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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03 16:34
[한국사] 난로회(煖爐會)는 조선 고유의 풍습인가?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379  

소고(小考)로서의, 난로회(煖爐會) 연구

작성자 : 무쿠리(mvkuri)


이 소고(小考)는 조선시대에 10월 풍습으로서 성행한 난로회(煖爐會)의 기원과 유래에 대한 것으로서 난로회에서 먹었던 요리, 그 요리의 구성과 조리 방식의 특징을 다루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대중들의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한 태도는 여느 나라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때에 따라 극단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본질과 사실을 벗어나서 민간설을 강하게 형성합니다.

이 글은 난로회가 중국에 없었다든가 일본에서는 고기를 구워서 먹는 요리가 없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사람들이 불 앞에 둘러앉아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는 음식문화 자체, 심지어 불판에 고기를 구워먹는, 조리방식으로서의 요리가 우리 고유의 것이다 하는 강한 편견에 저항합니다. 
 

Ⅰ. 옛 중국의, 음력 10월 풍습 난로회(煖爐會)

(취옹담록과 동경몽화록의 해당 원문 국역은 필자 본인이 하였습니다. 오역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남송(南宋)의 김영지(金盈之)가 지은 풍속사전인 《취옹담록(醉翁談錄)》에 난로회(煖爐會)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취옹담록(醉翁談錄)》이라는 제목을 지닌 남송(南宋) 시대 책이 하나 더 있는데 송말 원초 소설가인 나엽(羅燁)인 지은 소설집이 그 다른 하나입니다. 김영지(金盈之)가 지은 《취옹담록(醉翁談錄)》에는 난로회(煖爐會) 풍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옛 풍습(舊俗)에, 10월 1일(음)이면 화로를 피워놓고 불을 쬐면서 술을 따라 잔을 채우고(沃酒) 저민 고기(臠肉)를 화로 가운데(爐中)에서 구우며(炙) 둘러 앉아서(圍坐) 마시고 먹으니(飲啖) 일컫기를 난로(煖爐)라 하였다. 지금까지 민가에서는 친척(親黨, 친당)이 새신부(新嫁女)를 환송할 때에, 땔나무(薪)와 숯(炭), 술(酒)과 고기(肉), 비단(縑)과 솜(綿)을 화로(火爐)와 같이 딸려 보낸다. 《취옹담록·권4 경성풍속기》

舊俗:十月朔開爐向火,乃沃酒及炙臠肉於爐中,圍坐飲啖,謂之煖爐。至今民家送親黨薪炭、酒肉、縑綿,新嫁女并送火爐。《醉翁談錄·卷四京城風俗記》


이보다 이른 시기의 문헌으로는, 북송(北宋) 말기 개봉(開封)의 풍속을 기록한,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이 있습니다. 


10월 1일(음), 재상과 신하(宰臣)들이 비단옷을 받아 입는다. 3일(음), 일반 백성들(士庶)은 모두 성(城) 밖에 나가서 성묘를 한다. 차마(車馬)의 통행을 금하고, 길을 나서 사원과 서경의 능묘에 가 참배한다. 종실(宗室)의 차마(車馬)의 법도는 또한 한식절(寒食節)과 같다. 관리(有司, 관리)들이 난로탄(暖爐炭)을 들이라 하면 민간(民間)에서는 모두 술을 만들고 난로회(煖爐會)를 연다. 《동경몽화록·제9권》

十月一日,宰臣已下受衣著錦襖。三日(今則五日),士庶皆出城饗墳。禁中車馬,出道者院及西京朝陵。宗室車馬,亦如寒食節。有司進暖爐炭。民間皆置酒作煖爐會也。《東京夢華錄·第九卷》


이 두 문헌의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북송(北宋) 시대의 중국에서는 음력 10월 1일 즈음에 난로(煖爐)를 피우고 둘러 앉아서 술을 마시며 고기를 구워먹는 풍습이 있었고, 이를 난로회(煖爐會)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계의 견해는 어떠할까요?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Ⅱ. 학계의 난로회 설명 및 그 설명에 나타난 여러 문헌 내용


1)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난로회(煖爐會) ①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7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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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10월 서울 풍속에 숯불을 화로 가운데 활활 피워 놓고 번철을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 달걀, 파, 마늘, 고춧가루에 조리하여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는다. 이것을 난로회라 한다. 이달부터 추위를 막는 시절음식으로 먹으며, 이것이 곧 옛날의 난란회(煖暖會)이다. 또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무, 외, 훈채, 달걀을 섞어 잡탕을 만드는데 이는 열구자신선로(悅口子神仙爐)라는 명칭이 있다고 하였다. 『세시잡기(歲時雜記)』에 “북경 사람은 10월 초하루에 술을 걸러놓고 고기를 화로에 구워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 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옛날부터 있던 중국의 시절식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이덕무의 시구 가운데 남국과홍(南國鍋紅)이 나오는데 주석에서 냄비의 모양이 갓과 같다. 이것으로 고기를 구워 난로회를 여는데 이 풍속은 일본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다.

