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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4-08 02:44
[한국사] [역사지리 #4] Quiz의 답안 - 내가 생각하는 열국의 위치
 글쓴이 : 윈도우폰
조회 : 646  

Quiz를 냈으니 답을 아르켜 줘야 하는데...그 답이 정답같은 것은 아님
특히 여러 시대에 걸친 것을 함께 그리다 보니 아구가 안 맞을수도

사료같은 것은 없는 내 생각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니까 인정 안해도 됨...나 역시 아니면 말고니까...그런 차원에서 출처 얘기는 그만!^^

강역 4.JPG

고동색 굵은 화살은 단군시대 맥(예맥의 맥)의 위치이고...고조선이 연나라에 요서지역을 뺏겼을 때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라 보았는데...이들이 이동 후 분산되어 맥족계열의 많은 소국이 되었다고 봄...그런 관점에서 맥족계열의 각 소국에 대한 위치를 대충 추정...특히 주나, 구다, 조나, 행인 등은 내가 그냥 뺑뺑이 돌려서 찍어 적당한 분지 지역에 배치해 본 것

그리고 흰색 점선은 예족의 이동경로로 옥저, 창해군, 영동7현...그리고 동해안을 따라 사로국까지 ... 고조선의 유민이 경주에 오기 전에 먼저 예족이 동해안을 따라 영일만에서 우회전하여 자리잡아 원주민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그리고 빨간색 쇄선은 북부여에서 나온 구태 집단의 경로로서 요서백제 근처에 서부여를 만든 후 망해서...한반도의 백제로 와서 온조백제를 몰아내고 구태백제(가칭)를 만들었다고 보는 가설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그려봄

빨간색 가는 실선은 내가 생각하는  대방국의 이동경로...이것도 그냥 내 추정(왜냐하면 내 추정이 맞으려면 대방국은 '대방국1'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낙랑에 접했다는 것이 낙랑군이지 낙랑국인지에 따라 바꿔 생각할 수 있음...어쨌든 이동했다고 가정하면 그 위치는 황해도인 '대방국2'

그리고 가장 무리한 추정일 수 있겠지만...그냥 그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옥저가 요서에서 압록강 하류...그 다음 동해안으로 이동했다고 가정...1차 이동은 고조선이 연나라에 패했을 때이고...2차는 예군남려가 한나라에 귀부하여 이동했던 위치 즉, 창해군으로 한나라가 길이 마땅치 않아 몇 년 안되어 페쇄하고 그 후 현도군이 되었다는 쪽에 대한 내용 반영...

어쨌든 옥저가 이동해 왔고 예족계열이었다면...그들의 한반도 이동은 압록강을 따라 낭림산맥 기슭을 거쳐 황초령을 지나 함흥 지방으로 오지 않았을까 하는...(이건 그냥 내 추정...지형적 특성 외에 검증할 수 있는게 별로 없는^^)

그리고 단군시대 때 구려는 적봉 기준 동북쪽(이건 사서에 나오는 대로 고조선의 동북쪽 위치를 그대로 준용)으로 그려봤고...구려 또한 맥족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봄...이들 맥족계열 역시 고조선이 요동으로 이동할 때 함께 쫒겨 이동하였다 보고...이동 내지 피난한 남만주 산악 분지 쪽으로 흩어져 여러 맥족 소국이 되었다고 봄...물론 이것도 사서같은 것에는 없는 내용^^

맥족 국가 중 가장 오랜된 구려...단군조선 시대 때부터 존재하였고...이 것이 고구려의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학설을 반영하여...구려의 이동 위치는 졸본 위로 잡아봤음...어쨌든 이는 북한 쪽 학설에 가까운데 구려든 원래 고구려(주몽 이전 고구려)가 존재해야만 주몽이 부여에서 온지 몇 년 안되어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봄 (사실 아무 기반이 없이 온 사람이 아무리 마누라를 잘 만나도 그렇지 바로 고구려와 같은 국가체계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좀...)

고죽국과 요서백제(노랑색)는 거의 같은 지역이라고 생각했고...요동의 고조선이 성장할 때 발해만 연안에 있었던 진번국과 대방국을 흡수하였다 보는 주장(별로 일반적이지 않지만 이것도 학설)을 수요해 봤고...이들은 후에 한사군의 진번군이나 대방군이 되었다고 봄...

