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0-07-11 04:17
[북한] 6.25남침에 대한 전 북한 고위관료 망명자들의 증언
 글쓴이 : 돌통
조회 : 323  

망명 북한 관료 증언.

 

**  소,열차 천대분 3배 무장 무기 제공
"북침에 반격" 위장 반타격 작전 명명
소 유학생도 소환 비행사로 훈련시켜
김,전쟁 3개월전 "온천간다"며 극비 소 방문
6월22일 "3일후 중대방송 준비하라" 지시
김일성,전황 불리하자 소군 1개사 긴급요청
김일성박헌영 "작전 잘못" 서로 공격 틈 벌어져

 

*  박길룡 전 북한 내무성 부상(차관), 이황룡 전 인민군 병기총국장, 남봉식 전 조선중앙방송위원장, 장학봉 전 인민군 항공사령부 부사령관 등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고위직에 있었던 인사들이 김일성과 6 25 당시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새로운 증언을 해 충격을 준적이 있다.

이들은 특히 동란직전 소련으로부터 다량으로 무기가 반입된 구체적 사실 등의 증언을 통해 남침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주제에 따른 개별증언으로 비중있는 6명을 선정,그들의 인물별 종합증언을 재구성,정리해서 글을 옮겨 보겠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이들은 북한 망명자 들이다.  당연히 이런저런것을 떠나서 이들은 김일성 정권을 배격하고 떠난 사람들이니 개인적인 나쁜감정도 예외시킬수 없으니 이점도 알아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증언들은 지금 현재가 아닌 이전 90년대 초에 이미 증언한 것 들이니 시간적인걸 생각하셔야 겠고 난 이 자료들을 핵심만 추려서 정리하고 분석해서 글을 썼을 뿐이다.

 

이황룡씨

77세 구 소 로스토프 거주
47년 12월 입북
48~49.9까지 병기국장
49.9~51.4까지 무력지원위원회 고문
51.4~52.4월까지 병기총국장,예비군 소장

한국전쟁전 원조요청을 위한 김일성의 소련 비밀방문에 대하여 당시 통역관으로 따라간 문일에게서 얘기를 들었다.
처음엔 스티코프가 양국간 연락책이었다. 김일성은 온천을 간다고 하며 전쟁발발 3~4개월전에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모택동,"북 승산" 장담

김일성은 남한 국방군 섬멸과 남한 해방을 호언장담했으나 스탈린은 회의적이었다. 그때 스탈린과 모택동이 직접 통화했다.
모택동이 "만일 서울을 해방시키면 민중봉기와 유격대 활동으로 전 남조선이 해방된다"고 하자 스탈린이 동의했다.

6 25 발발전 소련이 북한에 제공한 무기는 탱크,곡사포,직사포,탄환,기관단총,수류탄,어뢰 등 약 1천여 열차분이었다. 전 인민군의 약 3배를 무장할 무기였다. 방어전이면 3분의 1이면 되는게 상식인데 무기가 무려 3배인걸 보고 "전쟁을 먼저 일으키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소련 원동(하바로프스크)의 병공창에서 무기를 실어온다고 소련측 책임자에게 들었다.

청진나남을 통해 무기를 반입하기 시작했고,다량의 무기는 흥남과 청진을 통해,소량의 무기는 웅진나진으로 반입됐다. 비행기는 직접 항공을 통해 왔다. 김은 무정을 고립시켰다. 무정은 포병사령관 출신이다. 김일성은 중대장밖에 못했다. 김일성은 권력다툼 때문에 "무정에겐 절대 알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휴전직후 중앙당의 내각상,부상 등이 모인 자리에서 김이 "큰 승리를 얻었다. 미군이 무릎 끓었다"고 하자,장시우가 "그게 무슨 승리냐,인적물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이게 무슨 승리냐"며, "나를 포함,여기모인 사람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후 "소련 물건이 질기기는 하지만 시장 가치가 없다"고 전쟁전에 그가 말한 것을 문제삼아 김은 그를 반소주의자로 몰아 숙청했다. 장시우를 미국 스파이로 몰아서 죽인 것이다.

 

남봉식씨

83세,하바로프스크 거주
45년 8월 통역원으로 입북
45년 11월 조선중앙방송국 심의위원
48~55년까지 조선중앙방송위원장
1958년 숙청

50년 6월22일 선전부장 박창옥이 불러 갔더니 3일 후면 중요한 보도가 있으니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날이후 24시간 대기하며 집에도 못가고 잠도 못잤다.

