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대교수의 글을 10여년전 보았는데 변함이 없군요.
요하 줄기가 압록강이라는 주장의 근간은 墜理圖(1190년)와 輿地圖(1265년)에 있습니다.
이 지도들이 조작이 되었다면 다시 재검토해야 할 겁니다.
송나라시대 간행되었다는 우적도 화이도 등 거의 모든 지도들과 공개된 輿地圖의 원본을 구하여 분석한 결과
여지도는 일본 동복사 요극암에 존재하였기에 명나라의 조작에서 벗어난 지도이지만
일본에서 1960년대 세상에 공개하면서 좌우가 일치하지 않으며 사진제판시 조작의 흔적들이 보이기에
탁본의 원본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한
산서성 서남부 翼城근처가 晉陽이 아니면 송나라시대 지도는 조작이 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또한 15세기 명나라가 지명을 지동하였지만 실제 위치의 지명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이 자료는 세상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장소에 보관되어 있으며 공개되고 있습니다.
조작된 사료로 백날 고증해봐야 무의미할 겁니다.
원나라 간행본 사료에 의하면 연경은 세 군데로 나타납니다.
하북 역주의 연하도
하북 보정시
하북 석가장
고려 존속시 송나라 시대 연경을 좀더 세밀히 교차검증중입니다.
여지도 등 송나라 지도에 나타난 기록으로 본다면 대릉하 옆에 압록강이 그려져 있으며
동시에 서쪽에 요수가 또 그려져 있습니다.
제 사견은 서쪽에 그려진 요수가 요하로 이동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고려 중기 이후 압록강은 하북 遵化縣 근처를 흐르는 강물중 하나로 보고 있다는 사견입니다.
또 금나라가 송나라와 요나라를 멸할 때 준화가 고려의 땅이면 이후 그 곳을 차지한 금나라가 고려와 전쟁을 벌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걸 다 무시하고서 '좀더 세밀히 교차검증' 운운함이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정말 교차검증을 할려면 연운 16주의 위치부터 재비정을 해야 하고 금나라와 송나라의 전쟁 상황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하지 않습니까?
다행스러운 점은 선생의 이미 그 종교의 영역으로 진입한 주장과 신념이 통설은 커녕 하나의 설로 인정받지조차 못할 것이란 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오랜 시간 동안 역사 토론의 장이 펼쳐져온 이 게시판이 오염되고 완전히 망할 것이란 점입니다. 논증도 없이 확신으로 주장하는 사람이나 저 부XXX라는 정신병에 걸린 정치꾼 두 부류 밖에 안 남게 되겠죠. 그리 '세밀히 교차검증'을 할 줄 아신다면 네이버의 부흥같은 식민사학 추종자들이 판치는 곳으로 가서 주장하셔야지 왜 여기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위구르님 통감절요에 "契丹主部落이 近在雲, 應하니"라는 글이 있습니다.
거란의 위치를 생각해보시고
저는 문헌을 직접보고 말하는 것이며
명나라가 지명이동하던 근거 자료 또한 확보한 상태입니다.
하나만 말하지요....하투지역의 자료 조사는 해보았나요.
왜 오르도스지역에 동수융성이 있어야하며 현재 산서성쪽으로 이동되었습니다.
그럼 원위치로 동수융성을 놓고 보면 지금의 지명은 모두 서쪽으로 이동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준화현 근처 지명조사는 해보고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자치통감 280권에 나온 '온전한' 문장대로 번역하면 '거란의 왕은 본디 명종과 더불어 형제를 맺었다. 지금 부락이 운(주)에 가까이 있다'입니다. 즉, 거란의 왕이 부락을 이끌고 운주 근방에 다다랐다 이 말입니다. 연운 16주의 하나인 운주를 탈취하고 싶어서 지친 먹이감을 맴도는 들개처럼 행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거란이 정말로 운주에 위치했다면 고작 부락(部落)이라고 안 쓰고 그냥 '契丹近在雲', 즉 '거란이 운주에 가까이 있었다'라고 했겠죠. 선생이 임의로 부분을 삭제하고 조작해서 제시한 그 문장에 따른다 해도 그리 문제가 생깁니다
왜 그런 파렴치한 날조를 자행하면서 '근처 지명조사는 해보고'나 '하투지역의 자료 조사는 해보았나요' 운운이나 합니까? 이렇게 거짓말을 지껄이고도 당당해서 그리 떠들어댈 수 있다는 점만은 높이 평가합니다. 하늘에 있는 괴벨스도 보고 고개를 끄덕이겠습니다
그러면서
ㅡ 저는 문헌을 직접보고 말하는 것이며
ㅡ 좀더 세밀히 교차검증중입니다
ㅡ 토론은 인정하지만
ㅡ 복기대교수의 글을 10여년전 보았는데 변함이 없군요.