어쨌든 요서백제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백제 역시 기존 기반없는 그리고 연고도 없는 그 먼 지역에 영토를 개설할리 없었을 것이고...그렇다면 아마도 요서까지 이동했다는 서부여가 여기까지 와서 후에 요서백제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 그런 점에서 근초고왕의 계통도 다시 봐야...초고왕 계통이어서 '근'자를 붙인건가? ...이건 삼천포로 빠지는 얘기가 되겠네^^

그리고...춘천지역에는 맥국이 있었다는데....맥족의 이동 경로 상으로는는 좀 안맞음...차라리 맥국의 사람 들이 예나 동예에서 분리된 예족계열이라면 잘 맞을 것 같지만...나라명을 맥국이라고 하니...맥족계열로 추정해본 것일 뿐인데...맥족 계열의 주류 분포지에서 너무 떨어져 있어 '나홀로 집에' 같은 느낌?

낙랑국 위에 위치하는 조선후국이란 것도 사실 북한 쪽 학설(학설인지 가설인지 모르겠지만...)인데 독립적인 군장국가 수준에 못미치는 매우 작은 수준의 집단 들 ...북한에서는 관련된 자료가 있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하지만...그래도 후국이라고 하는 좀 조미료를 많이 탄 명명같은데...아마도 공산주의의 정통 사관인 유물사관에 따라 봉건제라는 것을 우리 역사에 억지로 도입하려다 보니 후국같은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 

최리의 낙랑국도 조선후국 중 하나로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북한 쪽에서도 이를 명확하게 얘기한 자료는 아직 못봤음 (사실 접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라서...)

우리 역사에서 정말 쌩뚱맞은 말갈의 등장인데...이들이 한반도 중부에 집단을 형성한 것은 맞는 듯...그렇지만 백제에게 밀려난 후 산을 따라서(얘들은 수렵족속이어서 평지이동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고...) 이동하여 두만강 하류와 연해주 쪽으로 쫒겨 갔을 거라는 가정...

노랑색 실선은 백제와 부딪혔던 말갈의 산기슭을 따라 이동했을 것이라는 경로인데.. .연해주 지역의 말갈과 달리 한반도 중부에 있었던 말갈은 집단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동시대 읍루와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즉, 나름 군장국가 수준 정도되었어야 백제와 치고 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 (온조 때 전후)

부여는 북부여 이전 원래의 부여가 있었다고 생각해서 그린 것인데...기존 예족 분포지역과 북부여의 중간 쯤 되는 지역으로 추정....그리고 예족 들(예맥이라고 해도 되지만...일단 생활특성을 기준으로 후대에는 맥족계열과 예족계열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해서)은 역시 하얀 선을 따라 이동했다고 가정...그래서 북부여의 후국인 갈사부여...그리고 동부여가 순차적으로 이동(쫒겨갔다는 것까지 포함해서...)했다고 봄. 

그리고 서부여는 북부여에서 나와 만주 초원 지대를 거쳐 적봉 위 쪽에 있다가 요서까지 오지 않았을까 추정하는데...여기에 백제의 중시조인 구태랑 연결해 보면 어떨까 하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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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4-04-15 22:07
   
위치비정은 학자들도 어려워할 작업이라네요
그래서 출처와 근거제시가 필수인데,,,,
윈도우폰 24-04-16 14:43
   
위치비정이라...지리학이든 뭐든... 인접 학문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못했던 시절에 한정된 자료를 가지고 나름의 해석으로 학위논문을 써서 학자가 된 사람 들에게는 어려운 것일 수도...

사실 60년대까지 학위를 딴 학자라는 사람 들을 보면 대부분이 이에 해당... 이들을 보면 현재 대학생 수준 보다도 못한 정보탐색능력이랑 해석력 및 종합력이 부족했던 사람 들이 대부분 ... 그러다 보니 몇 안 되는 사서를 기준으로 출처 타령하는게 일반적

솔직히 시절이 좋아 학위를 따고 별 볼일 없는 논문으로 학자인체 하는 사람 들이 의외로 많은데...만약 지금 내가 논문 평가를 하면 학위 통과시켜주지 않을 듯 ... 그런 점에서 그런 학자 들이 어려워 하는 작업이라는 위치비정이란게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하고 지리적인 것 검토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단한게 아닐 수도

