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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8-09 03:20
[한국사] 발해 중경 현덕부의 위치 확인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1,157  

1. 1. 동경 료양부 원문 

東京遼陽府 -- 중략 -- 遼陽縣。本渤海國金德縣地。漢水縣,高麗改爲勾麗縣,渤海爲常樂縣 仙鄉縣。本漢遼隊縣,渤海爲永豐縣。神仙傳云:「仙人白仲理能煉神丹,點黃金,以救百姓。」戶一千五百 鶴野縣。本漢居就縣地,渤海爲雞山縣。昔丁令威家此,去家千年,化鶴來歸,集於華表柱,以畫表云:「有鳥有鳥丁令威,去家千年今來歸;城郭雖是人民非,何不學仙塚累累。」戶一千二百。 析木縣。本漢望平縣地,渤海爲花山縣。戶一千。 紫蒙縣。本漢鏤芳縣地。<五>後拂涅國置東平府,領蒙州紫蒙縣。後徙遼城,併入黃嶺縣。渤海復爲紫蒙縣。戶一千。 析木縣。本漢望平縣地,渤海爲花山縣。戶一千 紫蒙縣。本漢鏤芳縣地。<五>後拂涅國置東平府,領蒙州紫蒙縣。後徙遼城,併入黃嶺縣。渤海復爲紫蒙縣。戶一千 興遼縣。本漢平郭縣地,渤海改爲長寧縣。唐元和中,渤海王大仁秀南定新羅,北略諸部,開置郡邑,遂定今名。戶一千 肅慎縣。以渤海戶置 歸仁縣 順化縣 

1. 2. 동경 료양부 해석 

요양현(遼陽縣) 본래 발해의 금덕현(金德縣)이다. 한나라 때 패수현(浿水縣)이었는데, 고구려가 구려현(句麗縣)으로 고쳤다. 발해 때는 상락현(常樂縣)이었다. 호구 수는 1,500호이다. 

선향현(仙鄕縣) 본래 한나라 요대현(遼隊縣)인데 발해 때는 영풍현(永豐縣)이었다. 신선전(神仙傳)에서 “신선 백중리(白仲理)가 신단(神丹 ; 신선이 만든다는 장생불사의 환약)을 단련하여 황금에 붙여 백성을 구제하였다”라고 하였다. 호구 수는 1,500호이다. 

학야현(鶴野縣) 본래 한나라 거취현(居就縣)인데, 발해 때는 계산현(雞山縣)이었다.…(해석못함)… 호구 수는 1,200호이다. 석목현(析木縣) 본래 한나라 망평현(望平縣)인데, 발해 때는 화산현(花山縣)이었다. 호구수는 1,000호이다. 

자몽현(紫蒙縣) 본래 한나라 누방현(鏤芳縣)인데, 나중에 불녈국(拂涅國)이 동평부(東平府)를 설치하고 자몽현(紫蒙縣)을 관할하였다. 나중에 요성(遼城)으로 옮겨 황령현(黃嶺縣)에 편입하였다. 발해 때는 다시 자몽현이었다. 호구 수는 1,000호이다. 

흥료현(興遼縣)은 본래 한나라 평곽현(平郭縣)인데, 발해가 장녕현(長寧縣)으로 고쳤다. 당나라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발해의 대인수(大仁秀)가 남쪽으로 신라를 평정하고 북쪽으로 여러 부족을 공략한 후 군읍(郡邑)을 설치하였다. 이때 지금 이름으로 정하였다. 호구 수는 1,000호이다. 

숙신현(肅愼縣) 발해인 호구로 설치하였다. 

귀인현(歸仁縣) 

순화현(順化縣) 

1. 3. 살필 점 

앞서 동경도에 관한 설명에서 忽汗州即故平壤城也,號中京顯德府라 하였으니 ''홀한주는 즉 옛 평양성의 땅이다. 중경 현덕부라 불렀다''라는 뜻이다. 발해의 오경 중 하나가 위치했다는 말인데 정작 이후에 나렬된 산하의 현 중에 중경 현덕부에 관한 언급이 없다. 

다만 자몽현이 동평부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뒤에 나오는 요주 시평군(遼州始平軍) 조에 발해가 동평부를 운영하던 시기에 몽주(蒙州)를 두었다고 하는데 자몽현의 몽(蒙)과 한자가 같다. 또한 동경 료양부 조에 '불녈국(拂涅國)이 동평부(東平府)를 설치하고 자몽현(紫蒙縣)을 관할하였다'(後拂涅國置東平府,領蒙州紫蒙縣)라고 하며 요주 시평군 조에 '본래 불녈국(拂涅國)의 성으로 발해 때는 동평부(東平府)이었다'(本拂涅國城,渤海爲東平府)라고 하니 동경 요양부의 땅에 동평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요주 시평군 조에서 불녈국에 관한 대목 바로 다음에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이세적(李世勣)이 요동성을 함락시켰고, 고종(高宗)이 조서를 내려 정진(程振)과 소정방(蘇定方)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신성(新城)에 이르러 대파한 곳이 모두 이곳이다'(唐太宗親征高麗,李世撥遼城;高宗詔程振、蘇定方討高麗,至新城,大破之)라고 하는데 료성(요동성, 遼城)과 신성이 '모두' 요주 시평군에 있었다고 하는 말이니 지금의 요양에 요동성이 있다고 하는 시각과 부딪힌다. 왜냐하면 요동성은 지금 요양시에 비정되는데 요주 시평군은 지금의 신민시에 비정되어 두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료 2.png
[신민시와 료양시의 위치] 

