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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19 01:54
[세계사] 동북아가 서구식민지가 안된 이유
 글쓴이 : Irene
조회 : 5,181  

동북아는 동남아와는 다릅니다.
동남아는 인구가 적은 소국들의 지역이었습니다.
동남아의 지금 인구는 6억이지만 본격적으로
식민지화된 18세기 당시에는 동남아 전체인구가
3천만명 수준으로 일본보다 조금 많은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1천만이상)
특히 베트남이 1천만정도였고 다른 지역은
다 합쳐서 2천만명 수준이었죠..
거기에 유럽에서 인기있는 향신료의 생산지이고
중국과의 무역로로서 가치가 있어서 수백년에
걸쳐 식민지로 점령해났지만 동북아는 상대적으로
대국이고 중앙 집권 국가인데다가 거리가 유럽에서
가장 멀어 서구가 동북아에 무력을 투사할 능력을
가진건 19세기 중반에나 겨우 가질수 있었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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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16-11-19 06:02
   
서구 제국이 아프리카 아시아를 식민지화 하는데는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게 아니에요.
물어 봅시다...

조선이 일본에 점령당할때 대규모 병력이 와서 먹었나요?

임오군란때(연결되어 동학혁명때) 일본에서 조선에 파병한 병력은 2만도 안되요.
임란땐 15만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임란땐 안먹혔는데, 임오군란 후엔 먹혔죠. 그게 병력 때문인가요?


그렇게 대규모 병력이 필요했다면, 포르투갈(당시 인구 몇백만 수준)은 어떻게 식민지를 만들었고, 네덜란드(역시 백여만 정도)는 어떻게 식민지를 만들었을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프리카는 군소 부족들(왕국이라면 왕국) 사이에 갈등이 있었어요.
서구 제국은 그걸 이용하는거죠.
영국이 남아공을 식민지 화 하는데는 보어전쟁이 컸습니다. 보어 전쟁의 당사자는 영국이 아니었어요.
영국은 꼽사리로 낀거죠.

영국이 인도를 먹을땐 어땠나요?
별거 없어요. 세포이난을 배경으로 겨우 그걸 진압한걸로 무굴제국을 먹었고, 그걸로 인도를 삼켰어요.
거기에 병력이 수십만이 동원된게 아닙니다. 영국 병력은 몇천, 나머지 1만 정도는 용병이었어요.

예컨데 식민지화는 병력만으로 하는게 아닙니다.
     
촐라롱콘 16-11-19 10:37
   
먼저 사실관계 차원에서.....

임오군란 당시 일본이 조선에 동원한 병력은 2만이 아니라 2천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임오군란에는 청나라군 또한 5천명이 동원되었기 때문에 숫적으로 밀린
일본이 청나라에게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이 동남아시아 일대에 거점을 마련하고(인도 고아, 말라카, 마카오,
동티모르), 네덜란드가 비교적 거대한 인도네시아를 영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포르투갈은 해안 몇몇 일부지역에 거점을 마련하는 것으로 그쳤고...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것은 17세기부터였지만 정작 인도네시아 전역을 장악한 것은
200년 이상이 흐른 19세기에 들어와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또한 16세기부터 루손섬을 포함한 필리핀지역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마찬가지로 현 필리핀 지역전체 장악을 완료한 것은 19세기에 접어들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 등의 서구세력은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인구가 적고
여러 왕조와 부족으로 분열된 동남아일대를 각개격파해가며 장악하기는 했지만...

정작 lrene님이 언급하신대로 국가규모가 크고 상당한 문명과 군사력을 갖추었던
동북아일대에서는 식민지를 획득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보어전쟁의 당사자에 당연히 영국이 중심에 있습니다.
보어전쟁 자체가 영국과 당시 남아프리카 일대에 진출했던 네덜란드인들의 후손인
보어인들과의 전쟁이었는데.....????

그리고 보어전쟁에서 영국군은, 병력으로 차출가능한 인원이 최대 5~6만명에 불과한
보어인들의 저항에 상당히 고전하였으며.... 전쟁 기간을 통틀어 누계 총병력 무려
25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축차 투입하여 보어인들을 겨우 제압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당시 영국군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 전쟁이었습니다.

