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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28 19:02
[북한] (일제). 독립운동이여.!! 10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731  

10편

 

 

***  간삼봉 전투와 혜산 사건        ( 사정상 사진들은 삭제함)

 

보천보 진공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낸 김일성 부대는 백두산 밀영으로 철수했다. 그 며칠 뒤에는 참모장 박득범이 인솔하는 4사가 도착했다. 4사는 국경을 넘어 무산지구로 들어가 공격을 편 뒤 화룡현으로 북상했다가 다시 남하해 백두산 동남부 조선 영내 베개봉을 지나 장백지구로 나왔다. 차오야판이 인솔하는 2사도 도착했다. 총병력은 400명〜600명의 연합부대는 6월 24일 밀영을 출발해 29일 간삼봉에 도착했다. 그동안 항일연군의 조선 진출에 다급해진 일본군은 김인욱 소좌의 지휘 아래 함흥의 제74연대를 출동시켜 국경일대에 대한 대토벌전을 감행하고자 했다. 김인욱 부대는 주력군이 간삼봉으로 이동했다는 정보를 포착하고 서둘러 그곳으로 나아갔으나 6월 30일 항일연군 2·4·6사의 연합작전에 말려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지휘관이었던 김인욱도 부상을 입고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삼봉 전투 소식도 국내에 크게 보도되었다. 동아일보 1937년 7월 2일자는 ‘함흥 신갈파 대안에 500여명이 내습, 함남군대 출동 격퇴’, ‘교전 3시간 만에 쌍방 사상자 67명, 총기 등 다수 무기 탈수(奪收)’라는 표제로 이 사건을 보도하였다. 기사는 “보천보를 습격한 김일성, 최현 일파가 조국안 일파와 합류한 연합항일군 약 500명이 국경 대안을 습격코저 한다는 정보가 함흥 연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김소좌’가 부대를 인솔, 출동해서 격퇴했다는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언론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천보 진공작전은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의 조중 연합부대가 이뤄진 가장 성공적인 작전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는 국내 민중에게 김일성을 ‘전설적인 항일 명장’으로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일본군은 조중 국경을 ‘금성철벽’이라며 자랑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군은 중국 각지에서 승승장구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조선 국내에서는 숱한 지도자, 지식인들이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친일파로 변절하기 시작했고, 민중은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때에 철벽이라고 자랑하는 국경을 쥐도 새도 모르게 넘어 들어와 주재소를 부시고 추격하는 일본군마저 섬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민중은 김일성에 대해 큰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 간삼봉 전투 소식을 전하는 동아일보 기사(1937.7.2.일자). 교전 3시간만에 쌍방 67 총기 등 다수 무기 탈수. “장백현 팔도구 백암두에서 공비 김일성, 조국안, 최현의 합류부대 6백명과 함흥 혜산 신갈파 수비대 김소좌 이하 OOO명과 교전 3시간에 이르러 공비측은 사자 50명 수비대측은 5명 부상자 12명을 내이고 공비의 총기다수를 탈수하고 30일 오전 7시 조선측으로 돌아왔다”라고 되어 있다. 


김일성의 이름이 국내 신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36년부터였는데, ‘공산군 김일성 일대’라든지 ‘동북인민혁명군 김일성 일대’, ‘김일성 일파 공비’ 등으로 보도되었다. 그런 와중에 보천보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보천보 전투는 김일성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나 규모 면에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 보다 훨씬 규모가 큰 전공이 많지만 그 어떤 전투보다 김일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전투는 무엇보다도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가운데 김일성부대 등 항일연군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기 있다. 

 

보천보 전투 직후인 1937년 7월 7일 일본군은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을 시작했다. 김일성은 일본이 중국 본토에 대한 침략을 벌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전선이 확대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머지않은 장래에 조선의 해방과 혁명의 기회도 찾아올 것이라고 보았다. 김일성은 박금철과 만나 공산당과 조국광복회 국내 조직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결정적인 시기를 위한 준비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보천보 습격 사건 이후 국내 조직망을 캐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였고, 1937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보천보 전투에 참가했다가 재차 지령을 받고 혜산읍에 잠입한 항일연군 공작원 3명이 체포되면서 조국광복회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0월 10일 항일연군에서 파견되어 국내에 들어와 있던 권영벽 등 8명이 체포되었고, 11월 중순까지 조선에서 162명, 만주 장백현에서 59명이 검거되었다. 수사는 1938년에도 계속되었고, 9월 박달 등이 체포되면서 사실상 검거 사건은 종결되었다. 조국광복회와 관련하여 총 739명이 검거되어 188명이 기소되었고, 그 중 권영벽, 이제순(이동석), 지태환, 서인홍, 이동걸, 박달(박문상) 등 6명이 사형을 박금철, 이용술(이경봉), 김성연(김철억), 이주홍 등 4명이 무기징역을, 그리고 이송운, 이호철, 김왈룡 등 38명이 10~15년의 중형을 언도받는 등 최종적으로 167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을 선고받은 박달은 병으로 사형집행이 연기되었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 1938년 9월 혜산사건으로 체포된 박달(중앙 포승 묶이고 수갑찬 사람)과 사건 검거에 공이 많다고 일본경찰 최고훈장인 경찰공로기장을 받은 경찰 최연(박달 오른쪽 안경 쓰고 나무지팡이 짚고 있는 자)


이와 함께 김일성의 신원도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사상휘보』 제20호(1939년 9월)에 실린 ‘혜산 사건’의 보고에 김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김일성의 신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본명 김성주(金成柱). 당 29세이며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출신으로 어렸을 때 친부모를 따라 간도 방면으로 이주하여 이 지방에서 성인이 되어 비적에 투신한 조선인이라는 것이 가장 확실하며, 현재 그 어머니는 살아 있다는 소식이다.” 이 중 어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것 외에는 모두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천보 작전 뒤 혜산 사건을 통해 조국광복회 조직은 사실상 궤멸상태에 빠졌고, 일제는 함경도 국경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공작과 더불어 방공단 조직 등을 활용하여 유격대와 주민에 대한 감시망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처럼 보천보 전투 후 항일조직이 파괴되고 치안공작이 더욱 강화되어 이 지역 민중의 고통이 심해졌지만, 보천보 습격 사건은 조선민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좌표를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항일투쟁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사건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11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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