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桓檀古記)』'책의 저자 다섯 분의 역사책, 다섯권을 한권으로 묶어서 독립군 홍범도장군과 오동진장군의 자금지원으로 계연수 선생이 1911년에 펴낸 책이다.
다섯 권의 저자들은 뛰어난 학자와 정치가로서 모두 당대 최고 지성인이었다.
신라 십성(十聖) 중 한사람으로 진평왕과 선덕여왕 시대에 국정을 자문한 고승으로 '『삼성기三聖紀』'상편을 지은 안함로(安含老579~640)선생과 조선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자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삼성기三聖紀』하편의 저자 원동중(본명:원천석),
그리고 고려 후기에 여섯 임금을 모셨고 공민왕 때는 수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을 지낸 '『단군세기(檀君世紀)』'의 저자 행촌 이암(李巖, 1297~1364)선생과 고려 말에 간의대부를 지낸 두문동 72현 중의 한사람으로 '『북부여기(北夫餘紀)』'를 지은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1395) 그리고 조선 중종 때 찬수관을 지낸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저자 일십당 이맥李陌(1455~1528)이 그분들이다.
환단고기 각편의 저자들은 모두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당대의 유명한 대학자들이다. 그런데 위서론자들은 이 저자들이 책을 지은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계연수(桂延壽, ?~ 1920)선생의 제자로서 1948년에 '『환단고기(桓檀古記)』'를 가지고 삼팔선을 넘어와 세상에 전한 한암당(寒闇堂) 이유립(李裕岦, 1907-1986) 선생이 이 책을 지어냈다고 주장한다.
이유립 선생은 평생을 '『환단고기(桓檀古記)』' 대중화를 위해 몸 바친 분이다. 선생은 '『환단고기』'와 올바른 역사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열정이 있었다. 최근에 나온 어느 논문에서는 이유립 선생이 '『환단고기』'를 출간되기 전에 그 내용 일부를 다른 지면에 '환단휘기桓檀彙記' 등의 제목으로 발표한 것을 문제 삼아서 위서라 주장한다.
'『환단고기』'에 큰 애정을 가졌던 선생은 비록 제목을 바꾸더라도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기에 별 문제가 없다. 최근에는 이유립 선생이 '『환단고기』' 내용을 발표할 때 일부 자구를 바꾸고 수정 첨삭한 것을 문제 삼는다. 그런데 그 고친 자구에는 실질적인 뜻이 없이 다른 글자를 보조하여 주는 어조사(萬, 世, 於,笑 따위)가 많이 포함 되어 있다. 어조사를 고친 것은 독자로 하여금 편하게 읽게 하려는 것이 위서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한두 문장을 보충, 삭제했다고 해서 『환단고기』를 위서로 모는 것은 밥그릇 속 서너개의 돌을 보고 밥이 아니라 다 돌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사소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다섯권의 고대사를 한권으로 묶은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 부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유립 선생은 1948년 북한에서 월남할 때 가지고 온 환단고기원본 (계연수 선생이 1911년에 간행) 잃어버렸다. 이 원본이 남아 있다면 위서론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원본을 오형기 선생이 1949년에 붓으로 베껴 적었다. 이 필사본을 조병윤 선생이 광오이해사라는 출판사에서 사진으로 찍어서 1979년에 출판하였다.
환단고기내용을 외우고 있던 이유립 선생은 광오이해사본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서 1983년에 100부를 찍어 냈다. 이러한 여러 판본은 계연수 선생이 1911년에 환단고기 원본을 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이 유가의 경전인 사서오경을 공부하여 그 주註까지 암기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환단고기를 복원하는 것이 그다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상서(尙書)>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에 복생(伏生)의 기억에 의해 복원, 전수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이유립 선생이 책을 창작해서 1983년에 펴냈다는 위서론은 결코 바른 주장이 아니다.
환단고기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역사서들을 계연수선생님이 하나로 모아 펴냈고 이 서책을 이유립선생이 전해받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위서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이것뿐만 아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옛날 술어를 근대 용어로 오해하여 '환단고기'를 최근세에 쓴 책이라 주장한다. ‘인류 헌법 산업 문화 자유 평등 국가 세계만방’ 같은 용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쓰였다.