ㅡ 조작된 사료로 백날 고증해봐야 무의미할 겁니다
이러고 있었다니
조작된 사료? 사료를 조작한건 당신이겠지
그 기본적인 연운 16주 위치의 재비정도 안 하고 혁신적인 주장을 내놓으며 육갑을 떨 준비운동을 하더니 그나마 제시한 그 빈약한 짧은 근거 자료도 조작하고 남들한테 믿으라고 내놓았으니 악질 중의 악질이다
어디 자치통감이라고 했나...통감절요라고 했지.
또한 통감절요에는 素與明宗約為兄弟今 내용이 없는데 이게 무슨 조작인가?
하이시윤님이 쓴 살수 위치에 대해
1265년 여지도에 북안주 자리에 안동상도호부가 있어
이는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그 위치는 요서군이며 최고로는 평양성이기에
살수 위치는 요령성이 될 수 없음을 얘기한 것이며
뜬금없이 300여년 후의 요나라와 압록강을 물어보니 936년의 당시 상황를 얘기한 것이며
거란이 어떻게 이동되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지
뭔 살을 붙여 헛소리를 하는지 깝깝하네.
여지도의 안동상도호부 얘기는 아무말 없고 나 원참...
안동상도호부가 북안주 부근에 그려져 있다함은
요서 안동도호부일 경우 이진충의 난처럼 여기가 거란의 중요 거주지라 할 수 있고
요동이나 평양성 안동도호부일 경우 모든 지명은 조작되었다 함을 말하는데 헐~~
그럼 일부 매국사학이 주장하는 열하성 북쪽에 거란이 있었다는 근거는 뭡니까?
PS : 상기 제시한 원문의 해석은
"거란주가 미천하나 명종과의 형제가 되는 약속을 맺어 지금 부락이 운주와 응주 근처에 있다."
북안주에 대한 기록
요사지리지 北安州,兴化军,上,刺史。本汉女祁县地,属上谷郡。晋为冯跋所据。唐为奚王府西省地。圣宗以汉户置北安州。属中京。统县一:
兴化县。本汉且居县地。
금사지리지 興州,甯朔軍節度使。本遼北安州興化軍,皇統三年降軍置興化縣,承安五年升為興州,置節度,軍名寧朔,改利民寨為利民縣,撥梅堅河徒門必罕、甯江、速馬剌三猛安隸焉。貞祐二年四月僑置於密雲縣。戶一萬五千九百七十。縣二:又有利民縣,承安五年以利民寨升,泰和四年廢。
통상적으로 서북,서남 포함 방향상 안동상도호부 서쪽에 운주나 응주가 있습니다.
서쪽부터 雲應----북안주(안동상도호부)----해왕부----中京
매국사학의 이론으로도 안동상도호부는 장가구 부근이며
구글지도에서 利民寨 검색하면 산서성 영무와 삭주 근처에서 나옵니다.
삭주 근처에 있어야 甯朔軍節度使 관할아닌가!
그럼 운주와 응주는 어디로 헉 서쪽 내몽고 섬서성 북쪽으로 갑니다.
이민채와 이민보라는 지명이 함께 나올 확률이 삭주 근처에서 얼마나 되나?
우연이겠지 하고 매국사학은 말할 겁니다.
아참 매국사학은 1265년 여지도의 안동상도호부 공개 못할거예요...
지금까지 쌓아온 이론이 사이비(진실같은 거짓)가 되니까요.
안동상도호부 동쪽에 해왕부와 중경이 있도록 어떻게 만들지?????
'매국사학의 이론으로도 안동상도호부는 장가구 부근이며
구글지도에서 利民寨 검색하면 산서성 영무와 삭주 근처에서 나옵니다.
삭주 근처에 있어야 甯朔軍節度使 관할아닌가!