옛날의 돌전골틀은 높이가 낮고 전이 따로 달려있지 않은 움푹한 돌판 형태였으므로 예전에는 탕전골이 아니라 국물이 없는 구이전골 형태가 많은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의 난로회 풍속은 여러 가지 글귀와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정조 대의 문신 신광하(申光夏)는 두만강 일대를 탐방하며 지은 시에 화로 위에 전골을 지지는 철판을 놓고 둘러앉아 쇠고기를 구워 먹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추운 겨울에 먹는 멋이 있고 또 고기를 먹은 뒤에는 꼭 채소를 곁들여 먹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요즈음의 전골 요리나 채소 쌈을 함께 먹는 것과 비슷하다. 박지원(朴趾源)의 『만휴당기(晩休當記)』에는 “눈 내리는 어느 날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볶아 먹으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는 이런 음식을 전골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1781년(정조 5) 겨울에는 정조가 밤늦게 일하는 규장각, 승정원, 홍문관의 유생들을 불러 난로회를 열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19세기 난로회의 장면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잔설이 내리는 음력 10월에 뜻이 맞는 사람끼리 둘러앉아 육적과 노주를 곁들이니 살을 에는 추위도 부러운 듯 잦아든다고 한 작자 미상의 <야연(野宴)>이라는 그림에서도 권세가들의 난로회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상 전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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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난로회(煖爐會) ②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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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0월에 전골냄비에 쇠고기를 비롯한 여러 재료를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 음식을 둘러앉아 먹던 풍속. 예전에는 숯불을 지핀 화로를 가운데에 놓고 번철을 올려 쇠고기에 기름,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로 조미하여 굽거나 볶아서 둘러앉아 먹었는데 이를 난로회(煖爐會)라 하였다. 난란회(煖暖會)라고도 한다. 전골은 이 난로회에서 유래했으며, 날씨가 추워지는 이때부터 먹는 음식으로 추위를 막는 시절 음식이다.

『세시잡기(歲時雜記)』에 북경 사람은 10월 초하루에 술을 걸러놓은 후 고기를 화로에 구우면서 둘러앉아서 마시며 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 한다고 하였다. 또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10월 초하루에 유사(有詞)들이 난로와 술을 올리라고 하면 민가에서는 모두 술을 가져다 놓고 난로회(煖爐會)를 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옛날의 전골틀은 돌이나 쇠로 되어 있는데 돌전골틀은 높이가 낮고 전이 따로 달려 있지 않은 움푹한 돌판의 형태이나, 쇠전골틀은 전립을 거꾸로 한 형태로 둘레에는 기름에 잰 고기나 채소를 지지고, 가운데는 장국을 끓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국물에 잠기도록 끓이는 탕전골이 아니라 국물이 없는 구이전골의 형태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숯불에 석쇠나 전골틀을 올려놓고 여럿이 모여 앉아 양념에 잰 고기를 구워먹는 난로회에서 유래한 쇠고기 전골은 지금은 남한식과 북한식에 조금 차이가 있다. 북한식에서는 고기를 잴 양념장에 식초를 넣는데 이것은 고기의 미세한 균을 없애기 위한 것이며, 식초를 넣으면 고기 본연의 씹히는 맛을 더 좋게 해준다. 쇠고기는 등심이나 안심을 준비해 얇고 넓적하게 썰어 준비하고 간장에 설탕, 다진 파, 마늘, 깨소금, 참기름, 후춧가루, 배, 식초를 넣고 고루 섞은 양념장을 고기에 부어 하룻밤 정도 재어 두었다가 틀에 굽는다. 구울 때 버섯이나 고추 같은 채소류를 함께 구우면 향이 좋다.

(이상 전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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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식문화사전 난로회 - 『홍재전서(弘齋全書)』의 1781년 난로회

(https://www.kculture.or.kr/brd/board/640/L/menu/641?brdType=R&thisPage=25&bbIdx=11603&searchField=&searchText=&recordCnt=10)

- - - - -

정조는 난로회를 열어 종종 신하들과 같이 시를 지으며 연회를 즐겼다.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1781년 정조가 신하들과 함께 매각(梅閣)에서 난로회(煖爐會)를 베풀었다 (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조는 매(梅)자를 뽑아 칠언절구를 짓게 하였다. 이때 정조가 남긴 시는 가벼운 차림으로 매화나무 아래에서 난로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정조는 이날 난로회를 함께 즐긴 신하들에게 꽃이 피면 다시 한 번 모여 난로회를 즐기자고 한 후 실제로 꽃이 핀 후 다시 모여 똑같이 시를 지으며 난로회를 즐겼다고 한다. 정조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수고한 신하들을 치하하는 의미에서도 난로회를 열었다. 

