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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06 22:00
[한국사] [사견] 말갈박사의 말갈이야기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829  

https://youtu.be/c6ElM5UHQ3g


영상 내용은 왜 말갈사를 우리역사에 포함시켜야하는가에 대한 국내유일의 말갈전공자인 말갈박사 강의입니다. 강의에 대해 추가로  하고픈 이야기는 강의 초반에 나오는  말갈박사님의 한국고대사 인식입니다.

1. 한무제의 위만조선 침략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내부분열로 인해 위만조선은 멸망하고 그 자리에 낙랑 임둔 진번 자리에 한3군이 들어섰습니다. 또 현토에 현토군도 들어서 한4군이 생겼지요

2. 문제는 한4군의 위치가 어디냐인데 이병도를 필두로 하는 주류강단사학계는 평양설을 주장하다 근거가 딸리자 요즘은 요하설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고구려등 토착세력의 등장으로 요동지역으로 이치되었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이 설 또한 고고학적 문헌적 증거와 맞지않기에 점점 서쪽으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3. 비주류강단사학계는 윤내현교수를 필두로 난하유역과 그 근방에 한사군이 있었으며 그뒤로 요하서쪽까지 확장했다가 고조선 잔존세력과 후에 고구려와 백제의 성장으로 난하를 넘어 북경일대까지 쫒겨났다가 없어졌다고 주장합니다.

4. 사서들을 보면 낙랑군에는 수성현이 있었는데 여기에 진장성의 동단이 있었고 그 시작을 갈석산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이병도는 평안도 수안군을 수성현으로 비정하는 코미디를 벌였고 윤내현은 동북공정이전 실증유물사관을 바탕으로 중국역사학자들이 고증한바대로 진황도시에 있는 갈석산이 그 갈석산임을 재논증하여 지금 북경근처 난하유역의 진황도시가 낙랑군임을 고증하고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 참조)

5. 개인적으론 윤내현교수의 낙랑 난하위치론이 논리적으로 그리고 문헌적으로 옳다고 보고 있으며 점점 주류사학계도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볼때 조만간 한4군은 난하로 위치비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6. 말갈박사의 강연 초기부분을 보면 말갈박사님은 한4군 성립이후 고조선은 기존체제가 붕괴하여 열국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윤내현교수를 비롯한 비주류강단사학의 입장입니다. 저도 그리 보고 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낙랑군과 낙랑국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럼 평양지역의 낙랑유물을 어찌 봐야할까요? 참고로 유적이 유물보다 중요합니다. 유물은 여러손으로 거쳐 유적에 묻힐 수 있으니까요.

7. 평양지역의 낙랑유적은 일제관변사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가장 이른 유적인 고분의 경우 방사성동위원소법에 의해 측정된 시기가 1세기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즉 동한시대 유적이 최고의 유적입니다. 반면 일부 유물들은 기원전 서한시대 유물들도 있습니다. 북한학자들에 의해 추가로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도 존재하는데 전형적인 고조선양식과 후대의 고구려양식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8. 기원직후 후한 광무제는 신나라를 없애고 한왕조를 부흥시킵니다. 이를 동한 혹은 후한이라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광무제는 만주에서 성장하는 고구려를 견제하고자 한편으론 기존 한군현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론 고구려의 배후를 치고자 43년 수군을 동원하여 지금의 평양지역을 점령합니다. 당시 고구려 대무신왕은 최리왕의 낙랑국을 멸하고(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참조) 평양지역을 점령하였으나 이를 후한에게 빼았겼지요. 최리의 낙랑국은 아마도 위만조선의 낙랑지역 점령에 항거하며 동쪽으로 이주한 집단이 만든 나라로 추정됩니다. 한나라는 평양지역을 난하유역의 낙랑군의 속현으로 삼았고(이는 동한시대 봉니와 호구민조사기록을 담은 목간기록이 증거합니다) 기존 낙랑유민을 참여시킨 일종의 군사식민지이자 반독립국인 낙랑국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미국ㅡ일본 관계라고 봅니다. 낙랑국은 서기 300년에 대방국과 더불어 신라로 귀부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윤내현의 한국고대사신론과 삼국사기를 참조하십시요)

