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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20 10:07
[기타] 신미양요와 사쓰에이전쟁을 보니까...
 글쓴이 : 투치
조회 : 5,181  

그래도 전투에서 패배한 망정 전쟁에서는, 그리고 외교에서는 나름 이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일본의 사쓰에이 전쟁의 결과를 보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사쓰에이 전쟁
사쓰에이 전쟁중 가고시마 만의 조감도
사쓰에이 전쟁중 가고시마 만의 조감도
날짜 1863년 8월 15일 ~ 1863년 8월 17일
장소 일본 가고시마현
결과 승패에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음
교전국
영국 영국 Japanese Crest Simazu Jyumonnji.svg 사쓰마 번
지휘관
영국 어거스터스 레오폴드 큐퍼 Japanese Crest Simazu Jyumonnji.svg 시마즈 다다요시
Japanese Crest Simazu Jyumonnji.svg 시마즈 히사미츠
병력
영국 해군 수병 및 육전대 사쓰마번 무사
피해 규모
13명 전사, 50명 부상 비전투원 5명 사망, 18명 부상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C%93%B0%EC%97%90%EC%9D%B4_%EC%A0%84%EC%9F%81

 

 

사실 나마무기 사건같은 걸 보고 아, 일본도 별 수 없구나 생각했는데

 

교전비를 보니 뭐.......그렇게 촌스러운(?) 대처를 한 일개 번이 그정도의 무력을 갖춘 줄은 몰랐네요. 잘하면 당시 조선을 점령할 거 같은 느낌마저 들더군요.

 

아니, 수백명이 전사하고도 적군을 1명도 제대로 사살하지 못한 신미양요같은 걸 보니 전쟁에서의 승리? 그래도 정치에선 이겼다?

 

라고 자부하던 제 자신이 부끄럽더군요.

 

거기다 전쟁 결과를 보고 양 수뇌부가 대처한 방안도 서로 다른 게 참..... 

 

그렇게 무참하게 박살나고도 쇄국을 강조하는 측하고, 의외로 선전했음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개항으로 선회한 측을 보니...(솔직히 가장 무서운 게 이거인 거 같더군요.)

 

뭐, 동학 농민운동 당시 일본군이 경복궁을 습격할 당시 조선군의 무장 수준을 보고 일본 측에서 경악했다는 말을 얼핏 듣긴 했습니다만...줄루 전쟁이나 이런 걸 보고 전쟁이 무조건 무기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 걸 알지만...그래도 솔직히 좀 비교되긴 하네요. 

 

 

참고로 위키 백과에 나온 신미양요 전적

 

신미양요
전멸한 광성보의 조선군.
전멸한 광성보의 조선군.
날짜 1871년 6월 1일 ~ 1871년 6월 11일
장소 강화도 일대
결과 미국의 전술적 승리
미국의 목표인 조선의 개방을 이루지 못해 전략적 패배
미국의 외교 실패
조선의 통상수교거부정책 강화
교전국
조선 조선 미국 미국
지휘관
수자기.png 어재연
정기원
이현학
김현경
박치성
유예준
US Naval Jack 37 stars.svg 존 로저스
US Naval Jack 37 stars.svg 윈필드 스콧 슐레이
병력
불명 군함 5척, 대포 90문, 병력 800명
피해 규모
243명 전사, 100명 익사, 20명 포로 3명 전사, 10명 부상

병인양요는 그래도 좀 양호한 거 같네요

병인양요
FranceGanghwa.jpg
날짜 1866년 10월 26일(음력 9월 18일) ~
1866년 12월 17일(음력 11월 11일)
장소 강화도 일대
결과 프랑스군의 철수
조선의 통상수교거부정책 강화
중국 일대의 반서양 감정 고조
톈진 교안의 원인 제공
교전국
Flag of the king of Joseon.svg
조선 왕국
Civil and Naval Ensign of France.svg
프랑스 제2제국
지휘관
훈련도감 중군(중앙군 부사단장) 이용희
이경하
순무천총(토벌군 연대장)양헌수
이기조
훈련대장(중앙군 사단장)신관호
순무영 초관(토벌군 중대장) 한성근
해군 소장 로즈
해군 대령 올리비에
해군 중령 보쉐
병력
불명 해병대 1230여 명[출처 필요]
전함 1척,
순양함 2척,
포함 2척,
통보함 2척
피해 규모
사상자 불명(정족산성 전투에서 1명 사망, 4명 부상)

(문수산성 전투에서 4명사망, 2명부상, 2명 실종)

3명 사망, 35명 부상

 

 

 출러: http://www.fancug.com/bbs/board.php?bo_table=freeboard2&wr_id=2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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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 15-11-20 19:22
   
영국군과 번군의 자세한 병력이 나와있지 않은데, 어떻게 비교가 가능한지.
님글을 토대로 보면, 프랑스 미국은, 해군 병력이 대단한데, 전함이면 당연 함포 지원도 있었을 것이고,
근데, 영국군의 자세한 병력이 어떤지. 미국-프랑스 처럼이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님글을 통해선 알수가 없고.
karin123 15-11-20 21:17
   
신미양요는 솔직히 저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걸요. 당시 조선의 목적은 통상수교거부였으니까요. 미국은 이겼어도 목적한 바를 이루진 못했으니, 조선입장에서는 군사적으로는 패배였어도 이겨낸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을 겁니다.
Centurion 15-11-20 22:46
   
딱 봐도 나오지만.. 1863년이면..
페리제독 때 개항한 뒤로 이미 10년이 지난 때입니다.