그럼 운주와 응주는 어디로 헉 서쪽 내몽고 섬서성 북쪽으로 갑니다.' <- 지껄이는 수준이 예날의 수구리라는 놈하고 판박이네 ㅇㅇ
'1265년 여지도에 북안주 자리에 안동상도호부가 있어
이는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그 위치는 요서군이며 최고로는 평양성이기에
살수 위치는 요령성이 될 수 없음을 얘기한 것이며
뜬금없이 300여년 후의 요나라와 압록강을 물어보니 936년의 당시 상황를 얘기한 것이며
거란이 어떻게 이동되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지' <- ???
북안주는 지금의 북경 북쪽의 봉녕현으로 비정되고 댁이 제시한 요사 39권의 기록인 '北安州,兴化军,上,刺史。本汉女祁县地,属上谷郡。晋为冯跋所据。唐为奚王府西省地。圣宗以汉户置北安州。属中京。统县一'에서 북안주가 '진나라(동진)가 풍발의 거처로 하였다(인정하였다)'라고 했으며 '당나라가 해왕부의 서쪽 성의 땅으로 삼았다' 했는데 해족이 어디 살았는지도 모르나
준화현 부근의 어떤 강물이 압록강일 경우
대령 승덕 쪽으로 내려오면 고려와 충돌할 일이 없지요.
주장을 하려면 한번쯤 가능성이 있나를 타진해보고 1%라도 있으면 연구해보는 것이 아닙니까?
또한 여진은 압록강을 넘나들던 나라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죠.
그래야 송나라가 금나라를 치려 고려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는 설명이 되지요.
오늘날 매국사학의 이론대로 이게 가능합니까?
연운16주는 제 글을 보면 이해가 안가나요?
연경을 하북 보정시로 보았으니 지금의 지명보다 서남쪽으로 배치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정도도 이해가 안가나요.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그리고 자치통감을 다 읽어야 하나요?
契丹主部落으로 검색하면 안나오니 인용안 한 것이고 이게 무슨 죄가 죄가 되나요?
매국사학을 하려해도 이런 억지는 도움이 안되네요.
자치통감이 원본이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만 이건 조작이 아닐 뿐더러
불리한 내용은 생략하고 말꼬리나 잡는 소탐대실하는 얘기 그만합시다.
지금 핵심은 여지도에 안동상도호부가 그려져 있으니
이 위치가 어디이며 여기에 따라 역사복원을 얘기하는 점이라는 사실입니다.
추리도와 여지도에
대릉하 옆에 압록이 있어 요하를 압록강이라 하는 주장(복기대교수)
난주 옆에 요수가 그려져 있으니 난하가 요수라는 주장(윤내현교수)에 대해
안동상도호부가 지도상 장가구 근처에 그려져 있으니 참조하여 보라는 것이
역사를 탐구하고 복원하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준화현 부근의 어떤 강물이 압록강일 경우
대령 승덕 쪽으로 내려오면 고려와 충돌할 일이 없지요.
주장을 하려면 한번쯤 가능성이 있나를 타진해보고 1%라도 있으면 연구해보는 것이 아닙니까?
또한 여진은 압록강을 넘나들던 나라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죠.
그래야 송나라가 금나라를 치려 고려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는 설명이 되지요.
오늘날 매국사학의 이론대로 이게 가능합니까?
연운16주는 제 글을 보면 이해가 안가나요?
연경을 하북 보정시로 보았으니 지금의 지명보다 서남쪽으로 배치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정도도 이해가 안가나요.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끝까지 이 지랄이네
고려와 충돌할 일이 없긴 뭐가 없어 금나라가 거란을 먼저 쳐서 송나라에 연운16주를 돌려준걸 보면 그 경로에 있는 지금의 준화현도 그들이 휩쓸었는데 승덕 쪽으로 내려오면 충돌할 일이 없다고? 이거 진짜 빡대가리네
나중에 금나라가 요나라를 공격해 차지했고 고려의 사신인 김정이 금나라의 역관인 하첨아를 때려죽인 곳인 평주는 지금의 난하 부근인데 그 서남쪽의 준화가 고려의 땅이라고?