당시 영국본토를 비롯하여 전 세계 대영제국의 병력규모 60만 가운데 근 절반 가까이가
투입되어 겨우 보어인들을 진압했으니...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어전쟁은 영국에게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하여....
보어전쟁을 계기로 군사력 전반에 걸친(전략-전술, 병제, 무기-장비체계....)
전면적인 개혁이 이루어져 10여 년 후에 밀어닥친 1차세계대전에서
파국을 면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yj12 16-11-19 13:13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전체를 점령하게 된건 19세기가 아니라 20세기초입니다.
               
꼬꼬동아리 16-11-21 16:19
   
7먹이주지마세요 촐라롱콘 저거 엄청난 일뽕입니다
 일본까고 한국칭찬하면 눈에 불을켜고 달려드는데다 팩트도 없고 가지고 오라해도 가져오지도 못합니다 자기가 역사학자들보다 똑똑한줄아는 자기도취에 빠진 무뇌충으로 보심됩니다 글은 그럴싸하게 적는데 말이안되는 소리에 팩트 전혀 제시못합니다
타샤 16-11-19 06:26
   
가장 손쉬운 예로 516 쿠데타가 있습니다.

정권을 뒤집은건 시민혁명이었어요. 시민혁명의 구심점이 목표가 흐려졌을때(정권 타도라는 목표가 성취되서 다른 목표라는게 없었죠) 그걸 파고든 겁니다.
아마, 이승만 정권이라면 쿠데타는 없었을겁니다. 있었다면 박정희는 사형당했을거구요.

내부적인 갈등을 이용하는겁니다.

박정희를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라고 가정한다면..
419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뿌락치를 심어서라도 그걸 만들었을겁니다.
그리고 먹는거죠.

독사는요. 독이 있기 때문에 먹이에 집착하지 않아요. 그냥 독니만 박아두고 기다립니다. 힘이 다 빠져서 죽을때까지...

이게 식민지화 하는 비법입니다.
     
Marauder 16-11-19 14:41
   
분열의 여지가 매우 많은 동남아보다 중앙집권형태로 여지가 적은 동북아가 먹기 더어렵다는 사실같은데요
     
볼텍스 16-11-19 17:18
   
독을 심어두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내가 다치기 싫고, 상대가 나보다 최소한 대등하다고 생각 될 때 입니다.
국가 대 국가로 바꾸면 이 독이 결과를 나타내는데는 최소 1세기가 걸립니다. 1세기 동안 독이
중화되어 사라질 수도 있죠. 당시 식민지 정책이 자원확보였다는걸 보면 전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군소부족 연합체였던 동남아를 직접적 식민지화에 성공한 것도 장시간이 걸린 일입니다.
동북아같이 중앙집권이 탄탄한 나라, 청, 조선은 언감생김 꿈도 못굽니다. 더불어서 그 당시 정치체제는 동북아가 더 선진형태였습니다.
그리고 5.16은 우연의 산물입니다. 박정희는 군내부에서도 소장파였을 뿐입니다. 군의 주축세력들이 거부했다면 바로 축출되었을 겁니다만, 그렇게 되면 다시 북의 공격을 받을 우려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 겁니다. 그 사이 결국 미국의 용인이 결정적인 성공 사유가 되버린 겁니다.
전두환과 같은 이유죠.
     
킹캡틴 16-11-19 21:30
   
적정한 비유가 아닙니다.
어그로로 보입니다.
호두룩 16-11-19 20:19
   
거리 문제가 생각보다 심합니다.
현대전도 거리가 멀면 전투가 힘들죠
킹캡틴 16-11-19 21:40
   
서구 열강이 봤을땐 자원이 그다지 많은것 같지도 않으면서 정치와 행정이 안정되어 있는 한국이나 일본을 식민지화하기는 역부족이지 않나 싶습니다.
신미양요 등 서구열강의 침략에 우리가 만판 깨졌지만 병사 하나하나가 불굴의 투지를 보여줬기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 정복하기에는 어려웠을겁니다.
그렇게 노력할 자원이나 영향가도 뚜렷이 안보이고...
우리에 대한 정보는 일본이나 청나라를 통해 어느정도 알고 있고 천주교 선교사를 통해 알고 있었을걸로 보이는데 그당시 조선은 선비의 나라이니 하면서 귀금속이 귀했고 검소한 장례절차로 인해 왕의 무덤을 파도 그 흔한 금딱지 하나 안나오는데 굳이 피흘리며 들어갈 이유도 없었겠죠.
그러니까 일본이 미국과 유럽에 한국을 먹겠다고 했을때 동의한 것이겠죠.
그런데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는게 우리에겐 치명적이었습니다.
피도 안흘리고 서구열강이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에서 했던 방식을 통해 꿀꺽한겁니다.
원통하고 비통한 일이지만 그 부역자의 자손들이 지금의 정치권에서 리더로 있는 작금의 현실이 저를 슬프게 하는군요.
rozenia 16-11-20 04:50
   
먼 이유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명분과 실질적인 이유가 필요했겠죠. 차, 향신료, 노예, 거점 등 수많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시는 바와같이 한국 땅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지리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시장을 가정한 인구면에서도 재정적인 부분에서도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피했다가 보다는 있는지도 몰랐다 정도죠.