사쓰마번이 기선을 갖고 있는걸 보면 알겠지만..
쟤네들은 이미 무기만큼은 나름 유럽제 무기로 무장한 상태였죠.

당시 사쓰마번은 150 파운드의 대형 캐논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http://kairowiki.shiawase.co.uk/lib/exe/detail.php?id=et%3Aphoto_gallery&media=et:gallery:img_8649.jpg
무려 사거리가 3Km 짜리로 말이죠.

죠슈번도 무게가 1톤이나 나가는 서양식 18파운드 대포(복제 생산)로 무장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항해 싸우는 유럽함대는
이미 암스트롱포라는 주퇴복좌기의 혁명에 힘입은 새로운 포를 탑재하기도 했지만..

당시 일본애들은 그래도 사거리나 화력면에선 해볼만한 싸움이었던 것이고..

반면, 조선군은 일찌감치 병자호란쯤에 유럽식 홍이포(=캘버린포)를 접하고, 복제에도 성공했습니다만..
화약이 많이 들고, 무겁다는 이유로 실전배치와 대량생산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화도에는 사거리 수백미터도 채 안되는 중,소형대포들이 많았구요.
그나마도 방향조절이 안되고 성곽의 구멍에 발사 방향이 고정된 대포였죠.
그래서 쏴도 맞지도 않고.. 방향도 적선이 지나갈 때 타이밍에만 쏘면 끝인 상황이었죠.

조선군이 압도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일본군이 상대적으로 서양함대에 타격을 입힌건 전적으로..
이러한 육상포대의 퀄리티 차이입니다.

그리고 그런 촌스러운(?) 일개 번이 나중에 도쿠가와 막부를 쓰러뜨리고 일본을 차지하는 세력이 되죠.
그만큼 외국과의 교역이 빈번한 핵심 무역항을 갖고 있었고, 나름 경제력으로도 일본에서 손꼽히는 지역이죠.

이게 임진왜란 이전부터 남만상인과 쭉 교류하고,
페리제독으로 인한 개항 이후 서구권과 10여년 간 집중적으로 배우고 익힌 효과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게 당시 일본입니다.

저 1863년에서 5년이 지난 후에 신식무기로 무장해 싸운 내전인
보신전쟁을 거쳐 메이지유신이 이뤄지구요.

조선은 신미양요, 병인양요 때 그런 서양과의 교류나 서양 과학기술의 습득 같은게 없는 상태나 다름없었구요.
실학이라는것도 비주류지만, 그나마도 청나라 거쳐서 오는거 배우는 것이고, 서양무기 제조법 같은건 알지도 못했죠.
그나마 배울 기회는 병자호란과 나선정벌 때쯤에 있었지만, 실전에 써먹을 일이 없으니,
홍이포도, 수석식 머스켓도 복제해서 개량하려다 말았죠.

반면, 일본은 사쓰마번(시마즈)과 죠슈번(모리)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한 서군 잔당이라..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반감과 자체적 무장의 필요성을 항시 느끼던 반 막부세력이었습니다.

뭐.. 어쨌든...
결론적으로 보면.. 조선이 무능한 부분도 있지만..
일본은 수백년 간에 걸친 서양과의 교류와 개항 10년의 세월의 혜택을 무시못하고..
조선은 외부세계와 교류가 이뤄지지 않은 불행도 겪었단 점이죠...

그래서 단순비교가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한쪽은 20년 공무원시험 준비한 학생이고,
한쪽은 두메산골에서 살다가 도시에 갓 상경한 학교도 못다녀본 소년인데..
누군 공부할 시간 주고 시험치고, 누군 그럴 시간도 없이 공무원 시험을 쳤는데..
비슷한 성적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남궁동자 15-11-21 01:03
   
북한이 유럽국가중 몇몇국가보다 군사력은 강하죠.ㅋㅋㅋㅋ
국산아몬드 15-11-21 16:08
   
사쓰에 번은 일개번이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발달한 번이고 일본 무력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영국이 방심한 탓도 있고 좁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포격에 취약한 구조였습니다.
한번의 전투로 국력을 따지는 건 성급한 태도입니다
흐아앙 15-11-22 19:01
   
사쓰마번은 개항 전에도 서양식 포로 무장하던 곳이였습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두쪽 다 지대로 붙었다 해도 교환비가 신미양요처럼 개막장은 아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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