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동아게에서 관련 논쟁이 벌어지면
늘 강조해 온 것이
1) 민족 형성 이전의 역사를 가지고 민족을 논하지 말라
2) 민족의 개념부터 제대로 정립하고 의견을 펼쳐라
3)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양상과 전이를 이해하라
4) 지형, 즉 천연 방호막을 이해하라
등이었습니다
빙하기의 지형입니다
현 류구열도 북쪽 인근까지 뭍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홀로세 중기(8천~4천년 전)에 해수면 급상승 하기 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백두산을 비롯한 개마고원 일대와 현 하북평원의 서쪽이 얼어있죠?
빙하기 시대에는 북위 40도 선을 기준으로
그 이북은 한랭기후였으며
고지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40도 선을 만주에 적용하면 백두산과 요동반도를 잇는 선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따뜻한 남쪽은 말처럼 이동이 자유로웠을까요?
지금의 황해로부터 저 아래 류구열도 북쪽 인근의 땅끝까지 거대한 여러 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야 순리겠죠
이러한 천연의 장벽으로 인해서
구석기시대문화, 특히 후기구석기시대 문화는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가 단일문화권으로
황하 남쪽의 문화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좀돌날 석기를 제작하여 조립하는 방식의 석기문화가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에 공통으로 나타나는데
황하 남쪽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2만년 전에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에 살던 구석기 사람들이
같은 문화를 공유했다는 말입니다
북쪽은 빙하와 한랭 기후로
서쪽은 황하, 황해를 종단하는 여러 개의 강 등으로
막혀 있었고요
자, 이게 홀로세 중기, 즉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해수면이 급상승하기 시작하여서
요동만을 기준으로,
지금의 요양 서쪽 요중까지 해수면이 차오릅니다
여기가 해발 20미터 지역입니다
북경 코앞까지가 바다였습니다
무경총요에 따르면
북경 남쪽 패주시에 요택, 즉 뻘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었습니다
https://goo.gl/maps/nqWvX9VtNAaTForu9
독사방여기요에 따르면 현 천진시의 대부분은 바다였고요
무경총요는 11세기 사서이며
독사방여기요는 17세기 사서입니다
각각 모두 그 당시 지리정보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이전 시기의 사서들을 보면 대개 동북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보정시에서 북경시를 거쳐 현 북경시의 동부를 흐르는 로하를 건너서 이동하였습니다
그 남쪽 길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웠던 탓이죠
고대에는 황하가 현 랑방시, 천진시 방향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갔으며
북경방면에서 조백하, 영정하, 보정시 방면에서 역수, 호타하 등 무수한 하천이
이쪽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에 거의 바다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들 강이 합친 강줄기를 해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형적 환경에 따라서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는 이 바운더리 바깥의 문화권과는 다른 문화양상을 띠고 발전하였습니다
구석기 시대도 그러했고
신석기 시대도 그러했습니다
신석기 최종기에서 청동기 시대의 우리 문화, 즉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문화의 특징은
돌무덤, 석관묘, 비파형놋쇠칼 등입니다
이러한 생활문화에 공통의 종교관, 공통의 언어
우리 민족의 성립은 이러한, 구석기 시대로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장구한,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의 공통의 문화와 사람들을 통해서 서서히 형성되었고
그 꽃을 피운 것이 바로 단군조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