평상시에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책의 부관인 김단이 와서 곧 전쟁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1주일내에 승산이 없으면 북이 먹힌다"고 했다.

평소 6시부터 방송을 시작하는데 그날은 박창옥이 비밀방송 원고를 가져왔다.
 "오늘 아침 4시 남한 괴뢰 이승만이 북침했다. 인민군이 반격하고 있다. 공격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인민군대가 반격하여 38선을 넘어섰고 서울로 들어가고 있다는 방송을 계속 반복했다.

김,직접 방송원고써

이날 우리에게 방송의 권한은 없었고,모든 보도내용은 중앙당에서 왔다.
김일성의 방송원고는 종이쪽지에다 쓴 것이었다. 그래서 도저히 그걸 그냥 방송할 수가 없어, 우리 직원이 다시 작성하곤 했다. 45년 11월 김은 맨처음 원고를 보냈다.

 

박길룡씨

76세,모스크바 거주
45년 소련군 25군 정치장교로 입북,조소 문화협회부 회장( 대사관 전신)
체코,동독대사,외무성 부상
59년,소련파 숙청후 유학 핑계대고 소련으로 망명
조선공산당재건사 로 박사 학위

우리는 소련으로부터 여러차례에 걸쳐 김일성을 절대지지하도록 지시 받은 적이 있다. 46년 7월 박헌영과 함께 김일성은 스탈린을 만났다. 며칠에 걸쳐 스탈린과 면담했다. 그후 김일성이 지도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50년 10월 혁명기념 연회가 있었는데 간부들이 모두 모였다.

김일성이 기념사를 간단히 마치고 박헌영에게 "여보,당신 빨치산부대 모두 어디갔소? 당신 스탈린에게 뭐라고 했소. 인민봉기 얘기하지 않았소?"하자,박헌영이 김에게 "김일성동지,왜 후방에 군인 남기지 않고 모두 낙동강 전선에 투입했소. 그래서 독안에 든쥐 만들지 않았소"라고 책임분담을 얘기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술을 몇잔 마시고 러시아말로 "이자식아,나는 남조선 정세 잘 모른다"하며 잉크스탠드를 던졌고,그때부터 두사람의 관계는 틀어지고 말았다.

 

장학봉씨

75세 타슈켄트 거주
45년 8월 소련군 25군 정치부 번역원으로 입북
53년 2월~55년 4월까지 정치군관학교장
55년 4월부터 항공사령부 수사령관
57년 숙청

김일성은 전세가 불리하자,대독전(독일과 소련의 전투를 뜻함)에서 영웅적 활동을 하던 1개 사단을 달라고 소련에 요청했다. 그러나 직접 참전은 말썽이 난다고 하여 소련 비행사로 하여금 조선군대의 교육을 담당하게했다.

소련의 고셰도프 지도하에 1개 사단이 비행사교육차 북조선에 파견되었다. 소련에서 급히 불러온 조선인 유학생들을 1개조로 편성,긴급교육을 시켰다. 고셰도프 사단의 소련비행사 1명이 유학생 1명을 교육시켰다. 4~5시간의 강의와 비행기 실습위주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장소는 만주,동풍,안산,공주령이었다. 나는 항공사령부 산하 제1방사기 정치부장을 했다.
51년 2월에 교육받기 시작,51년 8월에 단독 비행했다. 9월부터 전투에 참가했으나 전투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소련 비행기가 뒤에서 엄호했다.

소련 비행기들이 주임무는 엄호였으나,엄호하다 보면 적 비행기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어 미군 폭격기가 들어오면 소련기가 올라가 공격했다.

 

메클레르씨

84세 모스크바 거주
소련 25군 정치담당

 

44년 88여단에서 김일성 만나고 해방 직후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운 소련군 실무장교중 유일한 생존자

44년 88여단에서 처음 김일성을 만났을때 그는 별 특징이 없었고,그를 지도자로 만들 생각도 없었다.

45년 9월 미네스코와 원수와 군사위원회 스티코프 대장으로부터 김일성을 영웅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33세 김일성"

그 당시 사람들에게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전설적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33세의 김일성을 본후 가짜가 왔다고 인민들 사이에 여론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어 기자카메라 기자들에게 연락후 만경대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의 할아버지할머니삼촌 등을 만나 그의 위신을 높여 주었다. 기자를 통해 선전한후 가짜 김일성이라는 말이 없어지고 진짜 김일성 이라 인민들이 믿게 되었다. 만경대를 찾아갔을때 동생인 김영주가 있었는데,신발도 안신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옷을 마련해 그를 모스크바로 유학보냈다.