식민지화 할 이유가 없었다 혹은 욕심이 안났다 정도겠죠. 아프리카나 인도야 영국에게 향신료, 차, 노예등의 다양한 무역과 해당지역경제와의 교역 등 이익선에 놓여있지만 동방에서 그것도 극동에서 이윤이라고는 중국정도 였던거죠.

대량의 인구와 풍족한 물자, 이는 거대한 소비인 동시에 거대한 생산이니 물론 일본도 정도이상의 경제력과 인구를 동반한 매력적인 국가이겠으나 바로 옆에 중국에 비할바가 아니었죠. 근데 그에 비해 조선은 인구면에서도 작다고 할 수는 없으나 굳이 먼저 가야할 욕심나는 요건이 아니었던 거죠.

서구에게 일단은 중국이었을거고 그다음이 일본이었던 겁니다. 여기서 식민지배를 하기엔 중국은 너무 크고 일본엔 너무 다양한 열강들이 한거번에 들어왔습니다.(미국이 개항시키면서 이미 들어와있던 포르투칼과 네덜란드 이외에 10년안에 영국 20년안에 서구 5강이 그대로 통상조약을 체결) 일본이 개항되던 시기쯤은 이미 오래전 영국과 네덜란드가, 그리고  1790년대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전쟁을 대규모로 치르면서 암묵적으로 초창기 식민지시대와 달리 선점한 식민지를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극동 즉 중국, 일본, 조선에 도달할때쯤 아메리카와 중태평양, 인도지역이 식민지화 되었고 바로 지중해 넘어 1880년대 아프리카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적인 식민지확가 이루어졌죠. 미국역시 서부개척과 영토매입 등으로 1850년대 까지 내부적으로 집중하던 시기였구요.

가장 식민지적 성향이 짙었던 영국과 프랑스에게 중국은 점령하기에 너무 거대했고 불가능하진 안더라도 이미 인도에 북아메리카에 남아시아에, 인도에, 아프리카에 광대한 식민지를 지배하는것 만으로도 벅찬 실정이었습니다. 당시 유일무구했던 거대한 해군력을 운영하면서도 사실 지상군을 대량으로 운영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때문에 보어전쟁 당시에도 용병을 고용하기도 했구요.

프랑스역시 1810년 나폴레옹의 대전쟁을 겪고 경제적인 난재와 영국과의 식민지경쟁에서 잦은 패전과 이미 소요된 경비 등의 이유로 대병력을 전개할 재정은 아니었죠.

중국은 참으로 맛있어보이지만 점령하기엔 너무 컸으니, 결국 두차례의 전쟁으로 (아편, 에로우) 불평등조약을 맺고 병력을 주둔시키고 이권을 갖고 무역을 강요하는 선이 한계였던 겁니다. 그 이후 1880년대에서 1890년대를 넘어가면서 식민지전쟁의 가라앉았습니다.

아프리카식민지 쟁탈전이 끝나고 이미 식민지정책에 선두에있던 영국 프랑스는 있던 식민지관리하는데도 힘겨워했고 무엇보다 독일이 통합되면서 경제적, 산업적으로 거대한 성장을 하면서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유럽을 새로운 질서로 재편하면서 영국을 긴장하게 만들었죠.

여기에 1880년대 젊은 독일황제가 즉위와 동시에 말그대로 기존의 열강들을 언젠간 제압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전쟁을 대비해야하는 상황이 됩니다.

즉, 이미 식민지를 추진하기에 능력이 포화상태였고 더불어 독일의 대성장으로 유럽전체가 긴장상태로 돌입. 이상황에서 이렇다할 매력이 보이지 않는 조선이 눈에 들어올리 없고 영국의 대리전 각으로 일본이 키워졌고 중국은 내버려뒀더니 의화단의 난으로 완전히 조약이상으로 특정 지역 및 지방에 대한 이권전체가 각각의 열강에게 넘어가버렸습니다.

