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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20 23:08
[중국] 명나라의 막장 황제 F4
 글쓴이 : 한시우
조회 : 5,189  








그리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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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러하다..........(명나라 황제 옷이 조선 왕의 옷과 비슷하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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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만개 12-05-20 23:27
   
명나라의 조선출병에 관한 야사중에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한국사 傳 01 인연, 조선의 운명을 바꾸다. - 역관 홍순언 편이죠~

홍순언이 중국에서 우연히 도움을 준 여자(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를 구해준 인연으로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된 석성(석성은 명나라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상서로 승진) 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내죠

이후 석성은 임진왜란에서 너무 많은 군비를 썼다고 투옥당한후 옥고로 죽고 그의 일가족은 조선으로 귀화하죠.....

황해도 해주 석씨들이 그 후손입니다
바나나만개 12-05-20 23:38
   
홍순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남편인 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생애 초반그의 가계는 남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이었으나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다. 처음 이름은 덕룡(德龍)이고 자는 순언이었는데 뒤에 순언을 본명으로 쓰게 되었다. 동생인 수언과 이복 동생인 덕린이 있었는데, 동생 수언은 1549년의 역과에 급제한 인물로 한어역관으로 활동하였다. 이복 동생인 덕린의 후손이 뒤에 일제 강점기 당시 위당 정인보를 찾아가 선조인 홍순언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을 써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서출이었던 홍순언은 일찍이 한어(漢語)를 익혀 한어역관이 되었다.

할아버지 홍경창(洪慶昌)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안동부사(安東府使)등을 역임했고, 큰아버지 홍신(洪愼)은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 양주목사(楊州牧使), 형조참의(刑曹參議), 공조참의(工曹參議) 등을 역임하고 1539년(중종 34년)에는 명나라에 진하사(進賀使)로 다녀오기도 했다. 아버지 홍겸은 1531년 역과에 급제하여 명나라에 두 번 역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서자였고, 조선 명종, 선조 때에 한어역관으로 활동하였다. 종계변무는 명나라의 백과사전 대명회통과 태조실록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로 기록된 것을 수정하기 위해 태종 때부터 파견된 사신이었다. 명종 때에도 사신이 파견되어 명나라 조정에 종계변무를 요청하였는데 홍순언은 역관으로 동행하였다.

[편집] 류씨 소녀와의 인연명나라 연경에 체류 중 명나라의 예부 관원은 사신들을 대접한다며 홍등가로 데려갔다. 이때 홍순언은 그중 가장 값이 비싼 금 3천냥을 해어화채(解語花債[1])로 제시한 기생의 방에 들게 되었다.

그가 들어간 방의 기녀는 용모가 준수하였으나 소복으로 슬픈 모습이었다. 홍순언이 기녀에게 사연을 물은 즉 소녀의 성은 류씨로,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이다. 그러나 아버지 류모가 공금횡령 혐의로 누명을 쓰고 옥사하고 모친마저 죽게 되자 부모의 장례를 치를 사람과 비용이 없었고,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방으로 팔려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왕 첫 정을 바칠 바에는 용렬한 사내에게 정을 주느니 통이 큰 사내에게 정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홍순언은 대죄하여 무릎꿇고 '작은 나라의 미관 말직 벼슬아치가 어떻게 대국의 귀한집 따님을 욕보이겠습니까' 하며 부복하여 절을 올리고, 자신이 가져온 돈 2천 냥과 인삼을 그녀에게 주었다. 2천냥과 인삼을 팔아 마련한 돈 1천냥으로 그날로 류씨 소녀의 빚을 마련해주고 장례비용까지 마련할수 있었다. 류씨 소녀는 거듭 감사하다 하며 그에게 성과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자신은 그냥 조선의 홍역관이다.[2]라고 했다. 류씨소녀는 은장(恩丈)이라 하며 거듭 감사를 표시했고, 그는 친히 소녀를 배웅하였다. 조선의 역관들은 조정의 허락 없이도 사적으로 인삼과 비단 무역이 가능했는데, 동료 역관들은 이 것을 공짜로 류씨 소녀에게 주고 온 그를 바보라고 놀려댔다. 도리어 그가 류씨 소녀에게 준 2천냥의 돈이 공금이라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석방되었다.

이후 동료 역관들은 홍순언이 명나라에서 소녀를 구한 사실을 물었으나 그는 덮어두라며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기방에서 석방된 류씨 소녀는 홍순언이 준 3천냥으로 빚을 청산하고 부모의 장례를 치룬 뒤 아버지의 친구였던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집에 하직인사차 들렸다. 오갈데 없던 그는 당시 석성의 본부인이 병환을 앓고 있었으므로, 석성 부인의 병구완과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류씨 소녀의 지극정성의 간호에도 석부인은 병환의 차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자신의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에 감격한 석성은 류씨 소녀를 자신의 계비로 맞이하였다.

석성은 예부시랑으로 있다가 뒤에 병부시랑을 거쳐 예부상서로 승진했다. 류씨 소녀는 하루하루 황금 비단을 손수 짰는데, 병부시랑 석성의 후처가 된 뒤에도 류씨부인은 밤마다 직접 비단을 계속해서 짰다. 비단에는 보(報)와 은(恩)이 쓰여 있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석성이 류씨 부인에게 사연을 묻자 류씨부인은 아버지 류모의 빚과 장례비 마련이 어려워 기방에 갔던 일과 홍순언을 만난 일을 고백하였다. 석성은 동이족 중에도 의인이 있다며 그 기상을 칭찬하였다.

이후 조선에서 사신이 파견될 때 홍역관이 왔느냐는 질문이 계속되었다. 여러 번 정조사와 동지사, 종계변무 사신이 파견될 때마다 명나라 예부에서 홍역관을 찾으므로 이상하게 여긴 사신들은 귀국 후 이를 조선 명종과 조선 선조에게 보고하였다.