『홍재전서』에는 바쁜 와중에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갖가지 서적들을 연구하는 승정원 홍문관 규장각의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릴 때 정조는 난로회의 고사(故事)를 따라해 탁자 가득 좋은 술과 안주와 함께 자신이 지은 시구(詩句)도 같이 보냈다고 한다. 1782년 10월 3일 『일성록(日省錄)』에도 난로회와 관련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날은 정조가 신하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정기 시험인 과시(課試)로 지어야 하는 칠언사운율의 시의 제목을 난로회로 하기도 했다. 그런데 궁중의 난로회와 민간의 난로회는 그 모습이 조금 달랐던 듯하다. 궁중의 난로회의 중심은 연회와 시를 짓는 것이었다. 민간의 난로회는 고기를 굽는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연암집(燕巖集)』의 「만휴당기(晩休堂記)」에는 난로회를 같이 하던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김선행(金善行: 1716-1768) 사이에 벌어진 일화가 담겨져 있다. 이때 박지원은 난로회를 난회(煖會)라고 하면서 철립위(鐵笠圍)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박지원은 난로회를 하면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 고기 누린내 등이 몸에 배었다고도 묘사했다. 19세기 중엽 세시풍속에 관해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난로회가 등장한다. 이 책에서의 난로회는 한양의 풍속으로 음력 10월 초하룻날 화로에 숯을 피우고 석쇠에 기름장 달걀 파 마늘 산초가루로 양념한 소고기를 구우면서 둘러 앉아 먹는 행사로 기록되어 있다.

(이상 전문 발췌)

- - - - -


Ⅲ. 정리

난로회(煖爐會)라는 풍습은 중국에서 전래된 풍습으로, 조선시대 당시에도 이 풍습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풍습은 전래된 것이나 그 내용, 즉 고기를 먹는 방식이나 자리를 즐기는 방식은 조선의 고유한 방식으로 발전하여 전통성을 지니고 계승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난로회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방식에는
① 철립(鐵笠)과 같은 형태의 조리도구를 이용하여 가운데 우묵한 곳에는 채소와 육수를, 가장자리 챙에는 고기를 굽는 방식
② 석쇠에 고기를 굽는 방식
③ 돌로 된 얕은 깊이의 전골판에 고기를 굽는 방식
등이 있었습니다.
 
난로회에서 먹은 고기요리는, 돌전골판을 이용한 경우 오늘날의 불판구이보다는 구이전골에 가까운 것으로 관련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편, 철립(鐵笠)과 같은 형태의, 안이 우묵하고 가장자리에 넓은 챙이 있는 조리도구가 일본에서 전해진 것이다 하는 기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시사, 특히 음식문화사에 있어서 이기적인 편견의 고수는 사실의 전파와 진실의 공유를 방해하고, 나아가 그 공동체 문화의 창달을 박해합니다. 

오늘날 이웃 국가 일본과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 식의 고기 요리 문화가 널리 유행하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고기 요리문화가 지닌 고유성과 독창성에 대한 진단과 개념화에 보다 정밀하고 현명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 무쿠리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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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21-07-03 16:38
   
이 글을 작성한 이유는 다음 글에서의, 유저들 사이의 논란에 있습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humor04&wr_id=819264&page=2
감방친구 21-07-03 16:39
   
불고기 역사 - 음식 교류사 관련 정보는 아래의 링크에, 정리를 정밀하게 잘 해놓은 글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nightblack/10096913835
국산아몬드 21-07-03 19:42
   
야외에 모여서 음식을 먹는 문화라는건 어디에도 있는 겁니다
서양에서도 바베큐 파티같은거 하잖아요

중국은 그런 활동을 음력 10월에 정기적으로 하는 모임을 만든 것이고
조선도 그에 따라 음력 10월에 야외에서 음식을 먹는 행사를 만든것이죠
그것을 난로회라고 한 것이지
야외에서 음식을 먹는 문화를 최초로 만들었다는 뜻은 아닐겁니다

그리고 중국 음식은 죄다 웍에다가 기름에 볶아서 만드는데 양념에 저민 음식을 야외에서
구워서 먹었다는것이 의외네요
중국음식중에 고기를 굽워서 만드는 음식이 없잖아요.
기가듀스 21-07-03 21:08
   
긴글 쓰느라 고생하셨는데
학자들끼리 문헌배틀 뜨는 것 이상은 아니라고 봄.

이건 축구의 기원을 증명하는 것 만큼이나 의미 없는 얘기임.
짐승들도 동그란 물체가 굴러가면 지들끼리 차고 놈.