9. 이후 후한말 공손일가가 요동요서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며 기원후 3세기 중반 대방군을 요동반도와 일대에 만들자 고조선유민들은 다시금 이동하여 황해도 일대에 나추(?)의 대방국을 만듭니다. 대방국은 백제와 우호관계를 맺었고 이후로 일절 말갈의 백제침략이 없었고 외려 한강변에 고구려식 적석총이 세워진 점과 대방국 보과공주가 고이왕에게 출가한 점으로 미루어 대방국은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추정됩니다. 즉 대방국은 요동에서 한반도 서북지방에 살았던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또하나의 나라이며 말갈은 이들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후대에 중국사서에 등장하는 말갈과는 다른 족속으로 추정됩니다.

10. 아무튼 한반도 말갈은 오랜기간 고구려에 부용하다 공손씨의 등장으로 황해도지방으로 내몰리며 나라를 세웠고 그뒤론 백제와 친하게 지내다 고구려에 정벌당하여 신라로 귀복했다고 보입니다. 백제가 아닌 신라로 귀복한 것은 서기 300년당시 백제는 힘이 없었고 근초고왕이 들어서서야 비로소 힘이 생겼기에 고구려에 저항하는 세력으로선 백제로 가기엔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삼국사기에 보면 고조선유민이 세운 나라가 신라라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친연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의 내용은 위 유투브와 김상 저 삼한사의 재조명 1 2 3를 참고하십시요.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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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짱 21-07-06 22:01
   
사견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arauder 21-07-06 23:37
   
내부분열이건 뭐건 포위당한채로 항복했으니 패배라고봐야죠. 그리고 주류강단사학계에서 정말 요동으로 비정하나요? 계속 평양으로 주장하고 왕검성이 평양에 없었다던 고고학계도 낙랑은 평양이라고 하던걸로 아는데 제가 잘못안건가요?
     
지누짱 21-07-07 00:46
   
두부류가 있는 하나는 일종의 이치설같습니다. 평양에.있었는데 요동으로 쫏겨났다 이정도입니다. 또하나는 압록강과 요하사이에 있는 강을 경계로해서 거기에 한4군이 있었다고 보는데 여전히 평양을 낙랑군으로 보고 있는건 마찬가지라고 보여집니다.
          
지누짱 21-07-07 00:51
   
아 좀 곡해했네요 패수의 위치에 대한 토론이었습니다
박준형박사 주장이네요.
https://youtu.be/aXbe5__8TIo

이것도 참조하셔요
https://youtu.be/NrALsUDAtUM
엄근진 21-07-07 21:41
   
"아무튼 한반도 말갈은 오랜기간 고구려에 부용하다 공손씨의 등장으로 황해도지방으로 내몰리며 나라를 세웠고 그뒤론 백제와 친하게 지내다 고구려에 정벌당하여 신라로 귀복했다고 보입니다."
>> 공손연은 ad 189~238 시기인데, 삼국사기를 보니 신라는 ad 125년부터 말갈의 침략을 받았고, 백제는 bc 17년부터 말갈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제시한 설은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추가로... 김상님 방법론을 따라 말갈 키워드로 삼국사기를 모두 검색해 보니, 말갈은 고구려와는 건국 시에 단 한번 교전한 후 속민이 되고, 백제와는 bc 17년부터 31번의 교전이, 신라와는 ad 125년부터 11번의 교전이 있었네요. 중간에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시기도 있고... 왠지 왜(임나가야)와 같이 삼국사기가 이름을 바꾼 또 하나의 우리 국가/정치체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다만 고구려 멸망 이후 표기된 말갈은 다른 정치체로 추정됩니다. 당/거란/말갈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하다니...
엄근진 21-07-08 10:16
   
이런... ㅋㅋㅋ
지누짱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죄송한 건 공유해 주신 동영상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위의 댓글을 달아서이고, 감사한 건 좋은 동영상을 공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영상에서 민성욱 교수님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관점의 얘기를 해주셨네요.

