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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28 17:05
[한국사] 왕의 호칭과 봉작 등등
 글쓴이 : 윈도우폰
조회 : 909  

'왕'에 해당되는 용어는 각 국이 자기 편의대로 불러오다가 중원 쪽과 교류를 하면서 호칭을 중원 식에 맞추어 쓰면서 '왕'이 통용된 것임.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선진국이나 큰 나라가 폼나 보이기 때문에 그 쪽 명칭을 준용하게 되는 것임. 그러다가 호칭 인플레가 생기면서 왕이란 용어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다양한 왕의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 것임. 

반면 황제는 수 많은 왕들과 나름 차별화하기 위하여 왕중왕의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여 새로 만든게 황제나 천자일 뿐...황제 역시 또 다른 왕의 개념...즉, 최고 수장 개념

영어의 president를 대통령으로 할 것인지, 총통으로 할 것인지, 대원수로 할 것인지는 그 나라의 정치체제를 고려하여 번역하는 것일 뿐이지 실제 그 속성 상 다른게 아님. 

예전에 우리의 임금을 뭐로 불렀느냐하고...그러다가 '왕'이라 호칭하는 단계에서 국가수준에 있어 뭐 크게 변화한게 있어서가 아닌 것임. 반면 중원 땅에서 공(公)을 왕으로 호칭변경하는 것이 나름 의미가 있었지만...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님. 그냥 중원 애들이랑 교류하면서 그 쪽식 호칭을 쓰면서 굳혀진 것에 불과.

황제나 태왕이나 대왕, 천황...이 모든게 내부적으로는 같은 급...하지만 교류하게 되면서 서열을 메기고자 하면서 책봉체계 속에서 왕의 위치를 규정하게 되는 것일 뿐임. 반면 내부적으로 왕같지 않은 왕이 바로 후왕, 번왕 그리고 우리 나라의 갈문왕이나 왜의 친왕 개념. 그리고 소규모 국가의 왕을 군왕(郡王)이라고도 하는데...이러한 군왕은 추장과 별 다를 것이 없는데....고조선 말기 우리의 열국 들이 이에 해당.

어쨌든 동아시아의 정치체계가 중국식 호칭으로 통일되면서 왕의 호칭 변경이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도 그에 따른 것일 뿐임. 우리의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중국식 호칭에 있어 책봉국의 왕에게는 장군의 호칭이 부여되는데...백제 왕이나 왜왕에게 정동대장군, 진동대장군 등이 그 예... 이런 것은 왕이나 후와 같은 봉작 개념과는 또 다른 것

유목민족에게 있어 최고 수장의 명칭은 '칸' 내지 '간'...신라의 김씨 왕조가 흉노계열이라는 주장도 있어서인지는 몰라도...김씨 왕들에 대해 '간'이 들어가는 호칭이 있는데 그게 바로 거서간이나 마립간...여기서 '간'은 '칸'과 같은 음이자 같은 뜻

또한 동아시아 조공체계로 편입되면서 귀족의 호칭도 중국식으로 변하면서 책봉 형식을 취하는데...그 때 쓰인 것이 바로 왕이나 후...밑에 장수는 왕이나 후로 책봉을 요구하고, 자신은 대왕으로 불리는 구조가 백제나 신라가 동일. 하지만 소위 대외적으로 '건원칭제'를 하지 않을 뿐이지...내부적으로 황제처럼 군림...원의 간섭기 이전 고려가 그랬음. 대외적으로는 왕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황제...그래서 황제의 상징인 노랑색을 사용.

백제의 경우는 대왕의 친족을 담로의 수장으로 보내면서 쓴 용어가 후왕...그 대표적인 것이 왜왕. 이 시기 왜왕은 대왕이라고 칭하지 못하고 백제의 후왕...칠지도에 왜왕을 후왕으로 칭하고, 칠지도를 백제의 왕자가 후왕에게 하사하는 구조로서 후왕은 대왕의 아들인 왕자보다 아랫 서열임. 그러다가 백제 말에는 왜왕이 대왕을 칭하면서 약해진 백제와 대응한 위치로 올라서고자 했고, 백제가 망한 이후에는 꼴같지 않게 천황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임.

