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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14 00:53
[한국사] 진왕제가설에 따른 광개토태왕비문 해석의 의아한점...
 글쓴이 : 밑져야본전
조회 : 787  



진왕제가설에 따른 해석



<원문>

백잔(百殘)과 신라는 옛적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391)에 건너와 백잔을 격파하고 신라를 ... 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진왕제 해석>

‘백잔’은 한성백제를 가리킨다. 그러나 ‘왜’는 광개토태왕비의 건립 시점(414)을 기준으로 진왕이 우두머리인 비류백제를 가리키니 곧 ‘잔국’이다(‘왜’=‘잔국’). 즉 신묘년(391) 기사는 ‘왜군이 건너와 백제를 격파한’ 것이 맞으며, 다만 이것은 열도의 왜국이 건너온 것이 아니라, 웅진성의 진왕이 한성백제의 왕위 계승에 개입하여 고구려와의 전쟁에 소극적인 진사왕을 폐하고 아신왕을 세운 것을 가리킨다

→  여기서부터 의아합니다.. 391년이면 비류백제는 엄연히 '왜'가 아니지만, 비문 건립 당시(414년)의 정체성으로 비류백제를 표현한것이라고 해석한 점.. 왜 굳이 그렇게 기록을 할까요?
그냥 '잔국이 백제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기록하고 그 '잔국'이 나중에 '왜'가 된다는 것을 후술하여서 그냥 순서대로 기록하면 되는데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있나요? 이건 결국 비문을 만든 당시 고구려인들 역시 임나일본부 논리식으로 전제를 뒤바꾼 관점을 수용하고 있었다고 밖에 안보입니다.


<원문>

'영락 6년(396) 병.신년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잔국(殘國)을 토벌하였다... (중략) ... 잔(殘)이 의(義)에 복종치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를 건너 정병(精兵)을 보내어 그 수도에 육박하였다. (잔군이 퇴각하니) 곧 그 성을 포위하였다. 이에 잔주(殘主, 잔국의 왕)가 인핍(因逼)해져, 남녀 1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태왕의 노객(奴客)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진왕제 해석>

비류백제가 진왕 휘하의 중소국 한성백제의 정권까지 교체해가면서 고구려와 대립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396년 광개토태왕은 한강(아리수)를 건넌 후 ‘잔국’으로 지칭된 금강 유역의 비류백제를 공격하여 진왕(<일본서기>의 응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노객으로 삼았다. 

→ 이 부분은 고구려가 한성 백제를 쳐서 아신왕이 나와 항복을 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가 한성 백제를 친게 아니라 곧바로 금강 유역의 비류 백제를 쳐서 진왕(응신왕)의 항복을 받은 것으로 해석 합니다. 한성 백제는 그냥 지나쳐 통과했다는 얘기인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원문> 

영락 9년(399) 기해년에 백잔(百殘)이 맹서를 어기고 왜(倭)와 화통하였다. (이에) 왕이 평양으로 행차하여 내려갔다. 그 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뢰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차 성지(城池)를 부수고 노객으로 하여금 왜의 민으로 삼으려 하니 이에 왕께 귀의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왕이 은혜롭고 자애로워 신라왕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신라사신을 보내면서 계책을 돌아가서 고하게 하였다.
영락 10년(400) 경자년에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남거성(男居城)을 거쳐 신라성(新羅城)에 이르니, 그 곳에 왜인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진왕제 해석>

그럼에도 399년에 이르러 한성백제가 비류백제와 화통하고 신라를 괴롭히니, 400년에는 신라의 요청으로 5만 병력을 동원하여 비류백제를 공격하였으며, 그 여파로 신라 영토 내에까지 비류백제의 피난민(‘왜인’)이 가득 찼다(‘120현의 백성들’, <일본서기>). 태왕은 비류백제군을 끝까지 추격하여 임나가야(부산 지역)의 종발성에까지 이르렀다.