역사를 포함하여 인문학 분야의 학자 들 너무 믿지 마삼...그리 대단한 사람 많지 않음 ...뭐 칸트나 헤겔 같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들 많이 못봄...석좌교수 들 많이 알지만 이들도 마찬가지...물론 역사 분야 쪽은 아니지만^^

학자라는 명칭 ... 이 것도 일종의 halo effect 덕에 대단히 보이거나 stereotype과 비슷하다는게 내 생각...
윈도우폰 24-04-16 14:52
   
출처와 근거 제시가 필요한 내용이 뭐임? 그냥 뭉뚱그려서 출저와 근거제시 야그 하지 마삼...대화든 토론이든 주제를 명확히 해야하지 않을까 함. 즉, 어떤 내용에 대한 출처가 궁금한 것인지 모르겠음...최소한 해당 내용에 대해 님의 생각을 얘기한 후 다른 것에 대해 출처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니겠음? 그런 출처와 근거 제시를 필수라고 얘기하는 것은 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뭐가 뭔지 몰라 이를 감추면서...동시에 본인이 상당히 날카로운 척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데...

그리고...내가 쓴 것은 그냥 많은 통설을 종합하여 지도에 표시한 것이고...실제 내가 주장하는 것은 없음...내가 쓴 내용이나 그림이 새롭다면 님은 우리 역사 공부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것임...도대체 어느 내용이 그렇게 새로울까???

내가 읽었던 내용을 기준으로 지도에 파워포인트로 색칠하여 만든 위치도에 대해 무슨 출처와 근거? 출처나 근거 모두 내가 읽은 것 중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발췌하여 그린 것 뿐인데... 그리고... 내가 그린 위치도든 주기 내용 모두 아니면 말고와 같은 그런 내용 아닌가???  내가 정리한 내용 믿어달라는 것도 아니고...난 그렇게 대단한 내용을 정리한 것도 아닌데 무슨 출처까지...그냥 내 말이 진리일 수 있으니 그냥 믿으면 됨...이런 내용을 대단한 가설인양 봐주는 것은 고맙지만...난 내가 정리한 내용이 그렇게 대단한 가설도 아니라고 보는데...

내가 보기에는 나보다 책도 적게 쓰고, 나 보다 정보탐색 및 해석력도 떨어지는 별 볼일 없는 노땅 학자 들의 글은 무조건 믿으려고 해서 그런 것 같은데... 후대에 태어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내가 그 들 보다 훨씬 나을 것임...솔직히 공자라고 해도 나보다 많이 알까...난 공자가 쓴 논어도 알고 공자에 대한 주석서도 알지만...공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 모르니...내가 더 많이 알 것이고...이는 역사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나보다 나은 학자 별로 만나보지 못했음 ..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그리고 어쩌면 학력이든 경험이든 모든 면에서도 님이 생각하는 학자 보다 내가 더 나을 지도 모름... 물론 전공은 좀 다르지만 ... 단지 님이 생각하는 학자 들은 나보다 먼저 태어나 먼저 글을 써서 우리 역사에 대한 프레임을 선점했다는 것 밖에 없을 듯한데...

님이 생각하는 학자가 좀더 정확히 잘 알 것이라는 맹목적 신뢰는 버려야...그렇게 뛰어난 학자...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음. 기본적으로 인문학 영역은 철학을 제외하고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공부하는 영역이 아니라는게 내 편견인가??? 님이 생각하는 뛰어난 학자의 주장을 얘기해 보삼...내가 어떻게 반박할지...난 님처럼 출처와 근거 타령 안 하고 바로 논박할 수 있음...토론을 어떻게 하는 것이 뭔지 보여줄 수 있을 듯 한데^^

내가 쓴 글에 대해서는 출처 타령하지 말고 그냥 나를 믿으면 됨... 그런 자세를 갖춘 학생에게는 내가 학점을 잘 주는 편이고...어쨌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이시윤 24-04-16 17:24
   
음,,, 예시를 들어야겠네요
구르뫼 24-04-16 18:19
   
중국의 정사중 하나인 周書 卷34의 양표열전에 이르길
併(并)肥如郃陽二邑合一千八百户改封華陽縣侯
양표가 비록 하남의 전투에 큰공을 세우지 못했지만 회군하여 돌아오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합양(섬서성 동주 합양현)의 땅과 비여현(요서군 비여현 하나뿐임)를 합하여
식읍 일천팔백호를 하사하고 화양현후로 봉하였다고 하였으니
요서군 비여현은 섬서성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시고 사견을 피력하시기 바랍니다.
     
