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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13 16:30
[북한] 김일성 항일무장 투쟁의 진실. 있는 사실 그대로..(2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1,046  

(제 2편) 


김일성은 무엇보다 민족 비극을 불러온 한국전쟁의 주범으로 각인되어 있죠.

그래서 지난 반세기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조차 어렵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새삼 김일성, 그가 누구인지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중국 길림시,

이곳은 김일성이 한때 성장기를 보냈던 곳입니다.


1927년, 15살 소년 김성주는 송화 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으로 진학하는데, 1912년 평양 대동군에서 태어난 그는 3.1운동 직후 가족과 만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후 여러 곳을 거쳐 어머니의 권유로 육문중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이 육문중 시절은 훗날 소년 김성주의 인생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당시의 학교 통합 건물이 남아있는 교정에는 세운지 오래되지 않은듯한 김일성 동상이 서있습니다.


육문중은 주로 중국인들이 다니는 명문 중이었다고 하는데 김일성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도 이곳에서 익힌 것이라고 합니다.

 

소년 김일성은 이 시절 처음 공산주의 사상에 눈을 뜨게 되는데 소년회 등에서 활동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절친한 교우였던 손원태씨,

그는 김일성과 지냈던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지난 91년부터 매년 미국에 정착한 어린 시절의 친구 순원태를 초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무엇보다 손원태를 환대한 것은 생명의 은인으로 여겼던 손정도 목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929년 가을,


김일성이 길림 감옥에 수감됐을 때 민족주의자였던 손정도 목사가 그를 구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육문중을 중퇴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죠.

 

김일성...


그가 항일 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주를 침략한 일제는 파죽지세로 만주를 점령해 나갑니다.

그러자 만주 곳곳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이 일기 시작하게 되는데..

 

연변 자치구,


당시 이곳의 간도 지역은 주민의 8~90%가 조선인이었는데, 그들에게도 이 시기는 참으로 혹독한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이곳 연변 자치구 안도현에는 항일 유격대의 역사를 말해주는 기념비가 하나 서 있습니다.

 

명월구 회의라고도 불리는 일명 옹성라자회의,


1931년 12월, 이 지역의 중국공산당 소속 공산주의자 40여 명이 모여 항일 유격대 창설을 결의하게 되죠.

일제의 만주 침공에 맞서 본격적인 항일 유격투쟁의 신호탄이 점화된 것입니다.

 

그 즈음 일제의 관원 자료에는 김일성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김성주, 즉 김일성은 당시 무송, 안도 지방의 조직 위원이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길림을 떠난 김일성의 행적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만주로 건너온 김일성이 항일 유격 별동대를 조직하게 된 것도 이 무렵입니다.


회의 결의에 따라 유격대를 조직하려던 그는 안도현 소사하 지역으로 숨어들게 되는데.


그가 이 무주마을 근처로 근거지를 정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김형직이 사망한 후 육문 중학 시절부터 따로 지냈던 어머니 강반석이 이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외딴 집에서 그의 동생들과 기거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일성의 어머니가 주거했던 집터는 논으로 변하고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까지도 어머니 강반석의 묘는 이곳에 있었는데 이후 북한으로 이장을 했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김일성이 최초로 항일 유격대를 조직했다는 기념비적 장소를 알고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의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그는 16명의 청년들을 모아 항일 유격대를 조직하게 됩니다.


소나무 아래에는 기념비가 서 있는데 비문에는 32년 4월 25일 항일 유격대를 창건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북한이 조선 인민군을 창설한 날이 48년 2월 8일인데도 불구하고 인민군 창설 일을 4월 25일로 바꾼 것도 바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죠..


그러나 안도에서의 유격대 결성은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그의 독자적 행보는 아니었다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30년대 중국 공산당에 김일성 신상이 기록되어 있는 미공개 문서인데.


그에 따르면 김일성은 32년 공산당에 입당했고 부대원 사이에 상당한 신임을 받은 듯합니다.