딱히 독일걱정하기에도 바빴는데 저기 멀고먼 중국 일본 한국땅에 대규모병력을 보내는 자충수를 두기가 어려웠죠. 무엇보다 영국해군력을 압도하겠다던 독일은 매년 미친듯이 전함을 건조해대는 바람에 오히려 극동의 영국해군마저 본국으로 돌려질 정도였으니까요.




어찌보면 독일덕에 식민지화가 덜된걸지도 ;;;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 아 혹자들은 우리 혹은 동방국가들의 끊질긴 저항의 성격때문에 서구가 질려서 밀려났다 혹은 포기했을 수도 있다라고 하는데, 역사속에 중국에들은 소규모 영국군에 도망가기 바빴고 일본애들은 군함4척에 개항, 물론 그 이후로 4국연합게 불과 1개 번따위가 개기는 등의 성격보여주는 똘끼 넘치는 사건들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동북아 국가들보다 저항이 심했던 나라는 많았습니다.

그냥 가장 마지막에 남은 지역이었고
중국이 가장 먹음직 스러웠는데 너무 거대해서 점령할 엄두를 못냈고
일본은 굳이 한개 열강이 점령할 이유가 없었고
조선은 관심밖이었고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경쟁이 가열됐고

아프리카 쟁탈전이 끝날때쯤 독일이 북독일연방이 되더니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전쟁으로 압도 유럽을 재편

독일에 의한 유럽외교가 새롭게 시작 - 영국이 정신이 듬. 독일경계

1 차대전의 전초전 격으로 유럽에서 영국주도로 프랑스와 러시아와 연합적성향이 짙어지고
 
즉, 1880-1890년대 급격한 경제산업 성장을 한 독일이 마침내 해군력경쟁을 시작하면서

이미 극동은 이들에게 아웃오브안중.

다만, 오히려 청일전쟁에서 너무 거대해서 먹기힘들걸로 보였던 중국이 조그만 일본에게 무참히 패전하면서 중국의 약체를 확인, 아니나 다를까 의화단사건으로 국제연합 8국 군대가 진주. 중국의 지방분할 각국의 식민지화가 진행.

어차피 한개 국가가 중국을 전부 먹을거라 아무도 생각안했기에 그대로 만족.

이와중에 발빠르게 대응한 일본이 1876년 조선을 개항시키더니 1896년 청일전에서 승전하고 1905년 러일전에서 승전, 극동에서 막대한 영향권을 갖게되면서 조선을 차지.

이로서 마지막 남아있던 극동은 분할 끝.
archwave 16-11-20 11:29
   
서구식민지가 안 되었던 이유을 단순히 미개하지 않았고 인구가 많아서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어째 쫌.

중국은 19 세기에 이미 반쯤 서구식민지가 되었었죠. 물론 국가/인구 규모가 너무 커서 완전한 식민지로 삼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고요.

일본도 서구식민지가 되는 길을 갈뻔했지만, 얘네들은 아주 신속하게 서구문물을 받아들임으로서 오히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으로 성장하는 길 확보. 물론 끝은 패망.

일본이 청일전쟁을 함으로서 조선을 먹을 권리를 얻었고 향후 중국까지 먹을 생각을 한 계기가 된겁니다. 청일전쟁은 조선을 누가 먹느냐 권리 싸움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동북아가 서구식민지가 되지 않은 것은 동북아를 먹을 제국(일본)이 나와서죠.

일본이 그런 위치가 된 것은 너무 늦지 않게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고 매우 빠르게 전력화했다는 것 때문.

-----

동북아가 서구식민지가 안 된 것이 단지 거리 때문에 무력 투사가 힘들어서라는 것은 매우 억지임.

중국이 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계기라 할 수도 있는 아편전쟁에 동원된 병력 수도 알아보시길.
19 세기 때까지는 기껏해야 몇 천명 수준의 병력으로 이뤄지는게 전쟁이었음.

임진왜란 때문에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거 같은데, 비록 매우 가까운 거리이긴 해도 엄청난 대군을 바다 건너 투사할 수 있었던 일본은 그 시절부터 이미 제국의 면모를 갖췄다고 봐야죠. 세계 역사 어디를 봐도 그 정도 대군을 바다 건너 투사하는 사례를 찾기 힘듬.

일본은 비록 미개했다 하지만 16 세기에 이미 제국의 면모를 갖춘데다, 서구문물의 흡수를 통해 세계 대전의 주역으로 뛸 수 있을 정도가 된거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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