동경도의 현주 봉선군 조에 이르기를 '현주(顯州) 봉선군(奉先軍)이 설치되었으며 상등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현덕부(顯德府)가 있던 곳이다. 세종(世宗)이 설치하여 현릉(顯陵)를 섬기게 하였다. 현릉은 동단국(東丹國)의 인황왕(人皇王)의 무덤이다. 인황왕은 독서를 좋아하고 사냥은 즐기지 않았다. 책을 수만권 구입하여 의무려산(醫巫閭山) 꼭대기에 두고, 집을 지어 당호를 망해(望海)라고 하였다. 산남쪽에서 바다까지 130리 떨어져있다'(顯州,奉先軍,上,節度。本渤海顯德府地。世宗置,以奉顯陵。顯陵者,東丹人皇王墓也。人皇王性好讀書,不喜射獵,購書數萬卷,置醫巫閭山絕頂,築堂曰望海。山南去海一百三十里)이라 하였다. 

현주 봉선군이 있었다던 곳은 지금의 대릉하 서쪽이며 봉선현이 지금의 북진시로 비정되는데 의무려산의 위치를 본다면 맞다. 그곳이 동단국의 왕인 야율배가 집무를 하고 독서를 하던 곳이며 그가 죽고 시체가 묻힌 곳은 의무려산이다. 북진시가 아닌 지금의 료양시가 료양부였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료서 2.png
[하얀색 칠한 부분은 의무려산의 범위] 

(의무려)산의 남쪽으로 130리라 했는데 지금 산으로부터 바다까지 직선거리가 50킬로지만 당시 해안가는 더 북쪽에 있었고 직선 거리가 130리보다 짧을 것임을 감안하면 기록과 실제 환경이 부합한다. 아무튼 북진시에 있었던 현주 봉선군이 발해의 (중경) 현덕부였다는 명백한 기록이 이와 같다. 

앞선 동경 료양부 조에 '신책(神冊) 4년(919) 요양(遼陽)의 옛 성을 수리하고, 발해와 한족으로 동평군(東平郡)을 만들어 방어주(防禦州)로 삼았다. 천현(天顯) 3년(928) 동단국 사람을 옮겨 거처하게 하고 남경(南京)으로 승격시켰다'(神冊四年,葺遼陽故城,以渤海、漢戶建東平郡,爲防禦州。<二>天顯三年,遷東丹國民居之,升爲南京)라고 하였으며 같은 조에 '천현 13년(938)에 남경을 동경(東京)으로 고쳤는데, 부(府)는 요양이라고 하였다'(天顯十三年,改南京爲東京,府曰遼陽)라고 했으니 이 때 비로소 동경 료양부라는 이름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유추하는 점은 

1. 발해의 중경 현덕부는 지금의 북진시에 있었다

2. 거란의 동경 료양부의 첫 위치는 지금의 북진시다

3. 고구려의 신성은 지금의 신민시에 있었다

4. 발해의 동평부는 지금의 신민시에 있었다

5. 한나라의 료동군은 지금의 요하 이동에 있지 않았거나 이서에 걸쳐있었다



https://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101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 전에 이 글을 보고도 대충 읽은 결과인지 발해의 중경이 지금의 요양시에 있다는 믿음이 바뀌지 않았는데 직접 요사 지리지를 보니까 비로소 납득이 됩니다. 


참고

https://history-backup.tistory.com/entry/%EC%9A%94%EC%82%AC-%EC%A7%80%EB%A6%AC%EC%A7%80-%EB%8F%99%EA%B2%BD%EB%8F%84-%EB%8F%99%EA%B2%BD%EC%9A%94%EC%96%91%EB%B6%80-%EA%B0%9C%EC%A3%BC-%EC%A0%95%EC%A3%BC-%EB%B3%B4%EC%A3%BC-%EC%A7%84%EC%A3%BC-%EB%85%B9%EC%A3%BC-%EB%82%B4%EC%9B%90%EC%84%B1-%EC%B2%A0%EC%A3%BC-%ED%9D%A5%EC%A3%BC-%ED%83%95%EC%A3%BC-%EC%88%AD%EC%A3%BC-%ED%95%B4%EC%A3%BC-%EB%93%B1-%EC%A0%84%EB%AC%B8%EB%B2%88%EC%97%AD

https://zh.wikisource.org/wiki/%E9%81%BC%E5%8F%B2/%E5%8D%B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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