32년, 민족주의 계열인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은 별동대를 조직한 김일성이 찾아오는데 양세봉 밑의 참모장이었던 김학규는 자서전에 그가 공산청년 수 십 명을 데리고 와 무기를 요청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연길에서 안도로 건너가 유격대를 조직한 김일성은 이후 조선혁명군과의 연합이 좌절되자, 중국 공산당 소속의 왕청유격대로 합류하게 됩니다.

만주사변 이후 항일 유격대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초조해진 일제는 대규모 토벌대를 조직, 이들의 뒤를 쫓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항일 무장 세력들이 험준한 산악지역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벌이게 되는데, 김일성이 합류한 왕청유격대도 소왕청 첨아산 기슭에 진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1933년 봄,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 유격 전과 중 손에 꼽는 소왕청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첨아산 뒤쪽 유격대 사령부를 일본군이 공격한 것입니다.

바로 그 첨아산은 지금도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김일성이 있던 왕청유격대는 100여 명이고, 그중 10% 이상이 조선인이었는데 이들은 3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를 이끌어 냅니다.

이것은 일본군의 공격을 미리 알아내기에 유리한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항일 유격대들은 산 아래 유격호라는 마을을 결성해 식량 등 물자를 조달했다고 하네요.


당시 사령부 터에는 마을 사람들이 쓰던 우물도 있었다고 하는데 위쪽으로 한참을 올라간 산 중턱에 이곳에 항일 유격 근거지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중국 정부가 세운 비석이 있습니다.


87년 왕청현 지방정부가 세운 비석에는 32년 12월부터 유격 근거지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소왕청 전투를 끝으로 왕청현 유격대는 근거지를 옮기게 됩니다.

 

30년대, 만주지역에는 민족주의 계열의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 그리고 김일성이 있던 왕청유격대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이들 간의 연합도 활발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년현성 전투인데 김일성이 지휘하던 왕청유격대와 동천의 독립군들이 연합,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승전을 거듭하던 김일성에게도 시련은 있었죠..

30년대 중반, 간도 지역 조선인 항일투쟁 세력들이 대거 희생되는 이른바 민생단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도 그 충격을 분명 받았을 겁니다.


이는 일제가 조선인과 중국인을 이간시키는 차별 정책을 쓰면서 조선인들이 첩자로 몰려 한바탕 곤욕을 치르게 되는 항일 투쟁사의 분수령이 되는 가슴아픈 사건이죠..

 

김일성 부대에서 활동했던 김선은 심지어 옥수수 씨앗을 먹었다는 이유로 민생단으로 몰렸다고 합니다.


첩자로 몰려 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됐지만 김일성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상관인 중국인 간부 주보중이 바람막이가 돼 주었다고 합니다.


김일성에게 최대 위기였던 민생단 사건,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기회가 되기도 했죠.

상대급인 많은 조선인 투쟁가들이 희생되면서 자연히 20대인 그가 상급자로 부상할 수 있게 되죠..

 

이후 만주지역의 항일 무장세력들은 36년, 동북항일연군이라는 대규모 부대로 재편되는데

이 항일연군은 조중연합 형태로 30년대 중반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을 주도하게 되는데 김일성 등 조선인 간부들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주 전역에 걸쳐 11개군까지 편제를 갖춘 동북항일연군은 한때 그 규모나 세력 면에서 일제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는데

이 시기 김일성이 속한 유격대는 조선인들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는데 여성대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일성의 2군 육사 사장으로 있던 시절, 그 부대에 있던 김선은 여성대원들의 고충을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남성 부대원과 똑같은 활동을 했다.


30년대, 흔히 김일성 부대라고 불렸던 2군 육사는 백두산 장백현지구로 그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당시 신문지상에는 국경 근처 무송 등이 야합 세력에 의해 습격 당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

이를 시도했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김일성이었습니다.

이때 김일성은 일본군으로부터 부대 안에 첩자를 보내 정탐을 할 만큼 주목을 받는데

 

북한이 가장 대내외에 내세우는 보천보를 습격한 것도 이 동북항일연군 제2군 육사 사장 시절이었습니다.