책봉구조에서는 보통 왕과 후 정도만 요구함. 동아시아에서 백작, 자작, 남작은 실제 책봉 요구에 별로 안 쓰임. 백작에서 남작은 사실 서양식 작위 개념에서 일반적인 것이고... 공(公)역시 서양식 공작(prince, duke) 개념과는 달리 책봉 요청에서는 안 쓰이고 내부적으로 공신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성격이 바뀜.

반면 중국에서 공(公)은 최고의 작위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왕에 준하는 위치...이들이 결국 전국시대에 들어가 왕을 칭하게 되는 것임.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공신의 작위로 공을 쓰게 되고, 다른 작위는 안쓰면서...소위 공경대부 체계로 변화. 그런 점에서 '공 > 경 > 대부'는 봉건제의 작위와는 그 성격이 다름

서양의 경우는 백작서부터 독립적인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위치로 보는데 백작이 세운 국가가 백국, 후작이 세운 국가가 후국, 공작이 세운 국가가 공국, 왕이 세운 국가가 왕국인 것임. 백국 중엔느 트리폴리 백국 같은 것이 대표적.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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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ender 19-05-28 17:46
   
명쾌하신 조언 감사드립니다 윈도우폰님

아래 쓰레기같은 왜구 야요이놈 때문에 아주 요즘 가생이 동아게 회원님들이 난리도 아닙니다.

저번에는 강릉김씨 아이디로 자유게시판에서 양아치부심까지 부리더라구요, 조센징 니네들은 절대 일본남자들 못당한다 이런식의 글을 써서 아주 회원님들한테 민폐끼치고 난리도 아니였습죠.

잠깐 지 엄마한테 맨날 들었던 일본식 가정교육이라면 "타닌니 메이와쿠오 카케루나 = 타인에게 민폐끼치지 말아라" 인데, 왜 왜구들은 항상 외국사람, 특히 한국사람들만 보면 아주 민폐를 끼칠까요

가생이 회원들한테도 그렇구요
     
Attender 19-05-28 17:46
   
하플로그룹 = 강원도인 =강릉김씨 = 야요이 = 왜구
백운 19-05-30 15:38
   
한민족의 지도자를 시대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먼저 현생인류가 새롭게 역사를 시작하는 시기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홍적세 마지막 빙하기에 인류는 바이칼 호수 근처에 모여 살았는 데, 이는 호수 주변에 온천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1990년 미소합동탐사반이 잠수정을 타고 수심 420m를 내려가 보니 바닥에 큰 구멍이 뚫려 있고 거기에서 온천수가 솟아 나오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빙하기에 온천이 흐르는 곳은 식물이 자라게 되고 이어서 동물들을 불러 모으게 되니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바이칼 호수에는 약 620여 개의 크고 작은 강들이 흘러드는 데 흘러나가는 강은 앙가라강이 유일합니다.

앙가라강은 바이칼호수의 서쪽으로 흐르는 데, 그 상류에 있는 말타부렛에서 인간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됩니다.

말타부렛인들은 현재의 유럽인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합니다.

물론 아메리카 인디언은 다시 동아시아인과 섞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타부렛인들이 살았던 시기는 약 24,000에서 약 15,000년 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약 8,000년 전에 비로소 유럽에 사람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말타부렛에서 9,000년 정도 살았던 흔적이 나타나며 그 이후부터 이들의 종적은 끊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15.000년전에 북반구에 상상할수도 없는 해일이 밀려와 모든 생물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해일에 뽑히고 부러진 나무들이 밀려와 지금도 북극의 섬에는 수백피트의 높이로 쌓여있는 나무더미들을 볼수 있습니다.

당시의 해일로 해수면의 높이는 100m나 상승하게 되고 서대양(Atlantic Ocean)은 해류의 흐름이 끊기게 됩니다.