1. 삼국사기에서 등장하는 말갈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구성 요소
2. AD 7세기 이후의 말갈은 BC 1C ~ AD 6C 의 말갈과는 다른 존재가 아닐까? (중국사서에는 AD 563년 북제서에 말갈이 처음 등장)

1번 항목에 대해서 풀어야 할 숙제는 왜 말갈이 굳이 백제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연히 김상훈 교수님(일도안사. 김상)과 연락이 닿아 말갈이 나타난 지명에 대해 여쭈니, 백제의 이동에 따라 요서의 지명이 한반도 중부로 옮겨졌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지명 이중화). 이 의견을 인정한다고 하면, bc 37~ ad 108 까지의 말갈은 요서지방, ad 125 이후의 말갈은 한반도 중부로 봐야하지만, 이동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네요.

말갈이 삼국사기에 나타난 시기와 지명에 대해서 정리해 보면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엄근진 21-07-08 21:11
   
말갈은 공부 할 수록 흥미롭네요.

윤내현 교수님도 이미 '한국 열국사 연구'에서 분석을 하셨는데, 시기/장소에 따라 크게 4개(만주말갈/한반도중부말갈/중국말갈/발해말갈)로 구분하고 그 중 우리의 관심인 ad 1c~bc 5c 한반도 중부의 말갈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결론 내렸습니다 (p.643)

"... 한마디로 백제와 신라 북쪽에 있었던 말갈은 동예나 독립된 나라가 아니었고, 최씨낙랑국에 종속되어 있다가 최씨낙랑국이 멸망한 뒤에는 고구려에 종속된 부용집단이었다."

제게는 '정체를 모르겠다'는 말로 들리네요. ^^;
엄근진 21-07-08 11:31
   
6번 항목에 대해서도 좀 생각이 다른게, 고작 서쪽 변방의 거수국이던 위만조선이 망했다고 고조선이 해체 되었을까요?

전 오히려 bc 4~3세기 철기시대의 도래가 고조선 붕괴 및 열국시대 진입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군현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고...  제 짧은 지식으로도 한군현 설치 이전에 요동(산해관 이동~한반도 이북)/한반도에서 확인되는 국가만 해도 기씨조선, 진번조선, 부여, 원고구려, 진 등의 나라가 있습니다.

즉 고조선은 한군현 설치(bc 108년) 이전에 이미 해체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 역사의 변곡점은 bc 15c 청동기 시대 도래, bc 4c 철기 시대 도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구리 21-07-10 18:37
   
삼국초기 말갈은 민족명이나 국가로 보는 것 보다는
말갈을 말갈이.. 말을 갈아타는 기마부대로 보는 것이 어떨까요?

고려시대 이후에 여진족을 말갈족으로 불렸지만..
삼국초기, 고구려시대에 말갈국은 삼국사기나 중국사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말갈과 전투했다, 말갈이 침입했다 정도입니다 --> 기마부대와 전투했다, 기마부대가 침입했다로 볼 수 있습니다)

 몽고의 경우 말을 타면서... 여분이 1~2마리 말과 같이 가면서
교대로 말을 갈아타는 말갈이(말 갈아타기)를 고대인들이 말갈로 호칭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말갈이 삼국시대에 존재하지만.. 말갈의 국가나 민족은 삼국시대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엄근진 21-07-10 22:27
   
저도 그런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프랑스 외인부대 같은...?)

'고구려와 말갈' 이나, '고구려,말갈,백제' 같은 표현들이 있으니 국가나 정치체, 종족 단위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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