추격 경관 일곱 명 사망, 여섯 명 부상, 다른 전투에 비해 결코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 조선인 무장세력들이 국내에 침공, 일제에 일격을 가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동북항일연군은 동, 남만주을  중심으로 한 제1로군, 길종지역의 2로군, 북만주의 3로군 편제로 구성 됬습니다.  그런데 1939년 일본군이 7만 5천 명 규모의 대규모 간도 토벌대를 조직,

공략에 나서면서 한때 3만 명에 달하던 동북항일연군은 1,400여 명 정도로 축소되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로 약해집니다. 

 

그 무렵 목재소를 습격하고 달아나던 김일성의 2방면 군은 이곳 홍기하에서 그 뒤를 쫓던 토벌대와 또한번 격전을 치르게 됩니다.


김일성 부대는 뒤를 쫓는 마에다 부대를 산 쪽으로 유인, 매복해 있다가 섬멸시키게 됩니다.


산 중턱에는 세운 지 꽤 오래돼 보이는 중국정부가 세운 기념비가 서 있는데..

만주 무장세력들의 패색이 깊어가던 40년 3월 25일의 일이었습니다.


김일성의 당시 직책은 항일연군 1로군 2방면 팀장이었습니다.

비문에 마에다 부대 120여 명을 섬멸했다고 되어 있으나 일본의 공식 자료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의 관원 자료는 김일성 비가, 즉 공비 전과의 접전으로 58명이 전사하고 27명이 부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제의 대규모 토벌이 시작되면서 동북항일연군도 붕괴되고 만주에서의 무장투쟁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일제의 집요한 공작으로 항일세력 주요 간부들의 투항도 줄을 있게 되죠..

김일성이 속한 1로군 사령이었던 양정우도 결국 일본의 패망을 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사살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런 사망자와 귀순자가 3,0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1940년 10월,


만주에서 활동하던 김일성은 부대원 10여 명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향하게 됩니다.


소련에 건너온 그는 브로시로프를 거쳐 하바로프스크에 머물르게 되죠.. 

이곳 88여단 시절의 상관이었던 주보중은 당시 그의 일기에 김일성이 대원 16명과 함께 소련 현지에 도착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배속된 88여단은 소련 극동전선 산하 사령부였는데 소련으로 퇴각한 동북항일연군이 주축을 이루게 됩니다.


김일성은 이곳에서 김정숙, 김정일 등과 함께 생활했는데 주보중 등 상관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보중은 이 88여단의 여단장, 김일성은 대다수가 조선인인 제1대대의 영장, 즉 대대장이었습니다.


소련군 비밀문서에도 그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은데 그의 소련 이름은 첸지첸이었다고 합니다.


소련에 안착한 김일성이 해방 후 그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최현, 안길 등을 만나게 되는 것도 바로 이곳에서였죠.

 

소련에 머물던 그 시기, 김일성은 해방을 맞게 되는데

그러나 한동안 북한은 그가 40년 말부터 해방 당시까지 소련에 체류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느데


해방 당시에도 만주에서 소유격대 활동을 하다 퇴각하는 일본군을 물리치며 귀국의 장도에 올랐다는 것을 주장하죠..

 

주체사상을 내세웠던 그에게 소련군 장교로서의 입성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요?

그러나 이후에 발간된 김일성 회고록은 해방이 되고 한 달쯤 뒤인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을 통해 귀국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나이가 먹고 늙으니 김일성도 성격이 조금은 변했는지..

 

해방과 함께 이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속속 국내에 입성하게 됩니다.

당시 국내에서 김일성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을까요?

1945년 한 우익단체가 실시한 설문조사는 해방 정국에서의 그의 위상을 짐작게 합니다.

 

지도자로 적당한 인물에 여운형, 이승만, 김구에 이어 6위에 올랐습니다.


또 내각의 국방부 장관격인 군무부장 1순위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해방 직후 대중들은 그의 항일 투쟁 경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33살의 김일성,


그가 쟁쟁한 정적들을 누르고 이북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항일 경력과 소련 군정의 지원 때문이었습니다.