'연운16주는 제 글을 보면 이해가 안가나요?' <- 너야말로 내 말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렇게 지껄이고 있냐
이런 가치도 없는 놈을 교화시킬려고 시간을 쳐 낭비했으니
예전에 파스크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인사불성 쓰레기놈한테 영합하던 때에 알아봤지만 역시 같은 놈이었군
일부러 이렇게 분탕을 쳐서 민족 사학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탐문자들이 환멸을 느껴서 도망치게 만들려는 수작인걸 모를 줄 아냐
다시 말하지만 너의 개소리가 통설은 커녕 하나의 설로 인정받을 일도 없겠지만 결국 그게 아니라 이 게시판이 너같은 동물들한테 먹혀서 폐허가 될 것이란 점이 문제잖아.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했고 토론을 벌였던 그 위대한 역사의 장인데 이렇게 망쳐놓으면 결국 주류 사학계와 일본 극우파, 중국 공산당같은 우리 역사를 침탈하는 세력들이 환호하겠지
대무신왕 시절 이야기군요.
고구려와 그 이전 역사를 논할 때에는 산서성과 섬서성 사이
지금의 황화변이 거대한 내륙호수 즉 海가 있음을 인지하십시요.
황하 동서에 염전이 있음이 그 증거이며 신당서에 섬서성 북쪽 태백산(자오령) 동남쪽지역에
거용산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용문과 화산사이에 구곡이 있어야 하기에 지금의 화산은 이동된 지명임을 참조하시고
역사를 복원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섬서성과 산서성 서남쪽 황하변 지형을 아셔야 합니다.
쉽게 그랜드 캐니언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중화민국은 이 지형을 관광상품으로 이용하지 않으며 철저히 감추고 있습니다.
평지에 수십미터에서 200미터 정도 땅속으로 협곡이 생긴 지형이 사방에 널려있으며
이 지역에 넗은 구릉성 지역 오장원처럼 原이라는 이름이 많은 이유입니다.
4000여년전 이 지형을 당시 무어라 불렸을까 생각해 보시고 말을 이어가겠습니다.
위수가 흐르는 주변은 주변보다 낮은 평지이며 장마시 침수가 잘 되는 지역입니다.
이 부분은 인테넷에서 조사하시면 동주지방 기사가 많을겁니다.
또한 산서성 운성시와 섬서성 포성시 서쪽에 염전이 있는데 과거에는 상당한 크기의 염전이며
염전이 있다는 말은 과거 이 곳이 바다였다는 이야기가 되는 이치이겠지요.
(지금도 구글어스에서 확인가능한 크기입니다.)
그리고 16~17세기 서양지도로 Chine를 검색하시면
섬서성에 거대한 호수가 그려진 지도를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PS.
1.수경주에도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6~7세기에도 요수의 물이 마른다고 한 것처럼
이 지역 역시 북쪽의 사막화의 여파로
지금은 거의 모든 물이 사라진 상태임을 감안하십시요..
2.海란 자료를 조사하면서 세가지 경우가 있더군요.
진짜 바다, 동정호와 같이 넓은 호수에 河水들이 모이는 곳, 수많은 산림이 무성한 산림지역
중국 최대의 호수이자 염호(鹽湖). 면적은 4,543㎢(2020년)[1]로 충청남도의 절반쯤 된다. 염도는 1.24%이다.[2] 수평선이 보일 만큼 넓으며 물도 소금물이라[3] 꼭 바다같기에 이름에 '바다 해(海)' 자가 들어갔다. 다만 호수의 평균 깊이는 32.8m로 생각보다 깊지 않다. 산성도는 pH 9.3으로 염기성을 띤다.
칭하이라는 이름은 청색 바다라는 뜻이며, 티베트어와 몽골어 이름도 마찬가지 뜻이다. 이 호수가 있는 칭하이성의 어원이 되었으며, 고산 지대에 위치하기에 호수면의 해발은 3,260m나 된다. 프셰발스키잉어(湟魚, 青海湖裸鯉) 같은 특산종도 있다.