위구르 24-04-16 23:29
   
노룡현(盧龍縣): 옛날에는 북평군(北平郡)을 두었었는데 신창현(新昌)과 조선현(朝鮮) 등 2개의 현을 다스렸다. 북제(北齊)에서는 조선현을 없애고 신창현으로 편입시켰고 또한 료서군의 해양현을 없애고 비여현(肥如)으로 편입시켰다. 개황(開皇) 6년에 또한 비여현(肥如)을 없애고 신창현(新昌)으로 편입시켰다가 18년에 이름을 로룡현(盧龍)으로 바꾸었다. 대업(大業) 초에 북평군(北平郡)을 설치하였다. 장성(長城)이 있다. 관관(闗官)이 있다. 림유궁(臨渝宮)이 있다. 복주산(覆舟山)이 있다. 갈석(碣石)이 있다. 현수(玄水)와 로수(盧水)와 열수(湼水) 윤수(閏水)와 룡선수(龍鮮水)와 신량수(臣梁水)가 있다. 바다가 있다(https://history-backup.tistory.com/entry/%EC%88%98%EC%84%9C%EC%A7%80%EB%A6%AC%EC%A7%80%EC%9D%98-%EA%B8%B0%EC%A3%BC-%ED%83%81%EA%B5%B0-%EC%83%81%EA%B3%A1%EA%B5%B0-%EC%97%AC%EC%96%91%EA%B5%B0-%EB%B6%81%ED%8F%89%EA%B5%B0-%EC%95%88%EB%9D%BD%EA%B5%B0-%EC%9A%94%EC%84%9C%EA%B5%B0-%EB%93%B1-%EC%9A%B0%EB%A6%AC%EC%97%AD%EC%82%AC-%EA%B4%80%EB%A0%A8%EC%A7%80%EB%AA%85-%EB%B2%88%EC%97%AD)

ㄴ 수서 지리지의 기록입니다. 이에 따르면 비여현은 지금의 노룡현 근방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위구르 24-04-16 23:35
   
그리고 양표가 활동하던 시기는 서기 540-560년입니다. 그리고 인구가 1800호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면 이름만 남은 지명이죠. 반면 한서 지리지에는 료서군의 인구가 35,2325명이라 나오고 14개의 현이 있으니 그 중 하나인 비여현은 대략 2,5166이었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저 때 북주의 경내에 있었던 비여현은 후일 초설지로부터 먼 곳에 옳겨진 지명에 불과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주서의 기록을 가지고 비여현이 처음 설치된 료서군의 위치가 지금의 섬서성이라고 보십니까?
          
구르뫼 24-04-17 01:36
   
먼저 비여현은 섬서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공의 치수와 산서성의 실제 지명을 지리지를 통해 역추적하면
섬서성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당나라를 걸치며 지명이 이동되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와 명나라 시기 이동만 생각했는데
고려초기에 거란에 밀렸는지 한 번의 지명이동이 더 보이기에 조사중에 있습니다.

위에 말씀하신 신창현을 예로 들면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두 군데에 해당되는 자료가 있습니다.
⦿漢置。爲侯國。後漢廢。唐復置。宋省。故城在今直隸新城縣東三十里
⦿後魏置。隋改爲遂城。故城在今直隸徐水縣西二十五里。
두 곳다 하북 보정시에 있습니다...
그럼 노룡현이 어떻게 당산시 근처에 있을 수 있을까요?
또한 산동성 濱州의 치소가 있던 곳이 발해현입니다.
바로 발해현이 빈주가 된 것입니다.
산동성 棣州는 隋置。改滄州。又改渤海郡。在今山東陽信縣南七里。唐復置棣州。治厭次。在今山東惠民縣南十里。五代梁移置新州。宋又徙置。明改爲武定州。即今山東惠民縣治。
여기가 바로 명나라 이전 창주입니다...
지금 어디로 갔습니까?
명나라의 지명이동 패턴의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명나라는 하남 낙양을 기준으로 강 하나를 동쪽으로 이동시키며
북악 항산과 호타하를 북상시키며 오늘날 베이징(고려 초기 개경)으로 연경을 이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일관되게 고려시대 연경은 보정시에 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고려중기 이후 그려지는 송나라 고지도에 갈석산은  결코 당산시 갈석산이 아닙니다.
우공의 조공로와 치수와 갈석고와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도 2005년 산동성 무체현(해풍현) 동북쪽 대산진를 갈석산진으로
개명하였으며 대산진의 馬谷山을 갈석산으로 고쳤습니다
마곡산은 원나라시대부터 古碣石으로 의심받던 곳입니다.
이유는 우공의 조공로로써 도이들이  협우갈석하니 입하하는 장소이며
역하가 입해하는 장소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가 노황하가 입해하는 우공의 고하도입니다.
황하는 항상 산동성 이진현으로 흘렸으며
단지 시대에 따라 황하를 河決하였기에 변천된 듯 보이나
이는 1500년전 수경주, 800년전 여지도, 500년전 황하도에 잘 나타나 있으며
100여년 전부터  황하로  河決되어 오늘날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丁字河九鎮有黄河 (천진시의 정자하는 가짜...추리도 참조)
⦿渤海有黃河