[편집] 종계변무 성사선조 때인 1588년(선조 21년) 종계변무 사신으로 대제학(大提學) 황정욱(黃延或)을 종계변무사로 홍성민(洪聖民)을 부사로 파견했다. 이때 홍순언은 종계변무사절의 역관으로 파견되었다.

변무사절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 예부상서 석성이 요동의 국경까지 영접나와 홍역관이 왔느냐고 물었다. 그가 자신임을 밝히자 홍순언은 장인어른 큰절을 받으라며 그를 친히 모셔갔다. 이상하게 여기던 중 베이징의 관사에 도착하자 귀부인이 나와 그에게 큰절을 올렸는데 이는 그가 명종 때 구해준 류씨소녀였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대와 같은 의인이 있었다며 후히 대접하였고, 황정욱과 그가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에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로 기록된 내용이 잘못이고, 이성계는 이자춘의 아들임을 황제에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명나라의 대소관리들은 당대에 수정하지 않고 이제와서 계속 번거롭게 구느냐며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당시 예부상서였던 석성의 적극 건의로 대명회통과 명나라 태조실록이 수정되어 이성계는 이인임의 아들에서 이자춘의 아들로 개정되었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사절단은 귀국하였는데, 류씨 부인은 손수 짠 보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비단 1백 필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일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라며 비단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사신이 탄 말이 압록강에 이르렀는데 류씨부인과 하인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짐승도 은혜를 아는법인데 사람이 되어 은혜를 모른다면 그것은 금수만도 못한 것이라며 비단을 받기를 거듭 부탁하며 하소연하니 비단을 받아서 되돌아왔다.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공으로 홍순언은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고, 면천 허통하여 당성군(唐城君)에 책봉되었다.[3]

그뒤 작위는 당성군에서 당릉군으로 개봉되었고, 우림위장(羽林衛將)이 되었다. 이후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

[편집] 임진왜란 파병 성사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조선 조정에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청병사신을 파견하게 되었다. 홍순언은 청병사신으로 북경에 갔다. 이때 조선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바칠 뇌물을 마련하여 그에게 주었으나 진심으로 설득해도 설득이 될까말까 한데 어찌 뇌물로 매수할 생각을 하느냐며 대신들을 호통쳤다.

그가 베이징에 도착하여 조선이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조국 정벌 음모를 접했음에도 이를 거절하다가 침략을 당했다며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명나라의 관리들은 조선이 일본과 짜고 명나라를 토벌하려 하는 것은 아니냐며 조선 지원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당시 병부시랑으로 있던 석성의 도움으로 명나라 군사 5만 명의 파병을 성사시킨다. 석성을 통해 그의 의기를 접하게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선뜻 가겠다고 자청했고,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고 한다.

관직은 자헌대부에 이르렀고, 1598년에 병사하니 향년 68세였다. 사후 조선에서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증직되었고, 명나라로부터는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의 증직을 받았다


-위키백과-
fuckengel 12-05-20 23:48
   
후사업시 꼴깍해서 신하들이 다음황제를 추대해야할상황에 놓일때 법칙처럼 벌어지는일이죠..

즉,,신하들말 잘듣고 정치잘 모르고 어리버리해서 요리하기조은 군주뽑는데는 당파안가리구
모든신하들이 이상하게 의견일치를 보이는현상이죠.. 공통조건은
1.가문에 유력한 실력자가 없을거
2.교육을 많이 못받았을것(글알정도만 )
3.똑똑한넘은 절대 안됨..
4.정치보다 주색잡기등의 다른데 더 관심이 많을것,,
가샣이 12-05-21 00:29
   
명나라를 신라 김함보의 후손이 정복하면서 조선-청나라의 남북국시대가 열립니다.
식민지 원주민들이 감히 명나라를 세우고 발악을 해봤지만 금방 망해버리고 다시 원래대로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조선-청나라는 중국을 정복한 한민족의 남북조시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26450
     
웅크린하늘 12-05-21 01:45
   
아하 그렇군요 ~
너끈하다 12-05-21 16:43
   
전에 중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중국에 대한 애국심 개쩜) 중국애한테 들었는데
명나라때 무슨 왕은 동생이랑 외국 여행 좋아해서
궁에 있던 보물들을 밖으로 빼돌려 팔았다고 하던데.
저 위에 왕중에 그 넘이 있을꺼같다능 .ㅡㅡㅋ
그 넘아 덕분에 그 시기에 나온 국보들은 다 흩텨져서 유독 비싸다고 함.
물론 젤 비싼건 원나라때 물건. 그 땐 몽골애들의 장례풍습땜시 정말 희귀.
얼마전에중국 국보 경매 티브로 같이 보는데 1억위안 그냥 훌쩍훌쩍 넘기는거 투성임.
     
mymiky 12-05-21 17:24
   
명나라때 어느 황제가 보물을 빼돌려 팔았지요? -.-; 황제가 외국여행 좋아할 필요가 있나?
기껏해야 강남순례정도일텐데...
제가 알기론, 청의 마지막 황제 부의와 그의 동생 부걸이, 자금성에 있는 보물들 빼돌린 것으로 유명했다고 알고 있음.. 청말기 막장시대이고, 부의가 영국으로 공부하러 가고 싶어했거든요. 아마, 내 말이 맞을듯..
네, 원나라 유물, 특히 원대의 청화백자는 가격이 ㅎㄷㄷㄷ한답니다..
우오오오 12-05-21 20:56
   
명나라는 한족이 세운나라 인데 개찌질 왕이 많아서 백성들이 힘들었죠.
오히려 이민족이 세운 청나라가 명군이 더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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