인류가 불을 발견한 뒤 뭘 했을 것 같음?

연인들끼리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라면서 특별한 날 기분내는 것 처럼
그냥 술 좋아하는 애들끼리 놀 핑계거리 찾았던 것이고
200년 뒤 한반도인이 할로윈의 기원을 얘기하는 것과 다를바 없음.
나무나무통 21-07-03 21:39
   
정리된글 잘 읽었습니다.
고기먹는것에 관한것중 현재 먹는것은 각자가 경험하는것이니 다양한 경험이 있을겁니다
여기에 대해 적어보면
우리가 고기를 구어먹는 방법
불판과 숮같은 불을피는 재료등이 한국적인 자연환경에서 나온게 있을거고요
외국과의 교류로 다양한 굽는방법 유튜브등으로 보는 시야도 넓어지는데요
한국식 고기먹는것이야 다들 익숙할것이고
미국식 웨버바베큐 그릴이 들어와 직화외에 간접구이도  하게되고
공간상의 여유. 집안이 아니라 집밖  야외그리고 고기굽는 장비의 크기
그릴의 크기거 커지면 고기부위를 크게 통째로 구울수 있고.토마호크 같은경우는 지금
편하게 구할정도로 대중화되었고
고기라는게 풀뜯어 먹은 소와 사료 먹은 고기가 맛이 다르고
두꺼운 고기른 굽는방법에 따라 먹는 맛과 한국식으로 잘라 얇게 먹는것도 맛이 다르고
거기에 소스를 어떤식으로 하느냐 그냥 바르거나 주사하거나 양념으로 하느냐
이제는 고기를 숙성하는데 며칠이냐 몇개월이냐  벼라별 맛을 찾는  행동들을
지켜보면서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벼라별 시도들중 앞서나가는게 한국인것도 같은데
그냥 개인적인 결론은
문화란  나라가 좀 먹고살만해지고 여유가 있을때 이것저것 해볼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있을때
제일 풍부하게 발전하고 그게 또 강요없이 제일 재미있는건 아닌가 합니다
고기 궈 먹는것도 현재 한국이 최강이라그 생각되는게
역사적인것도 아니고 뭐 우리가 독창적이라 그런것도 아니고
고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그냥 이것저것 맛 찾아 다 찾아보고 아것저것 하다
맛있는 방법 있으면 유튜브에 자랑하고 또 그거보고 따라하다
더 맛있는 방법  찾고 또 공유하고 이것 아닌지

중국애들은 주석이 먹방도 워라해서 막는
이럼 흐름이 끊겨 발전이 없으니 이상한 과거 타령으로 한탄만 하는것 아닌가도 생각하고요
     
셀시노스 21-07-04 11:24
   
리씨조선이라는 말에
ㅂㄹ을 탁치고 간다 ㅋㅋㅋ

북조선에나 가서 의견 달아보던지
니의견이랄것도 있겠냐
김씨돼지 입장이겠지

남의 나라 음식력사에는 관심끄고
늬들이나 고기구워먹는 아름다운 풍습이나
열심히 되살이라우 동무.  알간?
          
위구르 21-07-04 17:16
   
리씨조선이라는 말에
ㅂㄹ을 탁치고 간다 ㅋㅋㅋ <- 저분은 만주동포인데 무슨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부랄이 아니라 님 대가리를 철퇴로 쳐서 쪼개야 할듯
               
셀시노스 21-07-04 23:19
   
ㅋ 요놈이 편드는걸보니
조선족이냐

하 지 조상도 모르는 놈들이 역사에 대해 뭘 아는체한다고

개 한심한 작태에
니 ㅂㄹ이나 탁치고 간다

ㅋㅋㅋㅋ
                    
위구르 21-07-04 23:58
   
니 ㅂㄹ이나 탁치고 간다 <- 치지는 말고 니 입으로 빨아라
          
지누짱 21-07-05 09:50
   
너 여기 처음이구나 ㅋㅋㅋ
너의 편협함에 니 ㅂㄹ 쪼그라든 소리가 다 들리네
아비요 21-07-05 22:12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고기구워 먹는 방식과 난로회가 따로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니까 기존의 고기 구워먹는 방식이 별도로 있는데 중국식 고기구워먹는 방식이 들어왔을까요?

아니면 난로회에서 한국의 모든 고기 구워먹는 풍속이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이 부분이 중요할것 같은데요.

위 글은 결론적으로 단순히 난로회라는 것을 정리하신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볼때 난로회 = 한국고기굽는 문화로 오인 할 수가 있는 문제인것 같아서 질문합니다.
     
감방친구 21-07-05 22:39
   
그런 얘기 나올까봐 본문에서 논의를 제한하였고, 댓글에 링크로 불고기 역사 관련 정리 잘 된 연구글을 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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