이로 인해 북반구는 약 1,200년 동안 영거드라이아스라는 간빙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간빙기가 끝나자 비로소 인간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바로 이 시기 해일이 밀어 닥칠 때 한민족의 선조들은 방주를 타고 이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당시의 이야기가 수메르의 왕 길가메쉬 서사시에 홍수와 방주의 이야기로 나타나며 이는 다시 성경의 창세기에서 노아의 방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한민족이 타고 온 방주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 지는 다음 사진에서 확인할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을 올리는 방법을 몰라 해당 사이트를 링크 하오니 다른 설명자료는 무시하시고 오직 사진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자료도 마찬가지로 사진만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http://naver.me/xPOZfkDg

위의 기사에 보이는 사진을 흔히들 아사달 문양이라 하는 데, 정확히는 아스알 문양으로 불러야 할 것입니다.

아스알은 배 위에 알이 놓여져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데, 이는 솔라 에너지로 움직이는 비행선을 의미함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스알은 높이가 약 삼천장이 넘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던 코룸(崑崙)의 정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아스알의 형상으로 만든 갓을 머리에 썼기에 이 분을 큰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한알(天)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럼 처음으로 태어난 한알(天)의 모습은 어떠했는 지 한 번 살펴보시지요.

http://naver.me/Fe9Kdp6j

위의 사진은 홍산옥기 위에 그려진 한알의 모습으로 머리에 아스알 형상의 갓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 한알은 편두를 하였기에 갓이 머리뒤로 약간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분이 역사의 기록에 한인( 桓因)으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럼 이 분이 정말로 한인을 가리키는지 다른 곳에서 한 번 찾아 볼까요?

http://naver.me/xogJsbu8

위 사진의 인물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오시리스의 모습입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오시리스는 홍산옥기에 나타나는 한인과 그 모습이 닮아 있습니다.

오시리스(Osiris)는 달리 아스알(Asar)이라 하니 이분이 바로 아스알에서 태어난 최초의 한알이 되는 것이지요.

혹시 오시리스는 한민족이 아니라 이집트 원주민의 선조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다음 사진을 보면 한민족의 선조임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sky33344/110035227189

위 사진에는 이집트 평민과 혼혈인 그리고 동아시아인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바로 티우(Tiu)라고 불리는 분이 이집트 왕조의 전설적 인물인 것이지요.

이분의 후손들이 나중에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베르베르족이지요.

베르베르족의 선조는 쿠리(Khurri)라고 하니 바로 우리의 구리(九黎)가 건너간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베르베르의 어원은 버버리라고 하니 이는 벙어리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구리(九黎)가 지중해에서 만난 그리스인들과 대화를 나누나가 말이 통하지 않자 모두 "버버리구나 버버리"라고 한 것이 그리 전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베르베르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를 보아서도 알수 있듯이 오시리스는 한민족의 최고지도자인 한인을 의미함이 확실하다 할 것입니다.

오시리스의 뒤는 세트(Seth)가 잇게 되는 데, 우리의 한웅(桓雄)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한웅은 서자 출신이라 하니 정통성 없이 자리에 올랐음을 알수 있습니다.

한웅은 최고지도자의 호칭을 제(帝)로 부르게 되니 이로써 천제(天帝)라는 말이 생겨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세트의 뒤는 호루스(Horus)가 잇게 되는 데, 바로 우리의 단군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아들로 등장하고 있으니 이는 세트를 부정하고 오시리스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단군의 시대에 이르러 최고지도자의 호칭이 다시 한알(天)이 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 단군은 한인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 데, 실제의 혈연관계는 소호금천의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http://naver.me/5JiahExT

위의 사진에 보이는 호루스는 아스알 형상의 갓을 쓰고 있는 데 특이하게도 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원가(袁珂)의 중국고대신화에는 소호금천이 백제(白帝)의 아들인 계명성과 항아(姮娥)가 은하수가에서 만나 낳은 아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소호는 자라서 동방의 바다 밖으로 나가 나라를 세워 소호국이라 불렀고 그 곳에서 새를 신하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소호는 지(鷙)라 불렸는 데 이는 매나 독수리와 같은 맹금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동방을 다스린 소호는 다시 서방으로 돌아가며 첫 째 아들인 중(重)을 남기게 되는 데, 중(重)은 사람의 몸에 매의 얼굴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호루스 즉, 단군은 소호금천의 아들로서 매의 탈을 썼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헬렐(Heliel)을 낳은 아버지인 사하(Shahar)로 등장하는 데, 이분이 달리 루시퍼(Lucifer)로 불리고 있습니다.