‘인류 헌법 산업’ 등은 2,200년 전 전국시대에도 쓰였고 ‘문화’는 2,000년전 한나라 때에 ‘자유,평등’ 은 1,800년 전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미 쓰였다. ‘국가’는 주역에,‘세계’는 당나라때의 능엄경에 ‘만방’은 시경과 서경에 쓰였다. 자신들이 무식해서 알지 못하면 무조건 위작이라고 꼬투리를 잡는다. 그러니 민족 반역자들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자기 조상들이 남겨준 책을 부정하다 못해 저주하는 그사람들이 누구겠는가?
길게는 1000여 년을 내려오던 환단고기속의 각편들이 오랜 기간 전해지면서 일부내용이 첨삭된 것은 고전으로 자연스러운것이다. 그것으로 위서로 몰아서는 안된다.
『환단고기』에 실린 역사서들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저술된 것이다. 오래된 책들은 전해지는 과정에서 글자가 바뀌거나 몇몇 장이 누락되거나 첨가되기도 한다. 『환단고기』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역사서나 철학서들이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서 첨삭된 내용이 많고 저자가 누구인지 불명확한 경우에도 그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동양 고전 중에서 '열자'의 경우 도가 계열의 철학서로 『도덕경』, 『장자』와 함께 ‘도가 삼서라 불린다. 이 『열자』는 위서라 부를 만한 여러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열자는 실존 인물인지, 어느 시대 사람인지 명확한 기록이 없다. 열자는 한사람이 쓴 것으로 보기 어렵다. 특히 『열자』 에는 가상 인물이 나오거나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우화가 다수 등장하는데 그 우화는 대체로 꾸며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열자』는, 이미 전해지고 있던 책을 바탕으로 하여 후세 사람들이 여러 이야기를 덧보태어 한나라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열자』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위서라는 낙인을 찍는 순간 그 책의 가치는 사라지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이라면 중국고전인 열자 장자 사마천의 사기등 수많은 고전들이 모두 위서가 되어버린다.
중국의 유명한 고대 사서인 '사기'는 사마천이 쓴 것으로, 오제중에서 황제부터 기록했는데 황제는 전설시대 인물로 명확한 근거가 없었다. 사마천은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들은 이야기나 이미 있었던 단편적 기록을 모아서 '황제편' 을 기록했다.
사실 『사기』의 기록이나 관점이 모두 사실과 부합하고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마천은 많은 비판을 받는다. 『사기』가 오랫동안 그 내용이 첨삭된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당시 기록물의 보관이나 전달이 현대처럼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기』 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전래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글이 들어가거나 빠진 부분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면 장장 1,100여 년을 걸쳐 필사된 『사기』는 꾸며낸 책, 위서일까?
우리가 잘 아는 『장자』는 어떤가? 그 유명한 ‘호접몽’이나 ‘조삼모사’ 같은 이야기가 여기에 들어있다. 이 『장자』를 놓고도 위서인지 아닌지 논쟁이 벌어졌다. 소동파는 『장자』중 몇 편은 장자가 쓴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보통 『장자』의 내편은 장자의 저작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학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장자』에 대한 여러 시비가 있다고 해서 책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유명한 철학서인 『주역』은 태호복희씨에서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왕필이 덕경德經과 도경道經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양 의학의 성서인『황제내경黃帝肉經』은 황제헌원에 가탁하여 전국시대를 거쳐 한나라때에 성립되었고, 불교경전 『화엄경』도 분리되어 있던 경전들을 수차례 결집하여 후대에 편집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문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열자』도 『사기』도 ,『도덕경』도 『화엄경』도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원래 모습이 변했지만 누구도 그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환단고기』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을 거쳐서 전해지면서 내용이 부분적으로 첨삭되었다 할지라도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서는 안된다.
그동안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한 연구논문은 지금까지 120여 편이 나왔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환단고기』는 진서眞書라는 연구결과다. 그런데도 주류사학계는 교차검증으로 『환단고기』는 위서로 판정 났다고 국민들을 속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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