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공의 동북공정에서 이제 금은 송을 밀어내고 중국의 정통왕조로 채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민족사학계에서는 발해를 통일신라에 대비하여 북조로, 그 이후 흥한 금을 고려의 북조로 받아드려 남북조 시대로 재편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송막기문은 이런 새로운 역사논쟁의 중심에 서있어 그 뛰어나 사료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금·청나라 황실은 신라인 金씨의 후예”
중원에서 한족을 밀어내고 패권을 차지한 금나라 태조 아골타. 그의 시조는 놀랍게도 신라인 함보였다.
이는 전설이나 야사가 아니라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와 금나라가 세워졌을 때 송나라에서 씌어진 ‘송막기문’에 기록된 역사다.
고려에서 온 신분으로 신라인인 금시조 아골타의 출생연도를 계산해 보면 그가 여진에 들어온 시기는 신라 말 고려 초다.
조선 유학자 김세렴은 아골타를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외손이며 조선 최고 가문인 권행의 후예라고 했다.
권행의 본래 성은 김씨. 즉 김행의 아들이며 경순왕의 외손인 금의 시조.
당시 족내혼을 했던 신라 왕실의 관습을 고려하면 그의 성은 김씨이며 신라의 후예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