http://naver.me/5QfXlrLy

위 글은 소호금천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사하로 불렸고 달리 빛을 가져오는 자의 뜻인 루시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호와 사하는 공히 계명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럼 소호가 동방을 다스렸다가 다시 돌아간 서방은 바로 당시의 수메르를 말하는 것입니다.

수메르에 살던 소호금천의 후손들이 기원전 2334년 그곳을 떠나 중원대륙으로 진입하며 단군의 시대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최고지도자가 큰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한알이라 부르고 아스알의 형상으로 만든 갓을 쓴 모습을 글자로 만들어 탄(天)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천(天)은 당운(唐韻)에서 타전절(他前切)이라 하였으니 천(天)의 당(唐) 시대 발음은 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턴의 본래 발음이 탄이었음을 다른 글자의 변천과정을 통해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석가(釋迦)를 불교에서는 앞말의 받침을 탈락시켜 서가로 부르는 데, 이는 샤카(Shakya)의 소리를 받은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타(佛陀)의 발음 역시 앞말의 받침을 탈락시켜 부타로 읽어야 하는 데, 이는 붇다(Budda)의 소리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말은 어떤 것이 있다가 없어지면 양모음이 음모음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 데, 대표적으로 알이 얼로 바뀐 것 등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타의 발음은 부터가 되었을 것이고, 구개음화를 거쳐 지금은 부처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를 준용하여 천(天)을 풀어보면, 천(天)은 턴에서 왔고 그 본디 발음은 탄이었음을 알아낼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대 유럽에서도 하늘을 탄으로 불렀다는 것에서도 신빙성을 더할 것입니다.

그런데 탄(天)은 구리(九黎)의 임금이었으니 탄구리로 불렸을 것이고 이 말이 나중에 탱그리(Tangri)나 단군(檀君) 등으로 전해오고 있다고 봅니다.

탄(天)은 나중에 술탄(述天)과 보탄(本天) 등으로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천(天)은 단군시대를 관통하며 계속해서 머리에 갓을 쓴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http://me2.do/xNORKrmA

위의 사진은 상(商)나라 무정왕 시기의 갑골문이라 하는 데, 엄밀히 말하면 단군시대의 갑골문입니다.

마지막 사진의 가운데 하단 부분에 천(天)의 글자가 보이는 데머리에 갓을 쓴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때까지도 한알(天)은 최고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나라 말기에 이르면 천(天)의 글자에서 머리에 쓴 갓은 사라지고 없으며 왕(王)이라는 글자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http://me2.do/FrFcUT6j

위의 사진은 상나라 말기의 갑골문인 데, 왕(王)의 글자가 나타납니다.

상나라 말기에는 이 땅에 큰 재앙이 닥쳤으니 바로 코룸의 화산폭발로 아스알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리는 비극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한알(天)이 다시는 아스알 형상의 갓을 쓸수가 없게 되었기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알(天)은 아스알이 사라져 간 허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바뀌게 됩니다.

코룸은 오악의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어느 분이 구글 맵으로 5개의 종상화산을 찾았다고 알려준 바 있습니다.

한알(天)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남은 무리들은 삼한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삼한의 임금들은 동시에 창조주 마라(麻羅)의 권능을 이었다는 뜻으로 왕(王)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왕(王)의 초기 글자는 세 획의 크기나 간격이 동일하게 그어져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삼한의 임금들은 갑골문 대신에 금문을 만들어 쓰기 시작합니다.

 http://me2.do/F5fkPbTg

위의 사진은 대풍돈 금문입니다.