→일단 원문에 따른 사건의 순서는, 399년 백제와 왜(비류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의 국경이 왜인으로 가득찰만큼 위기에 빠지게 되자, 신라왕이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게 되고, 400년에 5만의 고구려 군이 신라를 구원합니다. 근데 진왕제 해석을 보면 신라의 국경에 왜인이 가득차게 된 이유가 백제와 왜(비류백제)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고구려군의 왜(비류백제)에 대한 공격의 그 여파로 피난민(왜인)들이 발생하여 신라의 국경에 가득차게 된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문에 버젓이 나와있는 사건의 순서를 멋대로 뒤바꾸고, 신라 국경에 가득찬 왜인들을 공격군이 아닌 피난민으로 그 정체성을 뒤바꿔버린 겁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전 납득이 잘 안되는군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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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근진 21-08-14 07:57
   
제가 책에서 찾은 내용과 이해한 바로 답을 드리면,

>  여기서부터 의아합니다.. 391년이면 비류백제는 엄연히 '왜'가 아니지만, 비문 건립 당시(414년)의 정체성으로 비류백제를 표현한것이라고 해석한 점.. 왜 굳이 그렇게 기록을 할까요?
→ 네티즌고대사 p.310 ... 잔국이나 왜나 다 삼한의 열국들이지만, 복속하여 수묘인조로 편입된 존재는 잔국으로, 불복하고 끝까지 싸우거나 열도로 도망쳐 왜국을 건국한 존재는 왜로 표기했다고 봅니다.
(제 생각) 백제는 담로제 70여국의 행정구역이 있으니 분리하여 표현한 것일지도...

> 이 부분은 고구려가 한성 백제를 쳐서 아신왕이 나와 항복을 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가 한성 백제를 친게 아니라 곧바로 금강 유역의 비류 백제를 쳐서 진왕(응신왕)의 항복을 받은 것으로 해석 합니다. 한성 백제는 그냥 지나쳐 통과했다는 얘기인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 재조명3 p.310 ... 고구려군이 육군이 아니라 수군을 이용하여 서해안을 남하하여 웅진의 입구인 아산만에 기습적으로 상륙했기 때문이다.
(제 생각) 해양강국인 백제를 수군으로 공격하다니... 수전은 아니었지만 허를 찌르는 대담한 도박이었네요.

> 일단 원문에 따른 사건의 순서는, 399년 백제와 왜(비류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의 국경이 왜인으로 가득찰만큼 위기에 빠지게 되자, 신라왕이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게 되고, 400년에 5만의 고구려 군이 신라를 구원합니다. 근데 진왕제 해석을 보면 신라의 국경에 왜인이 가득차게 된 이유가 백제와 왜(비류백제)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고구려군의 왜(비류백제)에 대한 공격의 그 여파로 피난민(왜인)들이 발생하여 신라의 국경에 가득차게 된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문에 버젓이 나와있는 사건의 순서를 멋대로 뒤바꾸고, 신라 국경에 가득찬 왜인들을 공격군이 아닌 피난민으로 그 정체성을 뒤바꿔버린 겁니다.. 
→ 재조명1 p.474 ... 왜인들은 전투부대가 아니라 피난민적 성격을 가진다 ... 아신왕 8년에 백제가 고구려를 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병마를 징발하자 백성들이 군역을 피하여 대거 신라 땅으로 달아 났는데...
(제 생각) 즉, 396년 고구려의 백제 정벌 여파로 백제와 한성백제에서 난민이 발생했고, 그들은 임나가야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모여있다가 후에 고구려/신라의 양해를 구하고 대마도->큐슈->오사카(기내)로 이동합니다.


(역시 좋은 질문은 사람을 공부하게 만드네요.^^  감사합니다)
.
성길사한 21-08-15 16:02
   
고대사에서 왜인은 일본인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한반도 해안가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백제 신라를 제외한 호남 영남 해안가지역 사람들 모두가 다 왜인입니다.
테킨트 21-12-10 09:07
   
왜라는게 결국 한반도 중남부에 살다가 북방계에 의해 열도로 밀려난 남방계를 가리키는거라고 보면 답이 나옴
잔류왜는 북방계에 흡수됐고 도주왜는 현재의 왜구를 형성함.

근데 왜구들은 지들이 한반도에서 쫒겨났다는걸 절대로 인정할 수 없기때문에 고대 아시아를
지들이 지배했다는둥 정신나간 소리를 지껄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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