 

해방 당시 북에는 조선민주당을 이끌던 민족주의 계열의 조만식이 있었고


그리고 남에는 같은 공산주의 계열의 강력한 라이벌 박헌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탁통치 정국이 시작되면서 조만식은 반탁의 대표 주자라는 점에서, 박헌영은 미국이 진주한 남한을 연고한다는 점에서 소련 군정의 신임을 얻지 못한게 됩니다.

 

해방 정국에서 소련 군정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김일성은 마침내 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설, 수상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한반도 남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김일성, 그의 이름에는 분단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죠

 

분단 반세기 만에 마침내 남북 정상이 만났는데

그것은 분단의 시대에서 통일의 시대로 가는 첫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에 김일성의 항일 투쟁들을 다루는 이른바 김일성학 강의가 등장하기도 하고

의외로 적은 수만이 김일성 가짜설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80년대 태어난 이들에게는 관심사도 아니었죠

이미 강의에서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그의 항일 투쟁을 인정했습니다


지난 1월 imbc를 통해 네티즌 1,4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의 결과도 지난 반세기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김일성 가짜설의 공고한 벽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네티즌들의 연령대가 젊은층이기는 하지만 김일성의 항일 투쟁 경력이 사실일 거라는 응답이 47%에 달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사실이라면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응답도 50%가 넘었다고 합니다.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소련에 머물던 40년대에는 연안의 조선의용군이, 중경 임시정부의 광복군 투쟁이 있었습니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시절,

조국 해방을 위해 몸을 던졌던 수많은 민족주의 계열의 항일 투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족독립운동사에 큰 흐름 속에 김일성을 어디쯤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일까요?


김일성...

그는 역사 속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이제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야 할 세대들에게 그에 대한 6.25와 함께 객관적 평가가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끝~~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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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군 19-08-13 22:37
   
무플 방지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경력은 가짜라고 교육받은 세대입니다. 내가 나이가 50대인데 진실을 흐릿하게 알게 된게 10년도 안됩니다. 가짜로 삼대를 거쳐 정권을 잡을 수는 없겠지요.
     
술먹지말자 19-08-14 00:06
   
님  정게에서 말하는거보면 딱 철부지 10대 같드만  뭔 50대라고 ㅡㅡ;;

님은 평소보면 다른사람이랑 생각이 다르면  덮어놓고 우르르몰려다니면서 왜놈 일베충으로 몰아가고 항상  악플만 달고 다니는 사람이  뭔 50대라고 ...말이 되는소릴하셔야죠
moveon1000 19-08-14 00:04
   
항일투쟁 기록이 있지만 과장된거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보천보 전투도 직접 싸운것도 아니구요
구름위하늘 19-08-14 14:10
   
김일성은 소련의 비호를 받은 이승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름"은 있었지만 실제로 독립운동에 도움은 거의 안돼거나,
오히려 피해만 준 인물이니까요.

이승만의 알려진 공로 대부분이 후대에 허위나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명성이 침몰한 것 처럼
김일성도 그러합니다.

상해임시정부의 파행운영의 큰 책임은 미주 독립자금을 모아온 이승만처럼 명성만 쫓는 가짜 정치가에게도 있고,
함께 나아가는 대신 공산당만의 발전을 위해 소련 지원금을 독식한 공산당 일파에게도 있죠.
독립군에 가장 큰 피해를 준 자유시 사건은 소련+공산당 일파(독립군과 따로 놀던)가 함께 만들어낸 참극이죠.
소련의 기본적인 방침은 "서부전선에 집중하기 위해서 일제를 건드리지 말자"였고,
그런 소련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의 항일운동 이력이란 ...
참과 거짓이 많이 ... 그것도 거짓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심병자 19-08-15 00:06
   
독립군이 약화된 사건이 1921년에 있었던 자유시참변 이었습니다.
이때 독립군은 소련군에 편입되거나 소련군과 교전후 죽거나 포로로 잡히면서 와해되었고 무장독립투쟁이 이때를 기점으로 약해졌습니다.
일본은 추축동맹 이었지만 독일과 소련이 싸울때 참전하지않았고,
오히려 45년 일본과 소련은 불가침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런 시대 배경을 봤을때 소련군에 소속되 있던 북한 김일성은 보천보전투에 참전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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