대풍돈 금문은 주나라 무왕 때 만든 것이라고 하는 데, 엄연히 삼한의 임글들이 초기에 만든 것입니다.

동 금문에는 천(天)의 글자가 보이는 데 머리에 쓴 갓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또 왕(王)의 글자도 동시에 등장하는 데, 세 획의 크기나 간격이 똑같이 되어 있습니다.

동 금문의 내용을 한족들이 주나라 무왕이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금문은 당시의 정황상 최고지도자의 호칭이 천(天)에서 왕(王)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王)의 글자가 탄생하는 과정에 주나라의 무왕이 개입될수 있는 여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한의 임금들이 모여서 왕(王)이라는 글자가 나왔으니 주나라의 관리책임자는 결코 왕이 될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런 전통은 삼한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만, 삼한의 임금들의 위상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 데, 그 때문에 왕(王)의 글자 또한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http://me2.do/GWZ8B5ml

위의 사진은 대보돈 금문인 데, 왕(王)의 글자는 가장 아랫부분의 획이 굵게 나타납니다.

이로써 알수 있는 것은 삼한중에 가장 늦게 태어난 진한(辰韓)의 임금이 점점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http://me2.do/xFXxZ9KI

위 사진은 공돈 금문으로 왕(王)의 글자는 아랫부분이 두꺼워짐과 동시에 아래로 그은 획도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진한의 임금이 갈수록 더 많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me2.do/xLZubSsj

위 사진은 사송돈 금문인 데, 왕(王)의 글자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을 확인할수 있을 것입니다.

http://me2.do/5CxqkpvW

위 사진은 대돈 금문인 데, 왕(王)의 글자가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습니다.

http://me2.do/xsAQLYe7

위 사진은 대우정 금문인 데,  왕(王)의 글자는 아랫부분이 계속해서 두꺼워져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http://me2.do/FMXkKoge

위 사진은 상나라 말기의 금문이라 하는 데, 왕(王)의 글자가 변해 온 과정에 비쳐보면 삼한시대 말기의 금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금문에서 왕(王)의 글자는 아랫부분이 비정상적으로 굵게 나타나는 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왕의 글자가 임금의 권력을 상징하는 부월을 상형한 것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금문에 보이는 왕(王)의 글자의 해석을 통하여 삼한의 임금들의 위상이 어떻게 변해왔는 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 금문은 주나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삼한에서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나라는 칭왕을 할수가 없었으며 오직 삼한의 임금들만이 왕(王)으로 불렸다는 것도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처음에 한알(天)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왕(王)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을 인식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한족들의 지도자는 칭왕을 할수가 없었기애 나중에 스스로 황(皇)이라 일컫게 됩니다.

황(皇)이라는 글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자(自)와 왕(王)이 결합된 글자로 풀고 있습니다.

그러니 황(皇)은 스스로(自) 왕(王)을 빙자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황(皇)을 처음으로 일컬은 이가 진나라의 영정이었기에 역사는 그를 진시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은 한족들이 황(皇)의 밑에 왕(王)을 둔 것입니다.

글자(㓞字)의 조성원리는 본래의 글자에 다른 글자를 덧붙여 가며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기존의 글자를 파자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법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왕(王)의 글자가 있고 난 다음에 황(皇)의 글자가 있게 되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글자의 조성원리에 비쳐보면 왕(王)은 엄연히 황(皇)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족들이 왕(王)을 황(皇)의 밑에 두게 되니 이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의 밑에 있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이를 보면 한족들은 글자의 조성원리를 전혀 모르는 무지렁이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글자를 한민족이 만들었기에 모를수도 있는 것이지만, 만약 알고도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자 하는 흉계가 숨어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한민족의 후손들이 스스로 왕(王) 보다 황(皇)이 높다고 하고 왕(王)으로 지낸 선조들을 부끄러워 한다면 이는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니라고 할수 없을 것입니다.

한민족의 지도자는 삼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왕(王)을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대왕(大王)이나 태왕(太王)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민족의 지도자는 한알(天)과 임금(王)이었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고 황제(皇帝)는 기억속에서 버려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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