시내 남쪽에 펼쳐진 소금호수 해지 (解池)에선 과거부터 질 좋은 소금인 하동염(河東鹽)이 생산되어 윈청의 번영을 이끌었다. 동북쪽 20km 지점의 샤현 (夏县)은 하나라 시기 수도였고, 60km 떨어진 장현(绛县)은 춘추시대 진헌공의 수도였다. 시내에서 염호를 따라 서남쪽으로 10여km 가면 쉐저우(解州)가 나오는데 관우의 고향으로서 暶관제묘(关帝庙)가 있다. 또한 시내에서 서쪽으로 50km 가면 융지현(永济县)이 나오는데 이곳은 황하가 오르도스 지역을 둘러싸고 남으로 내려가다가 동으로 꺾어져 흘러가는 중추지로써 당나라 대에 10도 중 하나인 하동도(河东道)의 치소로서 포주(蒲州)라고 불렸던 곳이다. 당 중기 이래 하중부(河中府), 송나라 이후에는 하동부(河東府)로 불렸다.
여기에 쓰셨군요.
먼저 상기 댓글은 황하변 주변을 말함이며 오장원은 장안 서쪽에 있는 원을 예로 들어
섬서성에 원이라는 지명이 많음을 얘기한 것이며
감춘다는 것은 북낙수 주변의 지형을 감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퇴적물이 쌓이어 과거보다는 작아졌겠지만
포성현,부평현, 동주의 금수구나 낙수변의 특이 지형...땅속으로 형성된 협곡울 얘기했던 겁니다.
태행산 대협곡처럼 일반적인 산에 생긴 지형을 말함이 아닙니다.
이 부분 중요한데 땅밑으로 수십미터에서 100여미터가 넘는 협곡이 있다면 구경 안 가실렵니까?
그것도 경기도보다 큰 면적에 분포되어 있는데 말입니다...그려
한번 금수구라는 중국어 간자체로 섬서성 동주에서 검색하시면 몇 개 안나오지만 감탄하실겁니다.
수경주가 역사왜곡의 단초라는 말음 처음 들었으며 조작은 되었다고 봅니다.
海에 대해서 여기가 바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바다였을 가능성도 있지요.
이 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며 현지인이 아니기에 누구도 장담이 곤란하지만
과거 지금보다 강물이 더 많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경의 예로 100여년전만해도 북쪽에 소해라는 호수가 지금은 초라하게 줄었으며
100여년전 서울시보다 컸습니다. 이 부분은 백제 때문에 소해에 대해 10여년전 조사해 본 겁니다.
또한 화산으로부터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는 수십개의 강물을 받아 한줄기로 흐르기에 병목현상에 의해 과거 물이 많았을 때 거대한 호수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입니다.
실예로 1577년 폭우가 내려 7개의 도시가 물에 잠겨 거대한 호수가 생겼는데 이게 얼마나 오래 있었으면 서양지도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용문에서 화산으로 오는 강폭이 생각보다 크며 위에서 말한 특이 지형으로 금수구나 위수 낙수에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대한 호수가 됩니다..
그리고 지명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海라고 지을수 있으며
다른 예로 구글지도에 호북성의 산맥에 서해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으며 몇 군데 더 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머리가 나빠져 흐릿하네요.
감숙 고원시에는 조그만 호수가 도시의 좌우측에 있는데 동해 서해입니다.
충분한 답변이 아닐지라도
저는 1% 가능성이 있으면 한번더 생각해보고 자료를 찾습니다.
하이시윤님의 열정에 경하를 드리며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이시윤님 엉뚱한 곳을 말하면 어떻게 하나요.
지금 얘기하는 포성현과 동주 한성 화음 등 섬서성 관련 지형을 말하는데
하남성을 얘기하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자료를 찾는 수준을 보면 금방 물어본 海 용례를 찾았을 텐데...
이런 말도 안되는 것으로 사람 놀리면 안됩니다.
산서 대동시 서북방에 대해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댓글에 소해라고 언급했는데 이 곳은 바다가 아닌 내륙호수입니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문헌을 읽다 있으면 얘기하죠.
그런데 실제 사용예에서 중국의 지명을 작명하는 근거를 유추할 수는 있다고 보입니다.
우리의 논점은 쉽게 용문부터 화산까지의 황하가 고대 海로 불리어질수 있냐?이며
본인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이며 하이시윤님은 없다를 만드는 것 아니겠어요.
전혀 가능성이 없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고
필요없는 반복된 글은 지양해주시고요.
청해는 너무 커서 바다로 볼 수 있어 언급안했지만 이 역시 내륙이며
제가 언급한 것은 청해에 비한다면 아주 작은 것들이 됩니다.
이런 곳도 海를 사용했다는 점 중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