로 색깔이 다르며, 대례 때만 입고 평상시에는 입지 않는다. 처음에는 각 기의 지위가 평등했으나 산해관 안으로 들어와서는 황제가 정황기, 양황기, 정백기를 직접 영솔하게 되었으며 이를 ‘상삼기(上三旗)’라고 했다. 그 외의 5기는 ‘하오기(下五旗)’라고 했다.

누르하치 8기군이 사용했던 검, 칼, 투구

누르하치 8기군이 사용했던 검, 칼, 투구

삭자갑(索子甲) [명나라]

삭자갑(索子甲) [명나라]

철간견(鐵坎肩, 쇠 조끼)이라고도 한다. 작은 쇠고리들을 연결시켜 만든 갑옷으로 탄성이 있고 창칼을 막을 수 있었다. 8기군 장병들의 중요한 호신구였다.

1616년,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누르하치는 8기 귀족의 옹호를 받아 예투아라(요녕성 신빈현 부근)에서 ‘칸’으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금(大金)이라고 했다. 역사상에서는 이 금나라를 이전의 금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후금(後金)’이라고 한다.

천명통보(天命通寶)

천명통보(天命通寶)

천명한전(天命汗錢)이라고도 한다. 누르하치는 천명 원년(1616년)에 금나라를 세우고 붉은 구리로 천명통보를 주조하기 시작했다.
천명통보의 문자는 만주 문자와 한자 두 가지로 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후금의 통치 지역에서 유통되었다.
홍타이지(皇太極)가 즉위한 후에는 이와 다른 천총통보(天聰通寶)를 주조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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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12-06-30 19:52
   
이성량(李成樑)과 누르하치




누루하치는 보검을 뽑아들고 잠든 이성량 복부를 겨냥했다.

기합과 함께 세 차례 찌르는 시늉을 한 뒤에 보검을 내려놓았다.

             

이성량은 명에 귀화한 조선인 무장으로

많은 전공을 세워 영원백공(寧遠伯公) 작위를 받았다.




자식들에게도 관직과 작위가 수여되어 일족의 영화를 누렸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 제독 이여송이 그의 아들이었다.

             

이성량은 건주 여진 왕고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고

누루하치 아버지 타실을 좌위지휘관 삼아 건주 방위를 맡겼다.




그러나 타실도 변방에서 모반하자, 이성량은 타실을 진압하고

그의 어린 아들 누르하치와 쑤르하치를 종삼아 아들처럼 길렀다.




기합소리에 놀란 이성량이 눈을 뜨고 물었다.




이 : 왜 그랬느냐?




누 : 제가 어찌 부형의 원수를 잊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거두어 길러 주신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보검을 겨눈 것은 원수를 갚았음이요,

    보검을 거둔 것은 은혜에 보답함입니다.




이성량은 자기 아들들이 알까싶어

이들 형제에 준마를 내주며 멀리 떠나도록 배려했다.




            누르하치와 애신각라(愛薪覺羅)




그 뒤에 누르하치는 수르하치를 죽이고

그 추종자와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후금을 세웠다(1616년).




이어 명을 무너뜨리고 대륙을 통일한 다음 국명을 청이라 했다.

중국본토 역사상 제일 큰 영토였다.(1636)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는 성을 애신각라(愛薪覺羅)로 바꾸었다

신라를 사랑(愛薪)하고 신라를 생각(覺羅)한다는 의미였다.




애신각라(愛薪覺羅)의 몽골어 발음은 아이신 지료 인데

아이신은 김(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곧, 애신각라는 신라 왕실 성인 김씨 겨레라는 말이다.




          아버지나라→ 형제나라→ 신하나라




누르하치 때에는 조선을 아버지 나라라 여겨 충돌이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숭명배청(崇明背淸) 사대외교의 고집으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의 동족상쟁 전란을 맞았다.




정묘호란 때 아버지나라가 형제나라가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신하나라로까지 된 것은 조선이 자초한 셈이었다.




금(金: 신라 김씨)을 세운 아골타가 신라인 김함보 후손이었고,

금이 망한지 382년만에 후금을 세운 누루하치 역시 그 후예였다




더욱이 누루하치는 조선인 이성량의 손에 자랐으니

뼈아픈 자충수에 의한 자승자박 역사기록이 아닐 수 없다.
[출처] 뼈아픈 역사의 교훈 : 누르하치와 조선 |작성자 선효후문
크라바트 12-06-30 23:25
   
뿌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성까지 바꿨다는 혈족 주제에 명을 도와 청을 쳤던 것도 아니고 그냥 명을 계속 섬겼다는 이유로 병자호란을 일으켜 죽여댔다니.. 어떻게 그런 웃긴 이유가 단지 자충수라는 한마디 말로 책임전가시킬 수 있는건지 알 수가 없네요.
친척조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조카가 숙부집에 와서 캥판을 놨고 집까지 불로 싸질러 버렸다면 요즘은 그걸 자충수라고 표현하는가 보죠?

그리고, 하나 더 궁금한 건 후금의 금이 김에서 나왔다는데, 그럼 그 전에 있었던 송대의 금도 김에서 나온 건가요? 솔직히 애신각라의 그 뜻도 금을 김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어거지로 끼워맞춘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좀 .. 그렇습니다.

아무튼 확실하게 청왕조의 후손들과 인터뷰를 해서 그들의 입으로 유래를 직접 듣고 확인하지 않는 이상엔 믿기가 힘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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