노룡현의 갈석산이 가짜면 요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며
현 노룡현 서쪽으로 용만이라는 지명이 왜 있으며
우리의 고려 개경(개성이 아님)이 훗날 압록강 밖에 개주 촉막군으로 그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위구르 24-04-17 10:07
   
비여현이 섬서성에 있었다고 단언을 하면서 그 비여현을 병합한 신창현은 보정시에 있었다고 하시니 이건 모순 아닙니까? 그리고 고려의 서경도 아닌 개경이 압록강의 북쪽에 있었다니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구르뫼 24-04-17 10:55
   
비여현 즉 요서는 당나라시기에 섬서성에서 보정시쪽으로 이동되었다고 제가 쓴 글에 언급했으며
상기 내용은 고려가 존속하던 송나라 시대를 말합입니다.
고려수도 개경에서 개성으로 이동되어
조선개국후 개경이 압록강 밖에 개주 촉막군으로 그려진다는 말이며
촉막군에 대해 검토하시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있지요...
안동상도호부 즉 고구려 패망시 수도만이 상도호부입니다...나머지는 이동되어 도호부일뿐...
송나라 시대 1265년 舆地图拓片이 많이 인용되니 그 지도에 안동상도호부가 어디인지 보시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위구르 24-04-17 14:22
   
상식적으로 고구려가 서쪽으로 진격하며 요서군도 역시 원래의 자리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고 봐야 하는데 오히려 동쪽으로 옳겨졌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 그 군의 인구는 왜 줄었습니까? 이런 경우가 바로 흔히 말하는 사이비 역사학의 전형이죠.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4014&sca=&sfl=wr_subject&stx=%EC%9A%94%EC%84%9C%EA%B5%B0&sop=and 요서군에 대해서는 이 연구가 옳습니다
                         
구르뫼 24-04-17 15:44
   
아직 여지도를 보지 않으셨네요...
그 지도에 안동상도호부 즉 고구려 평양성은 대동시 동쪽지역입니다.
여기서 섬서성은 서남쪽에 있으니 지리상 문제가 없지요.

어떠한 연유에 의해 신라가 757년 군현개혁을 했는지 사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8세기 당나라 영역이 하북을 포함한 전지역으로 송나라때 지도에 나옵니다.
이후 고려는 신라 후백제를 통합하고 여기에 廣州를 더하여 영역을 확대합니다.
고려초기 당연히 대동시 주변의 평양성이 고려의 서경이 되며
한주 송악인 현 베이징이 개경이 됩니다.

12~13세기에 나타나는 고지도에는 이지역이
요나라 금나라 영역에 편입되어 있으니
당시 고려는 동쪽으로 지금의 요령성쪽으로 이동했다고 봅니다.
송나라 고지도의 위치를 비교하면 연경은 보정시 쪽에 있습니다.

상기 댓글의 흐릅입니다.
이해를 못하시면 무의미한 답글은 지양해 주십시요.

먼저 여지도 확인하시고 여지도에 中京 북쪽
潢水와 達魯河 사이에 흐르는 黑河가

현재 베이징 북쪽에 조하와 백하 사이에
동일한 이름으로 흐르고 있으니 검토하시면
오늘날 지명비정이 얼마나 엉떠리인지 알게 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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