.................

"미네스코와 원수"는 소련 제1 극동전선군 사령관 Kirill Meretskov (1897 – 1968) 원수의 착오이다.

스티코프 대장 : Shtykov, Terentii Fomich (19071964)

 

 

유성철씨

75세,타슈켄트 거주
43년 9월 88여단에서 김일성 통역원으로 있다가 45년 9월 함께 귀국
48~58년 인민군 작전국장
58년 9월 숙청

남침작전을 세울 당시 북한에는 전쟁경험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겨우 소규모 전투경험(빨치산)이 고작이었다.

소련군 고문단은 경험이 없는 우리의 작전계획도를 보더니 이래가지곤 곤란하다며 그들이 직접 작성했다.

강건 참모장이 불러 갔더니 노어로 된 작전 계획서를 주며 번역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극비라면서 .

그것이 반타격 작전계획 이다. 번역 후 노어로 된 명령서는 소각시켜 버렸을 것이다.

소련군 무력성 참모부에서 명령받고 고문단이 그 명령에 따라 작성한 것이다.

반타격 작전이라고 한 이유는 김일성이 남침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한에서 북침해 와서 반격한 것처럼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이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Cakia 20-07-12 12:29
   
숙청....
 
 
Total 18,13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8132 [기타] 한일중몽 상염색체 DNA 혼합물 비교 (해외 자료) (1) 예왕지인 14:31 248
18131 [한국사] 숙신과 불함산 관련 주요 고대사서 일람 (1) 감방친구 10:49 149
18130 [북한] 6.25의 모든것. 진실,사실,팩트.04편 돌통 08-04 130
18129 [한국사] 장백산과 압록수 연구의 도입(導入) (3) 감방친구 08-04 257
18128 [한국사] 고구려는 중국사 라고 우기는 중국인들 (10) 예왕지인 08-04 558
18127 [북한] 6.25의 모든것 진실 역사적 사실 팩트..03편. 돌통 08-04 192
18126 [중국] 중국 한푸 프로젝트 현실화 된듯 . (4) 예왕지인 08-04 596
18125 [기타] 요즘들어 한국인 유전자를 동남아랑 엮으려는 세력… (4) 예왕지인 08-04 500
18124 [북한] 6.25의 모든것.재미있는 대화식 학자,전문가들의 역사… 돌통 08-03 162
18123 [북한] 6.25의 모든것.학자,전문가들의 역사적 팩트. 01편 돌통 08-03 103
18122 [기타] 삼국통일 후 신라는 만주를 지배했었다. 우리가 몰랐… (7) 관심병자 08-02 850
18121 [한국사] 소설가 이문영씨가 환단고기를 부정하기 위한 글에 … (9) 스리랑 08-01 1089
18120 [한국사] 효종의 사인을 밝혀낸 현대 이비인후과 의사의 분석 (2) mymiky 07-31 1242
18119 [세계사] 몽골어족 영상 떴네요 예왕지인 07-31 783
18118 [세계사] 아직도 몽골과 고려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는 일본인… 예왕지인 07-31 868
18117 [북한] 정말 재미있고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두 얼굴의 '… 돌통 07-31 305
18116 [북한] 박정희 대통령과 남로당 돌통 07-31 166
18115 [북한] 6.25전쟁.3.8선 충돌. 그리고 전쟁의 형성.. 돌통 07-31 114
18114 [한국사] 동서양 미술 비교- 복원본 보리스진 07-30 496
18113 [기타] 미술에 대해서 동서양 기타 제 문명의 비교 Player 07-29 340
18112 [세계사] 동서양 미술 비교 (30) ep220 07-29 721
18111 [북한] 되돌아보는 6.25 수수께끼 02편. 돌통 07-29 241
18110 [북한] 되돌아보는 6.25 수수께끼 01편. 돌통 07-29 268
18109 [북한] 김일성 없는 북한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그 놈의 … 돌통 07-29 301
18108 [북한] 북한 노동당 핵심부서가 김정은에게 비밀 보고한 문… 돌통 07-29 202
18107 [북한] 오바마 북 선제공격 검토하다 결국 포기,백지화 돌통 07-29 252
18106 [한국사] 19세기말 프랑스 대통령이 조선 고종에게 보낸 도자… mymiky 07-28 309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